동아시아연구원은 한국 외교의 미래 비전으로 “중견국 외교”(middle power diplomacy)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중견국 외교는 국력기준에 의해 중견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의 외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외정책의 특징에 의해 좁은 의미의 국익과 더불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외교, 그리고 지역적•지구적 차원의 아키텍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외교를 일컫는다. 중견국 외교는 미중간 세력균형 변화에 따라 증대되는 지역 불안정성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한국 외교의 전략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본 연구의 일환으로 동아시아연구원은 2013년 7월 15일 비쉬누 프라카쉬(Vishnu Prakash) 주한인도대사를 초청하여, “인도의 동아시아지역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과 한국”이라는 주제로 제2회 주한외국대사 초청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였다. 프라카쉬 대사는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 인도의 대외정책 전략에 대해 발표하였고 이어서 토론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주요 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도의 경험

 

인도는 서아시아에 위치해 있지만, 역사적•전략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 미얀마 및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와는 90해리에 불과한 거리로 인접해 있다. 이로 인해 수천 년의 역사 동안 동남아시아 및 동북아시아 국가들과 높은 수준의 정치•경제•문화적 교류를 지속해 왔고, 인도의 종교, 언어, 문화, 음식 등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인도 아유타국 왕실의 공주가 가야국 김수로 왕과 혼인을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나,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를 순례하고 남긴 《왕오천축국전》 등은 인도가 한국과도 오래 전부터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방대한 영토를 가진 인도는 다양하고 이질적인(heterogeneous) 국가 및 문화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매우 복잡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1950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전체 인구의 17퍼센트 만이 스스로를 인도인으로 규정했을 정도로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인종, 종교, 지방을 토대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에 실시된 같은 여론조사는 41퍼센트의 응답자가 자신을 인도인으로 규정하고 있어, 인도 사회 내 상당한 통합(synthesis)의 흐름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적으로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2억 인구의 최대 민주주의 국가이고, 빠른 속도(연평균 6~8퍼센트 GDP 성장률)로 성장하고 있는 브릭스(Brazil, Russia, India, China: BRICs)에 속한 대표적인 부상국이자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다. 한편, 빈곤율이나 1인당 국민소득 측면에서는 아직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경제규모와 삶의 질 간의 격차가 크다. 외교적으로는 서남아시아의 맹주이며, 유엔 다자외교에서 비동맹외교를 선도해 왔던 중견국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인도는 2,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등 수 많은 외세의 침략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지배를 받았다. 경제적으로도 근대국가로 출범할 시기에 과거의 번영을 무색하게 만드는 몰락을 경험했는데, 영국의 저명한 역사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에 의하면 1820년 세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약 23퍼센트를 차지했던 인도 경제가 1947년 독립국이 되었을 때는 불과 1퍼센트를 차지하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인도가 전략적 독립성의 확보 및 경제발전의 지속을 최우선 국가 과제로 내세우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경제발전이 국가목표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자연히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1990년대부터 추진하게 되었다. 실질적으로는 2005년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16개국의 일원이 되고, 일본이나 한국 등의 동아시아국가들과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등을 체결하면서 동아시아지역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오고 있다.


인도의 대외전략

 

인도의 대외정책은 대내정책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젊은 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고용창출의 차원에서 지속적 경제발전은 인도의 국익에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인도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룩해 나가는 것으로, 이에 따라 인도의 외교전략은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주변 국제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0년 간 인도는 연평균 6퍼센트에 달하는 GDP 성장률을 보이며 구매력 평가 기준 GDP 규모가 6배나 증대되었지만, 1인당 GDP는 아직 1,500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세계 경제와 밀접히 연결된 가운데 주변 국가들과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정세를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인도는 아프가니스탄, 부탄, 방글라데시 등 주변국가들에게 200만 달러에 달하는 대외원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칭적인 호혜관계가 수립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역 내 대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주변국가들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동시에 인도는 오랜 식민지 통치와 외부 세력의 침략을 경험한 역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안보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전략적 독립성(strategic autonomy)을 확보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핵무기 개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핵보유국이자 1962년 중국-인도전쟁 이후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과 4,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갈등관계를 갖고 있는 파키스탄이 핵무장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신뢰할 만한 억지력과 방어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인도 역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인도는 핵선제공격배제(No First Use) 원칙과 비핵국가를 상대로 한 핵무기 공격 금지 원칙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

 

인도는 지역 내 대표적인 현상유지세력(status quo power)이다. 2009년 국제전략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가 실시한 국제여론조사에 따르면 인도가 아시아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라고 응답한 비율이 3퍼센트에 불과해 한국(0.5퍼센트)과 일본(2퍼센트)에 이어 세 번째로 지역 내에서 안보위협을 제기하지 않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 스스로가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의 대내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린다. 동시에,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변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향후에도 인도가 지역질서 안정 및 평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펼쳐나가게 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외교에 대한 제언

 

1. 협력과 경쟁이 혼재된(coop-tetion: cooperation과 competition의 합성어) 시대에서는 국가이익에 대한 고려를 중심으로 주변국가들과의 입장 차이를 줄이고 공통점을 확대해 나가는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다. 인도는 냉전기에도 비동맹 운동(Non-Aligned Movement: NAM)을 주도하며 미국이나 소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노선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도는 탈냉전기에도 비동맹외교를 통해 특정 세력에 대한 봉쇄나 견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파트너십 구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정치는 협력과 경쟁이 혼재된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특정 세력과의 연대를 토대로 반대 세력과 대항하려는 외교는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다. 대외정책은 언제나 국가이익을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자국의 국가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주변국가들의 이익과 상충되는 부분을 줄여나가고 공통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중견국 외교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지역 내 가장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 국가들의 다자외교를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2. 지역 내 안보협력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협력이 용이한 부분부터 시작하여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단계별 접근법이 필요하다.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은 동아시아 지역 내 국가들이 서로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역 내 경제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경제 영역 외의 다양한 이슈들, 즉 테러, 해적, 기후변화, 재난 등 지역이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과제들을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다자제도가 필요하며 특히, 동아시아 지역 내 취약한 안보협력의 제도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문화영역의 교류와 같이 비교적 협력이 용이한 이슈들에 집중하여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단계적 접근법이 중요하다. 이러한 지역 내 단계적 협력 확대를 위해 한국과 인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3. 정체성, 경제, 안보적인 고려에서 한국은 인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한국과 인도는 정체성 차원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경제•안보 이익을 공유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앞으로 관계를 더욱 긴밀히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 민주주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법치(rule of law)를 존중하기 때문에 정체성의 차원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경제적으로도 인도는 높은 저축률과 튼튼한 내수시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역 내 부상국 가운데 가장 낮은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성장 지속가능성이 높아 매력적인 협력 파트너라 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체결한 한국-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CEPA)을 보다 높은 수준의 FTA로 개정하여 경제협력을 심화해 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안보적인 차원에서도 인도는 한국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양국 국가안보의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과는 지속적인 협력 강화가 필요하고, 동시에 경제대국이자 주변국인 중국과도 우호적 관계를 심화시켜야 한다. 따라서 미중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이유는 없으며 인도와 한국 양국 공히 국익에 따라 두 나라 모두와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중국이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인도를 견제하듯,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한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과 인도가 포괄적인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할 중요한 유인으로 작용한다고 여겨진다.■

 

 


 

 

발표자
비쉬누 프라카쉬 대사는 1981년 인도 외무부에 입부하여 모스크바, 뉴델리에서 근무하고 뉴욕에서 경제상무 업무를 담당하였다. 1992년 블라디보스톡 총영사로 근무하였으며 총영사로 근무할 당시 러시아 극동지역에 다수의 인도 기업이 설립되었고 직접무역의 길을 열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외무부 네팔, 부탄 담당 과장을 지냈고 이 기간에 하와이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소에서 3개월간 안식기간을 가졌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도쿄, 2001년 이슬라마바드에서 각각 정치담당 참사로 근무했고 2002년 경제상무 담당 공사로 이집트에서 근무하면서 이집트 내 인도 투자 증진에 힘썼다. 상하이 총영사로 8개월간 근무 후 외무부 국장 및 외무부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2012년 1월까지 뉴델리에서 근무하였다. 2012년 1월 12일 주한인도대사로 부임하였다.

 

사회자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토론자
강찬호, 중앙선데이 정치에디터
김중근, 서강대학교 교수; 전 인도대사
손    열,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장
전재성, 서울대학교 교수
정구현, (사)서울국제포럼 회장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인도·남아시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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