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일본연구패널 보고서 No.1

 

저자

박명희_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BK21사업팀 박사후과정 연구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사) 지구촌나눔운동에서 근무하였다. 2009년 일본 게이오대학(慶應義塾大学)방문연구원을 거쳐, 2011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논문명: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정치변동과 시민사회: 고령자복지 NPO의 애드보커시를 중심으로”)를 받았다. 연구 논문으로는 “일본 시민사회의 두 가지 인도주의(2010, 일본연구논총, 공저)”, “일본의 정당정치 변화와 NPO의 애드보커시(2011, 한국정치학회보)”, “일본의 고령자 복지 거버넌스와 NPO(2012, 일본연구논총)” 등이 있다.

 

 


 

 

I. 서론

 

최근 몇 년간 일본은 ‘료마 앓이’가 진행 중이다. 2010년 1월 방송된 사카모토 료마전은 23.2%라는 높은 시청률을 보였으며,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테마로 한 여행상품이 등장하는 등 료마 비즈니스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毎日新聞> 2010/01/03). 사카모토 료마는 막부말기 토사 (土佐) 출신의 탈번 무사이다. 그는 도쿠가와(徳川) 시대 말기 개국을 통해 경제력을 쌓아 서구열강에 대항할 수 있는 근대국가를 만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당시 혁명의 양대 세력인 사쓰마와 조슈의 동맹을 성사시켜, 막부를 굴복시키는 교섭력을 발휘하여 메이지 유신을 성취했다.

 

변혁의 상징인 료마에 대한 최근의 동경은 답보상태의 일본의 정치경제 상황을 대변한다. 1990년대 이후 급격히 하락한 경제성장률과 재정적자의 확대가 세계 제1위의 고령인구 비율과 겹쳐지면서, 현재 일본은 사회적 활력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사회적 위기를 정치의 변화로 타개하고자 2009년 54년 만에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민주당 정권 수립 3년간 3명의 수상교체가 이루어졌으며,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보여준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무너뜨리는 계기로 작용하여, 2009년 정권교체 직후 80%를 상위하던 내각 지지율이 25%를 밑돌고 있다(<読売新聞> 2012/09 /18). 정치적 구심력 부재는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의 대거 탈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혼란상을 타개하고, 개혁을 주도한 료마를 연상시키면서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정치인이 현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토루(橋下徹)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에도가 아닌 토사번 출신의 기득권을 포기한 탈번 무사로서 기존 지배체제 밖으로부터의 변혁을 주도하였다. 하시모토 토루 역시 오사카를 중심으로 중앙정치와 기존의 정당정치 밖에서 일본의 변혁을 도모하고 있다. 하시모토는 2008년 오사카부 지사 당선이래 오사카시 시장을 맡은 현재까지도 오사카부민, 시민의 70%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 2012년 9월 현재 노다(野田)총리의 지지율이 25% 전후임을 고려할 때, 오사카 지역에서의 그의 입지를 가히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오사카시 시청에는 취재기자가 50명 이상 상시 대기하고 있으며, 하시모토의 트위터 팔로워는 76만명으로 일본 정치인중 가장 많다. 일본의 언론이 하시모토를 주목하는 것은 하시모토가 지역의 강력한 지지를 배경으로 중앙정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1월 산케이신문(産経新聞)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리더로서 적합한 정치인 1위가 하시모토 토루 21.4%, 2위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9.6%, 3위가 오카다 테츠야(岡田哲也) 8.3%로 지목되었다(<産経新聞> 2012/01 /16).

 

왜 일본의 여론은 하시모토에 기대하는가? 하시모토의 리더십은 기존의 일본의 정치 리더십과 어떻게 다른가? 하시모토는 가장 최근에 부각되는 일본의 정치 리더로서 그를 다룬 선행연구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 리더는 포퓰리스트적 특징을 통해 접근이 시도된다. 즉, 퍼포먼스에 능한 개인적 자질, 선과 악, 아군과 적군의 이원론을 전제로 한 전략 구사와 대중동원 방식 등이 그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개인의 정치적 자질과 수법을 강조한 나머지, 리더십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요인을 경시할 수 있다.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현실적 문제에만 집착하는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환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한계를 가진다.

 

블론델(Jean Blondel)은 리더를 ‘환경의 죄수’로 비유하면서, 정치 리더십의 근원은 환경과 연관되어 설명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 리더십의 일차적 권위는 법적인 지위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리더를 돕거나 방해하는 제도적, 상황적 환경은 리더십의 역할 내용과 영향력의 강도를 결정하게 된다(Blondel 1987, 4-5). 터커(R.C. Tucker)는 이상적 리더십의 요소로서 진단(diagnosis), 처방(prescription), 동원(mobilization)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진단은 리더가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며, 처방은 실행과는 별개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며, 동원은 문제해결을 위해 자원을 동원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정치적 리더십은 구조적, 정치적 상황적 요소와 상호작용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개혁의 목표와 정책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여 변환을 추구하며, 그 영향력을 강화한다.

 

이러한 리더십의 정의는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창조적 파괴 개념을 활용하여 설명되는 정치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의 논의와도 연결된다(Martin & Thomas 2011, 3). 정치 기업가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원동원에 의해 기존의 시장의 균형을 파괴하고, 이로써 창조적 파괴를 실현하는 인물이다. 정치 기업가는 혁신적 정책 가치와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를 원형으로 하여 개혁적인 정책을 설계하며, 자원을 동원하고 이를 실현하고, 선거를 통해 리더의 지위를 확보한다. 킹던(John W. Kingdon)은 정책변화를 문제, 정책, 정치의 다중흐름의 접합을 통해 설명하면서 정책의 변화를 추진하는 행위자를 정책 기업가(policy entrepreneur)로 개념화한 바 있다(Kingdon 1984). 본 논문에서는 지방중심의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전국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하시모토를 정치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의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하시모토 리더십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한다. 하시모토를 정치 기업가 개념을 활용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이유는 하시모토가 일본과 오사카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본인의 정책처방을 지속적으로 사회적 마케팅을 시도하면서 지지를 확대해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의 하시모토에 대한 접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하시모토 리더십이 부각될 수 있는 정치적 기회구조로서 최근 일본정치 저류의 아이디어의 흐름, 문제의 흐름을 제시한다. 둘째, 구조적, 상황적 환경요인에 대한 처방으로서 하시모토의 개혁적 대안을 검토한다. 셋째,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 하시모토가 어떠한 전략을 통해서 대중동원을 시도하고 있는지 전략적 특징을 파악하도록 한다.

 

II. 위기의 역설과 하시모토의 등장

 

누가 정치적 리더로서 성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맥락은 중요한 요인이 된다. 맥락은 개인적 배경, 문화, 역사적 요인, 정치가 직면한 도전들을 포함한다(Keohane 2012, 104). 하시모토는 개인과 일본의 정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기회를 포착하는 위기의 역설을 보여주는 정치리더이다.

 

2세 정치인이 주류인 일본 정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하시모토는 정치가계(政治家系)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관료 출신도 아니다. 1969년 도쿄 시부야에서 태어난 하시모토는 편모가정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오사카부 스이타시(吹田市) 로 이주하였고, 이후 동화지구인 히가시요도가와(東淀川)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 헤어진 아버지는 동화지구 출신의 야쿠자 단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アエラ> 2011/11/14). 하시모토는 학력수준이 낮은 동화지역 학생들로서는 좀처럼 진학하기 힘든 기타노 고교(北野高校)에 입학하였고, 이어 와세다 대학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 변호사가 되었다. 오사카에서 변호사로서 활동하던 하시모토는 우연한 기회에 오사카 지역 라디오방송에 출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아사히 방송(朝日放送), 일본 TV 법률상담 프로그램 등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TV 출연 연예인으로서 인기를 더해가던 하시모토는 고가 마코토(古賀誠)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 사카이야 타이치(堺屋太一) 전 경제기획청 장관 등에 의해 발탁되어 2008년 1월 자민당, 공명당의 추천, 지지를 받아 오사카부 지사선거에 출마하여 최연소 지사로서 당선되었다. 2011년 11월에는 오사카 시장에 도전하여 집권에 성공하였다. 특히, 이 선거의 경쟁상대인 히라마츠 쿠니오(平松邦夫)는 당시 현역시장으로서 자민당과 민주당, 공산당 등의 지지를 받았고, 하시모토의 오사카도 구상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고 있었다. 따라서, 2011년 오사카 시장선거 결과는 기성정당에 대한 오사카 시민의 불만과 하시모토에 대한 기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탈 기성정당 출신, 비2세 출신의 정치가가 기존의 지배 세력을 앞서고, 70%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며, 차기 정치지도자 1위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서는 하시모토가 부각될 수 있었던 정치적 기회 구조로서 중앙과 지역정치의 문제의 흐름과 2000년대 일본 정치의 저류에 자리잡고 있는 주도적 개혁 아이디어를 정리하고자 한다.

 

1. 일본 정치경제 시스템의 기능부전

 

1990년대 초 버블경제로 시작된 일본의 경기침체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 2010년 기준 일본의 명목국내총생산은 479조 엔으로서 1992년 수준이다. 1989년 일본의 장기채무는 254조엔(국가 188조, 지방 161조)로 1989년 GDP규모의 61%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2009년에는 전체 819조(국가 621조, 지방 198조)로 GDP규모의 172%에 이르렀다. 2011년의 경우, 일반회계 총지출예산은 92.4조인데, 세입은 40.9조 엔으로서 세수가 세출의 44.3%에 지나지 않고 있다(財務省 2011).

 

1990년대 이후 이러한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는 정치제도 개혁이다. 정치적 효능감 향상을 목표로 1994년 소선거구제 도입 등의 정치개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장기불황은 지속되었고, 관료 중심의 비효율적 행정운영은 지속되었다. 2001년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배경으로 시작된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은 빈부격차와 지역격차가 확대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후 일본에서 취해진 위기 타개의 노력은 정권교체이다. 2009년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면서 대담한 정책변경을 약속했다. 민주당은 세금낭비 근절, 자녀 양육과 교육지원, 연금 일원화와 최저연금제 시행, 지역주권, 고용창출 등을 매니페스토로 제시하였다. 기존 집권 세력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힘입어 민주당은 480석 가운데 308석을 차지하면서 자민당에 압승하였다. 2009년 총선거에서 유권자가 민주당을 선택한 것은 정권교체를 통해 일본 사회의 쇠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2012년 8월 현재까지 민주당 집권으로 인한 사회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의 경제회복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2009년 민주당이 간판으로 내 세웠던 아동수당 및 농가호별 소득보장, 고속도로 무료화 등이 모두 철회되었다. 2011년 11월 요미우리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에 행사한 한 표가 현실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 라고 응답한 사람이 81%로서 민주당 집권이전인 2008년 2월 67%보다 증가하였으며, 민주당에 의한 정치주도의 정책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도 81%에 이르고 있다(<読売新聞> 2011/11/24). 2012년 7월 NHK방송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내각지지율이 19%, 민주당 지지율이 19%이지만, 자민당 지지율 역시 20%로서 낮다. 이 조사결과는 불만은 존재하지만, 대안이 부재한 진퇴양란의 일본의 현 상황을 대변해 준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미래 일본 2030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