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중국연구패널 보고서 No.2

 

저자

김영진(金永鎭)_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독일 Berlin대 정치학 박사. 저서로 『중국의 시장화와 노동정치』, 『중국의 도시 노동시장과 사회』, 『시장자유주의를 넘어서: 칼 폴라니의 사회경제론』 등 저술이 있고, 최근에는 고대 중국에 관심을 갖고 “서구 정치사상에서 국가의 규모, 민주주의 그리고 중국의 정치체제,” “고대 중국의 지리적 크기와 구조 관념에 대한 고찰,” “중국 제국형성 시기의 대외관계와 군현화 전략 - 흉노(匈奴)와 강(羌)을 중심으로” 등을 발표하였다.

 

 


 

 

Ⅰ. 문제 제기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이라면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세력전이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관련하여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는 세력전이가 기존의 국제적 규칙이나 제도에 어떠한 변화를 수반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Mann 2007). 세력전이가 기존의 질서에 가할 수 있는 변화의 정도는 다양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강자에 의해 새롭게 구축되거나, 부분적으로 조정될 수도 있고, 아니면 거의 변화가 없이 기존의 질서 내에서 주도 세력만이 바뀔 수도 있다. 세력전이의 과정에서 기존의 강자는 새로운 강자가 자신이 정해놓은 틀 내에서 힘을 행사함으로써 그것을 일정한 틀 안에 묶어두고자 한다. 미국 내 일부 관찰자들도 어차피 중국의 부상이 제어할 수 없다면, 그것이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도록 유도해나가는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약화된다고 하더라도 부상한 중국을 일정한 범위에서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고, 미국의 대 중국정책은 그러한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Lieberthal 1995; Ikenberry 2008).

 

그렇다면 ‘기존의 질서’란 무엇인가. 거기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근대 이후 서양이 수립해온 규칙과 제도, 다시 말해 경제적으로 시장경제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서구의 국내외 정치적, 경제적 질서는 다음 [표 -1]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Karl Polanyi 1944, 3).

 

[표 1] 미국의 패권적 기반으로서 근대 서구의 질서

 

 

위의 모델은 19세기 약 100년 동안 유럽의 정치경제적 질서를 요약한 것이다. 제2차 대전 이후 영국을 대신하여 등장한 미국의 패권도 본질적으로는 이러한 모델에 기반을 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장경제는 한 사회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 더욱 확대되었고, 거의 보편적 질서로 자리 잡았다. 비록 사회주의적 시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거대한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음이 판명되었다. 국제적으로는 1944년 이후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국제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등 경제체제가 차례로 구축되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자유무역의 확대를 지향하였다. 유럽과 일본 등과 안보적 동맹관계는 이러한 시장경제 질서의 국내외적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국제정치적 구조였다. 그렇다면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질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고, 또 전개될 것 인가.

 

먼저 경제적 질서와 관련하여 오늘날 시장경제의 위상은 굳건해 보인다. 중국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등장과 그 변종으로서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물이었지만, 최근 몇 십 년 간 진행된 중국의 재기는 시장경제와 글로벌화라고 하는 근대 이후 서구적 질서를 통해서였다. 중국의 부상이 시장경제의 지구적 확산의 형태로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반도 거기에 있다고 한다면, 세력전이의 결과는 전혀 새로운 질서의 등장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더라도 그것은 국제통화나 환경 등 낮은 수준에 국한될 것이고, 이것은 기존 질서의 존속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경제적 측면에서 기존의 질서가 새로운 패권적 세력에 의해 대체될 개연성은 낮다고 하겠다.

 

물론 일부 학자들이 미국식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소위 베이징 컨센서스(北京共式) 개념을 제기하기도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특히 워싱턴 컨센서스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은 1989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The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IIE)의 윌리암슨(John Williamson)이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그는 WTO의 남미에 대한 경제지원의 전제로서 10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재정적자의 최소화, 높은 경제적 효과나 소득분배의 개선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공공지출의 집중, 조세기반을 확대하고 세율을 인하하는 조세개혁, 금융시장의 자유화, 환율의 단일화, 무역제약의 축소, 외국인 직접투자 장벽 제거, 국유기업의 사유화, 경쟁을 제약하는 규제의 철폐, 사유재산의 보호 등이었다(Williamson 2005, 33-43). 이러한 요소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자유주의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한편 2004년 베이징 컨센서스를 공식적인 담론으로 제기한 라모(Joshua Cooper Ramo)는 중국의 경제발전 전략이 갖는 특징을 크게 3가지로 요약하였다. 그것은, 첫째 ‘혁신과 지속적인 실험’이다. 이것은 특히 워싱턴 컨센서스의 내재적 특징의 하나인 자기만족과는 상반된 요소이다. 다시 말해, 물리학의 경우에서와 같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완전한 불변의 해답은 없다는 인식하에 ‘변화가 만들어내는 문제보다도 더 빨리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둘째, ‘지속가능성과 평등’이 가장 중시된다. 그것은 사회가 불안정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있을 때, 단순히 GDP와 같은 양적 성장이 아니라 인민 생활의 질적 제고 여부가 진보의 척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금융상의 주권과 같은 경제적 ‘자결주의’이다(Ramo 2004, 10-11).

 

중국내부에서도 북경모델에 대한 다양한 내용의 해석이 제시되었다. 비교적 온건하다고 생각되는 위커핑(兪可平) 교수는 최근 중국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 그것을 적극적인 대외개방 정책, 개혁 · 발전 · 안정의 균형, 시장과 정부에 의한 조절의 결합, 점진적 경제 및 정치개혁, 사회와 자연의 협조적 및 지속 가능한 발전, 효율과 공평의 동등한 중시, 경제사회 개혁과 민주정치 및 거버넌스 개혁, 정부와 민간의 협력 등이었다(兪可平 2006; 閆健 2006, 94-101).

 

그리고 2008년 미국 발 국제금융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중국 내에서 중국모델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벌어졌다. 그 예로 저명한 경제학자 류궈광(劉國光) 교수는 글로벌화, 신 자유주의, 독점자본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단계 자본주의와 달리 중국모델은 사회주의 공유제, 공산당의 지도, 국가에 의한 거시조절, 사회적 평등 등을 특징으로 한다(劉國光 2009). 사실 라모의 설명은 미시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변형이 있을 뿐, 베이징 컨센서스는 철저하게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기초인 시장경제를 그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오히려 경쟁과 변화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시장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위커핑의 경우에는 보편적인 경제모델이라기보다는 개도국의 발전모델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리고 류궈광의 주장은 중국의 현실과 지향점과는 거리가 먼 사회주의 시기의 논리적 잔재로 보인다.

 

실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에서도 갈등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시장경제 원리 자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 같지 않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 덤핑, 지적재산권 침해, 정부보조, 시장개방 등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시장경제나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을 반영하는 미시적인 운영상의 문제이다. 미국은 그와 유사한 문제들을 한국을 포함한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도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과 미국은 시장경제 질서를 통해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미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무역 및 투자 상대국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기반하고 있는 정치적 제도로서 자유국가, 즉 민주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시장경제의 문제보다는 불확실성이 커 보인다. 개인적 인권 보호와 민주주의는 1970년대 말 이후 부분적으로,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서의 주요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만 여러 가지 국내외 정치적 현실, 이를테면 미국의 권력에 있어서 한계, 효과적인 인권외교를 위해서 필요한 다자주의적 제도나 국제법적 간여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 입장, 정책적 우선순위상의 갈등 등에 의해서 제약을 받고 있다(Dietrich 2008, 269). 더욱이 비판적 시각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몰락 이후 새로운 개입주의의 구실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다(Xing 1996, 33). 중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얼마간 강조되던 인권과 민주주의는 미국의 대중 외교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분명하게 밀려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경제적 이해가 갖는 중요성과 더불어 점차 중국의 부상에 따른 영향력의 한계와도 관련된다.

 

결국 인권 및 민주주의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력전이 이후의 정치적 질서와도 관련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세력전이 이전에 일정한 정치적 제도와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중국이 보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낮다.’는 서구적 사고에 입각하여 미국은 민주주의 제도를 전파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것도 개별 국가의 차원이 아니라 유럽, 일본 등과 공조하면서 보다 국제적이고 집단적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민주주의가 단지 공산당의 존속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 경제발전, 사회안정 등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과 관련된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중국정부도 국제사회에서 권위주의적 정권들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다만 소수이기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서구식의 정치체제에 대한 요구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중국 내 인권 문제를 이슈화하고 거기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미국의 다양한 외교적 시도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으로 하여금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미국은 위에서 제기한 것처럼 세력전이 이후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인권외교 자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존의 연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그것은 대개 인권을 둘러싼 중미간 입장의 기술, 중국과 미국의 인권에 대한 차이의 문화적, 역사적 요인, 미국 인권정책의 자체의 논리적 모순과 한계 등에 초점이 주어졌다(Harding 1997; Kim 2000; Nathan 2003). 그와 주장은 다르지만 중국에서도 인권외교 자체에 대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체적으로 인권외교의 정치적 배경, 인권에 있어서 중미간의 인식적인 차이, 인권과 주권 문제 등에 대한 분석이 주된 흐름을 이룬다. 인권외교의 정치적 배경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순수한 보편적 가치의 추구가 아니라 미국의 영향력 확보나 국익과 관련된다는 측면이 강조된다. 인권에 대한 인식적 차이에 있어서는 양국간 각기 집단과 개인, 평등과 자유, 사회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을 중시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개별 국가의 특수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서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의 보편적 적용이 부정된다. 마찬가지로 인권이 본질적으로 국내적 문제라는 점에서, 인권외교는 근대 국민국가의 질서인 주권과 모순된다는 점이 강조된다(洪國起•董國輝 2003; 韓云川 2003; 李宏祥 2008, 姚澤浩∙陳忠玲 2004)...(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미중경쟁과 한국의 전략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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