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ng, Middle, Ambivalent, Responsive, Tricky voter

 

<10.26 서울시 보궐선거의 전망>

 

1. 요동치는 여론과 10.26 서울시장 선거

 

2011년 8월 주민투표 무산 이후 언론 헤드라인의 주인공이 하루가 멀다 하며 바뀌고 있다. 8월 24일 주민투표 이후 사퇴한 오세훈 시장의 빈자리를 2010년 곽노현 교육감이 대신했다. 주민투표 후 불과 이틀이 지난 26일 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단일화 상대후보였던 박명기 교수가 체포되었고 박명기 교수에게 2억을 지원한 곽교육감이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9월 9일 구속되었다.

 

오세훈 시장 사퇴로 내홍을 겪던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일거에 반전되었다. 반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 이후 예비출마자들의 서울시 선거 출마선언 러시를 보여준 민주당은 급작스러운 사태변화와 여론 악화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 했다. 8월 27일 실시한 한겨레신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서울시 400명 조사에서 보궐선거에서 여당후보를 찍겠다는 여론(40.0%)이 야당후보를 찍겠다(32.9%)는 여론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느 때 같으면 상당기간 정국의 핵심 이슈로 자리 잡았을 뉴스들이, 9월 1일‘안철수 원장의 무소속 시장출마 가능성’ 보도에 의해 일거에 사라졌다.

 

정국이 출렁거렸다. 초기 야권표 분산 효과를 기대하며 반색했던 한나라당은 안철수 원장의 반한나라당 선언에 망연자실했고, 안철수 효과에 잔뜩 긴장했던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박원순 상임이사로 단일화하는 과정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그 일주일간 온통 안철수 원장의 일거수 일투족은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고, 안원장의 행보 하나 하나에 여론은 요동쳤다. 9월 4일 중앙일보, 한국갤럽의 서울시민 1006명 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나경원 의원 , 박원순 상임이사의 3자 가상대결에서 50%를 얻어 23.6%를 얻은 나경원 의원과 10.0%의 박원순 상임이사를 여유 있게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원장의 불출마 시 나경원, 박원순 양자 대결에서는 41.2% 대 28.9%로 나의원이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9월 6일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상임이사와 전격적인 후보단일화 선언을 하며 사퇴를 했고 조선일보가 7일 서울시민 5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서울시민의 51.1%가 박원순 상임이사를, 32.5%가 나경원 의원을 찍겠다고 답했다. 다시 여론의 무게중심이 야권 쪽으로 쏠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안철수 원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4년간 차기 대선주자로서 독주하던 박근혜 전 대표와 각축을 벌이며 박근혜 대세론의 균열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 정국의 중심에 안철수 현상이 있다. 그러나 안철수 원장 스스로 언급했듯이 안철수 현상의 요체는 안철수 원장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 원장을 통해 표출된 요동치는 민심에서 찾아야 한다. 요동치는 민심의 실체와 진행경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차기 총선, 차기 대선의 향방은 물론, 50일도 채 남지 않은 10월 26일 서울시 보궐선거에서의 향방조차 내다보기 힘들게 되었다.

 

2. 요동치는 민심 태풍의 눈 : 상충적 유권자

 

태풍의 눈 : 중간지대의 상충적 유권자

 

안철수 신드롬에 놀란 정치권과 언론은 기존 정당질서에 포섭되지 않은 반한나라 반민주의 ‘중간지대 유권자’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간지대 유권자들이 안철수 원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안철수 원장이 반한나라당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강조하며 야권연대에 무게를 싣는 발언을 내놓기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이러한 평가가‘무상급식’이슈에 한정한 평가였으며,‘박근혜’전대표를 존중한다는 부가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반한나라당 반민주의 중간지대 유권자들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정치적 중간지대의 기존 정치에 대한 반발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안철수 현상에 대한 설명은 물론 앞으로의 정국 예측도 불가능하다. 이들의 정치적 결집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서구의 주류 학계나 정치권에서는 이들 중간지대 유권자들을 대체로 지지정당이 없거나, 이념적, 정책적 태도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무지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ignorant voter)으로 이해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관심과 참여의지가 약하고, 기존 정당질서에 포섭되지 않은 수동적이고, 주변부적인 특성으로 인해 동원과 계몽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을 수동적으로 동원되는 존재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2000년대 들어와 미국에서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conservative democrats)’, ‘진보적인 공화당 지지자(liberal Republican)’현상이나 ‘대표되지 않는 중산층’의 문제가 선거 연구의 핵심이슈로 떠오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충적 유권자(ambivalent voter) 이론은 중간지대 유권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전환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분법적인 흑백논리 하에서 특정가치, 특정 정파를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다양하고 심지어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가치를 동시에 공유하는 상충적 유권자(ambivalent attitude)로 개념화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충적 태도란 어느 하나의 대상에 대해 애증이 병존할 수 있으며 상반된 가치나 태도를 동시에 수용하거나 동시에 배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기존 이론에서 보면 이러한 상충적 태도는 이념적, 정치적 비일관성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현상이지만 상충적 태도이론에서는 일반적인 정치적 현상일 뿐 아니라 이념적 유연성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선거 및 정당 지지에서의 상충성

 

필자가 한국 유권자의 상충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7년 대선 전후다. [그림1]에서 2007년 대선에서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 진보층에서조차 한나라당 지지가 급증함으로써 기존의 이념적 일관성에서 벗어난 유권자들이 다수 등장했다. 노무현 후보를 당선 시킨 16대 대선 직후 2003년 1월 여론조사에서는 진보층의 45.0%가 당시 새천년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11.7%만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두 달 여 남기 시점의 조사에서 진보층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및 민주노동당 등 진보성향의 정당에 대한 지지가 45.0%로 2002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32.4%로 2002년에 비해 세배가까이 높아졌다. 그러나 현재는 한나라당 지지가 다시 21.8% 수준으로 떨어지고, 민주/진보정당 지지는 49.6%에 달해 이념적으로 일관된 투표성향이 복원되는 양상이다. 최소한 2007년 진보층에서 보수정당, 보수후보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이념 및 정당태도에서의 상충성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였다.

 

중도층에서의 정당지지 패턴 변화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2003년 1월 조사에서는 노풍의 위력을 보여주듯, 중도층에서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새천년민주당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41.5%였지만 당시 한나라당 지지율은 21.7%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7년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우세를 유지했던 2007년 대선 직전 조사에서는 중도층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43.0% 수준으로 뛰어 오른 반면 진보성향 정당에 대한 지지는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창조한국당을 모두 합해도 15.5%에 불과할 정도였다. 중간지대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중도층에서 보수성향 정당(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미래연합) 지지율과 진보성향 정당 지지율(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각각 35.4% 대 40.2%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필자는 이 균형이 어떻게 깨지느냐에 따라 2012년 권력재편의 향방이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양 진영에 속하지 않은 안풍의 등장으로 기존 예측의 틀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림1] 16대 대선, 17대 대선 전후 이념별 정당지지율과 현재 정당지지율 비교

 

 

진보층 중도층 보수층

 

주1.한나라당/보수정당 지지는 2003년 1월, 2007년 10월 조사에는 한나라당 지지, 2011년 8월 조사에서는 한나라당+자유선진당+미래희망연대를 포함함

주2. 민주당/진보정당 지지는 2003년 1월조사에선 새천년민주당+민주노동당 지지, 2007년 조사에선 대통합신당+민주노동당+민주당+창조한국당 지지, 2011년 조사에서는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지지를 합산한 결과임

주3. 데이터 : 2003년 1월 조사는 선거학회 16대 대선 조사 데이터, 2007년 10월 조사 데이터는 EAI․SBS․중앙일보․한국리서치 대선패널 조사 데이터, 2011년 8월 조사는 EAI·YTN·중앙일보·한국리서치 8월 정기조사 데이터.

 

이념적 상충성 : 진보적 한미동맹론자, 보수적 복지론자의 부상

 

또한 정책이나 이념적 태도에서 있어서도 한국사회에서 상충적 유권자들의 증가 현상은 두드러진다. 한국사회에서 최대 이념논쟁의 쟁점이 되어온 ‘성장 대 복지’,‘친미 대 반미’, ‘반북 대 친북’, ‘보수정당 대 진보정당’과 같은 가치에 대해 어느 하나를 택하기 보다 사안에 따라 엇갈린 입장을 갖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냉전이 해체되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유권자 수준에서는‘진보=친북=반미=복지우선’대 ‘보수=반북=친미=성장우선’의 이분법적 인식구조가 약화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변화도 큰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진보층 내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림2] (1)에서 진보성향의 사람들 경우 2006년 조사만 하더라도 41.1%가 탈미자주 외교를 선호한다고 답했지만 2011년 11월 조사에서는 26.7% 수준으로 크게 감소한다. 반대로 한미동맹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2006년 조사에서는 30.2%에 불과했지만 2011년 조사에서는 전체 평균과 비슷한 수준인 45.3%까지 늘어났다.

 

반면 사회양극화 및 경제침체의 확산으로 성장보다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그림2]-(2)에서 보수층의 응답을 보면 2006년 조사에서 성장 우선이라는 응답이 61.5%로 다수여론이었지만, 2010년 조사에서는 49.1%까지 떨어지고 복지우선이라는 응답은 38.5%에서 50.9%로 상승했다. 즉 2010년 조사 결과만 보면 진보층의 절반 가까이가 진보적 한미동맹론자인 셈이며, 반대로 보수층의 과반은 보수적 복지주의자가 된 셈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앞으로 여론이 또 다시 변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동안 국민들 사이에서 최대 이념적 쟁점이 되었던 대미노선과 복지-성장논쟁에서 과거와 다른 태도의 패턴이 나타남으로써 과거에 비해 이념적, 정치적 수렴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는 여야 정당이 기존의 이분법적 이념대결구도에 머물 경우 이들 상충적 태도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흡수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2] 진보층에서의 한미관계 인식 변화와 보수층에서의 성장-복지인식 변화(%)

 

 

(1) 진보층에서의 미국 태도 변화 (2) 보수층에서의 복지 인식 변화

자료 : EAI · 한국일보 데이터(2006.12), EAI · 한국리서치 여론바로미터조사(2010.10/11)

 

3. 중간지대 유권자 = SMART(Swing, Middle, Ambivalent, Responsive, Tricky) 유권자

 

그렇다면 이렇게 선거에서의 투표과정이나 정책태도에서 강화되는 중간지대 유권자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과거의 중간층과 구별되는가?

 

상충성(Ambivalence)이야말로 중간지대 유권자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과정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한국유권자들 사이에 상충적 태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의 여론이 선거결과나 정당지지분포를 좌우하고 있다. 상충적 유권자들의 투표행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야권) 양쪽 모두에 대한 불신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서울과 경기지역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면서도 지방선거에서는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거나, 반대로 정권심판론에 동조하면서도 야당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상충적 응답자들이 전체 수도권 유권자층의 절반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상충적 유권자들의 정치선호나 투표 선택과정에서 특정 정당, 특정이념에 대한 극단적인 지지에 거부감(Middle)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선거 과정이 지나치게 이념대결이나 당파적 경쟁으로 흐를 경우, 이들 상충적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하는 부동층으로 남아있게 된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중간지대 유권자들의 대부분은 선거 일주일 전까지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했고, 그 중에 절반 이상은 선거 당일 및 투표일 2-3일 전에서야 자신이 지지할 후보를 결정했다.

 

하지만 상충적 태도를 갖는 유권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소극적, 수동적인 중간층과 달리 한국사회 및 개인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며(Responsive) 자신의 표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이들은 후보자의 이념이나 소속정당과 같은 ‘당파적 요인’보다는 경제 상태나 특정 세력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즉 가정경제나 국가경제에 누가 더 득이 될지 따지는 실용적 경제투표심리(economic voting)와 특정 세력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균형잡기 투표심리(balancing voting)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상충적 태도의 유권자들의 경우 후보선택이 훨씬 유동적이며 역동적이다. 이들의 투표 선택과 정당지지에서 여와 야, 좌와 우를 넘나드는 ‘그네뛰기(Swing voting)’경향을 보여준다. 이들이 이념적 일관성이나 특정 정당에 대한 당파성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견제심리에 의해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판단에 의해 어제는 한나라당을, 오늘은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 이들 중간지대 유권자들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이제 중간지대 유권자들은 과거의 수동적인 존재도, 정당들이 일방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한마디로 이념적, 당파적 결집을 호소하면 오히려 멀어지고, 실용적인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반대파와의 화합과 균형감각을 보여줄 때 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기존 정치권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동원이 쉽지 않은 매우 변덕스럽고 까다로운(Tricky) 유권자층이 생긴 것이다.

 

필자는 이들 중간지대 유권자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개념의 영문 머리글자를 조합하여 스마트(SMART) 유권자로 칭하고자 한다. 투표 선택에서 여야의 경계를 넘고(Swing), 정치적 극단주의에 거부감(Middle)과 상충성(Ambivalence)이라는 이념적 유연성을 보여주며, 경제상황의 악화나 정치적 견제와 균형에 민감하게 반응(Responsive)한다. 따라서 기존 정치권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동원이 쉽지 않은 까다로운(Tricky) 유권자이다. SMART 유권자 개념은 실제 정치적 태도에 있어 과거 중간층과 구별되는 특성을 잘 보여주는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4. 안풍에 나타난 스마트 유권자의 옐로우 카드

 

이번 2011년 안철수 돌풍은 스마트 유권자들의 특성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거와 같은 진보 대 보수, 한나라당-민주당간의 세 대결 정치에 매몰된 기존 정당질서에 대한 강력한 옐로카드였다.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야권의 보이콧 운동 및 곽노현 교육감의 후보매수 의혹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 기존 정치권이 무엇을 잘못 읽었고, 왜 스마트 유권자들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는가? 안풍의 정확한 의미와 이후 서울시장 선거 및 차기대선의 전개방향에 대해 전망하는 데 있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오세훈 시장의 오판: 복지확대 요구와 선별복지를 선호하는 상충성에 대한 이해부족

 

무상급식 주민투표 및 복지노선에 있어 여론은 분명 야당이 주장하는 보편복지노선 대신 선별복지노선에 대한 다수여론의 지지가 있었다. 8월 동아시아연구원 조사 결과만 봐도 선별급식론에 대한 지지가 55.7%로 보편급식론에 대한 지지 44.3%를 능가하고 있다. 보편복지를 시행할 경우 낙인효과 및 증세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동시에 한국사회의 복지결핍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복지 확대를 바라는 요구가 압도적 다수(66.8%)였던 셈이다. 즉 복지확대를 요구하면서 그 방법으로서 보편복지노선보다는 선별노선을 선호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오세훈 시장의 오판은 선별복지론자 중 절반 이상이 복지포퓰리즘에 대한 우려보다 복지확대를 바라고 있다는 상충적 요소를 간과한데서 비롯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3]에서 복지에 대한 관한 인식을 복지확대 필요성(유지/축소 vs. 확대)의 축과 선호하는 복지노선(보편 대 선별)의 축을 교차하면 ‘복지확대/보편복지’, ‘복지확대/선별복지’, ‘복지축소유지/ 보편복지’,‘복지축소유지/선별복지’ 네 개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각 유형별 응답 분포를 보면 야당과 진보세력이 주장한‘복지확대/보편복지’입장이 전체 응답자의 36.2%로 단일유형으로는 가장 많은 비중이었지만 과반을 확보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규모다. 오세훈 시장과 전통적 보수층의 입장이 ‘복지과잉론/선별복지’조합으로서 22.9%였다. 반면 오세훈 시장의 선별적복지론과 입장을 같이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복지포퓰리즘과의 전면 싸움보다는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상추적 입장에 공감하는 유권자의 규모는 전체 응답자의 32.8%를 차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복지를 축소하되 보편복지노선을 추구하는 입장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입장으로서 8.1% 지지에 그치고 있다.

 

단일 유형 하나 만으로는 다수입장이 되지 못하는 조건에서 여야 복지논쟁이 어느 축을 논쟁의 기본구도로 형성하느냐에 따라 다수연합의 주인공이 바뀌게 된다. 이 때 상충적 입장을 선점하는 세력이 다수연합을 형성하여 승리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만약 오시장과 한나라당이 복지확대 입장을 천명하면서 여야간 논쟁의 축을 ‘복지확대/보편복지론’과 ‘복지확대/선별복지론’의 대결구도를 형성했다면 복지축소/선별복지라는 전통적인 복지인식 유형의 유권자들은 복지태도 및 복지방법 두 차원 모두에서 대립하는 야당안 보다는 복지태도차원에서만 차이가 있는 ‘복지확대/선별주의’로 흡수될 가능성이 컸다. 결국 복지확대 및 선별노선을 선호하는 유권자층을 오세훈 시장이 반포퓰리즘으로 몰아세운 꼴이다.

 

[그림 3] 복지인식 유형별 응답자 규모 및 정치세력(%)

 

 

자료 : EAI·YTN·중앙일보·한국리서치 8월 정기조사 데이터

 

중산층과 하위계층의 반발 초래, 한나라당의 기득권 정당 이미지 강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의 패배 및 서울시장 선거에서 주도권을 상실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정부 및 한나라당의 친서민 정책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었고, 이는 중산층과 하위계층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을 감소시켰다. [그림4]에서 계층별 성장-복지 인식을 보면 특히 중산층에서는 52.2%, 하위계층에서는 49.8%가 분배를 우선하자는 입장인 반면, 성장을 우선하라는 목소리는 중산층에선 41.0%, 하위계층에서 40.8%로 과반에 못 미치고 있다. 중산층, 하위계층에서는 복지를 우선하라는 여론이 강세다. 계층별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의 경우 비록 한나라당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전 계층에서 고른 지지를 받은 반면, 한나라당은 상위층을 대변하는 기득권 정당의 지지패턴을 보여준다. 하위계층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31.5%, 중산층에선 39.5%에 그친 반면 상위계층에서 과반에 육박하는 47.5%의 지지를 받았다. 한나라당의 정당이미지가 기득권 대변정당으로 굳어지고 중하위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이 등장할 경우 한국에서도 자칫 계급정치가 현실화될 조짐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결과이다.

 

[그림 4] 계급정치 현실화되나? 계층별 경제인식과 정당지지율 차이 (%)

 

 

(1) 계층인식 별 성장복지 인식의 차이 (2) 계층인식 별 정당지지율

자료: EAI·YTN·중앙일보·한국리서치 8월 정기조사 데이터

 

민주당의 오판 : 주민투표 무산 “승자 없다”74.2%, “투표 보이콧 공감 안해”60%

 

주민투표가 무산됨으로써 표면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이지만 민주당에 대한 스마트 유권자들의 경고 메시지도 강력했다. 주민투표 이후 8월 조사에서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평가에 대한 응답을 이념성향별로 나누어 보면 한나라당 승리라는 응답은 소수에 불과했고, 민주당의 승리였다는 응답 역시 진보층에서 31.3% 수준에 그쳤다. 중도층에서 21.2%, 보수층에서 23.1%였다. 어느 당도 승리했다고 할 수 없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특히 중도층에서 무려 74.2%나 어느 당도 승리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가장 많아 스마트 유권자 층에서 양당 모두에 대한 반발감이 가장 컸다.

 

보다 직접적으로 민주당의 보이콧 운동 및 주민투표 전반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에 대한 평가를 물어본 결과 스마트유권자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는 중도층에서 보이콧 운동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6.8%, 민주당의 대응이 잘못되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무려 69.5%나 되었다. 올 2월부터 전면무상급식 중단 서명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던 민주당이 투표거부라는 극단적 처방을 택한 것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거 직후 민주당의 서울시장 예비출마자들의 러시와 곽노현 교육감의 후보매수사건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 뿐 아니라 민주당과 야당에 대한 불만이 급격하게 팽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보의 경계를 뛰어넘어 특히 사회적 명망과 리더십을 인정 받아온 안철수 원장의 출마 소식은 이들 스마트 유권자들의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점화시키고 정치적 결집을 가져왔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림5] 이념성향별 주민투표 결과평가 (%)

 

 

[그림 6] 중도층의 주민투표 보이콧 및 민주당의 주민투표 대응평가(%)

 

자료 : EAI·YTN·중앙일보·한국리서치 8월 정기조사 데이터

 

5. 10.26 서울시장 선거 및 2012년 대선에서의 스마트 유권자의 선택은?

 

스마트 유권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안철수 원장이 비교적 반한나라당 친야권 인사로 분류되는 박원순 상임이사를 지지하고 사퇴하고 안철수 원장의 지지표가 상당부분 박 이사에게 이전되었다. 그 결과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만 보면 박원순 이사는 물론 야권에 유리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기본적으로 현 정부여당에 쌓은 불만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정권심판의 정서를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는 점도 여권에 불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상충적 유권자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여건 야건 지금의 판세를 기준으로 향후 정국을 예측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정국을 전망하는 데 있어 일차적인 변수는 유권자들로부터 짙은 옐로우 카드를 받은 현 정치권의 대응이다. 무엇보다 중간지대 유권자들을 바라보는 시각교정부터 필요하다. 사실 정부와 한나라당의 경우 중도실용노선, 공정사회론 등을 제시하는 등 이들 중간지대 유권자들의 선호를 읽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해왔다. 적지 않은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높은 지지율과 지지율 1당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보수층의 반발에도 한국형 맞춤복지 확대를 놓지 않는 박근혜 전대표도 이들 유권자들의 변화를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스마트 유권자들이 이제 정부여당의 중도실용노선, 공정사회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는 집권 초 대운하 사업, 세종시 수정안 추진, 4대강 추진 과정에서 이미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독주정치에 대한 스마트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잔뜩 부풀려 놓은 상황이다. 여기에 스마트 유권자들이 바라는 복지 확대의 요구와 정면 배치되는 오세훈 시장의 반포퓰리즘 공세에 이명박 대통령도 공감을 표하며 선거참여를 독려했다. 친서민실용주의와 상반된 사인이다. 올해 비정상적인 전세대란, 물가대란으로 인한 체감경제 및 민생경제의 악화는 경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스마트 유권자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 보수층의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4.0과 같이 유권자들의 변화에 부합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변신을 꾀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거역하며 맞설 경우 집권 보수당에 대한 스마트 유권자들의 정권심판심리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야당도 여당 못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 올 해 4.27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이 선전했고, 안풍으로 박전대표의 대세론의 균열이라는 희망을 보았지만, 스마트 유권자들은 현 야권을 대안세력으로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심판의지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중간층에서도 45-50%를 오가는 높은 정당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현재 심판의 대상인 한나라당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5% 남짓한 군소 진보정당과의 연합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이다. 안풍은 ‘새정치’를 표방한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이전되었지만 이것이 민주당이나 기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기는 힘든 상황이다.

 

특히 야권연합에 성공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물과 컨텐츠 없는 껍데기 단일후보라면 유권자들은 순순히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는 4.27 재보궐 선거 당시 김해을 선거, 작년 6.2 지방선거 이후 한달 만에 치러진 7.28 재보선에서 스마트 유권자는 야권의 안주에 대해 이미 경고사인을 보낸 바 있다. 안철수 열풍은 야권이 차기집권 비전으로 애지중지하는 단골메뉴인 ‘단일화’,‘보편복지’, ‘좌향좌 노선’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구체적 내용 없는‘무소속 새정치’의 구호에 앞에 무기력했다. 자기개혁 없는 단일화, 관성적인 복지 좌향좌 노선에서 탈피하여 역동적인 스마트 유권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새로운 메뉴개발이 절대적으로 시급해졌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여당의 개혁과정이나 제3지대의 독자세력화 여부에 따라 민주당이 제3당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변수는 역시 안풍의 주역인 안철수 원장과 제3지대 자체에 있다. 안철수 원장 스스로 인정했듯이 안철수 원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는 비롯한 제3지대의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에 대한 전적인 신뢰라기보다는 기존 질서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여주는 메신저인 셈이다. 일단 후보 사퇴로 인해 경기장에서 잠시 나와 있지만, 유권자들이 던진 메시지를 현 정치권에서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든지 다시 호출하고자 할 것이다. 제2, 제3의 안철수를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딜레마는 현재의 선거 제도를 고려할 때 안철수 원장 개인의 명망과 이미지로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선거조직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독자적으로 하기에는 조직과 돈의 뒷받침이 쉽지 않을 것이며, 기존 조직과 연합하자면 새로운 정치에 대한 스마트 유권자들의 기대와 배치될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제3후보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딜레마로 보인다.

 

정치적 메신저에서 지도자로 변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안원장의 지도자로서의 권력의지, 정치적 조직 운영 능력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될 것이다. 이왕 새 정치를 해볼 요량이라면 정면으로 이러한 질문에 맞서는 것이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미루면 미룰수록 유권자들이 걸었던 기대치는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앞선 제3후보들이 보여준 교훈이며, 검증 안된 지도자를 선택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국민 자신에게 돌아간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위해서라도 피하면 안될 것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는 당장 한 달 후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최근 매 선거마다 여론조사로도 잡기 힘들 정도로 여론의 변화는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구도 예상 못한 안풍의 등장 직후 치러치는 선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스마트 유권자들의 선택은 유권자의 흐름과 멀어진 정당에게 패배의 아픔을 주면서도 그렇다고 반대편에게 일방적 승리를 안겨주지도 않는다. 상당한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절묘한 민심의 흐름 뒤에 스마트 유권자의 스마트한 투표선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토끼(지지층 결집) 먼저, 산토끼(중간층 지지확대) 먼저를 놓고 아웅다웅해 온 여야 정치권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스마트 유권자들을 동원의 대상 이상으로 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마트 유권자들은 기존의 이분법에 머물러 있는 한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전폭적인 신뢰를 주지 않는다. 언제든지 잡고 싶을 때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이 아니라 매우 다루기 까다롭고 능동적으로 정치권을 응징해온 유권자들이다.

 

이들은 경제에 민감하고 특정 정치세력이 지나치게 독주하는 것에 대한 견제와 균형잡기에 민감하다. 2004년 탄핵에 대해 참여정부를 보호했던 스마트한 표심은 불과 경제위기론에 대응 못한 참여정부를 2년 만에 심판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세 번의 전국선거에서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는 투표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등장하면서는 새로운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소통 없는 독주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면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야권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야권조차 승리에 안주하며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7.27 재보궐선거를 통해 여당에 승리를 안겨주는 균형잡기 투표(balancing voting)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2011년 들어와서는 4.27 재보궐선거에서 중산층 역할론을 내세운 손학규 대표의 모험에는 혁명적 결과를 안겨주었지만, 명분과 실력을 갖추지 못한 김해을 단일화에는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이후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보이콧이 있었다. 스마트 유권자들은 안철수 현상을 통해 이 모두에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시발을 알리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누구에게 레드카드를 내보일지 아직 미지수다. 스마트 유권자들에겐 누구든 하기 나름이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이 글은 <월간조선> 10월호에 실린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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