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교훈과 함의를 논의하기 위해 5월 3일 현대일본학회와 공동으로 “동일본 대재난사태 현장보고 : 현황과 교훈”을 주제로 제15회 인프라비전 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현대일본학회가 중심이 된 일본 원전 시찰단의 지진 답사 보고 후 관련 분야 전문가 및 정부관계자들과 함께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발표 및 주요 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재난사태의 정치적 함의

 

대재난 사태와 일본정치

 

지진•쓰나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 규모想定外였고 원전사고까지 겹쳤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일본정부의 초동대응, 원전사고의 대처 등에서 시스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일본 국민과 사회는 이번 사태를 맞아 질서 있고 차분한 대응을 보임으로써 ‘인류정신의 진보’라는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간 나오토菅直人 정권의 필사적인 대처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확산일로에 있으며, 취약했던 정권의 기반이 더욱 약화되어 당분간 정치적 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대재난의 국제정치

 

2010년 중일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규모 역전, 중일 센카쿠 갈등에서 보인 일본의 저자세에 이어 발생한 이번 대재난은 국제정치적으로 일본 국력의 쇠퇴 및 국운저하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각인되었고, 일본형 시스템의 파탄, 매뉴얼 사회의 한계, 리더십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며 동아시아 미중 양강(G2) 시대의 도래를 촉진하였다.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현재 일본이 처해있는 실질적인 문제상황 보다 일본의 위험수준을 과다하게 인식함에 따라 소문風評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

 

대재난과 한일관계 삼차방정식

 

대지진 사태 이후 한국 내 일본 돕기 분위기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선린善隣으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일지원은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제고하고, 향후 대일외교의 자산이 될 것이므로 지속될 필요가 있다.

 

일본정부의 교과서 검정발표에 따라 한국인의 대일 감정이 급격히 냉각되었다. 사실 문부과학성이 주도한 이번 검정발표는 매뉴얼대로 진행된 ‘비결정의 결정’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교과서•독도 분쟁은 영토주권 및 역사인식과 관련된 이슈인 만큼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임을 일본측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동아시아 및 전세계적 차원의 원전 안정성 문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국제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원전 문제에 있어서는 지역 및 국제적 차원의 공조시스템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원전사태 현황과 함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수습 로드맵

 

도쿄전력은 지난 4월 17일 방사선량이 착실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단계를 'Step 1'으로, 방사선 물질의 유출이 관리되고 방사선량이 대폭 감소하는 것을 'Step 2'로 설정하여 각각의 단계별 냉각, 억제, 모니터링 계획을 담은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로드맵은 'Step 1'을 3개월 내 'Step 2'를 6개월 내 달성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연내 원전사고 수습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원전사태의 함의 및 여파

 

이번 사태로 인해 원자력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이 고취되었다. 그동안 원자력 르네상스 분위기에 가려 다소 경시되었던 원자력 에너지의 위험성이 다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으며 향후 각국의 원자력 에너지 정책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2008년 G8 정상회담 이후 원자력 문제는 소위 3S(safeguard, safety, security)의 문제로 규정되어, 각각에 대한 분리 대응 지침이 마련되었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일본 자위대 전체 병력의 절반이 원전사고 수습에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원전 안정성 문제(safety)가 안보(security) 문제로 쉽게 확대될 수 있음이 입증되어 앞으로 3S와 관련하여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이는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의제 설정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전사고의 유형에 따라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경험 공유를 위한 국제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공식적인 네트워크 못지않게 비공식적인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이번 원전사태를 계기로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확보된 정보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특징을 보일 뿐 아니라 정보 확보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 확인되어 비공식 네트워크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특히, 원전산업을 두고 일정부분 경쟁관계에 있는 한중일 협력의 증진을 위해서는 비공식 네트워크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

 

일본 주요인사들의 인식

 

상정하지 못했던想定外 상황

 

일본 내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센다이 평야까지 쓰나미가 밀려오리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정 외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았으나, 후쿠시마현의 이웃 현들은 쓰나미 대책을 이미 마련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사태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 원자력 문제에 있어서는 상정 외를 논할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일본 정부 대응 시스템의 문제

 

컨트롤 타워로서 ‘본부’ 중심의 지휘계통 작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평시의 종적 행정체계를 긴급사태 발생시 신속하게 사고대응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부흥구상회의, 원자력재해대책본부, 긴급재해대책본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원 등 관련기관이 너무 많고 이들 사이의 횡적 연결이 부족함으로 인해 정보 창구 및 정보 공개의 일원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경제산업성이 원자력 추진과 규제를 동시에 담당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인사 이동 및 관료의 타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따라서 원자력 규제를 담당하면서도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는 원자력안전원을 경제산업성에서 분리하여 원자력안전위원회로 통합하고, 이를 자문기관에서 독립행정법인으로 격상시키는 방안이 제기되었다.

 

모노즈쿠리 부품 공급 중단사태에서 보듯 일부 지역문제가 일본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리스크 분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자위대에 대한 지지도 상승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58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높아진 반면, 자위대의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95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다. 아울러 자위대와 미군의 연계 강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88퍼센트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대응의 한계

 

초기 대응의 한계

 

일본이 초기 대응에 실패하여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4월 17일에야 발표된 로드맵 내용의 핵심은 결국 격납용기 외부에 물을 채워 원자로를 수장 냉각시키는 것이다. 한국은 3월 초에 이미 해당 해법을 일본정부에 제안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았으며, 시간이 지체됨으로 인해 결국 격납용기까지 파손되어 현재로서는 수장냉각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신중함이 지나쳐 초기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문제 해결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대비태세 미흡

 

지난 100-150년 사이 후쿠시마 이웃 현에서 15미터 이상의 파고波高를 가진 쓰나미가 4차례 이상 발생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 사태를 단순히 상정 외 상황이라 치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재난 대비 시스템 구축에는 상당한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원자력 관련 산업체들은 가능한 논리를 동원하여 가급적 위험 발생 가능성을 낮추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상정 외의 문제라기보다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문제 발생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일본 사회의 한계 : 낮은 수준의 세계화, 부품사회

 

일본 사회가 세계화 되어있지 못한 점도 문제이다. 일본에게 있어 세계화는 미국과의 관계로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으며 다소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 정보공유가 잘 진행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일본은 부품생산에는 강하지만, 대개 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여 사용함에 따라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시 이를 잘 수습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당기간 일본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에 비해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는 한국이 이번 기회를 활용하여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일협력이 강화되면 한국은 부품 면에서 앞서있는 일본의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원전 관련 기관들의 관료화

 

일본이 원자력안전원을 경제산업성에서 분리하여 규제기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원전 관련 인사들의 전문분야가 지나치게 세분화 되어 있고 조직이 관료화 되어 관련 기관들 사이의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원전 안전성의 감시•감독 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규제기관의 독립성 확보 못지 않게 관련 기관들 사이의 활발한 정보공유가 필요하다.

 

한국에의 함의

 

상정 외 상황을 대비한 훈련 및 매뉴얼 개발

 

창조적인 상상력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상정 외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 극한 자연재해 상황을 가정하여 이에 대비한 원전 시설 설계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이번 사태를 통해 치명적인 것으로 규명된 전원 상실 시나리오에 대비한 훈련 및 매뉴얼 개발이 필요하다.

 

대재난 사태를 대비한 의사결정 프로세스 점검

 

이번 일본의 초기 대응 실패는 사고대책 본부의 혼선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총책임자 역할을 해야 할 발전소장이 국제사회, 정치권으로부터 제공되는 위로부터의 정보와 발전소 설계자 및 실무 담당자들로부터 제공되는 아래로부터의 정보 사이에서 입장을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교훈 삼아 한국은 평상시 대재난 사태를 대비한 원전관리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매뉴얼을 수립해둘 필요가 있다.

 

원자력 운영 기술자 역량 강화

 

원전 관련 사고 발생시 초기 대응은 담당 운영 기술자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원자력 안전성 증진을 위해 실무 기술진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원전 관련 기술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통해 고도의 전문성과 자부심을 가진 인력을 양산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중일 원전관련 기본 정보 교류 강화

 

원자력 문제는 이웃 국가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한중일 삼국이 각국 원전 시설에 대한 상호 정보 교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원전 시설 구조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유되고 있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초기에 문제의 심각성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민감한 정보 공유는 어렵다고 해도, 한중일 사이에 기본적인 정보 공유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 특히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를 매개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자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발표자

김기석, 강원대학교 교수

김숙현, 도호쿠대학교 교수

김웅희, 인하대학교 교수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

전진호, 광운대학교 교수

 

토론자

김기현, 외교통상부 서기관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본부장

윤경민, YTN 기자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