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중국연구패널 보고서 No.11

 

저자

이장원_충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중국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국제정치전공)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중국대외관계, 시민사회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China’s Dilemma on the Korean Peninsula: Not an Alliance but a Security Dilemma” (2013, 공저), “한중 수교 20주년의 단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중심으로” (2012), “중국외교정책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 (2012), “중동 시민혁명으로 본 중국시민사회의 한계와 전망” (2012), “양안관계 개선의 정치경제적 의미” (2012, 공저), “중국의 공공외교: 배경, 목표, 전략” (2011) 외 다수가 있다.

 

 


 

초록

 

본 연구는 중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확대되거나 적어도 개입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중국 시민사회단체의 역할과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정책결정과정, 특히 대외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서 중국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과 영향은 아직까지는 산발적이고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외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경우 대개는 정부정책 추진을 보조 또는 보완해주는 행위자로서, 혹은 중국이 국제사회와 소통하며 상호 협력하는 창구로서, 외부의 비판적 혹은 적대적 요소에 대응하고 정부의 입장을 대신하는 공공외교의 카드로서 대외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동시에 당무(黨務)와 정무(政務)가 고도로 통합된 당-국가체제의 특징 하에서도 대외정책결정 과정에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과 같이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분적이지만 중국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정책결정과정에까지 이르고 있다면, 중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과 외교행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같이 정치적 개방도가 미약한 국가에서도 시민사회단체의 존재와 역할은 중국대외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이 점차 다원화되고 있다는 사회적 변수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I. 서론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외정책의 결정과정은 제한된 정책결정계층 외부로 쉽게 공개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국가운영의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전통적으로 거의 유일한 정책결정과 집행의 행위자로 간주되어 왔다. 말하자면 대외정책과 관련된 정보를 소수의 정책결정계층이 통제함으로써 정책의 결정과 집행의 권한까지 독점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관계의 발전에 따라 한 국가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적 요인들이 과거에 비해 더욱 복잡해졌다. 또한 세계화와 민주화의 진전으로 인해 더 이상 정부 내 소수의 정책결정자들이 국가의 정보자원을 독점하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보다 광범위한 국내외적 변수들이 대외정책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커지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자들도 다변화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정부조직, 싱크탱크, 학자들로 구성되어 왔던 대외정책결정 주체의 범위가 기업, 시민사회의 참여 등을 통해 보다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외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NGO로 대표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은 정부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여론을 형성하며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정부 시기의 대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대 이라크 전쟁 수행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와 알카에다와의 연계성 등에 대한 의문을 배경으로 한국 내에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물론 추가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내의 비우호적인 여론이 한미양국의 논의과정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해 추가파병의 시기와 파병부대의 규모 등이 당초 미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제한된 정책결정과정이 확대되는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12월 13일 한국 외교부에서 열린 ‘2013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외교부가 앞으로 정책결정과정에 학계와 NGO 등 민간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더욱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협의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 또한 대외정책결정과정에 여론의 영향과 또 여론을 주도하는 행위자 중 하나인 시민사회단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적 추세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국가중심적인 대외정책결정과정을 보여 온 대표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은 정책결정과 관련된 제도와 행위자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수준에서 이해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은 그 동안 당무(黨務)와 정무(政務)가 고도로 통합된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의 속성이 선명하게 반영되어 왔다는 점이다. 즉 중국의 대외정책결정은 공산당에 그 절대적인 권한이 있으며, 공산당중앙정치국 특히 정치국상무위원회를 정점으로 하여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와 업무분장시스템 즉 꾸이코우 관리제도(歸口管理制度)에 의해 관련 업무별로 핵심적 정책결정라인이 구성된다. 하지만 대체로 공산당의 최고지도자(총서기)와 정치국상무위원회, 국무원 총리, 전담국무위원(경제담당 부총리,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 당∙정∙군 외사담당부서의 수장들이 주요 정책결정라인이 되는 국가중심적 대외정책결정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전통적으로 당∙정∙군 라인 이외의 행위자들이 대외정책결정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중심적인 중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도 일부 변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정책과 관련한 이해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대외정책결정의 과정도 보다 전문화되고 참여하는 행위자의 수도 대폭 확대됨으로써 정책결정의 과정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관변 싱크탱크, 대학 및 민간연구기관, 연구자들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또한 일부 중국학자들의 경우 대외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에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개입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왕이저우(王逸舟)는 중국 내에서도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정보접근에 대한 제약이 적어지고 이에 따라 대외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접근 가능성도 커졌으며 글로벌 시민사회의 대내적 영향력이 커짐으로써 대외정책결정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진찬롱(金燦榮)은 중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에 새로운 특징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비외교정부부문의 참여, 특수이익집단의 개입, 그리고 여론의 영향 확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로 중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이 다원화되고 있으며, 특히 그 가운데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확대되거나 적어도 개입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실증적 근거가 있을 것인가? 본 연구는 이 같은 질문에서부터 출발하여 중국대외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중국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물론 현재의 중국 정치 상황에서 중국시민사회의 한계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중국시민사회단체의 역할과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동안 주로 시민사회단체의 국내적 역할이 주목되었던 것에 비해 여기서는 주로 중국의 외교과정에 대해 중국시민사회단체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살펴볼 것이다.

 

용어의 사용과 관련해, 중국에서는 학술적으로 ‘비정부기구(非政府組織: NGO)’, ‘비영리기구(非營利組織: NPO)’, ‘제3섹터조직(第三部門組織)’, ‘자원기구(志願組織)’, ‘자선단체(慈善組織)’, ‘민간단체(民間組織)’ 등의 용어를 사용해 시민사회영역의 행위체들을 지칭하고 있으며,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기관인 민정부(民政府)에서는 공식적으로 ‘사회단체(社會團體)’, ‘민영비영리기관(民辦非企業單位)’, ‘재단(基金會)’으로 등록된 시민사회영역의 행위체들만을 합법적인 조직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는 실제적으로는 기업의 신분으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를 비롯해 비공식적 네트워크, 각종 살롱, 해외비정부기구의 중국지부, 불법종교단체 등 합법적 지위를 갖추지 못한 조직들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본문에서는 이들을 지칭하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으로 세계은행에서 정의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Civil Society Organizations)’를 사용할 것이다.

 

II. 대외정책결정과정 참여자의 다원화에 대한 논의

 

대외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영향변수의 다원화라는 측면에서 로즈노우(James N. Roseneau)의 연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로즈노우는 대외정책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개인적 변수(individual variable), 역할변수(role variable), 정부변수(governmental variable), 사회적 변수(social variable), 체계변수(system variable)의 5개 차원을 제시하였고, 이들이 국가 크기, 경제발전수준, 정치적 개방도에 따라 국가별로 대외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차별화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 기준에 따르면 사회가치정향, 여론, 산업화 정도, 민족단합의 정도 등을 포함하는 사회적 변수는 특히 중국과 같이 정치적 개방도가 미약한 국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재우는 이를 중국에 적용하여 마오쩌뚱부터 후진타오에 이르는 각 지도자 시기별로 대외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들의 상대적 중요성을 분석하였지만, 그가 적용한 사회적 변수는 ‘경제발전수준’이었기에 시민사회 내지 여론의 영향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양갑용은 “여론의 향배가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민간외교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중국의 외교정책 생산단위는 점차 다원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국가의 공식적인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대외정책결정과정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는 그가 사례로 제시한 중•일 간의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에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댜오위다오 분쟁에 대한 중국의 대응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들의 민족주의적 활동이 중국의 대일 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던 사례를 지적하고 있는 점은 매우 유의미하다. 2010년 9월 7일 댜오위다오 해역에서 발생한 일본 해상보안청 선박과 중국 어선의 충돌 사건 당시 일본이 ‘어로법’ 위반을 내세워 중국인 선장을 비롯한 선원 전원과 선박을 나포한 바 있다. 양갑용은 이에 대해 중국정부의 외교적 교섭 이외에 ‘중국 민간 댜오위다오 보호 연합회’ (中國民間保釣連合會), 중국 최대의 해커조직인 ‘중궈홍커(中國紅客)연맹’, ‘댜오위다오 보호 홍콩 행동위원회’ (香港保釣行動委員會)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고 항일시위를 주도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일본 측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중국의 외교적 협상력을 높여주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미중경쟁과 한국의 전략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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