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이승주 EAI 무역 기술 변환센터 소장(중앙대 교수)은 한국의 경제안보전략이 미중전략경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 경제적 강압이라는 지경학적 도전 속에서 중상주의와 산업정책 기반의 기본 정책 방향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정학/지경학의 이중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향후 한국이 지정학과 지경학의 이중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기술혁신 넥서스 구축, 기술 주권 강화를 통한 국제협력의 지렛대 마련, 경제안보 전략 이행의 실질적 주체인 기업과 국가의 이익 통합 등을 통한 리스크 관리를 우선시하는 경제안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I. 서론

 

전통적인 경제 안보는 타국의 공세로부터 자국의 경제와 안전을 보호하고, 외교안보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며, 지정학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Samuels 1996; Blackwill and Jennifer 2016).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적 도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경제 안보를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정의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경제적 침공으로 정의하고, 경제 안보가 곧 국가안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Navarro 2018). 주요국들이 보호와 안전에 초점을 맞춘 방어적이고 반응적인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전략적 우위의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선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요국들은 자국의 국가 이익을 증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경제 안보 전략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 안보 전략의 전환은 세계화로 인해 증가한 국가 간 상호의존을 무기화하고, 민군 겸용 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와 안보 사이의 경계가 약화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 간 상호의존이 평화를 증진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전망과 달리, 강대국들이 증대된 국가 간 상호의존이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겸용 기술의 확산 또한 첨단기술이 미래 경쟁력의 확보를 위한 경쟁을 가속화 시켰을 뿐 아니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대두함에 따라, 첨단기술의 안보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추세적 변화를 반영하여 경제 안보 전략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그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다른 국가들의 경제 안보 전략과 차별화를 시도해왔는데, 중국 및 일본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하고, 첨단산업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커졌을 뿐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관리 필요성이 증대된 것 등이 결합하여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차별성을 촉진하였다.

 

이 글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장기간 지속되는 연속성과 대내외 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변화의 두 가지 성격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1960년대 초에서 현재까지 몇 차례의 단계를 거쳐 변모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이 형성되는 동시에, 대내외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경제 안보 전략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연속성은 지정학과 지경학적 대응의 결합, 경제적 강압 수단의 결여, 중상주의적 성격과 산업정책 기반의 전략이다.[1] 한편,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 첨단기술을 긴밀하게 통합한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화된 변화가 발견된다. 구체적으로 첨단산업 공급망의 취약성 완화,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 산업정책과 첨단기술 전략의 결합 등이 그것이다.

 

 

II. 경제 안보 전략의 유형

 

경제 안보 전략은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이라는 대응 전략의 특성과 대외정책과 국내 정책적 대응이라는 대응 수단의 우선순위 두 가지를 기준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대외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 가운데 어디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경제 안보 전략의 유형이 나누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우선 경제적 경쟁의 심화와 안보 위협의 증대와 같은 대외적 도전에 직면하여 지경학적 대응을 경제 안보 전략의 근간으로 설정하는 국가들이 있다. 이 유형의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적 또는 산업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경제 안보의 핵심 과제로 설정할 뿐 아니라, 지정학적 도전에 대해서도 산업 경쟁력의 강화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통해 해결하려는 특징을 보인다(Samuels 1996).

 

반면, 대외환경의 변화에 직면하여 지정학적 대응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유형이 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유형의 국가들은 (공세적인) 지정학적 목표를 추구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한다(Andrews 2006; Baldwin 1985; Cohen 2018; Drezner 1999, 2015). 상대국의 경제적·산업적 추격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근저에는 경제 안보에 대한 위협이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언제든 전환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냉전기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고위험 연구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혁신 생태계의 재편을 추진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지정학적 대응은 냉전기 미소 경쟁뿐 아니라, 최근 미중 전략 경쟁에서도 발견된다(Navarro 2018). 중국에 대한 견제가 지정학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때로는 경제적 효율성의 저하마저도 감수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21세기 중국의 기술 굴기에 직면한 미국은 또 다시 기술 혁신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와 국내 생산 역량의 강화를 통한 주요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기술과 산업 추격이 궁극적으로 국가안보 위협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근원적 두려움이 작용한 결과이다. 다만, 냉전기 소련과 달리, 중국이 첨단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고 겸용 기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혁신 역량 발전의 지연과 자체적인 역량의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미국이 혁신 생태계의 업그레이드와 산업 경쟁력의 강화를 연계하지 않으면 중국의 추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혁신 명제(innovation imperative)’가 미국의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질서의 근간은 위협하는 국가에 대한 경제 제재에서 나타나듯이, 초강대국들뿐 아니라 주요국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중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하여 수출 통제, 투자 규제, 금융 제재 등 대외 경제 정책을 적극 동원하였다. 특히, EU의 경우 특정 국가에 대한 구조적 의존(dependency)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극단적 추구를 지양하는 경향을 보인다(European Commission 2023).

 

둘째, 대응 수단 면에서 경제 제재, 수출 통제, 대외 원조 등 대외 경제 정책에 상대적으로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유형과 산업정책, 기술 혁신 전략, 제도적 혁신과 같은 국내적 차원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대외 경제 정책 중심의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강대국의 전유물이라는 점에서 다수의 국가로 확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강대국들이 독자 제재를 넘어 다자 차원의 경제 제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견국 또는 약소국을 경제 제재에 동원하기도 한다. 중견국 또는 약소국들도 대외경제정책 성향의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기도 하나, 이는 강대국과의 협력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은 아니다. 강대국이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활용하여 상대국에 제재 조치를 부과하거나 유인을 제공하는 능력을 보유하였기 때문이다. 냉전기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적 차원에서 수월한 기술 및 제도적 역량을 수립하는 데 경제 안보 전략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다만, 미국 경제 안보 전략의 국내적 차원은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의 확보가 지배적 동기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지정학적 접근이다.

 

반면, 대내외 도전에 직면하여 국내 산업정책 중심의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유형의 국가들이 있다(Weiss and Thurbon 2021). 이 유형의 국가들은 경제 안보를 경제적 차원에서 정의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대외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는 국내적 차원의 산업 경쟁력 강화와 제도적 혁신이 필수라고 인식한다. 더 나아가 이 유형의 국가들은 산업정책의 범위를 방위 산업 또는 군사력 증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산업으로 확장함으로써 지정학적 도전에 대해서도 산업정책 기반의 대응을 우선한다. 안보 위협의 증가에 직면하여 군사력의 증강과 같은 지정학적 대응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군사력 증강을 방위 산업 역량의 강화와 연계한다는 점에서 국내적 차원에서 산업정책적 대응이 경제안보 전략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가, 팬데믹의 세계적 확산, 기후 변화, 자연재해의 빈발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과 세계 경제 질서의 불안 등 대외환경의 변화는 국가의 귀한, 더 나아가 산업정책의 귀환을 촉진하였다(Wade 2012; Siripurapu and Berman 2023).[2]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될수록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더욱 첨단산업 경쟁을 위한 경쟁이 격화될 경우,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들은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산업정책의 강화를 경제 안보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때문이다(Carroll 2023; 이승주 2023).

 

일본은 지경학적 접근을 추구한 대표적 국가이다. 경제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지경학적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일본은 경제 발전과 안보라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교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지경학적 접근은 리쇼어링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정부가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 사이에 일본 기업의 회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대중국 투자와 사업에 수반된 리스크를 관리하고 공급망 복원력을 강화하려는 지경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리쇼어링 정책은 투자처로서 중국의 매력이 감소함에 따라, 일본 기업의 중국+α의 필요성이 증가한 것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Katada et al. 2023).

 

지금까지 소개한 유형은 연속선상에 있는 차이이기 때문에, 경계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두 가지 기준의 경계에 놓여 있거나, 두 가지 특징을 함께 공유하는 유형도 있을 수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리쇼어링은 다면적 성격을 갖는다. 리쇼어링은 생산 효율성의 최적화를 위해 해외로 진출했던 자국 기업, 특히 제조기업을 국내로 회귀시키는 정부 정책이다(Bals et al. 2016). 다른 국가 또는 경쟁국에 대한 의존도를 감소시키고 공급망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다는 점에서 지경학적 고려에 기반한 경제 안보 전략이다. 이와 동시에 리쇼어링을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추진할 경우, 지경학과 지정학의 결합이 발생한다. 미국이 대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를 명시적으로 표방하고, 자국 기업뿐 아니라 동맹 및 파트너 국가의 기업마저도 미국 내 유치하려는 리쇼어링 정책은 지경학과 지정학 결합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중국과의 첨단산업 경쟁에서 우위 확보뿐 아니라, 겸용 기술의 광범위한 확산 추세를 감안한 안보 전략이기도 하다.

 

리쇼어링은 상대국의 행위를 변경시키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내포하지 않고도 기업의 생산 지점을 변경시킨다는 점에서 대외 경제 정책의 성격을 띤다. 이와 동시에 리쇼어링은 세계화에 대한 반발에 대응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국내 정책의 성격을 모두 갖는다. 자국 기업의 국내 회귀를 지원함으로써 주요 산업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리쇼어링은 전형적인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국내 생산 역량의 강화라는 목표에 부합할 경우, 외국 기업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외 경제 정책의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III.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연속성

 

직면하는 도전의 성격과 국내의 대응 역량에 따라 시기별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의 수단과 방식에 변화가 있었으나, 중상주의적 성격, 산업정책 기반의 전략, 지정학적 대응과 지경학적 대응의 결합, 반응적 성격 등은 지속되었다. 첫째, 1960년대 수출지향산업화는 후발국으로서 선진국을 추격하겠다는 중상주의적 목표를 뚜렷하게 드러낸 생존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기원이었다. 무역 자유화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과 같이 자유주의적 성향의 경제 안보 전략에도 중상주의적 요소가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이후 한국은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추구하면서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을 심화‧확대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였다. 미중 전략 경쟁, 팬데믹, 기후변화 등 다양한 위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21세기 초불확실성 시대에도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중상주의와 산업정책 기반의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 첨단 기술 역량과 첨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양자 차원의 경제적 강압과 다자 차원에서 증대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21세기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의 전통과 산업정책의 연속성이 발견된다.

 

둘째, 한국이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을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적 전통과 산업정책에 대한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안보 위협과 전략적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춘 지정학적 대응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은 지정학적 대응을 우선하기보다 지정학적 대응을 지경학적 대응에 긴밀하게 통합하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셋째, 반응적 성격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형성된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이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무역 자유화와 시장 개방 압력에 직면하였다. 당시 한국은 선진국들의 양자적 차원의 압력에 직면하여 무역 자유화의 범위와 속도를 조정하는 반응적 성격의 통상 정책을 추구하였다. 2000년대 중국이 통상 분쟁의 새로운 상대로 부상하였다. 2000년 6월 한국 정부가 마늘 농가의 보호를 위해 중국 마늘의 관세율을 10배 이상 높이는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발동한 데 대하여, 중국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었던 핸드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로 대응하였다. 이른바 ‘마늘 파동’ 사태에 직면한 한국은 중국의 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반응적 전략에 주력하였다. 2010년대에도 반응적 성격의 경제 안보 전략은 지속되었다.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경제적 강압과 한일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white list)에서 제거하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한국은 동일한 유형의 경제적 강압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1. 중상주의적 전통과 산업정책 기반의 경제안보 전략: 기원과 지속성

 

1) 1960년대 수출지향산업화 전략

 

전통적으로 강대국의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대외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운데 상대국에 원조 및 경제적 지원과 같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과 경제 제재 또는 수출 통제와 같이 상대국에게 징벌적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반면,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대외 경제 정책은 상대적으로 미발달한 분야이다. 한국은 원조 제공과 같은 인센티브의 제공과 경제 제재와 같은 경제적 강압이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이러한 특징은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강압에 직면하였음에도 한국은 반경제적 강압 정책으로 대응하는 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중상주의적 성격이다. 몇 차례 변화의 단계를 거쳤음에도 중상주의적 요소는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 언제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도 중상주의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의 기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해방 이후 1960년대 초까지 미국에 원조와 안보 우산에 의존하였으나, 1960년대 초반 산업화 전략에 착수하였다(양재진 2012). 1962년 수출지향산업화(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EOI)와 함께 시작된 산업화 전략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간 경쟁에 직면한 한국이 추격을 통한 산업화의 완수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국가 생존의 첩경으로 설정한 것이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기원이었다. 당시 한국은 후발국으로서 선발국에 대한 추격은 산업화 전략을 넘어선 국가 생존을 담보하는 지경학적 대응의 핵심 요소였다.

 

이러한 시도가 표면적으로는 수출 산업의 육성을 통한 세계 경제로의 편입을 추구하였다는 면에서 자유주의적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였다(류상영 1996).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국가 생존을 위한 지경학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중상주의적 경제 안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수입 품목의 선택적 자유화, 핵심 산업의 보호, 선발국의 추격 등을 명시적으로 추구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성격이 오히려 강화되는 등 한국의 중상주의적 성격은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선발국에 대한 추격, 즉 중상주의 기반의 경제 안보 전략은 일회성 전략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다만, 중상주의적 접근은 도전의 성격에 따라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였다. 한국은 1960년대 말부터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중상주의적 특징이 더욱 강화되었다. 중화학공업화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자본 또는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업그레이드를 추구한 산업화 전략이었다. 이 시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는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국의 추격이라는 지경학적 도전이 핵심 화두였다. 대외 환경의 변화에 직면한 한국이 선택한 대안은 중화학 공업으로 산업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중화학 공업으로 업그레이드에서 중상주의적 성격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가 매우 도전적인 과제임에도 한국은 국제 분업 구조의 참여함으로써 선발국과의 협력 관계를 형성하기보다, 중화학 공업의 최종 제품 생산에서 선발국과 직접적 경쟁을 추구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2) FTA 전략: 자유화의 외피와 중상주의의 내면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추격에 성공한 한국은 1980년대 이후 자유화 전략으로 다시 한번 전환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대외적으로는 무역 자유화, 국내적으로는 금융 자유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관리된 자유화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중상주의와 결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1960년대 초 이후 한국이 추구했던 추격형 발전모델의 종언을 재촉하였다. 금융 기관 통폐합을 필두로 기업 지배구조, 노동, 공기업 개혁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련의 변화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전통적인 전략에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현실화되지 못하였다. 우선, 1990년대의 변화가 ‘강요된 자유화’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Higgott 1998), 전통적인 경제안보 전략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이 위기관리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내포한 제도 개혁을 실행에 옮긴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심지어 한국의 구조 개혁이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한 표면적 변화에 불과한 ‘위장 순응’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Walter 2008).

 

자유화의 외피와 중상주의의 내연은 한국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추진한 FTA에서 잘 나타난다. 금융 위기의 높은 파고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FTA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에서 중상주의의 급격한 소멸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개방형 통상국가’를 표방하면서 미국, EU 등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추진하는 등 공세적인 FTA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 시기 한국의 FTA 전략은 전방위적인 무역 자유화를 지향하되, 다음 네 가지 면에서 중상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내포하였다.

 

첫째, 김대중 정부가 FTA를 추진한 데는 역내 경쟁국보다 FTA 경주에 먼저 참가함으로써 선발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작용하였다. 이는 FTA를 무역 자유화를 위한 수단이자 새로운 경쟁 우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전략적 사고의 결과였다(Ravenhill 2010). 둘째, 노무현 정부가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와 ‘동시다발적 FTA’라는 FTA 전략을 병행한 것 역시 FTA의 안보적 효과에 주목한 결과이다. 한국이 국내적으로 FTA의 피해 집단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다수의 국가들과 또한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려고 한 것은 FTA를 ‘경제 영토’의 확장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은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FTA 허브’를 지향하였다. FTA 네트워크에서 허브 위치를 전략적 이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이승주 2010). 넷째, 한미 FTA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듯이, 한국은 FTA를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였다. FTA를 체결함으로써 한미 관계를 군사 동맹에서 포괄 동맹으로 격상시킬 것으로 기대하였다.

 

한국이 1980년대 이후 자유화를 수용하면서 이전 시기와는 차별화된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한 것은 분명하다. 이 시기 한국의 자유화 전략은 경제와 안보의 분리보다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새로운 방식과 수단을 발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넥서스로서 FTA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Lee 2012). FTA와 같은 대외 경제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도 하였으나, 여기에도 ‘경제 영토’의 확장이라는 중상주의적 요소가 강력하게 내재되어 있다(이승욱 2021). FTA를 무역 자유화를 위한 수단을 넘어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추구하였다는 것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의 중상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3) 중국의 부상: 안미경중과 중상주의적 접근

 

2000년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였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이러한 변화를 촉진한 구조적인 요인이 되었다. 외환 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격기 이후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을 찾는 것이 절실했던 한국에게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매력적인 대안이 되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함에 따라, 한중 무역 규모 또한 빠르게 증가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의 경제적 혼란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새로운 시장 확대의 필요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 시기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이러한 지위를 2022년까지도 유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이 양자 무역의 규모를 빠르게 증대시킨 것은 물론, 전자산업과 자동차 산업 등 주요 제조업에서 분업에 기반한 가치 사슬을 형성하는 질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대비되면서 세계 질서의 변화가 초래됨에 따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의 복잡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미국이 경제 면에서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고, 안보 면에서 동맹국이었던 시기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하였다.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지상과제였기 때문에,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을 넘어서는 경제 안보 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할 현실적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부상하는 구조적 변화는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변화를 촉진하는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변화의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경제안보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였다(반길주 2020; 김소연 2023).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경제와 안보의 분리 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지정학적 도전과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분리 접근이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경제안보 전략의 추진 과정에서도 중상주의적 성격은 유지되었다. 한국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좁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극복 수단으로, 넓게는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기회로 인식하고,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의 심화‧확대를 적극 추구하였다. 그 결과 한국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할 때, 중국과 미국의 격차는 2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지경학적 대응에서도 부상하는 중국을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 및 경제 성장 동력 확충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중상주의적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지경학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

 

한국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두 번째 특징은 지경학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이다. 한국은 산업 경쟁과 같은 지경학적 위협과 안보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동시 추구해왔다. 첫째,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는 지경학적 도전과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산업정책적 대응이기도 하였다.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한 것은 북한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산업 역량의 강화를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도전에 대응한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였다(김진기 2011). 이는 북한의 안보 위협이라는 지정학적 도전에 대하여 방위 산업 또는 방위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적 대응 전략이었다. 특히, 방위 산업의 육성이 오로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 전략을 그친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라는 지경학적 대응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산업정책은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둘째,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은 21세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에서도 지속된다. 우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지경학적 대응을 지속적으로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이에 대한 대응을 체계적으로 통합한 경제 안보 전략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이와 동시에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제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제 안보 전략에 통합시켜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더 커졌다.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의 결합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을 관통하는 특징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지경학적 도전과 지정학적 도전의 성격이 변화하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경학과 지정학의 결합의 방식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가 다소 모호하였던 과거와 달리, 21세기 한국은 주요 선진국의 자국 우선주의, 경쟁적인 산업 정책 추진,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강압이라는 명확한 실체를 가진 지경학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가 과거에 비해 더욱 명확해짐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지경학적 대응의 필요성이 따라서 증가하였다. 원칙론 차원의 결합을 넘어, 세부 정책에서의 결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또한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시스템 차원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개별 국가 차원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경쟁적 확산은 지경학적 대응과 지정학적 대응을 통합하는 데 있어서 보다 정교한 경제 안보 전략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3. 반응적 성격

 

위의 두 가지 특징과 비교할 때, 반응적 성격은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다소 뒤늦게 형성된 특징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개도국으로서 또는 동맹의 일원으로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으로부터 본격적인 공세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반응적 성격의 경제안보 전략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반응적 성격은 상대국의 공세에 선제적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대응하고, 상대국의 조치가 초래할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반응적 성격은 1980년대 중반 선진국의 시장 개방 압력이 가시화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양자적 차원과 관세무역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차원의 무역 자유화 협상과 같은 다자적 차원의 무역 자유화 및 시장 개방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일차적으로 개도국으로서 기존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정책적 전환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상대국의 공세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할 경우, 한국은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시장 개방 압력은 농산물에서 통신 서비스, 자동차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의 통상 압력에 직면한 한국은 시장 개방 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선 자유화, 후 시장 개방’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전략이 개방 압력을 사전적으로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면에서 선제적 또는 예방적 전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개방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였다는 점에서 반응적 경제안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중국의 경제 제재, 2019년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대응에서도 반응적 성격은 유지되었다.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FTA 개정 요구 등 미국의 일방주의적 접근에 대해서도 한국은 반응적 성격에 기반한 대응을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반응적 성격은 시대를 관통하여 지속되는 주요 특징이다.

 

 

반응적 성격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반강압 조치(counter-coercive measures)로 대응하기보다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이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은 일차적으로 소비재와 엔터테인먼트 등에 집중되었으나, 중국 내 반한 감정과 애국 소비가 확산되면서 경제적 강압의 효과가 가전, 스마트폰,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로 확대되었다. 2022년 기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20%를 상회하는 삼성전자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것은 사실상의 경제적 강압의 영향과 관련이 있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확대된 데 대하여 한국은 다변화와 리쇼어링을 동시 추진하는 반응적 전략을 추구하였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등이 다변화 전략의 주요 대상국으로 부상하였다.

 

 

2016년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GDP의 약 0.5%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정부는 경제 제재의 피해를 완화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회귀하는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다만, 리쇼어링을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사용한 미국과 달리,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산업 구조 조정 및 전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 1개 생산 라인을 철수한 현대모비스는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턴법’을 수차례 개정하여 보조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였다. 중국 경제 제재의 여파로 현대자동차는 중국 베이징 공장을 매각하고 리쇼어링을 결정하였고, 정부는 2019년 현대모비스가 울산 지역에 약 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투자에 대응하는 지원을 제공하였다. 이는 국내로 회귀하는 대기업에 대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지원 사례이다. 현대자동차의 매각 조치 이후 한국 정부는 유턴법을 네 차례 개정하였다. 또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은 국내 회귀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리쇼어링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안정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였다. 기업들이 국내 회귀에 소극적인 이유는 자격 기준에 비해 보조금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투자를 회수하고 국내에 신규 투자를 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인세의 인상과 노동 비용의 상승은 보조금 지급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반강압 조치의 부재는 반응적 전략의 이면이다. 한국은 양자 차원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여 동일한 유형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의 국제협력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특정 국가 – 중국 – 을 견제하거나 고립시키는 협력 메커니즘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혔다. 한국은 2022년 12월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에서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여 중국이 주요 협력국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구조적 변화로 촉발된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한국이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의 대두를 촉진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에 사후적 조정을 추구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자국 우선주의적 산업정책의 확산에 대한 대응에서도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반응적 성격이 드러난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들 – 공급망 재편,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 에 한국은 사후적 적응에 주력하였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내 생산 시설의 유지 및 생산 확대와 관련, 미국 정부로부터 1년 단위로 적용유예(waiver)를 승인 받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 정부는 2023년 10월 미국 정부와 적용유예를 무기한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내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IRA의 경우에도, 한국산 전기 자동차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IV. 미중 전략 경쟁과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

 

1. 첨단 기술의 전략적 활용

 

21세기 한국은 대내외 환경 변화를 반영한 경제안보 전략의 탄력적 변화를 시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첨단 기술을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Lee 2022). 첫째, 한국은 경제와 안보의 넥서스로서 첨단 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한 경제 안보 전략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넥서스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경제적 강압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적 경제적 통치술이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넥서스에 기반한 실질적 연계 없이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할 것인지 ‘여부’를 뛰어넘어 경제와 안보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이다. 경제안보 전략의 성패는 무엇보다 이슈의 ‘연계’를 효과적으로 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넥서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넥서스의 확보가 경제 안보 전략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관건인 것이다. 개별 국가 수준에서는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넥서스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승주 2022). 한국은 첨단기술을 경제와 안보의 넥서스로서 적극 활용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이 첨단기술에 기반한 경제와 안보의 연계를 추구하는 것은 첨단기술 역량, 특히 첨단산업의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첨단기술 역량을 강대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고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제 안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첨단기술의 활용은 또한 경제와 안보의 연계로 인해 국내적으로 발생하는 부담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첨단기술을 경제 안보 전략에 긴밀하게 통합한다.

 

 

둘째, 21세기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서 산업정책에서 과거와 차별화된 변화가 발견된다. 지경학적 접근의 핵심은 도전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이에 초점을 맞춘 대응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경제 안보 전략을 수립·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경학적 대응은 선발국의 추격과 후발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다소 모호한 위협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 가해진 지경학적 위협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한국은 도소매업, 관광, 콘텐츠 산업 등에 집중된 중국의 경제 제재와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교란을 초래할 수 있는 일본의 첨단 소재 수출 통제 위협과 같은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하였다. 한국이 경제적 강압이라는 명확한 위협에 대응한 반응적 경제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한편,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지렛대로서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를 시도하고, 일본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는 구조적 취약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첨단산업 소재, 부품, 장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양면 전략을 추구하였다. 또한 한국은 경제안보의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대미 협력의 강화에도 첨단기술은 핵심 요소가 되었다. 한미 양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급망의 재편에서 상호 호혜적인 파트너로서 협력하고, 첨단과학기술에서도 협력 범위를 사이버, 우주, 퀀텀 등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기획재정부 2023). 이처럼 첨단기술은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국제협력의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였다.

 

 

셋째, 한국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 중심의 전통적 산업정책의 범위를 확장하여, 기술 주권의 향상을 위한 혁신 전략을 추구하는 변화를 추구한다. 추격기 산업정책 기반의 경제 안보 전략이 주로 산업 경쟁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에는 기술 혁신 역량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또 다른 확장의 방향은 첨단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 또한 특정 산업 내 특정 분야의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추었던 과거의 산업정책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 지정학과 지경학의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

 

지정학과 지경학의 분리를 전제로 한 설명은 양자 사이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이승주 2017).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작용은 궁극적으로 경제 안보 전략, 특히 국내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첨단산업 정책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21세기 한국의 경제 안보 전략이 지정학과 지경학적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산업정책적 요소를 여전히 내포하나, 전통적인 산업정책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산업정책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경제 안보 전략의 성격을 내포하였다. 그러나 전통적 산업정책은 추격이라는 중상주의적 목표를 설정하되, 추격의 대상이 불명확하고 도전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도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후발국으로서 대외환경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뿐, 추격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데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한편,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은 도전의 성격 또는 경쟁의 상대를 명시적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산업정책과 차별화된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강압,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첨단산업의 국내 생산 역량을 강화하려는 주요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코로나19의 확산 과정에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보호주의 등이 21세기 지경학적 도전의 실체이다. 이러한 특징은 다시 대응 전략의 수립과 실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확산은 도전의 성격과 대응의 대상의 규명을 촉진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도전과 상대의 명확성은 대응 수단을 찾는 데 반영된다. 한국은 도전의 성격에 대한 규명을 바탕으로 공급망 복원력 강화, 다변화, 주요 첨단산업의 생태계 구축을 위한 산업정책을 추구하였다.

 

또한 21세기 경제 안보 전략은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도 내포한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지경학적 대응보다 포괄적인 접근으로 변모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경제 안보 전략은 주로 지경학적 도전에 대한 대응을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한 접근을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가 두드러졌다. 2018년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전략 경쟁은 첨단기술과 주요 산업으로 빠르게 전선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의 강화를 추구하였고,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미국 주도의 협력 네트워크에서 약한 고리의 분리를 시도하였다. 한국은 미국의 정책 동조화의 압박과 중국의 경제적 강압의 리스크가 커지는 양면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Suri and Sharma 2023).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의 경험은 이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과학법에 근거하여 반도체 기업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자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 확대와 중국의 기술 혁신을 지연시키는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삼성전자는 아리조나(Arizona)주에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였고,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반도체 후공정 시설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반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은 이미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 시설을 확대하는 것을 제약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2022년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확대할 수 있는 한도를 연 5% 이하로 제한하였다. 반도체 산업의 사례는 경제 안보 전략의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경학적 대응의 한계는 한중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던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수단을 찾는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사드배치를 결정하자 직전까지 최고조에 달했던 한중 관계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더 나아가 중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단체 관광을 금지하고,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도소매업 등에 대한 사실상의 경제적 강압을 실행하였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한국 GDP의 0.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한재진 2017). 미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확대라는 전략적 접근의 한계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한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의 이중 도전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이 부각된 배경이다.

 

3. 예방적 전략의 모색

 

1) 구조적 취약성의 완화

 

한국은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강압에 대한 선제적 대응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응적 전략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의미도 있다. 취약성의 완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우선, 한국은 대중 의존도의 감소를 추구하였다.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적극 활용한 결과, 한중 무역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중 무역 관계가 비대칭적 상호의존의 전형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적 강압을 행사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데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였다.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과정에서 공급망 교란을 경험한 것이 한국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은 2000년대 이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한중 분업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가치 사슬 내 상류 부문(upstream)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한국 정부가 공급망 취약성 분석을 시행한 결과에 따르면, 소재, 부품, 장비 등 중간재에서 대 중국 취약성이 높은 품목의 수가 무려 60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바우 외 2021). 한국 정부가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한 것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교란뿐 아니라, 경제적 강압에 대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 산업정책-기술 혁신 넥서스의 확보

 

한국 경제안보 전략 가운데 지경학적 대응에서 산업 경쟁력과 기술 혁신 역량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 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지경학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술-산업 넥서스를 경제안보 전략에 통합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된다. 첨단기술의 최전선에서 경쟁 상대국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에서 탈피하여 기술 혁신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기술 혁신 넥서스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추구하는 것 또한 새로운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이다. 한국은 첨단기술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춘 경제안보 전략으로 변화를 추구해왔다. 특히,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특징은 공급망 안정과 복원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첨단기술 혁신 역량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첨단기술-산업 넥서스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표 1> 참조).

한국의 공급망 관리-첨단기술 혁신-산업정책 전략이 개별적으로도 추진되지만, 공급망 관리와 첨단기술 혁신의 연계 그리고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정책 연계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공급망 관리와 첨단기술 혁신의 연계이다. 공급망 전략과 관련 한국은 공급망 3법의 제개정을 통해 공급망 관리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였다. 한국은 2023년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핵심 광물 33종을 지정하고, 이 가운데 공급망 안정화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10대 핵심 광물을 선정하였다. 핵심 광물의 기준으로는 공급 리스크와 국내 경제적 영향이 고려되었다(산업통상자원부 2023).[4] 주목할 것은 방어적 차원의 공급망 관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첨단기술의 육성과 연계한다는 점이다. 소재‧부품‧장비산업(이하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전략기술의 육성이 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둘째,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정책의 연계이다. 한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1년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을 선정하고, 2023년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슈퍼갭 R&D 전략”을 수립한 데서 나타나듯이, 첨단기술 혁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산업정책의 범위를 확대하여 첨단기술 혁신과 연계하는 전략은 반응적 성격의 경제안보 전략의 한계를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 정부는 2021년 12대 핵심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로 한 데서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첨단기술 능력 강화의 중요성이 잘 나타난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기술 주권의 강화가 첨단기술 경쟁에 대한 대응 수단이 될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위한 지렛대가 된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은 첨단기술 혁신과 제조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하나로서 위상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의 협력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기술 혁신 역량을 지속적으로 제고하는 것이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중 전략 경쟁과 같은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첨단기술의 활용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의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표 1> 한국의 공급망-기술 혁신-산업정책의 연계

  공급망 전략  

  - 공급망 3법
   ㆍ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소부장특별법) (2023년 5월)
   ㆍ공급망 안정 품목 선정
   ㆍ핵심전략기술 관련 품목의 생산·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있거나, 교역규모 및 국제 분업구조, 해외 특정 지역이나 국가로부터의 수입 비중, 국가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
   ㆍ중국 등 특정국 의존도를 50%까지 낮추기 위해 공급망 안정 품목을 119개에서 200개까지 확대 추진
   ㆍ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공급망 기본법; 경제안보 품목 지정) (2023년 12월)
   ㆍ경제 안보 관점에서 공급망 관리 시스템 구축
   ㆍ국가자원안보특별법 (2023년 11월 국회 상임위 통과)
   ㆍ5년 주기 자원안보기본계획 수립
   ㆍ자원안보위원회 설치
   ㆍ조기경보체계 구축
   ㆍ핵심 자원 비축 의무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100대 핵심전략기술 (2020)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7대 분야 150대 핵심전략기술 (2022년 10월)

  -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10대 분야 200대 핵심전략기술 (2023년 4월)

  - 소부장 글로벌화 전략

  - ‘슈퍼 을’ 육성 전략

  - 핵심광물 확보전략 (2023년 2월)

  기술 혁신 전략              

  -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 (2021년 10월)
   ㆍ연구개발에 3.3조원 투입
   ㆍKorean DARPA

  - 12대 국가필수전략기술 (2022년 10월)
   ㆍ50대 세부 중점 기술별 전략 로드맵
   ㆍ연구개발 5년간 25조 투입
   ㆍ콘트롤 타워: 과기부

  - 슈퍼갭 R&D 전략 (2023년 4월)
   ㆍ3대 주력 기술: 반도체, 디스플레이, 차세대전지 11개 부문 40개 기술
   ㆍ160조원 민관 연구개발 자금 투입(~2027년)
   ㆍ산업부

  산업정책  

  - K-CHIPS Act (2023)

  - 반도체 클러스터
   ㆍ300조원 민간 투자 촉진 (2022~2042)
   ㆍ반도체 소부장 기업 150개 유치 ㆍ반도체 소부장 기업 150개 유치반도체 산업 생태계 형성

  - 핵심 광물 확보 전략 (2023년 2월)

  - 공급망 리스크 분석: 33종 핵심 광물 중 10대 전략 핵심 광물 선정

  - 경제적 영향 + 공급 리스크

  - 산업통상자원부

출처: 각종 자료를 취합하여 저자 정리.

 

첨단산업의 진흥은 기술 주권의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명시적으로 추구한다. 이는 첨단기술의 최전선에서 선도적 위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이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의 전략적 판단은 지정학과는 유리된 지경학적 요인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첨단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불확실성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국가 역할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가 요구된다. 인내심 있는 자본, 네트워크적 협력을 통한 기업 능력의 향상, 정부 구매를 통한 수요 창출 등 다양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데,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거버넌스를 수립하는 것이 필수이다.

 

 

V. 결론 및 정책 제언

 

초불확실성 시대 경제안보 전략의 최우선순위는 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리스크의 관리여야 한다. 리스크의 관리는 이슈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수단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며, 제약 및 기회 요인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5] 리스크의 관리는 때로는 그 효과 또는 이익이 상쇄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을 전략적으로 동시에 구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비록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정 수준의 국가 이익을 확보하는 가운데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21세기 경제와 안보의 연계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경제적 통치술(economic statecraft)의 귀환이 주목받고 있다(Aggarwal and Reddie 2020).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국의 하드파워, 국제정치적 지위, 세계 경제 네트워크 내 위치, 전략적 도전의 성격 등을 통합하여 담아내되,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기여 등 보편과 특수의 결합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한국과 같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는 자국 우선주의를 촉발하여 우호적이지 않은 대외 환경을 자초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첫 번째 전략은 연계이다. 경제 영역과 안보 영역이 연계되는 시대에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넥서스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계 전략은 이슈 연계와 장(forum)의 연계로 나누어진다. 이슈 연계와 관련, 한국은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 역량의 강화에 기반한 국제협력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연계 전략은 양자, 소다자, 지역, 다자 등 다양한 장을 활용하는 데도 필요하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국제협력 전략의 핵심으로 하되, 이를 배타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협력의 장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두 번째 전략은 다양한 이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초불확실성 시대에는 국가가 추구해야 할 이익의 범주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목표의 불일치, 더 나아가 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기술 주권의 강화와 국제협력의 추진이라는 일견 상충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일상적인 시기 기술 주권의 강화는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배타적 전략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국제협력전략과 조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상충될 가능성이 높은 두 가지 목표 사이의 내적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더 나아가 양자 사이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초불확실성 시대에는 기술 주권의 강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기술 주권의 강화를 배타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이를 국제협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첨단기술 역량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제협력을 위한 논의에 초대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안보의 세 번째 전략은 국가 이익과 민간 이익 사이의 균형이다. 경제안보의 향상을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 사이의 협력과 조정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 전략을 이행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니며, 때로는 상충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 사이의 괴리가 커질 때, 경제안보 전략의 효용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경제안보 전략의 효과성은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통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Norris 2016).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에 대한 균형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국가는 경제안보 전략을 독자적으로 선도하기보다 경제안보 전략 이행의 일차적 주체로서 기업의 이익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촉진자의 역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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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제 안보 전략에서 중상주의적 특징이 발견되는 것을 발전국가의 역량과 연관시키는 연구가 있다(Katada et al. 2023; Carroll 2023). 그러나 경제 안보 전략의 중상주의적 성격은 추격 이후 단계에서도 지속된다는 점에서 고도 성장기 정부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전형적인 발전국가론과는 차별화된다.

 

[2]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Irwin (2023) 참조.

 

[3]북핵 위기 이후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는 전형적인 경제 안보 전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4]경제적 영향에는 수입 규모, 수요 확장, 산업 중요성, 탄소 중립 광물, 공급 리스크에는 자원 편재성, 수급 불안정, ESG 준수, 리스크 대응력을 고려하였다(산업통상자원부 2023).

 

[5] 결론 및 정책 제언은 이승주(2022)를 활용한 것임.

 


 

이승주_동아시아연구원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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