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의 제8장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라”의 저자 차재권 부경대학교 교수는 지역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흔히 지방자치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이념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문제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지형을 따라 갈라지는 경향이 짙습니다. 이에 관해 저자는 소멸할 위기에 놓인 지방을 위해 국가가 기계적인 균형, 즉 균등(evenness)의 관점에서 바라본 균형만 추구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커져만 가는 수도권과 비 수도권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고민하는 사회적 대화 활성화와 법적 토대 마련 방안을 제시합니다.

1. 균형 발전에 대한 새로운 고민은 왜 필요한가

 

2021년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에 있어 매우 뜻깊은 해가 아닐 수 없다. 지 난 1991년 지방의회 개원을 필두로 새롭게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지방자치제가 재시행된 지 3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30년의 세월은 그리 녹록한 시간이 아니다. 공자는 일찍이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서 30세를 모든 기초를 세운다는 의미의 ‘이립(而立)’으로 칭한 바 있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이립의 나이에 해당한다. 과연 우리나라 지방자치도 공자가 일갈한 바대로 30년 성상을 보냈으니 이립한 것일까? 필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묻는다면 답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립은커녕 ‘지학(志學)’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박한 평가가 따를 것이 너무도 뻔해 보인다.

 

1987년 시작된 민주화의 과정에서 재도입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조금씩 그 모습을 갖추어왔다. 최근에는 지방자치 분야 최대의 과제로 꼽히던 ‘지방이양일괄법’이 제정되는 한편으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32년 만에 높은 국회의 문턱을 넘는 등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해 온 지방자치제도는 그 눈부신 발전의 궤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의 성과로 나타나는 균형 발전 분야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그 심각성이 더하다.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지역 격차와 그에 따른 지방 소멸의 위기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가 이미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섰고, 수도권의 활동 기업 수와 지역내총생산(GRDP), 지방세 규모가 전국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30년 후엔 전국 지자체 중 절반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언론의 잿빛 전망은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지역민들에게 우울과 상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이제 이립의 나이에 접어든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불 혹을 넘어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글에서 필자는 새 대통령이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도권-비수도권 간 지역 격차와 지방 소멸의 위기에 어떻 게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일그러진 수도권 공화국, 무엇이 문제인가

 

역대 대통령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노력의 결과는

대한민국은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군 고도성장의 그늘진 자리에 서 ‘지역 격차’라는 새로운 암 덩어리가 서서히 몸뚱이를 불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발전 국가 모델은 성장 거점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공업 위주의 불균형 발전(unbalanced growth) 전략에 철저히 의존했다. 될성부른 떡잎에만 물을 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자원과 인구가 몰리는 수도권과 구미, 대구, 부산, 울산, 경남을 잇는 이른바 ‘경부축’, 그리고 농촌보다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발전의 성과가 독점되었다. 날 때부터 노란 떡잎이었던 농촌, 비수도권, 비영 남권은 상대적으로 경제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나눠 가지지 못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산·어촌,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 격차는 시간 이 지날수록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물론이고 다수의 국민이 화려한 경제성장의 이면에 그런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이런 자각에 힘입어 전두환·노태우 정부의 권위주의 통치 시기를 거쳐 참여정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중앙정부의 노력이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의 ‘지역 균형 개발 및 지방 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 김대중 정부의 제2차 수도권 정비계획(1997~2011) 수립,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 정, 이명박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추진, 박근혜 정부의 ‘행복 생활권’ 개념에 입각한 HOPE 프로젝트(happiness, opportunity, partnership, everywhere) 추진, 문재인 정부의 지방이양일괄법 제정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의 균형 발전을 위한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의 현주소는 여전히 유아기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우선 공간적 차원에서 중앙집권적 성격을 지닌 중앙-지방정부 간 국가권력의 배분 구조가 국가 운영의 기본 틀로 변함없이 유지되어 오고 있다.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에 대한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의 요구가 증대하고 있으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고화된 중앙의 정치 권력은 이러한 지역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치 못하고 수도권에서 충청권을 아우르는, 즉 수청권으로 확대되고 있는 새로운 국토 공간의 기득권 구조를 오히려 강화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는 국가 전체의 성장에 장애가 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비수도권 인구가 1980년대 중반 이후 2,500만 명 수준에서 30여 년간 정체되어온 데 반해 수도권 인구는 지난 50년간 무려 5배가 넘는 급속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산업과 경제, 일자리와 교육 등의 측면에선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 매출 1,000대 기업의 73.4%, 시가 총액 100대 기업의 83%, 100대 기업 본사의 91%, 30대 기업 보유 토지 가액의 69.3%, 500인 이상 사업체 수의 59%, 신설 법인 수의 60.8%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2017년을 기점으로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비수도권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금융 등 경제 기능 분야에서도 수도권의 독점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원화 예금의 70.2%, 금융 대출의 67%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전국 252개 시·군·구 중 ‘일자리 질 지수’ 상위권 39개 지역 가운데 32곳 (82%)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비수도권 대학 졸업생의 약 30%가 수도권으로 직장을 찾아 떠나고 있다. 이른바 수청권의 혁신 지수[1]는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데 반해 동남권, 호남권, 강원권은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래 성장의 가늠자가 될 혁신 지수는 수도권에 인접할수록 높아가는 특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연구개발(R&D) 부문의 수도권 집 중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연구개발비의 68.8%, 연구개발 조직 수의 64.3%, 연구개발 인력의 61.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반면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수는 비수도권이 수도권에 비해 35만여 명이 더 많아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격차가 결국 삶의 질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라 할수 있다(김경수 2019).

 

지방 소멸의 위기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지역 격차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0년 5월 기준 지역별 지방 소멸 위험 지수[2] 분석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42%가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방 소멸의 위험에 처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수가 절반에 육박한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지방 소멸의 속도이다. 고문익·김걸(2021)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에는 소멸 위험 지역이 단 한 곳도 없었으나, 2010년에는 61곳, 2020년에는 103곳으로 폭증하였다. 지방 소멸의 위기에 처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공간적 편재 현상도 심히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2020년 전체 소멸 위험 지역의 62.1%가 경상도와 전라도에 집중되고 있고, 그 대부분이 도시가 아니라 농산어촌 혹은 도농 복합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한마디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농산어촌부터 지방 소멸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3]지방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해 갈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소멸의 위기에 처한 이 지역들을 다시 살려내는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30년 후 수도권만 불야성을 이루는 위성사진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패러다임, 무엇이 문제였나

국가 균형 발전을 강화하기 위한 역대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균형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다음의 몇 가지를 주요한 이유로 꼽고 싶다. 첫째, 균형 발전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펼침에 있어 정부의 정책 의지와 일관성이 부족했던 점을 들 수 있겠다. 한마디로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이다.

 

둘째, 국가 균형 발전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해 나가면서 정책 추진에 필요한 국민적 관심과 정책에 대한 광범하고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던 점도 주요한 이유의 하나로 들 수 있다. 한마디로 정책 추진을 위한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관련 정책 추진의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이 패착인 듯 보인다. 주로 유권자의 지 역적 분포로 나타나는 정치 생태계 자체가 해를 거듭해 갈수록 수도권에 유리하게 변화해 나가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그런 경향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지방자치에 대한 비수도권 유권자들의 의지 부족도 크게 한몫을 담당했다. 아무리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균형 발전을 도외시할 수밖에 없는 수도권 유권자의 표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만약 비수도권 유권자들이 하나로 뭉쳐 대통령의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강력한 정책 의지를 뒷받침해 줄 수 있었다면 상황은 꽤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하는 국가 균형 발전 정책 추진 과정의 중앙집중 경향도 무시할 수 없는 실패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이는 권위주의 독재에 바탕을 둔 경제성장기의 발전 국가 모델에서 청와대와 정부 관료 체제가 모든 것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발전의 유전적 형질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균형 발전 정책은 중앙정 부가 지방에 베푸는 시혜적 성격의 정책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넷째, 국가 균형 발전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지역 격차를 더 크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주민자치와 지방분권, 그리고 균형 발전의 세 가지 축을 동시에 강화하려 노력했던 탓에 목표 달성을 위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대해서는 정작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자치와 분권의 강화도 미룰 수 없는 지방자치의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그것의 성공이 지역 간의 균형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결과이다. 재정 위기에 내몰린 기초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중앙정부의 즉각적인 재정 분권에 반대하는 이유를 곱씹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3. 균형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어디로 향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1991년 지방자치제도 부활 이후 30년 세월 동안 지방자치를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방자치는 이미 우리 사회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가치와 규범의 표준이 되었다. 따라서 국민 누구나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수준은 딱 거기까지가 발전의 한계선이다.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에 대한 지역민의 요구는 현실의 힘이 될 정도로 충분히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못하다.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에 대한 요구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며 어긋나 있다. 그 벌어진 틈새를 수도권 중심주의에 물든 중앙정부의 관료와 수도권 정치인들이 파고들며 전선을 더 어지럽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당면한 규범과 현실 간의 괴리,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 간의 엇박자와 어정쩡한 동거 상태를 어떻게 실질적인 결합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야말로 새 대통령이 참모진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난제 중의 난제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난제는 단임 대통령의 5년 임기 안에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 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보겠다는 과도한 의욕보다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는 신중함과 현명함이 요구된다. 과연 문제해결의 열쇠를 어디에서부터 찾아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국가에서 지역으로: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지방 소멸부터 막자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들 말한다. 지역의 발전이 결국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공간적 시각에서 지역은 국가의 부분집합이니 논리적으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1960년대 보릿고개를 넘으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기성세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일 수 있다. 국가 경제를 위해 지역은 물론이고 기업과 개인의 희생까지 무릅써야 했던 그들에겐 지역 발전이 국가 발전에 우선하는 주객이 전도된 논리가 거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 세대에겐 쉽게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특히 지역 대학을 나와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지역의 청년들에겐 단순한 공감의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절규로도 들릴 법하다.

 

지역과 국가라는 서로 다른 공간 단위의 발전에 관한 논리적 선후 관계를 놓고 왜 이처럼 뚜렷한 세대 간 인식의 차이가 나타날까? 먼저, 1991년부터 전면 실시된 지방자치제도의 영향을 꼽을 수 있겠다. 지방자치제 재도입 이전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에서 지역경제의 발전 여부는 중앙정부, 임명직 단체장, 지역주민 모두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방자치제 재도입으로 각 지역이 경쟁력 비교의 새로운 단위로 등장하면서 지역 경제의 발전을 바라보는 패러다임도 함께 바뀌었다. 국가가 지역의 경제 발전을 이끌던 시대에서 거꾸로 지역이 국가 경제의 발전을 이끄는 시대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는지 역민들이 지역 경제발전을 생존의 문제인 동시에 당위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4]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지역 격차와 그에 따른 지방 소멸 위기가 지역 경제의 발전을 통해 국가 전체의 발전을 이끌 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 점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지방 소멸 위기의 가속화는 지역 경제의 파탄을 넘어 국가 경제의 건실한 성장까지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규범적 차원에서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지역 간 균형 발전을 통한 국가 발전의 중요성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지역의 균형 발전은 지역을 넘어 국가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으로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지역의 균형 발전을 통해 국가 발전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새 대통령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의 방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새 대통령은 지방 소멸의 위기 극복을 위해 균형 발전의 이념이 국가 발전의 최상위 목표이자 국정 운영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도록 국정 목표와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에서 국가 균형 발전과 관련된 국가적 어젠다는 언제나 국정 과제 리스트에서 하위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새 대통령은 국가 생존의 차원에서 강력한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을 통한 지방 소멸의 위기 대응을 최우선의 국정 목표이자 과제로 애써 천명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비수도권 간 지역 격차가 확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 소멸의 속도가 너무 빨라 긴급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균형 발전을 최상위의 국정 목표와 과제로 격상함으로써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균형 발전에 대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신념과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만이 지방 소멸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는 유효 한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새 대통령이 통할하게 될 부처의 수장들과 관료 사회는 대통령이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해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그들의 대응 수위를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제대로 된 국가 균형 발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의 경험은 겉으로 드러나는 대통령의 행동과 의지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노무 현 전 대통령은 균형 발전을 정권의 핵심 사업으로 삼아 대통령이 직접 챙기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 균형 발전 은 대통령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국정 과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균형 발전 정책을 계승한다고 입으로는 강조했지만 사실상 균형 발전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다른 국정 과제와 비 교해 현저히 낮았다.[5]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선거 과정에서는 균형 발전의 중요성을 앞다투어 강조해 왔지만 정작 대통령 당선 후에는 내팽개치거나 관련 부처나 기관에 일임하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국가 균형 발전 을 최우선의 국정 목표와 과제로 삼게 될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 달리 균형 발전에 대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를 몸소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균형발전위원회 본회의에 더 빈번히 참석하는 등 대통령의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실천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

 

분권에서 균형으로: 바보야, 문제는 균형이야

지방자치는 주민자치, 분권, 균형 발전의 세 가지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영역은 각각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자치 분권의 문제를 균형 발전의 문제와 분리해 사고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의 선후 관계를 이론적·실천적 차원에서 따져보는 문제는 새로운 국가 및 사회 개혁의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하다. 자칫 제한된 자원과 인력을 선후 관계를 달리해 투자하게 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나라가 처한 특수한 역사적,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했을 때 자치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을 통한 지방자치의 확대가 과연 필요한 나라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의 선후 관계에 대한 논리적 판단의 실마리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전용주 2017; 김승태·전용주 2017). 그와 같은 근원적 물음은 지방분권의 강화가 과연 국가의 균형 발전을 가져올 것인가, 즉 지방자치의 효과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도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지방자치에 대한 요구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매우 당위적인 규범의 문제로 치부되어온 경향이 강 한데, 지방자치에 대한 요구를 과연 당위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구하다 보면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의 관계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근원적 물음은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간의 관계가 과연 상호보완적인지 아니면 상충적인지에 관한 대립적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통상 그런 논쟁의 종착점은 지방자치의 축적된 성과에 대한 평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지방분권이 지방정부 간 효율적 경쟁을 강화해 결국 국가 균형 발전을 가져온다면, 지방자치는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후생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앙집권보다는 지방분권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반면 지방분 권이 오히려 지방정부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국가 자원의 비효율적 배 분이나 정치·행정적 부패를 낳는다면 결국 지방분권이 전체 사회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과연 어떤 주장이 옳을까? 이에 대해 정해진 결론은 아직 없다. 지방분 권과 균형 발전이 상보적인 관계인지 아니면 상충적 관계인지는 학자들의 주장과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먼저 지방분권이 균형 발전을 가져와 전체적으로 사회적 후생의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 긍정적인 주장들이 있다(Tiebout 1956; Oates 1972;). 티부(Tiebout 1956)는 분권화가 이루어진 지방정부에서는 ‘발에 의한 투표(voting on the feet)’의 원리로 인해 지방정부 수가 많을수록,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조세- 서비스 패키지가 다양할수록 개인 선택의 폭이 넓어져 사회적 후생을 증 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오츠(Oates 1972) 역시 분권화된 체제가 경쟁을 통해 지방정부의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을 높여 지역의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데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지방분권으로 지방정부가 갖게 될 재정적 자율성이 결국 활발한 투자 유인 제공을 통해 기업 유치 기회를 확대한다거나(Martinez-Vazques and McNab 2003), 경제 발전 여부를 투표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유권자를 의식한 지방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Qian and Weingast 1997) 지방분권은 결 국 지역의 사회적 후생을 제고시킬 것이라고 보는 긍정론적 시각이 있다(Bahl and Linn 1992; Ebel and Yilmaz 2002; Von Braun and Grote 2002).

 

한편 지방분권이 지역 불균등 발전을 유발하거나(Prud’Homme 1995; Manor 1999), 확대된 지방정부의 재량권으로 인해 부패와 공공서비스 제공의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는(Bardhan and Mookherjee 2001)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프루드 오메(Prud’Homme 1995)와 탄지(Tanzi 1996)는 지방정부 간 지나친 경쟁이 지방정부의 지출 및 적자 재정 확대를 초래해 중앙 정부의 재정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방분권이 오히려 균형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는 부정적 견해도 있는데 웨스트와 웡(West and Wong 1995) 등의 연구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국내 연구 또한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으로 뚜렷이 나뉘는 경향이 강하다. 임성일(2008), 주운현·홍근석(2011), 조민경·김렬(2014), 권오성(2004), 박병희(2006) 등 많은 학자가 재정 분 권이 재정 격차나 경제성장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용모(2004), 최병호·정종필(2001), 오시환·한동효(2009) 등 일부 학자들은 오히려 재정분권이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성과를 내놓기도 한다. 물론 최원익(2008), 김의섭·이선호 (2014) 등과 같이 재정 분권과 경제성장 간 이렇다 할 관계를 상정하기 어렵다는 중립적인 결론을 내놓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 중 누가 옳은지는 이 글의 맥락에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누가 옳든 그르든 그런 문제의식 자체가 실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나 그들이 수도권 주민들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의 개선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간의 관계에 대한 학문적 논쟁은 척박한 지역에서 고단한 일상을 살 아내야 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콜럼버스의 달걀을 놓고 벌이는 무의미한 논쟁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불필요한 논쟁보다는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체득하는 실질적 경험이 중요하다.

 

중앙-지방정부 관계와 관련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어젠다는 지방자치의 전 분야에 걸쳐 있어 그 범위가 매우 광범한 것이 사실이다. 지방분 권, 주민자치, 균형 발전의 세 개 분야가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주요 분야이고 분야마다 지금껏 현안이 되어왔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중앙- 지방정부 관계에서 새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이 모 든 분야를 모두 다루는 것은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지방자치 에 관한 모든 정책 분야를 만기친람식으로 두루 섭렵하기보다는 가장 핵심적인 분야에 집중해서 제도 개선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역의 현장에서 지방분권, 주민 자치, 균형 발전 분야 중 가장 시급한 분야는 무엇인가? 지방자치를 연구 하는 학자들이나 지방자치 분야의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대부분의 시민사 회 활동가들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어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문 제, 즉 균형 발전 분야를 가장 시급한 지방자치의 정책 분야로 꼽기를 망 설이지 않는다. 지방자치의 선진국들은 지역 간 발전 격차가 우리나라의 수도권-비수도권 간 발전 격차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적다. 따라서 그런 국가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간 관계에 대한 학 술적 논쟁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방분권의 강화를 통해 균형 발전이 가 능하다는 주장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는 물론이고 지방 도시 간의 격차 또한 너무 커서 지방분권의 강화가 곧바로 균형 발전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다. 지방분권이 중요하긴 하지만 균형 발전을 전 제하지 않는 지방분권은 오히려 지역 간 격차의 확대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적어도 우리 학계의 중론이다. 주민자치 분야의 제도 개선도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좀 더 근원적인 의식과 정치 문화의 변화를 전제로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글을 균형 발전 분야에서 새 대통령이 만들어나 가야 할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에 초점을 두어 서술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 지방자치 현장의 고민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균등에서 균형으로: 격차를 통해 격차를 줄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참여정부 이후 역대 정부가 추진해 온 지역 정책은 나눠 먹기식의 기계적 균형에 대한 집착과 기존 패러다임의 실패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새로운 균형 성장 및 내생적 지역 발전 이론이 빚어낸 장밋빛 환상에 기대어 무분별한 분산 투자를 조장해 왔다. 참여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 시 건설 정책과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 뉴딜 사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의 영향으로 쪼그라든 균형 발전 예산(연간 약 10조 원 규모)[6]은 기계적 균형, 즉 균등의 원리에 맞도록 ‘1/n’로 나뉘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낭비되고 있다. 심지어 지역으로 가야 할 예산이 수도권으로 역류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2021년 6월 『국민일보』가 나라살림연구소와 공동으로 최근 14년간의 시·도별, 시·군·구별 균형 발전 예산을 분석한 결과, 서울에 투입된 균형 발전 예산은 2008년 361억 원에서 올해 2,267억 원으로 무려 527%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7]

 

이처럼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이 방향을 잃은 채 ‘기계적 균형 추구’의 논리에 빠져 표류하는 동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격차는 더 벌어졌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 발전 국가 모델을 바탕으로 서울과 함께 ‘한강의 기적’을 이끈 동남광역경제권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과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남광역경제권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 집중 현상과 기계적 균형 발전 패러다임에 입각한 제한된 국가 자원의 분산투자로 인해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 성장 엔진의 동력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 해답의 실마리는 균형 발전에 대한 기존 인식의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균형 발전은 “지역이 골고루 발전되는 것으로서, 여기서 말하는 균형은 경제력의 균형만을 의미하진 않으며, 인구, 정치, 문화, 교육 등이 골고루 분포된 상태”를 나타낸다(마강래 2018, 16). 우리나라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은 균형 발전을 “지역 간 발전의 기회균등을 촉진하고 지역의 자립적 발전 역량을 증진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여 전국이 개성 있게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 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균형 발전에 관한 이런 인식의 이면에는 ‘균형’ 그 자체에 대한 편향 된 견해가 숨어 있다. 균형에 관한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의미하듯 균형(equilibrium)을 “현재 상태가 지속되려는 상태”로 이해하면서 자원의 최적 배분이 가능해져 효율성이 극대화된 상태로 인식하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시각에서 보면 대도시- 중소도시-농어촌 간의 집적 규모에 따른 상호의존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 균형을 ‘균등(evenness)’의 관점 에서 이해하는 시각은 형평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으로 모든 지자 체가 동일 수준의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상태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균형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균형에 대한 어떤 시각도 그 자체로 완전한 진실을 이야기해 주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한쪽으로 경도된 균형은 그 자체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제는 앞서 살펴본 우리나라 국가 균형 발전에서 사용되는 균형의 개념이 후자의 균등으로 경도되는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균형 발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이 모색되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균형 발전 정책 패러다임이 구축될 필요성이 강조된다. 기존의 기계적 균형에 입각한 권역별·지역별 소액 분산투자는 정책 수요자인 권역·지역의 정책 수용성은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투자 대비 성과로 나타나는 정책의 효율성과 효과성의 측면에선 ‘규모의 경제 효과’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균형 발전 정책의 패러다임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균형 발전을 위한 국가 자원(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지역상생발전기금 등)의 선택·집중 투자로 장기적 관점에서의 효율성 극대화를 모색하는 전략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과거 발전 국가 시절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일례로 동남광역경제권의 꺼져버린 성장 엔진을 되살리는 방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은 경부축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에 바탕을 두고 수도권과 동남권의 동시적 성장과 경제성장 과정에서의 효율적인 역할 분담을 통해 가능했다. 하지만 1980년대 수도권 집중 완화를 빌미로 부산까지 도시 정비 대상에 포함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 적응하지 못했던 부산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동남광역경 제권의 성장 엔진이 멈추어 섰다. 그 결과 수도권 집중 현상과 그에 따른 수도권 중심의 기형적인 불균형 성장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수도권-비 수도권 간 격차는 확대되고 지방 소멸의 위기가 심화되었다. 따라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불균형 성장론에 입각한 경부축 성장 거점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을 새로운 21세기 버전으로 재구성하는 균형 발전 전략의 수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고 약화한 동남광역경제권의 성장 엔진을 다시 살려내어 성장 거점화함으로써 ‘경부 축 르네상스’의 새 시대를 열어보고자 하는 균형 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새 대통령이 꿈꿔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동남광역경제권의 부활을 통한 경부축의 재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균형 발전의 패러다임이 낡은 과거의 발전 패러다임을 재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 낙점받지 못한 지역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도권-비 수도권 격차를 초래한 출발점이 서울이라는 강력한 성장 거점 때문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광역경제권의 성장 거점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던 시기야말로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격차가 가장 적었던 시기였다. 이뿐만 아니라 동남광역경제권(특히 부산)의 성장 엔진이 멈추어 서면서부터 급격히 수도권 중심의 일극화가 진행되고, 그 결과 오늘과 같은 돌이키기 어려운 비수도권과의 지역 격차가 초래되기 시작했음은 균형 발전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새 대통령이 반드시 참고해 볼 만한 사실이다.

 

지방자치법에서 헌법으로: 과감하게 큰 틀부터 바꾸자, 헌법 개정이 지름길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의 핵심에는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헌법이 지닌 근본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 구현된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사실상 무늬만 자치인 형식상의 지방자치라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제가 그간 30여 차례가 넘는 법 개정을 통해 많은 제도적 변화와 개 선을 시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도적으로 많은 결함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이 지닌 지방자치제도의 결함은 우리 헌법이 위임하고 있는 지방자치법의 구체적인 조항들에서는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누릴 수 있는 4대 자치권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보장된 것이 없다. 특히 중요한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 분야는 그 정도가 더 심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법령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속에 갇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7:3의 자치재정권 강화도 지금으로선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헌법과 법률을 통해 구체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행 지방자치제도가 지닌 이러한 문제점들, 특히 내생적인 차원에서 균형 발전에 접근하려 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의지와 노력을 가로막는 제도적 통제 장치들을 제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상위법인 헌법을 고치는 것이 지름길이다.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필요성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20대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되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논의를 새 대통령이 국회를 설득해 다시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여야가 뜻을 모아 지방분권형 개헌을 이룰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들은 대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비로소 이립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4. 균형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균형 발전을 위한 파이부터 키우자

균형 발전 특별 회계가 마련된 이래 16년간 균형 발전을 위해 약 144조 원의 국가 예산이 투자되었고, 지금도 매년 10조 원에 가까운 예산이 균형 발전 분야에 투자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 규모가 크다며 예산 낭비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수도권-비수도권 지역 격차 완화를 위해 한 해 국가 예산의 2%가 채 되지 않는 자원을 투입하는 것을 예산 낭비로 지적하는 것은 한편에선 온당치 못해 보인다. 지역 격차를 줄여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 정말 국가 발전의 관건이라면 550조 원이 넘는 국가 예산에서 10조 원 규모의 균형 발전 예산을 과연 많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정말 균형 발전이 국가 발전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될 수 있고, 또 소멸해 가는 지역을 소생시킬 수 있다면 적어도 국 방비에 버금가는 10% 내외의 예산 투자가 이루어져야 적절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균형 발전을 위한 전체 예산 규모의 점진적 상향 조정, 즉 균형 발전을 위한 파이를 키우는 고민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만큼 지역의 상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균형 발전 예산의 증액은 아무리 점진적으로 추진하더라도 정부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예산 관료는 물론이고 수도권 정치인들의 강력한 반대 에 봉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새 대통령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정치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로 정치적 위기를 자초할 가능성마저 있다. 따라서 균형 발전 특별 회계의 예산 규모를 직접 증액하는 방식보다는 새로운 명목의 특별 회계를 마련하거나 강력한 재정 분권 정책으로 개별 광역지자체가 자체 조례를 통해 설치, 운영하고 있는 지역 균형 발전 특별 회계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정부 각 부처의 예산 속에 포함된 균형 발전과 관련된 간접적인 예산을 증액하는 방식으로도 균형 발전 예산의 전체적인 파이를 키워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 균형 발전 예산 증액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있는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균형 발전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 예산 운용의 기본 원칙에 균형 발전을 지향토록 관련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균형 발전을 국가 재정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구현해 나가기 위한 ‘(가칭)균형발전인지예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그런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산업연구원, 2018). 균형발전인지예산제도의 도입을 위해 우선 기 시행 중인 성인지예산제도의 구체적인 정책 효과성을 면밀히 평가하고 개선 방향을 도출하는 한편, 성인지예산제도에 대한 평가 결과로 도출된 개선 사항을 반영하여 효과적인 ‘(가칭)균형발전인지예산제 도’의 구체적인 운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관계 부처로 하여금 ‘(가칭)균형발전인지예산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구체적이고 장 기적인 실행 계획 및 추진 로드맵 작성을 추진토록 지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 균형 발전 추진 조직의 실질적 행정 권한을 지닌 국가 기구화 추진 등 국가 균형 발전 추진 체계를 일원화(법률 체계 정비 포함)함으로써 균형 발전 추진을 위한 권한의 파이를 키울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 국가균형 발전위원회의 부처 독립화를 모색하는 한편으로 현재 비서관이 담당하고 있는 청와대 내 자치 분권·균형 발전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수석실을 신설해 그 지위를 격상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균형 발전을 위한 지역의 요구를 정부 운영 과정에 직접 반영하기 위해 지역 장관제를 신설해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호선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균형 발전을 위한 파이를 나누는 방법을 바꾸자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커진 파 이를 나누는 방법의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 균형 발전 예산은 지역자율계정, 지역지원계정, 세종특별자치시계정, 제주특별자치도계정 등 4개 계정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세종과 제주를 위한 특별 계정을 제외하면 지역자율과 지역지원의 두 가지 계정만 명실상부한 균형 발전 예산으로 볼수 있다. 문제는 이 예산이 기계적 균형과 균등의 원리에 따라 나눠 먹기식으로 분배되면서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하기 위해 집중적인 균형 발 전 예산의 투입이 필요한 지역에 집중 투자하기가 어려운 구조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가칭)균형발전인지예산제도’와 함께 국가 균형 발전 관련 예산 운용에 있어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구 체적이면서도 탄력적인 예산 운용 지침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균형 발전 예산이 나눠 먹기 식으로 할당되다 보니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균형 발전의 대상이라 할 수 없는 수도권 지역이 역설적으로 균형 발전 예산을 오히려 독식하는 경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도 균형 발전 예산의 운용과 관련된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수도권 집중화의 또 다른 폐해로 새 대통령은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바로잡는 데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어떤 방법으로 그와 같은 역설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가? 현재 국가 재정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의무화하고 있는 예비 타당성 조사제도[8]를 개선하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 균형 발전 예산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이면에는 경제성이란 미명하에 오로지 비용과 편익의 단순 구조만이 반영되는 현행 예비 타당성 조사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이세진 2021). 물론 예비 타당성 조사의 대상 사업 선정 기준에 지역 균형 발전 요인을 고려한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고, 또 2019년 4월 기획재정부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 비중을 달리 적용하고 비수도권 지역의 균형 발전 평가 시 지역 낙후도를 가감제에서 가점제로 변경하는 등 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대상 사업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어 해당 제도가 오히려 수도권 집중화를 부추기고 균형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차제에 예비 타당성 조사제도를 폐지하거나 비수도권의 경제성 비중을 대폭 확대해 수도권에 대한 역차별을 강화하는 등 예비 타당성 조사제도가 수도권 집중화의 도구나 균형 발전의 장애물로 전락하는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위의 두 가지 개선이 어렵다면 선택적 균형 발전의 개념에 기초 한 새로운 균형 발전 정책의 추진을 위해 균형 발전 유관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9]

 

아울러 균형 발전 특별 회계의 이원적(two-track) 활용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새로운 균형 발전 패러다임을 추진함에 있어 고려해 볼 문제이다. 현재의 균형 발전 특별 회계는 주로 기계적 균형에 가까운 방식으로 나눠 먹기식 예산 배분 원칙에 충실한 편이다. 따라서 균형 발전 특별 회계의 운용 원칙을 새로운 균형 발전 패러다임에 맞추어 ‘균형 투자 예산’과 ‘선택·집중형 투자 예산’으로 이원화하여 운용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거점 지역이 균형 발전 특별 회계의 선택적 수혜를 통해 성장 거점으로서의 경쟁력 회복을 도모할 수 있도록 재정적 뒷받침을 해줄 필요가 있다.

 

균형 발전을 위한 파이를 키우는 모든 길은 열어주자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파이를 키우는 일은 중앙정부의 힘만으론 어렵다. 지역 스스로가 자체적인 파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균형 발전의 지속성 유지의 차원에서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가 제안한 새로운 균형 발전의 패러다임은 중앙정부에 의한 균형 발전 자원의 선택적·집중적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지방자치단체의 내생적인 자율적 발전과 성장을 위한 노력을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필요로 한다.

 

가능한 제도적 장치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특별)지방자치단체에 경제통상 분야의 외교권을 부여함으로써 지역의 자립적·내생적 발전 기반 구축을 위한 경제 자주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서 밝힌 새 대통령이 추진하게 될 지방분권형 개헌과도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둘째,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내생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균형 발전 추진을 위한 지역 단위 추진 조직(지역혁신협의회, 광역경제권발전위원회, 지역생 활권협의회 등)의 기능 활성화와 지속성 확보를 위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내생적 발전을 위한 광역권 단위의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특별지방자치단체(광역연합)를 활용한 국가 균형 발전 전략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2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의 경제적 목적을 위해 광역적으로 사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기도 하다.

 

넷째, 내생적 지역 발전 전략 추진을 위한 자원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도록 지역 자본 투자 유치 등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한 법률 지원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고향사랑기부제도와 연계하거나 중화 자본 및 일본 교포 자본 유치 등의 노력을 통해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보장하는 ‘특별광역행정연합’이 주도하는 ‘상생포용발전 펀드’ 조성을 통해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가장 부합하는 특정 광역경제권이 내생적 발전을 위한 자원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균형 발전을 위한 파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공유하자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입각한 균형 발전 정책의 전환에 대해서는 앞서 말 한 바와 같이 성장 거점에서 제외된 지역과 수도권 중심주의의 이념에 사로잡힌 중앙 관료와 여의도 정치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새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히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되는 특정 광역경제권의 발전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가져오는 새로운 발전 국가 패러다임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도록 정부 부처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득 논리를 개발해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스스로 그것을 내면화함으로써 재임 기간동안 흔들림 없이 관련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의지를 다 질 필요가 있다. 새 대통령이 제안한 균형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특정 지역의 단순한 지역이기주의의 차원을 넘어 경쟁력을 지닌 특정 광역 경제권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지역 발전의 구 체적인 발전 전략과 로드맵을 개발하여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타 지역의 광역지자체와 지역주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새로운 균형 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모색을 위한 ‘(가칭)국가균형발전의 대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이하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적 대 화에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협의회, 전국구군의회의장협 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등 4대 지방자치단체협의회 조직과 여야 각 정당 및 국회 관련 상임위, 전국 분권운동 단체, 대통령 소속 국가균형 발전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다양한 공적, 사적 영역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폭넓게 참여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경쟁력을 갖춘 특정 광역경제권 중심의 새로운 균형 발전 패러다임을 반영한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2018~2022)’의 수정 및 ‘제5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2023~2027)’ 수립을 위한 ‘비수도권 광역지자체 민관 상설 협의체’의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 구축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균형 발전 패러다임은 국토 전체의 공간계획에 대한 새로운 조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새 대통령이 취임 후 승인하게 될 ‘제5차 국가 균형 발전 5개년 계 획’을 취임과 동시에 과감하게 수정하도록 명확한 정책 의지를 갖고 지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한 계획의 수정에 대해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단계에서부터 관련 부처와의 국정 어젠다 조율 과정에서 충분히 협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접근방법이 될 것이다.

 

셋째, ‘경부축 중심의 8자형(경부축, 강호축, 남해안축, 북부접경축) 균형 발전 축 구상’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거점에서 소외되는 타 지방자치단체들의 이해와 협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새 대통령이 제안하게 될 이 구상에는 동남광역경제권이 주도하는 경부축의 산업 기반 재생 및 신산 업 육성 방안, 강호축의 생태·환경·관광 중심의 탄소 중립형 발전 전략, 남해안축과 북부접경축의 특화된 지역 발전 전략 등 8자형 균형 발전축 의 각 발전축별 강점과 기회 요인을 반영한 구체적인 발전 전략이 망라될 필요가 있다.

 

5. 지방 소멸의 문턱에서 균형 발전의 실질적 비전을 제시하라

 

새 대통령이 집권 후 아무리 강력한 정책 의지를 갖고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에 대한 정책을 펼쳐나간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내외부로부터의 많은 저항과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높다. 그와 같은 저항과 도전은 어디로부터 나올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새 정부의 지역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기는 관련 정책 그룹 내부에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새 대통령의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관료주의적 정책 지체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 정책을 가장 강력히 실천에 옮겼던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경우를 보더라도 청와대 참모진과 정부 부처 내부에서 지나치게 개혁적인 지역 정책에 대한 조직적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많은 국가 자원의 투입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균형 발전 정책 분야에 대해서는 게이트키퍼 역할을 자처하는 기획재정부를 포함한 재정 관료들의 저항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새 대통령이 추진하는 균형 발전 정책 분야에서의 새로운 패 러다임, 즉 선택적 균형 발전의 패러다임은 기계적 균형의 논리에 물들어 있는 정부 관료들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방향일 수 있다. 따라서 기획재정부를 필두로 한 관료 체제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며, 그래서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의지와 함께 좀 더 합리적인 설득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저항의 가능성은 여의도의 정치권에서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지역구 의석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 의원들에 게 균형 발전은 비수도권에 대한 퍼주기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힘을 합쳐 새 대통령의 균형 발전 정책을 무력화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는 새 대통령이 추진하는 균형 발전과 관련된 각종 개혁 입법의 지체 현상을 가중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새 대통령으로서는 내부 관료에 대한 설득과 함께 국회에서의 정치 세력 간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새 대통령이 균형 발전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맞닥뜨리게 될, 어쩌면 가장 큰 위협은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겪게 될 소외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저항일 것이다. 지방자치의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이념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의 문제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지형을 따라 갈라지는 경향이 짙다. 차재권·지병권(2018) 의 연구는 이런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방분권에 대한 각종 설문조사를 메타 분석한 결과,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영남보다는 호남이 높고, 보수적인 정치 성향보다는 진보적인 정치 성향에서 더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새 대통령에게 주어질 과제는 이러한 이념적 분열 지형에 포획되어 있는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의 국가적 어젠다를 어떻게 이념 지형의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이념을 초월한 국가적 공통 과제로 이해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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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적자원, 지식 창출, 혁신 활용, 지적재산권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지수를 말한다.

[2] 인구 소멸 위험 지수를 최초로 개발한 이상호(2016)의 연구에 따르면 지방 소멸 위험 지수는 20세 에서 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으로 산출된다. 해당 지수의 값이 1.0 이하인 경 우에는 해당 지역이 쇠퇴 위험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해당 지수가 0.5 이하인 지역의 경우에는 소멸 위험이 큰 곳으로 판단한다.

[3] 지방 소멸 위험 상위 5% 이내의 소멸 고위험 지역에 속하는 12개 군을 읍·면별로 분석한 결과, 해당 읍·면 138곳 모두 소멸 위험 지역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지방 소멸이 대부분 저개발 상태 에 머물러 있는 면 단위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문익·김걸 2021).

[4] 우리나라 헌법 제120조 2항은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 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지역 경제 발전에 관한 국가(중앙정 부)의 의무를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 제123조 2항 역시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 하여 지역 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지닌다”고 하여 국가의 지역 경제 발전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헌 법 제122조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 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는 권리 를 국가(중앙정부)에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5]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균형발전위원회 본회의 72회 중 29회, 이명박 전 대통령은 49회 중 8회, 박근 혜 전 대통령은 27회 중 2회 참석한 데 반해 참여정부를 계승한다고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균형발전위원회 본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한겨레신문 2019년 5월 6일,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892729.html, 검색일 2021.9.23.).

[6] 균형 발전 예산에는 균형 발전 특별 회계만 반영된 것으로 사실상 실질적으로 균형 발전 분야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각 부처의 개별 사업에 포함되어 있어 정확한 집계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이다. 대체적으로 그와 같은 숨겨진 예산까지 포함해 약 20조 원 규모의 정부 예산이 매년 균형 발 전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7] 이를 비중으로 계산할 경우, 0.41%에서 2.46%로 증가한 것으로, 이는 광주(1,535억 원), 대전 (1,682억 원), 울산(1,386억 원)보다 많다. 서울에 이어 경기도의 균형 발전 예산 역시 가파르게 증가했는데 2008년 6,303억 원에서 올해 1조 558억 원으로 67.5% 증가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95959, 검색일 2021.6.23.).

[8] 예비 타당성 조사는 대규모 신규 공공투자 사업의 사전 타당성을 검증하고 평가해 재정 사업의 투명 하고 공정한 신규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무분별한 투자에 따른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99년 최초 도입된 제도로 그 법적 근거는 2006년 제정된 ‘국가재정법’이 다. 동 제도 도입 이후 2020년 말까지 실시된 총 조사 건수는 932건이고 총사업비는 426.9조 원 에 이른다. 조사된 932건 중 592건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이세진 2021).

[9]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위해 굳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예비 타당성 조사제도의 자의적 집행을 방지하기 위해 2014년 1월 ‘국가재정법’개정을 통해 예비 타당성 조사 실시 대상 및 면제 대상을 직접 법률에 규정하고 면제 대상의 내역 및 사유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차재권_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캔사스대학(University of Kansas)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부경대학교 지방분권발전연구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 한국시민윤리학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전문위원이다. 비교정치(정치과정/정치경제)와 지방정치 분야의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4차 산업혁명 시대 다중사회의 알고리즘 민주주의: 시민참여와 관여의 새로운 패러다임』 (2021), 『지역의 역습, 그 1년의 기록』 (2020, 공저), 『촛불집회와 다중운동』 (2019, 공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치학자들의 관찰』(2018, 공저), 가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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