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본 연구는 미-중 양국의 전략논의와 군사력 증강 양상에 대한 검토를 통해 군사 측면에서 미-중 간 패권경쟁의 현황을 파악하고 경쟁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을 식별하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전개를 전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 첫째, 미-중간 국가지도자와 정책결정자들이 표방하는 대외전략 및 해양전략 논의는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 둘째, 미-중간 군사력 증강과 군사전략의 성격, 특히 아시아태평양 해역에 배치되고 있는 해군력의 증강과 그 운용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 셋째, 미-중 양국이 관여하고 있는 양자간 안보협의, 혹은 다자간 해양안보 레짐은 미-중간의 해군력 증강과 분쟁 가능성을 제어할 수 있는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처한 국가들은 어떤 대응을 보이고 있고, 한국은 어떤 외교정책을 취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통해 도출되는 결론에는 미-중관계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히 존재하며 어느 쪽이 더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느냐는 양국 지도부의 인적 구성, 대전략, 상대의 전략 및 행태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양국과 정치, 군사, 경제의 모든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견국으로서 양국이 서로의 전략을 보다 긍정적이고 온건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외교적, 군사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며 이것이 중견국 외교의 성공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본문


I. 문제의 제기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 및 군사전략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양국의 전략이 전통적 문화의 차이, 서양과 동양의 문화차이를 반영한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애런 프리드버그(Aaron Friedberg)는 프랑스 사상가 프랑수아 쥘리앙(Francois Julien)의 관찰을 인용하면서, 서구의 외교 및 군사전략은 목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경향이 강한 데 반해, 상대적으로 동양의 전략은 목표 제시가 모호하며, 상황 중시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Friedberg 2011, 123-124).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도 서양의 전략이 상대편 국왕을 움직일 수 없는 국면까지 몰아붙여 결정적이고 전면적 승리를 추구하는 체스판을 닮았다고 한다면, 중국의 전략은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주변을 장악하고, 상대적 이득을 축적하는 바둑판에 비교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Kissinger 2011, 23-25). 중국 국방대학의 류밍푸(刘明福, Liu Mingfu) 교수도 서구세계의 전략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제시된 것처럼 결정적 지점에서의 공세를 중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 반해, 중국의 군사전략은 손자병법에서 강조한 것처럼, 군사적 승리보다는 술책과 외교에 의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을 중시하는 방어적 성격을 갖는다고 지적한다(Liu 2010, 99).
물론 문화와 전통의 요인이 국가의 대외전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나, 동양과 서양, 중국과 미국의 전략문화 차이를 강조하는 견해는 문화적 결정론의 오류를 가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대외전략은 해당 국가가 보유하는 국력자원의 규모, 그리고 그에 따른 국제질서 속에서의 국가적 위상에 의해 보다 깊은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19세기 후반기 독일의 국력자원과 국제적 위상이 증진하면서,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기의 국가전략에서 벗어나 국제질서상의 양지를 추구하는 전략을 공공연하게 표방한 바 있다. 중일전쟁 전후 일본이 국제연맹에서 이탈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추구하면서, 교토학파 등 일련의 지식인들이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의 국제협조주의에서 벗어나 일본의 세계사적 사명을 모색하고 국제질서상의 지위 상승을 정당화하는 담론들을 제기한 바도 있다(高坂正顯, 西谷啓治, 高山岩男, 鈴木成高 1943 참고).즉 개별국가의 대외전략은 문화적인 요인에 의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국력 지위 변화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국제질서상 강대국의 지위로 부상하게 된다면, 국가의 대외전략은 보다 적극적으로, 공세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냉전체제가 미국의 승리로 귀결된 이후 미국 주도 하의 일극체제 양상을 보였던 국제질서는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급속한 국력 부상에 따라 체제 변화의 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 2위의 경제규모로 부상한 중국은 국방예산 측면에서도 매년 10% 이상을 증액하면서, 미국과의 격차를 좁혀 나가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경제력 및 군사력 증강의 추세에 비추어 2020년대 중반 이후 미-중간 국력수준의 역전이 전망되기도 한다. 2010년을 전후하여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미국 다음가는 세계 2위의 수준으로 부상하면서, 중국 내에서도 대외전략의 변화를 모색하는 담론이 활발하게 대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신흥 강대국 중국이 기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수용하고 현상유지적인 성향을 보일 것인가, 아니면 이에 대해 도전하면서 현상변경적 태도를 취할 것인가의 여부는 국제정치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성향이 복합적으로 지적되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간에는 특히 2010년대 이후 아태지역의 해양질서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고, 이 해역에 투입할 수 있는 군사력 경쟁 양상도 노정되고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의 센가쿠(尖閣諸島, 중국명 댜오위다오, 钓鱼岛)와 남중국해의 파라셀(Paracel), 스프래틀리(Spratley) 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해양능력 전개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동향을 반접근 지역거부(anti access/area denial) 전략으로 파악하고, 아태지역에 대한 재균형전략(rebalancing)을 표방하면서, 해, 공군력의 60% 이상을 아태지역에 전진배치하여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역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을 지원하겠다는 대응을 보이고 있다.
미-중간의 대립구도가 나타나는 가운데, 현실주의 논자들은 신흥 강대국의 국력이 부상할 경우에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스파르타와 아테네간의 전쟁 현상을 두고 관찰한 것처럼, 기존 강대국과의 무력충돌을 회피할 수 없다는 소위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론을 적용하여 미-중간 무력충돌의 불가피성을 제기한다(Allison 2015; Rosecrance & Miller 2015). 이에 대해 다른 논자들은 미-중간 높은 수준의 협력관계, 공진(co-evolution)의 필요성을 역설한다(Kissinger 2011; Liu Yang 2015). 과연 21세기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전개되고 있는 이 같은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과 군사력 증강 실태는 향후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계속)

 

 


 

 

저자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동경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교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자문위원, 한일신시대공동연구위원회 연구위원, 외교부 자문위원, 하버드대학교 초빙연구원, 국제정치학회 안보국방분과 위원장,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군사전략학과장을 역임했으며 주요연구 분야는 일본정치외교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이다. 저서 및 편저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도입과 한반도》(2016, 공저), 《비교군사전략론》(2014, 공저), 《해군의 탄생과 근대일본》(2014),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2011, 공저),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2010, 공저), 《제3의 일본》(2008), 《일본정치론》(2007, 공저) 등이 있다.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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