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현재까지 미중 관계의 분석은 주로 권력, 안보, 전략, 경제 등 경성권력(hard power) 초점을 두고 연구되었지만 연성권력(soft power) 경쟁 역시 언제나 병행되었다. 동일한 앵글로-색슨 문명권으로 분류되는 영국과 미국 간 권력의 전환기에 있어서도 경성권력만이 아닌 연성권력에서의 경쟁과 갈등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서로 다른 문명 간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는 연성권력에서의 경쟁과 갈등이 특히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특히 이 글은 이러한 연성권력에서의 미중 간 갈등을 미중 간 사회과학 지식체계에서의 갈등과 경쟁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사회과학 지식체계를 살펴보는 이유는 미중 간 경쟁과 갈등 요인이 크게는 국제질서(international order)에 대한 논의일 것이고 이러한 국제질서를 상상하고 연구하는 학문이 국제정치학(international relations)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정치학은 크게 보면 사회과학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과학 학문 분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우선, 미중 간 연성권력에서의 경쟁과 갈등을 보기 위한 이론적 분석틀을 제공하며 특히 최근 미중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주로 언급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인 세력전이이론과 국제관계에 있어 가치관과 이념 등 관념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성주의 국제정치이론을 연결한다. 다음으로는 국제질서에 대한 이해와 전망에서 미중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미중 간 국제정치이론에서의 경쟁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미중 간 경쟁이지만 현재까지는 미국 중심의 주류 국제정치학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에 주목하여 살펴본다. 끝으로 이러한 중국의 도전이 가지는 강점과 한계를 분석하고 이로 인한 지식체계에서의 경쟁 구도가 향후 미중관계에 주는 함의를 분석한다.

 

 

 


 

 

I. 서론

 

21세기 국제정치에 있어 미국과 중국이 가장 중요한 두 행위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반론이 없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미국 쇠퇴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 세계적 영향력은 정치, 경제, 군사 및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지속되고 있다(Zakaria 2012, 41-78). 하지만 중국의 부상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고, 최근 중국이 아시아와 세계에서 드러내는 외교, 경제 및 군사 영역에서의 도전적이고 단호한 모습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과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Schweller and Pu 2011, 41-72). 중국은 이미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기준으로 2010년 세계 2위 국가인 일본을 따라 잡았으며, 2014년에는 국내총생산 구매력 환산 지수(purchasing power parity: PPP)로 이미 미국을 넘어섰다. 군사적으로 중국은 현재 최소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중요한 경쟁자로 부상하였으며, 2035년에는 전 세계적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Jacques 2009). 그러므로 미국의 주도와 중국의 도전이란 국제질서와 구도는 적어도 21세기 중반까지 지속될 전망이다(Joffe 2009; Freedman 2010).
이런 이유에서 미중관계에 관한 많은 전문서적과 대중서적들이 출판되었고,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은 군사/전략적 측면이나 경제/금융 등의 소위 경성권력(hard power)에서의 갈등을 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까지 미중 관계의 분석은 주로 권력, 안보, 전략, 경제 등에 초점을 두고 연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역 이외에도 소위 연성권력(soft power)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의 미중 간 경쟁과 갈등 또한 점차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물론 연성권력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의 강대국 간 경쟁과 갈등은 21세기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동일한 앵글로-색슨 문명권으로 분류되는 영국과 미국 간 권력의 전환기에 있어서도 경성권력만이 아닌 연성권력에서의 경쟁과 갈등이 있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은 이 시기에 노예제/무역, 민주주의(정치체제), 자유무역 규범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와 경쟁이 있었다(Lorimer 1976; Prochaska 2012). 미국과 중국 간 관계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의 관계와 다른 점 중 특징적인 부분은 양국관계가 서로 다른 문명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이고 이런 점에서 양국 간 연성권력에서의 경쟁과 갈등은 더욱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현재 국제정치 시스템은 16세기에 태동되고, 18세기에 완성된 모습을 갖춘 유럽 국제정치질서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형성되었다(Bull and Watson 1985). 이런 이유에서 근대 국제정치의 태동 이후 대부분의 세력전이가 모두 유럽 문명 내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19세기 구미열강이 처음으로 중국 및 인도 문명과의 충돌했던 과정을 고려하면, 미중 간 패권 이전은 여전히 매우 이질적 문명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충돌의 요소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경우를 볼 때, 중국이 서구 근대국제질서로 편입된 이후, 구미국가와 중국 사이에 규범과 가치관의 교류 및 충돌은 항상 있어 왔다(Gong 1984; Hobson 2004; Suzuki 2009; Kang 2013). 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미중관계에서는 기존에 비교적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세계관, 가치, 신념, 정체성 등 다양한 ‘관념의 층위’(level of ideas)에서의 갈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전환기 미중관계를 보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외교, 안보 그리고 경제의 영역도 당연히 보아야 하지만 그러한 요소만큼 중요성을 갖는 가치관, 규범, 지식, 정보와 문화, 기술, 환경 등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연성권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최근 유출되어 〈뉴욕타임스〉에 공개된 중국공산당의 내부문건이 있다. 이 문건은 공산당 고위간부들의 행동 지침에 관한 지령으로 서구에서 유입되는 체제 전복 성향의 아이디어를 배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서는 서구적 민주주의,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의 추구, 언론의 자유와 시민적 참여,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 그리고 공산당의 과거사에 대한 허무주의적 비판 등이다(Buckley 2013). 이 문건을 보면 연성권력에서의 미중 간 경쟁과 갈등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첫 번째 전선은 우선적으로는 서구적 가치와 관념, 원칙 등의 중국 국내 유입을 막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이외에도 최근 중국의 국가보안법 개정에서도 이러한 점은 드러난다. 중국은 최근의 법 개정을 통해 국가보안법 적용 범위를 사이버공간(cyberspace)뿐만 아니라 문화, 교육 영역까지 넓혀 안보를 적용하고 있다(Wong 2015). 이외에도 중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변호사에 대한 체포와 구금, 비정부기구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강화 등을 보아도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다(Yu 2015).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서구의 아이디어를 막으려는 시도가 가장 1차적인 것이었다면 이를 넘어서 국외에서 연성권력 간 갈등과 경쟁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우선적으로는 서구의 이념과 원칙, 제도와 방식에 대응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결정을 둘러싼 중국의 외교 전략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국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관할권 문제를 지적하였고, 필리핀 정부의 배후에 미국이 있고, 중국은 이 분야에 있어서는 절대로 미국 주도의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이로부터 더 나아가 다른 영역에 있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적 가치와 원칙을 알리고 전파하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500여 개의 공자학원을 만들어 중국어와 중국적 가치를 전파하려고 노력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투자하거나 약속한 돈은 현재까지 1조 4,1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중국은 외무부 내 국제사법재판소 판사 출신의 팀장을 중심으로 국제법팀을 강화하여 영유권 문제, 부패관련 범죄인 인도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Ng 2015). 또한 중국은 최근 시진핑 주석의 영국 방문과 왕이 외교부장의 캐나다 방문에서도 드러났듯이 자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적극적 공세로 맞서고 있다.
중국의 가치관과 규범을 만들고 그것을 확산하려는 모습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제시하는 규범은, 핵의 선제 사용 금지(no first use)와 같이 상당 부분 정당성을 지니고 있고, 내정불간섭과 불개입, 주권의 원칙의 철저한 존중과 같이 현재 제3세계 국가들의 주장과 공유되는 부분도 많아 설득력을 갖고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중국은 점차 ‘중국적 특색’(Chinese characteristics)을 지닌 다양한 규범을 개발하고 전파하려고 한다(정재호 2011; Foot 2000). 중국은 이미 중국적 특색을 발견해 적용하려는 시도를 경제, 개발 발전, 민주주의,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 그리고 다양한 학문 분과 등에서 시도하고 있다(Haung 2008; Lampton 2008; Tsai 2007; Yan 2011; Chan et al. 2011). 또한 최근 문화부부장을 임용하면서 중국의 문화권력 및 연성권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인사인 류오슈강 당 선전부부장을 임명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Zhuang 2014).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과 중국은 다양한 규범 영역의 갈등을 어느 한 방향으로 해소하기보다는 현존하는 가치와 원칙들의 정당성의 원천을 찾아내고 지지 세력을 모아 강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연성권력에서의 미중 간 갈등을 미중 간 사회과학 지식체계에서의 갈등과 경쟁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사회과학 지식체계를 살펴보는 이유는 미중 간 경쟁과 갈등 요인이 크게는 국제질서(international order)에 대한 논의일 것이고 이러한 국제질서를 상상하고 연구하는 학문이 국제정치학(international relations)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정치학은 크게 보면 사회과학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과학 학문 분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장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우선, 미중 간 연성권력에서의 경쟁과 갈등을 보기 위한 이론적 분석틀을 제공한다. 특히 이 장에서는 최근 미중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주로 언급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인 세력전이이론과 국제관계에 있어 가치관과 이념 등 관념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성주의 국제정치이론을 연결한다. 둘째, 국제질서에 대한 이해와 전망에서 미중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미중 간 국제정치이론에서의 경쟁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미중 간 경쟁이지만 현재까지는 미국 중심의 주류 국제정치학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에 주목하여 살펴본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도전이 가지는 강점과 한계를 분석하고 이로 인한 지식체계에서의 경쟁 구도가 향후 미중관계에 주는 함의를 분석한다....(계속)

 

 


 

 

저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Twin Cities)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인트올라프 대학(St.Olaf College) 초빙조교수, 그리피스 대학(Griffith University) 부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주요연구 분야는 국제 규범 및 제도, 국제인권 및 윤리이다. 최근 저서 및 편저로는 《평화적 세력전이의 국제정치》(2015, 공저), The Massacres at Mt Halla: Sixty Years of Truth-Seeking in South Korea (Cornell University Press, 2014), Transitional Justice in the Asia Pacific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등이 있다.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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