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글은 21세기 선도부문으로서 정보·문화 산업,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산업에서 벌어지는 미 중 패권경쟁을 이해하는 분석틀을 제시하였다. 먼저 기술경쟁의 양상을 보면 할리우드가 새로 운 시장을 향한 변환의 전략을 모색하면서 여전히 글로벌 영화산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국내 시장의 꾸준한 성장과 기술력 향상을 바탕으로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표준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할리우드가 업계의 표준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시장의 막대한 규모와 자본력을 내세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는 중국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끝으로, 매력경쟁의 차원을 보면, 영화 콘텐츠의 내용적 매력을 발산하려는 영화 업계의 노력과 이를 지원하는 양국 정부의 정책과 제도 경쟁도 빼놓을 수 없다. 요컨대, 이 분야의 미 중경쟁은 단순히 시장점유율이나 기술혁신을 놓고 벌이는 전통적인 경쟁을 넘어서 표준의 장 악과 매력의 발산, 규모의 변수와 체제의 성격까지도 관련되는 신흥권력 경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쟁의 결과는, 기존의 세력전이 이론이 상정하는 것과 같이 권력이동의 단순구도에서 어느 한 나라의 단판 승을 논하는 종류의 것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네트워크 국가가 서로 공생적인 경쟁을 펼치는 구도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복합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의 현재를 진단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 은, 최근 한류의 성공으로 인해 정보·문화 산업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세워가고 있는 한국 이 미래전략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 머리말

 

최근 국내외 국제정치학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미중경쟁은 두 강대국의 경쟁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21세기 글로벌 패권경쟁과 거기서 파생되는 권력구조 변환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미중경쟁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주로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기성무대 위에서의 경쟁에 두어져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부국강병 게임의 승리가 글로벌 패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일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화, 정보화, 민주화 등의 복합적인 변환을 겪고 있는 오늘날, 기성무대에서의 승부만으로 전체무대의 판세를 가늠하려는 시도는 너무 단순하다. 21세기 세계정치에서는 기성무대 자체도 복잡해질 뿐만 아니라 기존 국제정치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권력무대들이 창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흥무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동향을 아는 것은 그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기성무대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신흥무대에서 벌어지는 미중경쟁의 현황을 분석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다.
여기서 신흥무대라 함은 기존의 군사•경제 영역 이외에 새로운 세계정치 경쟁의 양상이 나타나는 기술, 정보, 지식, 문화, 커뮤니케이션 등의 영역을 뜻한다. 이 글에서 주로 초점을 맞춘 신흥무대는 21세기 선도 부문으로서 ‘정보•문화 산업’이다(Rennstich 2008; Akaev and Pantin 2014). 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방송, 음악, 영화, 게임 등으로 구성되는 오늘날 정보•문화 산업은 디지털 문화산업, 정보콘텐츠 산업, 창의산업,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산업,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E&M) 산업 등으로도 불린다. 이러한 정보•문화 산업은 시장규모가 지난 수년간 계속 증가 추세에 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선도부문이다. 2013년 현재 정보•문화 산업의 글로벌 시장규모는 약 1조 8천억 달러 수준이고, 2014-18년 연평균 5.0%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KAIST 정보미디어연구센터 2015). 이 글은 정보•문화 산업 중에서도 디지털 환경에서 변환을 모색하고 있는 영화산업에서부터 논의의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선도부문에서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경쟁은 국제정치 구조의 변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정치이론의 오래된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선도부문에서 나타났던 경쟁력의 향배는 글로벌 패권의 부침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Gilpin 1987; Thompson 1990; Modelski and Thompson 1996).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20세기 전반 전기공학이나 내구소비재 산업, 또는 자동차 산업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을 들 수 있다. 좀 더 가까이는 20세기 후반 가전산업과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벌어진 미국과 일본의 패권경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연속선상에서 21세기 선도부문인 정보•문화 산업 분야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도 이해할 수 있다(Dynkin and Pantin 2012; 김상배 2012). 특히 미중경쟁의 미래를 판별하는 잣대가 될 정보•문화 산업의 패권경쟁은 예전의 선도부문에서 나타났던 것과는 다른 양식의 새로운 권력게임의 출현이 예견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정보•문화 산업 중에서도, 특히 영화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세 가지 차원의 경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기술경쟁의 양상을 보면 할리우드가 새로운 시장을 향한 변환의 전략을 모색하면서 여전히 글로벌 영화산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국내 시장의 꾸준한 성장과 기술력 향상을 바탕으로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표준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할리우드가 업계의 표준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시장의 막대한 규모와 자본력을 내세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는 중국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덧붙여 매력경쟁의 차원을 보면, 영화 콘텐츠의 내용적 매력을 발산하려는 영화 업계의 노력과 이를 지원하는 양국 정부의 정책과 제도 경쟁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복합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의 현재를 진단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은, 최근 한류의 성공으로 인해 정보•문화 산업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세워가고 있는 한국이 미래전략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영화산업(또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문화산업)을 다룬 기존 연구는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들 간에는 상당한 공백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미국 학계의 연구는 대체로 2000년대 초중반 무렵까지의 할리우드 연구에서 멈추고 있으며, 2010년대 할리우드와 중국 영화산업의 경쟁을 다룬 학술 연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둘째, 중국 학계의 연구는 주로 글로벌화와 시장자유화의 환경에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문화산업의 현황을 소개하는 수준으로만 진행되어 왔는데, 이들 연구는 대부분 학술적 엄밀함을 결여하고 있다. 끝으로 한국 학계의 연구는 주로 중국 지역연구와 국가론의 시각에서 중국의 영화산업과 대중문화를 분석하거나, 영화비평론의 시각에서 중국 영화의 문화코드를 분석한 연구들이 주류를 이룬다. 해외 학계에서 이 글과 유사한 주제를 다룬 학술 연구들이 간간히 있었지만, 이상의 세 그룹에서 발견되는 연구의 공백을 메울 정도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이 글은 영화산업에서 벌어지는 미중 패권경쟁의 미래와 관련하여 세 가지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자 한다. 첫째, 이 분야의 경쟁은 단순히 시장점유율이나 기술혁신을 놓고 벌이는 자원권력 게임이 아니라 표준의 장악과 매력의 발산, 규모의 변수와 체제의 성격까지도 관련되는 신흥권력 게임이다. 둘째, 이 분야의 경쟁은 국가 행위자들만의 경쟁이 아니라 민간 기업들뿐만 아니라 정보•문화 콘텐츠의 소비자들로 대별되는 비국가 행위자들이 관여하는, 국가-비국가 복합 행위자들 간의 경쟁이다. 끝으로, 이러한 경쟁의 결과는 기존의 세력전이 이론이 상정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권력이동의 구도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복합적인 권력게임을 벌이는 가운데 발생하는 복합적인 ‘세력망’(network of powers)의 재편이다. 요컨대 이 분야의 미중경쟁은 단순히 어느 한 국가의 단판 승을 논하는 성격의 ‘대칭적 국제정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중국을 허브로 하는 두 개의 네트워크가 서로 공생적인 경쟁을 펼치는 ‘비대칭 망제정치’(asymmetric inter-network politics)의 구도로 이해해야 한다(김상배 2014).
이 글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제2장은 정보•문화 산업 분야에서 벌어지는 미중 패권경쟁의 분석틀을 기술경쟁, 표준경쟁, 매력경쟁의 세 가지 차원에서 제시하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규모와 체제의 변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제3장은 기술경쟁의 시각에서 미디어융합 시대 할리우드의 기술•표준 패권의 비결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 영화시장의 양적 성장과 기술력 향상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제4장은 표준경쟁의 시각에서 최근 침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 동원되고 있는 할리우드의 변환전략을 중국시장 공략 전략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러한 와중에 약진하고 있는 중국 영화 및 인터넷 기업들의 잠재력을 살펴보았다. 제5장은 매력경쟁의 시각에서 미중 영화콘텐츠가 품고 있는 매력의 내용을 비교•설명하고, 영화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미중 정부정책의 성격과 한계를 지적하였다. 맺음말은 이 글의 주장을 종합 요약하고 정보•문화 산업의 미중 패권경쟁이 한국에 던지는 의미를 간략히 짚어 보았다.

 

II. 선도부문과 패권경쟁의 분석틀

 

1. 기술-표준-매력의 3단 문턱

 

최근 정보•문화 산업의 경쟁은 단순히 값싸고 좋은 반도체, 성능 좋은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빠르게 접속되는 인터넷 등을 만들기 위해서 벌였던 예전의 경쟁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제품경쟁이나 기술경쟁과 같이 어느 기업이나 국가가 자원을 확보하거나 역량을 기르는 차원의 경쟁을 넘어선다. 물론 정보•문화 산업의 경쟁에서도 재미있는 드라마나 실감나는 영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경쟁의 중요한 관건이다. 이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충분한 자본과 첨단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미디어 융합 환경에서 벌어지는 정보•문화 산업의 경쟁은 정보와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 및 마케팅 방식의 표준을 장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객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매력을 발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요컨대, 정보•문화 산업 경쟁은 자본과 기술의 평면적 경쟁을 넘어서 산업의 표준과 매력을 장악하기 위해 벌어지는 입체적 경쟁이다...(계속)

 

 


 

 

저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관계에서 정보, 통신, 네트워크이며 저서로는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 네트워크 세계정치이론의 도전> (2014), <정보혁명과 권력변환: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각> (2010), <사이버 안보의 국가전략: 국제정치학의 시각> (근간), <신흥안보의 미래전략: 비전통 안보론을 넘어서> (2016, 편저), <한국의 중견국 외교: 역사, 이론, 실제> 공편 (2016, 편저), <신흥권력과 신흥안보: 미래 세계정치의 경쟁과 협력> (2016, 편저)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및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미래세계정치센터 센터장이다.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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