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슬라브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러시아 외교정책과 유라시아 국제관계다. 주요 논저로는 《21세기 유라시아 도전과 국제관계》(2006, 편저), 《러시아의 선택: 탈소비에트 체제전환과 국가•시장•사회의 변화》(2006, 공저), Russian Nonproliferation Policy and the Korean Peninsula (2006, 공저), “Russia’s Perspectives on International Politics” (2008) 등이 있다.

 

 


 

 

I. 문제 제기

 

현재 동북아 지역질서 구축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미중 간 경쟁이 동북아 지역정치의 기본적 단층면을 형성하고 그 경쟁구도가 양국을 상호 속박하게 되면서, 이 경쟁구도가 역내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신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지 아니면 양국 간 경쟁으로 주변국들의 입지가 위축될지는 불확정적이다. 급변하는 동북아 지역정치 구도에서 각국은 최소한 자국의 입지를 방어하거나 적극적으로는 그 영향력을 신장할 기회를 얻기 위해 새로운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한 두 국가의 힘으로 신(新)아시아 질서를 구축하거나 주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가운데, 역내 갈등을 조절하고 지역정치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지역적 안보협력 기재를 구축할 필요와 요구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지구 및 지역질서의 전환기적 특성과 맞물려 동북아 지역의 다양한 변화가능성과 충돌하는 가운데, 탈냉전 이후 동북아 지역 무대에서 급속한 영향력 약화 및 단기간의 회복을 경험한 러시아의 역할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중국이 “동맹의 연루”에 따른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서 한반도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로운 행보를 취할 수 있는데, 어쩌면 러시아는 이런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고양시킴으로써 잃어버렸던 동북아 전략적 행위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회복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관련 러시아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전쟁이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며, 한반도 분단 구조 속에서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조심스럽게 회복해 온 동북아 이해당사자 및 6자회담 당사국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한 부상(浮上)과 영향력 확대로 인해 러시아의 부담이 커가는 가운데,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관계를 미중 양극 구도로부터 미-중-러 3극 내지 준(准) 3극 구도로 변화시키기 위해 가용 자산을 최대한 동원하여 미중 경쟁의 틈새를 ‘파고들고’ 싶은 욕심이 날 법도 하다. 물론 러시아에게 이를 추진할 충분한 내적 역량과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확답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러시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러시아가 ‘피하고’ 싶은 한반도 갈등 내지 분쟁 상황이 현재까지도 어렵사리 관리되고 있으며, 또한 러시아가 ‘지키고’ 싶은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일정한 지위는 어쨌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러시아에게 제기되는 과제는 “이 지역에서 무엇을 더 ‘얻어’ 낼 수 있는가?”이다(신범식 2013a).

 

탈냉전 이후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지향해 온 외교는 “기회주의적 약진”을 추구하는 형태로 표출되곤 했다. 이를 위해서 중국과 관계를 잘 관리하고 북한과 관계를 회복•강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 옵션이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 및 일본과 실질협력을 증진하려는 노력은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뿐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전략과 결부되면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동북아에서 미국과 협력기재를 마련하는 것은 러시아의 역내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부상에 따른 부담 증대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동북아 행위자로서 위상 강화는 바라지 않는 듯하다(Севастьянов 2008).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은 지구적 수준에서 대러시아 제재를 서서히 강화시켜 나가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관리하면서 유라시아 통합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물론 아시아 방면에서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 틀을 조정해 가고 있다.

 

이 글은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정치 구도 속에서 경험한 위상변동과 새롭게 직면하게 된 도전,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을 지역정치 주요 행위자들 간 관계 속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우선 1) 러시아 주요 외교안보 관련 문건들에 나타난 러시아의 동북아 정책 원칙을 지속과 변화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2) 최근 푸틴 3기 정부의 신동방정책으로 불리는 전략적 시도가 동북아 지역정치 구도 속에서 어떤 지향점과 성과 및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지 분석한 뒤, 3) 이런 러시아 신동방정책이 가지는 의미를 동북아 세력망 구도를 바탕으로 해석해 봄으로써 지역정치 내 러시아의 존재와 위상, 그리고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해 볼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분석이 한국외교에 대해 지니는 시사점을 동북아정치의 미래와 연관하여 적시해 보고자 한다.

 

II. 기본문건 분석: 외교정책 개념, 안보 개념, 군사 독트린

 

러시아 외교정책, 안보정책, 군사정책의 주요한 기본 원칙과 그에 따른 정책적 사고(思考) 동향을 보여주는 주요 문서들로는 외교정책개념(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국가안보개념(Концепция Националь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군사독트린(Военная Доктрин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등이 있다. 이 문서들은 러시아 정부 내 주요 관계부처 관료들의 오랜 토의 끝에 작성되는 결과물로서, 단순한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외교, 안보, 군사 정책의 전략적 지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각 문서들은 외교, 안보, 군사라는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세계관 위에서 작성되고 있으며 또한 공통된 정책 지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외교정책개념은 러시아의 기본적 국제정치관은 물론 외교정책 목표와 각 지역별 정책방향을 보여주는 문서다. 최근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2000년 및 2008년 외교정책개념 문서를 보면 러시아의 주요 관심사가 기존의 냉전 시기 군사적 대립과 핵무기에서 경제, 정치, 과학, 기술과 같은 비군사적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28 июня 2000 года 2000/6/28; Концепция внешне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15 июля 2008 года 2008/7/15). 또한 러시아는 테러리즘, 조직범죄와 같은 비전통 안보 영역의 위협과 도전들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주목하고 있으며 국제정치에서 UN 역할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존중 역시 강조되고 있다.

 

2000년 문서는 러시아 외교정책의 핵심적 목표로 총 7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가 안보, 주권, 영토 통합성 보전; 둘째, 안정적이고 공정한 민주적 세계 질서 확립; 셋째, 경제 발전을 위한 긍정적 외부 환경 조성; 넷째, 주변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 유지; 다섯째, 타 국가들과 조화적 관계 구축; 여섯째, 해외 러시아인 및 러시아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 보장; 일곱째, 러시아의 긍정적 이미지 증진 등이다. 지구적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한 러시아 정부의 우선순위로는 첫째, 새로운 국제 질서 형성; 둘째, 국제 안보 증진; 셋째, 국제 경제관계 발전; 넷째, 인권 관련 국제 관계 관리 및 안정; 다섯째, 외교 정책 활동을 위한 정보 지원 등을 들고 있다.

 

2008년 외교정책개념 문서에서는 2000년 내용들이 유지되는 가운데 드러나는 중요한 차이점들을 통해 러시아 외교정책의 최근 변화를 보여준다. 첫째, 2008년 러시아 외교정책개념에서는 경제문제가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2000년 당시 러시아 외교의 두 번째 주요 목표였던 안정적이고 공정한 민주적 세계 질서 확립은 2008년에 와서는 세 번째 목표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 경제 발전과 근대화를 위한 긍정적 외부 환경 조성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의 경제 발전, 근대화를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내적 역량 강화에 대한 관심과 그 한계에 대한 국내적 위기의식이 더욱 고조되는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다극질서에 대한 강조 및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 어조가 누그러졌다. 2000년 문서에서는 다극질서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데, 앞서 언급한 안정적이고 공정한 민주적 새로운 국제질서의 수립이 당시 러시아 외교정책의 두 번째 주요 목표였다는 점과 “미국의 경제와 힘의 지배를 통한 일방적 국제질서의 수립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2008년 문서에서는 다극질서 자체에 대한 언급이 줄어들었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어느 특정 국가의 일방적 행동에 대해서는 비록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지언정 이를 미국이라 명시하지는 않고 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일방적 국제 질서에 대한 노골적 비판 역시 자제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미국에 대한 불만을 자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다른 식으로 보면 강대국으로서 자신감을 회복해 가는 러시아가 새로운 행동의 자유를 지향하고자 함을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셋째, 러시아 정부의 직접적인 자신감도 드러난다. 2008년 러시아 외교정책개념 문서의 두 번째 장인 ‘현대세계와 러시아 외교정책(Современный Мир и Внешная Политика РФ)’은 “새로운 러시아가 국익에 대한 확고한 바탕을 마련하고 국제정치에서 온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기조로 시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신감은 2000년 외교정책개념 문서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특성으로, 러시아 외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결국 러시아가 그루지야 전쟁, 크림사태 등에서 보여준 행동이 힘에 기초한 자국 이익 관철임을 예견케 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판단은 크게 그르지 않을 것이다.

 

넷째, 러시아 정부는 지속적으로 국제법과 UN 역할에 대해서 강조해왔는데, 2008년 외교정책개념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때 지구적 차원 문제 해결을 위한 두 번째 우선순위로서 “국제관계에서 법의 지배”를 추가했다. 이는 2000년 문건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던 항목이었는데, 세부적으로는 UN안보리 및 헌장의 중요성과 국제법 준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주권 및 내정불간섭 원칙과 더불어 국제적인 문제의 일방적 해결을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지향점 제시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국가안보개념 문건은 러시아 안보정책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문건이다. 1997년 12월, 2000년 1월에 각각 국가안보개념 문서들이 발표된 바 있으며 2009년 5월에 새롭게 발표된 ‘국가안보전략 2020’(Стратегия националь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до 2020 года)은 기존의 국가안보개념 문서를 대체하게 되었다(Концепция националь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1997/12/17).

 

2000년 국가안보개념 문서는 앞서 살펴 본 2000년 외교개념 문서와 비교했을 때 기본적인 국제정치관과 정책 지향점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는 2000년 국가안보개념이 문서 첫 부분부터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다극질서의 출현을 강조했다는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를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면에서 약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국가들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특히 2000년 국가안보개념 문서에서는 러시아의 “국가 이익”을 개인, 사회, 국가의 수준에서 국내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국제, 정보, 군사, 국경, 환경 등 제(諸)분야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이익의 총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안보개념 역시 단순한 군사적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등 다른 분야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에 입각하여 제시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경제, 인구, 환경, 문화 등 세부분야에서 러시아 정부가 취해야 하는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국가 이익이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통해서만 실현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경제적 기반 확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0년 국가안보개념 문서에서 제시된 안보개념과 주요 정책방향은 상당 부분 ‘국가안보전략 2020’에서도 유지되고 있다(Стратегия националь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до 2020 года 2009/5/12). 하지만 차이점 역시 발견되는데, 이는 2000년과 2008년의 외교정책개념 문서가 보였던 차이와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가안보전략 2020에서도 2008년 외교정책개념에서 발견되는 러시아의 자신감과 좀 더 낙관적 세계정세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 2020에 나타난 러시아의 국제정치관은 2000년 안보개념의 그것보다는 낙관주의와 자신감이 더 잘 표현되어 있다(Dimitrakopoulou•Liaropoulos 2010, 38). 러시아는 2020 문서에서도 한 국가의 일방주의적 행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나, 미국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 이를 나토(NATO)에 대한 비판으로 새롭게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나토가 러시아에게 중요한 이익이 되고 있는 지역 내 국가들에게 군사적 인프라를 확장하는 것을 가장 첫머리에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한 러시아는 나토가 중요한 국제법상 원칙들을 무시하고 위반하는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직접적인 대립을 피하면서 러시아의 국익이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되 여타 부분에서의 협력 가능성까지 닫지는 않으려는 러시아의 국가안보적 근심과 고려를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2020 문서는 2000년 국가안보개념 문서에서와 같이 러시아를 방해하려는 국가들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언급은 사라지고 없다.

 

둘째, 2000년 안보개념 문서에서 드러났던 포괄안보가 2020 문서에서는 더 구체화되어서 나타나고 있다. 2020 안보전략문서는 경제 발전의 중요성과 러시아 시민들의 삶의 질 그리고 사회 경제 발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3장에서는 민주 국가, 시민사회 건설, 국가 경제 경쟁력 향상이 장기적 국익으로 상정되고 있다. 국가 안보의 주요 구성 요소로서 국방, 국가와 공공의 안보, 러시아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 경제 성장, 과학•기술•교육의 강화, 보건의료 강화, 문화 창달, 생태계 보존, 전략적 안전성과 전략적 동반자와 평등한 관계 등의 순으로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가안보의 주요 지표로서 실업률, 소득불평등 지수, GDP 대비 부채율, 공공 지출, 무장 쇄신 등을 제시함으로써 이전과는 달리 포괄안보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러시아 외교정책개념, 안보개념 및 안보전략은 각 문서들이 다루고 있는 영역이 다르더라도 공통적인 세계관과 정책 지향을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 군사 독트린 역시 앞 문서들과 많은 공통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안보 중심적 분야로서 러시아의 군사정책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 군사 독트린은 1993년, 2000년에 각각 발표된 바 있으며, 최근 2010년 2월 5일에는 새로운 군사 독트린이 발표되었다.

 

2010년 군사 독트린은 먼저 러시아의 안보 환경을 평가하면서 정치 및 군사적 위협이 부분적으로는 감소했지만 새로운 분야에서는 증가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De Haas 2010, 3). 특히 1993년, 2000년에 발표된 각각의 군사 독트린에서는 “군사적 위협”(военные угрозы)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2010년 문서에서는 “군사적 위험”(военные опасности)을 같이 언급하면서 ‘위험’이 ‘위협’보다 우선적이고 구체적으로 기술되고 있다(De Haas 2010, 3).

 

군사 독트린 상 위험은 위협보다 좀 더 구체적인 사항들로서, 각각 8, 9 항목을 통해 외부와 내부 위험으로 나누어 기술되고 있다. 외부 위험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나토의 위험이고, 다음으로는 개별 국가들의 전략적 안정을 해치려는 시도, 러시아 접경지 내 군사력 확장, 전략 무기 및 미사일 배치, 러시아와 동맹국들의 영토 침해와 내정 간섭, 대량 살상 무기•미사일 기술 확산, 개별 국가의 국제 협정 위반, 테러리즘 등 총 11가지 사항이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Военная доктрин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2010/2/5). 러시아가 처한 내적 위험으로는 러시아의 정체(政體)를 바꾸려는 시도, 러시아의 영토 통합성과 주권에 대한 침해, 국가기구의 작동 방해 등 일반적인 사항이 언급되고 있고, 안보개념 문서에서 다루어졌던 에너지, 인구, 사회 경제 발전 등의 문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편 러시아가 처한 ‘위협’으로는 군사 및 정치적 상황의 급격한 악화 등과 같이 ‘위험’보다는 좀 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내용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인식은 좀 더 실제적인 “위험 인식”으로 구체화되면서, 이 위험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응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러시아의 구체적인 위험 인식은 결국 대응책 마련 간에 군사적 조치가 수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군사 독트린 상 러시아가 군사 및 정치적 협력을 해야 할 대상의 우선순위로는 벨로루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독립국가연합(CIS), 상하이협력기구(SCO), 국제연합(UN)이 지목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나토 확장에 따른 자국의 군사적 위협 및 위험에 대한 인식 수준이 대단히 높으며, 동시에 다자주의적 군사 안보에 대해 높은 기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신 군사독트린이 특이한 점은, 2010년을 전후로 나온 외교정책 및 안보 관련 문건들과는 다르게 러시아가 중국, 인도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De Haas 2010, 4).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중요한 동맹은 CSTO 국가들로서 러시아는 CSTO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동맹 범위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상의 분석은 러시아의 외교안보 정책이 점차 초기의 국제주의적 기조에서 벗어나 강대국 위상 회복을 희구하거나 과시하기 위한 독자적 정책노선 강화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루지야 전쟁 발발과 함께 이러한 변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 섞인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합병 조치에 의해 좀 더 확실한 정책으로 현실화됐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러시아의 정책적 선회는 탈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가 좀 더 심각한 변화 압력과 직면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III. 푸틴 3기 러시아의 동북아 및 한반도 정책

 

러시아의 동북아 정책은 안보, 군사, 외교 정책 원칙 측면에서 매우 어려운 고민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최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 시기 러시아의 동북아 및 한반도 정책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신범식 2013a, 151-152)...(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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