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 아시아안보연구센터 소장 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술로는《정치는 도덕적인가》,《동아시아 국제정치 : 역사에서 이론으로》, “구성주의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탈근대론과 현실주의의 비판 고찰,” “유럽의 국제정치적 근대 출현에 관한 이론적 연구,” “강대국의 부상과 대응 메커니즘 : 이론적 분석과 유럽의 사례” 등이 있다.

 

 


 

 

 

I. 서론

 

이 글은 변화하는 2010년대의 미중관계, 더 크게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정부가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어떠한 전략적 구상을 토대로 대처해 나가고 있는지, 그러한 전략이 적절한지를 살펴본다. 특히 1970년대 초반 미중 관계가 소위 데탕트를 기점으로 급변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역시 빠르게 변했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과연 현재의 한국이 어떠한 함의를 추출할 수 있는지도 알아본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부상은 빠르게 지속되고 있는 반면,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두드러진다. 세력균형의 변화와 더불어 양국은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미국은 소위 아시아 중시전략을 2010년 전후로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강대국 전략을 포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미중은 2013년 6월 정상회담을 통해 소위 신형대국관계를 선언한 바 있는데, 이는 그간 미중이 각각 추구해온 지역전략의 공통점을 찾아 일정 기간 동안 협력 상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협력 상태 속에서 경쟁은 지속될 것이고, 미중 두 강대국의 협력 속 경쟁은 주변국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Shambaugh 2013). 과연 미중 신형대국관계가 주변국들의 대강대국 정책에서도 신형관계로 나타날지, 그리고 주변국들 간의 관계도 신형관계로 귀결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Campbell 2013).

 

대표적인 대상이 한반도다. 미중이 신형대국관계 속에 협력관계를 추진할 때 각각의 동맹국인 한국과 북한도 신형남북관계를 설립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데탕트의 시기를 보면 미중은 상호협력 관계를 수립하면서 남과 북이 소위 미니데탕트를 추진하도록 독려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는 단기간에 걸친 남북 화해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불과 3년이 채 안되어 남북 간에는 다시 대결과 경쟁관계가 복구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은 강대국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 질서라 하더라도 강대국들 간의 관계 설정이 주변국들 간의 관계에 직접 반영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거꾸로 따져보면 강대국들의 관계 개선이 주변국들에 긍정적으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주변국들 역시 나름대로의 독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은 북핵 문제, 더 나아가 북한 문제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왔다. 북한 문제는 탈냉전초기, 9.11테러 발생 이후 반테러 전쟁기를 거치면서 그 환경이 변화되었다. 향후에는 미중의 동아시아 세력경쟁 구도 속에서 새롭게 문제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은 북핵과 북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있어, 미중 관계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동아시아 전략과 대북전략을 선순환 구조로 엮을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동아시아 정책을 살펴보고, 미중 관계의 변화가 어떠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정책 제언의 관점에서 함께 분석해 보기로 한다.

 

II. 한국의 동아시아 지역전략 현황과 과제

 

1.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 전개

 

현재 동아시아는 전반적인 세력균형 변화와 더불어 국가중심의 근대 국가체제가 복잡화되는 소위 탈베스트팔리아, 혹은 탈근대 이행을 동시에 겪고 있다. 냉전 종식 유지되어 오던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는 미국이 반테러전쟁과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재정적자가 심각해지고 이어 상대적 쇠퇴, 혹은 전략적 축소(retrenchment)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Brooks, et al. 2012; Beckely 2011). 반면 중국은 9% 전후의 경제성장을 지속하여 왔고, 세계적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 으로 두드러진 둔화 없이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간 누려왔던 지도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기술 부문의 뛰어난 선도성과 외교적 지도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Drezner 2013, 52-79). 반면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은 자국의 경제성장이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려면 일정 기간 지체현상이 벌어질 것이다(Johnston 2013; Schweller and Pu 2011).

 

미중 간의 세력균형 변화는 전략의 변화로 이어져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과 중국의 강대국 전략이 본격적으로 교섭하게 만든다. 현재 수립된 신형대국관계 및 그 유지국면은 미국으로서는 패권부활에 필요한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전략공간을 마련하고 중국으로서는 강대국 부상에 필요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발전 환경 조성 및 소강사회 건설을 통한 국내기반 강화의 시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이 향후 경제력 회복을 통해 다시 패권국의 지위를 차지할지, 중국이 소강사회 건설 이후 탈소강패권국의 지위에 오를지는 향후 지켜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중 두 강대국의 세력균형 변화 이외에도 동아시아는 전반적인 국제질서의 변화를 겪고 있다. 수많은 FTA 조약 네트워크에서 보듯이 역내 무역량이 증가하고 생산네트워크가 촘촘해지는 등 역내경제통합이 가속화되었다. 민주화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동아시아 차원의 시민사회네트워크도 성장했다. 또한 여러 형태의 동아시아 지역 다자협력기구들이 만들어지면서 국가들 간의 세력경쟁에 규범적 제약을 가하는 국제환경도 조성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국가 중심, 하드 파워 중심의 근대적 국제정치도 네트워크 거버넌스 형태로 서서히 변화하려는 기운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정부는 첨예해져 가는 세력균형과 탈근대 이행의 거대 흐름 속에서 양자 모두에 적절히 대비하는 복합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부분적으로 시도했으나 이들이 통합된 전략으로 구체화된 경우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2.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지역전략과 과제

 

박근혜 정부가 현재까지 제시해온 동북아 지역전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주변 강대국에 대한 양자 전략 내용은 있지만 전체 지역전략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관계 강화 및 다각화, 일본에 대한 원칙 중시 외교, 그리고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등을 지역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전략들이 미중 신형대국관계 수립이라는 양자적 변화,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지역적 변화를 민감하게 의식한 상태에서 제시된 전략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의 여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방미하여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이명박 행정부로부터 이어온 포괄적 전략동맹을 이어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체제를 다지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한 지지를 얻는다는 것이었다(외교통상부 2013a). 한국과 미국은 이후 주요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현재까지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조건, 주한미군 분담금 배분, 원자력협정 개정, 그리고 주한미군 기지이전 등에 관해 논의해오고 있다. 특히 북한이 3월 이후 병진전략을 추진하면서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조건 마련을 위해 한미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중국의 부상에 대한 한미 간의 전략협의는 여전히 명확한 개념과 비전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아시아 중시전략과 미중 신형대국관계 전략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아시아 중시전략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사회문화적 개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존의 동맹국 관계 강화를 전략의 핵심에 두고 있다. 아시아 중시전략이 대중전략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미중관계를 어떻게 유지해나갈지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지대하다. 한편 이러한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과 미중 신형대국관계는 양립이 가능하다. 미국은 중국과 상호협력관계 심화를 유지하면서 리더쉽 부활에 필요한 경제, 외교적 힘을 축적하고자 한다. 신형대국관계는 미국에게 이러한 노력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전략인 것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중시전략에서 한국은 어떠한 대미관계를 수립해야 하는지 점차 입장을 정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이 계획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한국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질서 간의 조정을 통해 가능하다. 과연 한국이 명확한 지역질서 구상을 가지고 한미 간의 포괄적 전략 동맹관계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한미 간에는 중국을 포함한 지역전략 구상 협의가 활발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1972년과 명확히 비교된다. 데탕트 당시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줄이고 대만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협의하면서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약화시키고, 남북 간의 화해를 독려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지역전략을 염두에 두고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북 협상 권고를 받아들여 <7.4 남북공동성명>을 추진하는 한편, 북한의 대남 노선에 대응하는 군사, 경제 전략을 추구하는 전략적 노련함을 보인 바 있다. 현재 미국은 다가오는 미래의 미중 경쟁관계를 의식하면서 당분간 미중 신형대국관계를 추구하고 있는데 과연 한국이 미중 간의 민감한 전략관계를 의식하고 한미동맹전략을 추구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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