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미국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이다.

 

 


 

 

I. 21세기 일본 외교의 도전: 세계적 세력재편과 국내정치의 변동 사이에서

 

2010년대 일본 외교는 중대한 기로에 있다. 2012년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바탕으로 헌법 개정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추구하는 한편, 외교안보정책의 포괄적 기본 지침인 국가안보전략의 채택과 그 제도적 기반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발족시키는 등 매우 의욕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영국, 러시아, 호주는 물론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에서 북핵 위협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독도와 센카쿠(尖閣)/댜오위다오(釣魚台)에 대한 한국 및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2013년 4월 무라야마(村山) 담화 수정을 시사하는 아베 총리의 발언,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서 나타나듯이 최근 일본 외교는 주변국과의 갈등은 물론 국내외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보수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베 내각의 이러한 행보는 중국의 부상으로 상징되는 세계 및 지역 질서의 재편과 국내정치적 변화의 국면에서 일본 외교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외교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일본 국내의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된 적은 1980년대 말을 포함하여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전후 일본 외교정책의 기조로 오랜 기간 견지되었던 요시다(吉田茂) 독트린은 고도 경제성장과 국제적 쟁점에 대한 수동적 태세를 요체로 하였다. 요시다 독트린이 장기간 일본 외교정책의 기조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고도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이를 체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1990년대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력을 국제무대에서 행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걸프전(Gulf War)을 계기로 경제외교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시기 일본 외교가 ‘무임승차론,’ ‘수표책 외교’(checkbook diplomacy), ‘카라오케(カラオケ) 외교’ 등으로 비하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일본은 미국이 결정한 정책 노선의 테두리 안에서 정책을 실행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의 경제적 기여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비판이 국내에서 치열하게 제기되었다(Inoguchi and Jain 2000). 세력 재편의 변화에 대한 불안, 국제정치의 근본적 성격 변화, 급변하는 지역 안보 환경,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열망 등이 고도 경제성장과 외교정책의 수동성을 축으로 하는 요시다 독트린의 전면적 변화를 촉진하였던 것이다.

 

경제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일본은 지역과 국제 차원에서 자신의 입지를 적극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Green 2001). 오자와 이치로(小沢一朗)가 “보통국가론”을 주창하면서 탈냉전 시대의 일본 외교 방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이다. 오자와는 “군사를 포함하여 적극적인 국제 공헌을 추구함으로써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小沢一郞 1993).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1999년 주변사태법 제정, 2001년 테러대책특별조치법, 평화유지활동(peacekeeping operations: PKO)협력법 개정, 그리고 2003년 이라크지원특별조치법 제정 등을 통해 국제적 공헌을 증대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발 빠르게 마련해 나갔다. 그러나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 등에서 나타나듯이 보통국가화의 귀착점이 미일동맹의 강화였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2013년 재집권한 아베 내각은 일본 외교정책 기조의 변화를 다시 한번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이 직면한 도전은 국내 정치변동과 국제정치적 차원의 세력 재편이 동시에 전개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국내적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이념 지형에 기반한 “새로운 대전략”(new grand strategy)을 수립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으며(Samuels 2007), 대외적으로도 탈냉전 시대에 중국의 부상과 북핵 위협에 대한 외교적 적응이 절실하다(Pyle 2007). 또한 탈냉전 초기의 국제 및 지역의 지정학적 상황이 구조적이고 점진적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면, 21세기 일본이 직면한 도전은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2000년대 초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언젠가 중일관계의 변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우려였다면,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분쟁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2010년대 일본이 대처해야 할 대중국 문제는 매우 구체적일 뿐 아니라, 즉각적이면서도 전략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문제 역시 6자 회담이 가동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하였던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의 상황은 판이하다. 이처럼 2010년대 일본은 구조적 변동에 대한 깊은 전략적 고려를 하는 가운데, 현안 문제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엄중한 현실에 처해 있다.

 

일본 외교는 국내정치 변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009년 8월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480석 가운데 208석의 절대안정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면서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킬 때만 하더라도 새로운 정치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을 정책화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면서 2012년 12월 다시 자민당에게 정권을 내주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일본 정치는 빈번한 총리 교체로 ‘정치 리더십의 실종’(political leadership deficit)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5년 6개월 간 재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퇴임 이후, 2006년 9월 1차 아베 내각에서부터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이 재출범하기까지 6년여의 기간 동안 모두 7명의 총리가 교체되었으며, 평균 재임 기간은 1년에 미치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89년 이후 중의원과 참의원의 다수당이 엇갈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른바 “뒤틀린 국회”(ねじれ国会)에서 중의원과 참의원의 의결이 상이하여 법안 통과가 되지 않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였는데 이로 인해 국회가 입법 기능 부전에 빠지는 현상이 초래되었던 것이다(Ohya 2008).

 

이러한 국내정치적 상황에서 민주당의 외교적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외교 면에서 민주당의 집권기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가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난 대미자주노선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표방한 데서 나타나듯이, 일본 외교는 자민당의 전통적 외교 노선과 차별화된 새로운 외교적 가능성을 시험하는 데 주력하였다(김젬마 2012). 그러나 하토야마 정부는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는 곧 민주당 정부의 외교적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미국과의 갈등을 봉합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사실상 과거 자민당의 외교정책으로 회귀하였다.

 

아베 내각의 국내정치적 기반은 고이즈미 내각 이후 가장 견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베 내각은 취임 초기 지지율이 70퍼센트에 달하였을 뿐 아니라, 자민당이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294석을 획득하여 여당으로 복귀하는 데 이어, 2013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15석을 획득하고 20석을 획득한 공명당(公明党)과 연합함으로써 양원 다수당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등 그 국내정치적 기반이 매우 탄탄했다. 아베 내각의 외교정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가동되었다.

 

그렇다면 아베 내각 외교정책의 성격과 방식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외견상 아베 내각의 외교는 일본의 군사안보 능력 증대와 미일동맹의 강화라는 보통국가론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외교적 수단과 방식은 보통국가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던 과거에 비해 훨씬 다차원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기존 보통국가론은 미일동맹을 재규정함으로써 일본 외교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에 의존하였다. 반면, 아베 내각의 외교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여전히 기본 축으로 하되, 미국의 동맹 파트너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향후 일본은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지역과 세계 안보 체제를 연결하는 적극적 공헌자가 될 것”이라고 피력한 것도 미국 추수(追隨)에서 벗어나 일본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每日新聞 2013/12/11). 또한, 일본은 국내 차원에서는 자체 외교 및 군사안보 역량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지역 차원에서는 아세안 등 주변 국가들과의 전략적 호혜관계를 구축하고, 지구적 차원에서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외교적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2013년 10월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아태 지역 내 일본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군사와 안보 등 다양한 차원에서 리더십 행사를 요청받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Wall Street Journal 2013/10/25).

 

결국 아베 내각의 외교정책은 목표와 지향 면에서 보통국가론의 확대 발전, 수단과 방법 면에서 다차원적 접근으로 요약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아베 내각의 외교정책의 초점이 궁극적으로 중국으로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미일동맹을 재편하고, 국내적으로는 외교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제도적 정비를 시행하는 동시에,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추구하는 다차원적인 외교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II. 세계질서의 변화와 국내정치 변동

 

중국의 부상은 세계질서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구조적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촉발된 세계 및 동아시아 차원의 변화에 대응하는 일본의 대외전략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을 대하는 일본의 입장은 매우 복합적이다. 중국은 경제 규모 면에서 2010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약 5조 9천억 달러를 기록하여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자 동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이 되며 일본을 추월하였다. 외환보유고에 있어서도 중국은 2006년 이미 일본을 추월하였고, 2011년 기준으로 중국이 약 3조 2천억 달러, 일본이 약 1조 1천억 달러를 각각 기록하였다. 중국은 이처럼 거대한 경제규모와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세계질서에 일정한 변화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의 대외투자 규모가 2010년 기준 500억 달러를 상회하였다는 점이 이러한 변화를 시사한다. 이처럼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한 2000년대 이후에도 중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관계는 한층 긴밀해져왔다. 2005년 양국 규모가 1천 840억 달러를 기록한 이래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1년 약 3천 490억 달러에 달하였다(People’s Daily Online 2012/02/21).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일본과 중국의 교역 규모가 2천 290억 달러에서 2011년 3천 430억 달러로 약 50퍼센트 가까이 증가하였다. 일본 국내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경제 상황 속에서 중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관계는 지속적으로 확대•심화 되었던 것이다. 일본에게 있어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 및 세계 차원의 세력 재편을 촉진하는 변화의 요인인 동시에 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기회 요인이라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한일관계 재건축

미중경쟁과 한국의 전략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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