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성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동아시아연구원 아시아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술로는 《정치는 도덕적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 역사에서 이론으로》, “구성주의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탈근대론과 현실주의의 비판 고찰,” “강대국의 부상과 대응 메커니즘 : 이론적 분석과 유럽의 사례,” “유럽의 국제정치적 근대 출현에 관한 이론적 연구” 등이 있다.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부 중국정치외교담당 교수. 주재우 교수는 미국 웨슬리언대학(Wesleyan University)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국가안보정책연구소, 국립싱가폴대학교, 대만국립정치대학교,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 개스톤 시거 동양학 연구소(Sigur Center for Asian Studies) 등 국내외의 많은 연구소의 방문학자와 연구원을 역임해왔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Asia Times Online(www.atimes.com) 한반도문제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최근 저서로는 단행본 《중국의 대북미 외교안보정책과 통상전략》과 논문 “China’s Relations with Latin America: Issues, Policy, Strategies, and Implications,” “Ideas Matter: China’s Peaceful Rise,” “Mirroring North Korea’s Growing Economic Community Building,” “북한붕괴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옵션,” “중•러 에너지 안보협력과 한국 : 수송문제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짧게는 2010년대, 길게는 21세기 전반기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 간 세력균형 변화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다자주의 협력기제가 결여된 채 권력에 의해 질서가 만들어지는 세력균형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 국력배분구조는 여타 지역, 특히 유럽과 같이 다자주의 협력이 안착된 지역에 비해 매우 중요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더욱 명백해진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 세력균형 변화를 이끄는 핵심 요인이다. 개혁개방 이후 연 9퍼센트 이상의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은 동아시아 최대 경제규모 국가가 된 이래 세계질서 형성 과정에서 미국과 견줄 소위 G2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축적된 경제력이 군사 및 문화부분으로 전이되어 중국의 영향력은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로 점차 확대되어 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중국은 소위 핵심이익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자원을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의 성장과는 별개로 미국 패권의 쇠퇴 역시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거치면서 탈냉전기까지 미국은 동아시아에 동맹네트워크와 밀접한 경제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아시아 질서에 중요한 행위자로 자리잡아왔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단극체제가 안착되는 듯 했으나 9.11테러사태와 이후 미 패권에 대한 다양한 비판, 그리고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의 패권기초는 심각하게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2011년 향후 10년간 국방예산 4,870억 달러를 감축하기로 결정한 이후 국방전략과 재정계획을 전체적으로 재조정하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우세전략 혹은 패권전략은 다자주의에 기반한 선택적 개입전략으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축소(retrenchment)전략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패권의 쇠퇴, 혹은 패권의 교체는 상대적 게임이다. 미국 국력의 절대적 약화와 중국 국력의 절대적 증가가 곧 패권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중 간의 국력 격차가 줄어드는 것 자체가 동아시아 국가들과 한국의 외교 과제에 많은 도전 요인을 안겨주지만 궁극적으로 미중 간의 패권 교체가 일어난다면 이는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대사건이 될 것이다. 미중 간 세력변화가 어떠한 종류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분석적으로 잘 구별할 필요가 있다.

 

미중 이외에 동아시아의 중요한 두 행위자인 러시아와 일본 역시 미중 양국보다는 크지 않지만 국력변화를 겪고 있다. 러시아는 원유에 기반하여 경제를 회복하는 추세를 지속하여왔고,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정치리더십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동아시아와의 관계를 다시 강화하여 중국과의 경제관계,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에 대한 적극적 개입 등을 강조하고 있고 2012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러시아의 중요성을 환기하려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지속된 경제침체, 정치리더십 불안, 고령화의 장기적 위협,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전력난 등 많은 어려움에 처해 기존의 경제강국의 모습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급기야 중국에게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규모 세계 2위의 자리를 내주고 국력회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세력균형 변화가 동아시아 질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것이 한국의 외교전략 과제를 형성하는데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세력균형 변화는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외교이슈에 공통된 중요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과연 탈냉전기 미국 단극체제에서 미중 양극대결구조로 변화할 것인가, 중국패권구조로 결국 귀결될 것인가, 다극체제의 협력과 경쟁의 모습을 보일 것인가, 혹은 다자협력체제가 자리잡아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질서 구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며, 세력전이의 최종적 귀결점이 동아시아지역 모든 국가들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다가 2011년 1월 정상회담 이후 각자가 원하는 동아시아 질서건축, 혹은 아키텍처를 본격적으로 실현하려는 구조적 경쟁관계에 돌입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미중의 직접 경쟁과 아키텍처를 둘러싼 구조적 긴장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로서 평화롭고 발전적인 경쟁과 협력이 지속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할 처지에 있다.

 

II. 중국의 부상과 미중세력균형의 변화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국가들의 국력발전 속도의 상이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세력균형 논리가 압도하고 있는 체제 속에서 국력의 상대적 발전 속도는 체제속성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절대적 국력의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중국의 국력증강으로, 경제적•군사적 국력이 GDP와 국방비 부문에서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상대적 국력으로 보더라도 중국은 GDP로 산정해 볼 때 2000년 세계 6위, 2005년 세계 5위로 세계 2위 자리를 유지한 일본에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방비 지출에서도 일본을 제치고 이미 2위 국가가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격차인데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불문가지이고 대략 2020년대 중반 이후 GDP 추월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현재 미국의 국방비 감축 추세로 볼 때 국방비 역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상은 분석적으로 볼 때, 21세기 국제정치에서 중요해진 소프트 파워, 권력 자원의 추세, 국제정치에서 구조적 권력, 국가전략의 변화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므로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힘의 증강이 지역질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한 일이다.

 

1. 경제적 발전

 

중국은 1978년 경제개혁개방 이후 9퍼센트 이상의 경제성장을 계속해 왔고,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여 향후에도 5퍼센트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2010년 현재 중국이 일본의 GDP를 추월해 세계 2위의 지위에 올라섰다는 것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중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다시 앞서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중국은 2007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선 이후 3년 만에 다시 일본을 제쳤다. 2010년 중국의 경제규모는 5조 5,880억 달러로 미국의 14조 8,400억 달러에 비해 38퍼센트 수준이지만,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예측에 의하면 2015년에는 미국의 18조 달러에 이어 10조 달러를 기록해 대략 2/3 수준에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 1인당 GDP로는 미국이 4만 7,920달러인데 비해 중국은 4,170달러로 아직 힘겨운 중하위권 개도국 수준이다.

 

그러나 명목 GDP가 아닌 구매력평가지수로 보면, 중국의 GDP는 대략 9조 달러로 이미 미국의 60퍼센트 수준이다. 국제시장 환율로 보더라도 양국 간 시장규모 격차는 2000년 8.3배로부터 2010년 2.6배, 그리고 2014년에는 2.1배로 좁혀지는 추세인데, 더욱이 구매력평가지수로는 미국을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볼 수 있다.

 

장기 전망에 관해서는 1940년대부터 세계 각국의 경제 관련 정보를 분석해온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의 2006년 보고서를 보면, 2020년엔 구매력평가지수에 의한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9.6조 달러로 미국의 28.8조 달러를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2020년의 국내총생산을 시장환율로 계산하면 중국은 10.1조 달러로 미국의 28.8조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의 6.9조 달러와 독일의 5.0조 달러보다는 훨씬 앞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2006; 이재봉 2007).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한반도와 중국 간의 경제적 관계에서도 보다 명확히 나타난다. 1992년 이후 15년간 한중간 교역 규모는 22배 늘어났으며 2007년 교역액은 전년대비 22.8퍼센트가 늘어난 1,450억 달러에 달하였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의 수출총액이 849.4억 달러에서 1조 2,181.5억 달러로 13배 늘어난 것에 비해 괄목할만하다. 2007년 한국의 대중 수출은 820억 달러, 수입은 630억 달러로 무역수지 흑자는 190억 달러를 기록하였는데 무역 흑자는 2005년 233억 달러를 기점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최의현 2009).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동아시아 경제아키텍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간 동아시아 및 아태지역의 경제통합 모델은 미국이 추진해왔던 APEC 중심의 아태지역을 아우르는 ‘환태평양 경제통합’(Asia Pacifism), 중국이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형태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3(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Plus Three: ASEAN+3)를 중심으로 추진해온 ‘동아시아국가들만의 경제통합’(East Asianism, or East Asia only grouping),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며 호주, 인도, 뉴질랜드 등 아시아지역 민주시장경제국가들을 포함시켜 ASEAN+6 중심으로 하면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n Summit: EAS)를 모태로 추진하는 ‘범아시아 경제통합’(Pan Asianism)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ASEAN+3 중심의 경제협력이며, 미국이 지지하는 APEC 중심의 경제통합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에서 1998년까지의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매우 급속하게 경제협력의 수준과 폭을 확대해 왔으며, 특히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동안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급속하게 확대해 왔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지난 10년간 중국은 일본, 한국, 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의 제1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액에서 미국을 추월하였다. 한국의 경우, 2009년 대중 무역액이 대일 및 대미 무역액 총액을 넘어설 정도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심화되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생산네트워크 중심기지 역할을 넘어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금융력을 바탕으로 역내 경제적 주도권을 보다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1990년대 말부터 공세적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정책을 추진하여 아세안(ASEAN), 호주, 뉴질랜드, 홍콩/마카오, 대만, 칠레 등과 FTA를 이미 체결하였고, 한국 및 한중일 FTA 논의를 시작하는 등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아태지역 경제통합 전략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아시아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아시아지역과의 경제적 연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이미 2009년 11월 일본 방문시 도쿄의 산토리 홀에서의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한국•일본•호주 등 주요 동맹국 및 아세안과의 관계 강화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여 공식화 등의 방침을 밝힌바 있다. 즉, TPP를 기반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 of the Asia Pacific: FTAAP)를 형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향후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향하는 방향을 보여줄 것이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미중경쟁과 한국의 전략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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