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했으며, 한국슬라브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러시아 외교정책과 유라시아 국제관계이다. 주요 논저로는 《21세기 유라시아 도전과 국제관계》(편저), 《러시아의 선택: 탈소비에트 체제전환과 국가•시장•사회의 변화》(공저), Russian Nonproliferation Policy and the Korean Peninsula (공저), “Russia's Perspectives on International Politics”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21세기 들어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을 지닌 국가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각축은 환경 국제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싸움이 붙어있는 지점이다. 기후변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주요한 국제적 환경외교 영역으로 부상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현재와 미래의 환경 재해들에 대한 경고가 과학자/전문가 그룹에 의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후변화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비정부기구들의 대응 활동과 현재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의 영향력이 미디어의 광범위한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기후변화 인식도 고양되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자유무역질서와 에너지•자원•식량 문제 등과 맞물리면서 환경 외교의 영역에서 벗어나 국제정치 제반 영역에서 핵심적인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0년대에 전개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둘러싼 국가 간 협력과 경쟁의 상호작용은 적어도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 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급성장한 환경 영역에서의 지구적 거버넌스를 재편하고 또한 환경 영역의 의제가 다른 영역과 연계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국제무대에서 기후변화 외교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기후변화 외교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의 파고는 높고도 본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입지에 대한 근본적•미래적 고려와 그에 기초해 잘 고안된 외교 전략의 마련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의 현황과 쟁점 그리고 전망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향후 10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기후변화의 국제정치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게 될 것이며 어느 정도의 운신의 폭을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이익의 실현을 포함하여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다층적 요구를 조화롭게 실현해 갈 수 있는 어떤 전략적 지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좀 더 개방적이고 폭넓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본고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두고 전개되는 국제정치 구도를 파악하고, 기후변화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대응이 보여준 기회와 도전이 무엇인가를 밝힌 후, 한국 환경•기후변화 외교의 과제와 바람직한 대응 전략을 도출하고자 한다.

 

II.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현황과 쟁점

 

1. 교토체제와 포스트교토체제 사이

 

1988년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를 위하여 과학자들과 정책 입안가들이 처음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모인 이후 기후변화 국제정치는 1988-1991년을 지내며 지구적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기후변화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평가를 위해 기후변화국제패널(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이 설립되어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또한 1992년 〈리우 정상회의〉(Rio Earth Summit) 에서 154개국이 조인하여 1994년에 발효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은 현재 192개국이 참여하는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위한 지구 정치의 중심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구 수준에서의 온실가스 감축을 지향하는 이 협약은 기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 규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협약에 참여하는 23개의 선진국이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했던 점이 긍정적이었다(Elliott 1998; Paterson 1996). 〈리우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래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7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3차 당사국회의〉(3rd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3)에서는 선진국 및 동구권 국가의 감축의무를 명문화한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어 2005년 발효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한 최초의 구속력 있는 범지구적 대응체제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UNFCCC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기후변화 국제정치의 지구적 과정의 핵심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Bodansky and Di ringer 2010).

 

UNFCCC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특별한 절차규정이 없으며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모든 당사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각 국가들은 거의 ‘준거부권’(near-veto) 내지 ‘사실상의 거부권’(de facto veto)을 가지며, 따라서 구속력 있는 규칙에 대한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 따라서 UNFCCC의 의사결정 과정인 〈당사국회의〉에서의 연합형성과 그 막후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등의 조정 및 중재 기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있다(Barnett 2007, 1367; Conca 2006). 국가, 지역기구, NGO, 여러 분야의 전문가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UNFCCC야말로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형성을 위한 노력의 중심이며, 교토체제 형성의 핵심적 기능을 감당해 왔다.

 

그런데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지 15년, 발효된 지 7년이 지났어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의무 설정 및 그 이행방안과 관련하여 UNFCCC 중심의 범지구적 협상은 아직도 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13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의 실행계획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의 범지구적 기후변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 프로세스인 〈발리행동계획〉이 채택된 바 있다. 〈발리행동계획〉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한 선진국과 후진국의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 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의 원칙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의 “측정, 보고, 검증 가능한”(MRV: Measurable, Reportable, Verifiable) 감축/완화(Mitigation)행동, 개도국들의 적응(Adaptation), 선진국들의 개도국을 위한 관련 기술의 이전 및 재정 지원 등에 관한 원칙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2012년 이후의 포스트교토체제 구축에 대한 협상을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되는 〈제15차 당사국총회〉까지 완료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 협상과정은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UNFCCC 중심의 국제정치 과정에서 강대국 간 각축과 선진국-개도국 사이의 경쟁이 최근 한층 강화되면서 〈코펜하겐 당사국총회〉는 아무런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협상 시한을 연장하기에 급급해 하며 막을 내렸다. 물론 지구적 협상과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코펜하겐 이후 기후변화 국제정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사국총회의 결정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유의하기로”(take note)한 〈코펜하겐 합의문〉(Copenhagen Accord)은 자칫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지구적 협상과정의 동력을 어렵사리 살려내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향후 협상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구원해 냈다는 점에서 완전히 무의미한 노력만은 아니었다. 우선,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상응하는 능력”(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and respective capabilities)에 따라 대응한다는 원칙을 재확인 하였고, 장기적으로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시기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맞춘다는 목표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장기 감축에 대한 원칙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에 지구적 및 국가적 배출량의 정점을 달성한다는 원칙도 확인하였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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