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이다.

 

 


 

 

I. 서론 : 개발협력 복합 네트워크의 등장

 

21세기 개발협력의 세계정치는 급변하고 있다 . 2002년 멕시코 몬트레이에서 개최된 <개발자금조달을 위한 국제회의>(Monterrey Consensu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inancing for Development)를 통해 개발협력의 확대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도출된 것을 계기로 이전 10여 년간 감소 추세에 있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의 규모가 상승세로 반전되었다. 이어 2005년 G8 글렌이글스(Gleneagles) 정상회의는 증가세를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이 추세는 이후에도 지속되어,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s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OECD DAC) 회원국의 ODA 규모는 사상 최대 규모인 1,287억 달러를 기록하였다(OECD 2010). 경제위기의 반복적 발생, 그에 따른 경제 침체, 원조 제공에 국내정치적 지지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개발협력의 규모가 감소할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다소 부침이 있기는 하였으나 개발협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발협력을 둘러싼 지각 변동은 21세기 세계질서의 양적•질적 변화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ODA의 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전통적 강대국들이 상위를 점하고 있어, 개발협력의 세계질서는 일견 커다란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주요 공여국들이 일제히 ODA의 규모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물질적•지적 토대를 제공했던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리더십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9년보다 3.5퍼센트 증가한 302억 달러의 ODA를 제공하여 세계 최대의 ODA 공여국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견고히 하고자 했다. 2005년 미국이 이라크에 부채탕감을 위한 원조를 제공했던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미국의 ODA는 2010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편,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영향력의 확대는 개발협력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2010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신장된 경제력에 걸맞은 소프트파워의 증진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가운데, 개발협력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Lum, et. al. 2008) . 중국은 전통적 의미의 원조에 더하여 양허성 차관, 부채 탕감, 투자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개도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개도국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모두 포함할 경우, 중국은 이미 주요 공여국으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대외원조 규모는 2007년 기준 약 310억 달러에 달한다(Lum, et. al. 2008) . 동아시아의 대표적 공여국인 일본 역시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빈번한 정권 교체 등 어려운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0년 ODA의 규모를 전년 대비 11.8퍼센트 대폭 증가시키는 개발협력의 주요 행위자로서 위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개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개발협력의 전통적 선두주자인 유럽 국가들 역시 ODA 제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DAC에 소속된 15개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회원국을 기준으로 할 때, 2010년에는 전년보다 6.7퍼센트 증가한 702억 달러 규모의 ODA를 제공하였다. 이는 OECD DAC 전체 ODA의 약 54퍼센트에 달하는 액수이다(OECD 2010). 특히 EU 국가들의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GNI) 대비 ODA 비율 즉, ODA/GNI 평균은 0.46퍼센트로 미국의 0.21퍼센트와 일본의 0.20퍼센트는 물론 DAC 평균 0.32퍼센트를 큰 폭으로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모범적 행태를 바탕으로 EU 국가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개발협력과 관련한 새로운 국제 규범의 형성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개발협력 패러다임을 선도해 온 유럽 국가, 최대 공여국인 미국, 1980년대 이후 ODA 강국으로 부상한 일본, 신흥 공여국의 대표주자인 중국 등이 국내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개발협력이 갖는 복합적 성격 때문이다. 21세기 개발협력의 복합화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행위자의 증가에 따른 복합화이다. 우선, 개발협력의 전통적 행위자인 국가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 일본, 유럽 등 기존의 주요 공여국에 더하여 중국, 아랍 산유국 등 OECD DAC 비회원국들이 주요 공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흥 공여국들은 기존 공여국과 매우 차별적인 개발협력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이 원조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수원국 국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불간섭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신흥 공여국의 등장과 그에 따른 새로운 개발협력 패러다임의 대두는 선진 공여국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수립해 온 원조의 기준과 조건을 유지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발협력 패러다임과 아키텍처는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Manning 2006)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흥 공여국들이 짐바브웨 같은 ‘악당 국가들’(rogue states)에게 제공하는 ‘악당 원조’(rogue aid)가 국제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Naim 2007) .

 

비단 국가 행위자만 증가한 것은 아니다. 개발협력에 참여하는 비국가 행위자는 더욱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6년 기준, 원조 관련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의 연간 지원 규모는 146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으며, 옥스팜(Oxfam), 케어(Care), 아동구호기금(Save the Children) 등 대규모 NGO의 연간 예산은 7-8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원조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기구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UN 산하에만 약 70개 원조기관이 있는데,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에이즈•말라리아•결핵퇴치 글로벌기금 (Global Fund to Fight AIDS, Malaria and Tuberculosis), 지구환경기금(Global Environment Facility)처럼 특수 목표를 위해 설립된 원조기관들이 대부분이다. 수원국의 상황 역시 복합적이다. 민주화로 인해 지역 NGO가 증가하고 있으며, 지방정부, 지역기업, 금융기관 등이 원조의 배분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행위자의 복잡다기화는 개발협력과 관련한 조정 및 협력의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개발협력의 주요 행위자로서 정부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고, 정부와 비정부 행위자 사이의 파트너십에 기반한 개발협력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은 행위자들 사이의 조정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개발협력 거래비용의 상승을 초래하고, 원조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저하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방식의 개발협력, 부대조건, 평가방식 등이 도입됨에 따라, 기존 개발협력 체제와의 조화 및 재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조기관의 증가로 인해 개별 프로젝트의 규모는 감소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행위자 수의 증가는 수원국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캄보디아의 경우 매년 400회 이상 공여 사절단이 방문하고 있으며, 니카라과(289회)와 방글라데시(250회)의 사정도 유사하다(Severino and Ray 2009). 결국 다수의 행위자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개발협력 아키텍처가 필요하다(Fozzard et al., 2000; Andersen and Therkildsen 2007).

 

둘째, 개발협력이 단일한 쟁점이 아닌, 국제정치의 다른 쟁점들과 복합되는 새로운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원조, 개발, 지속적 성장, 환경 등 다양한 이슈가 상호 연계된 형태로 전개되는 복합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경제(globally integrated economies)이며, 지구 차원의 사회적 양극화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질병, 지구 온난화, 식량위기 등 지구적 차원의 공조가 필요한 새로운 쟁점들이 지속적으로 대두했는데, 모두 개발협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쟁점들이다. 저소득국가뿐 아니라 ‘실패국가’에도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 역시 지구적 차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강조하는 최근의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셋째, 관리의 복합화이다. 쟁점의 복합화는 빈곤 및 불평등 같은 기존의 문제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서로 연계되어 있는 다른 쟁점들이 더 이상 독자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개발협력의 문제와 개도국의 발전 문제가 전지구적 차원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효과적 관리를 위해서는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G20은 개도국의 개발과 원조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2010년 6월 토론토 회의에서 다자개발은행에 대한 자본증액 및 재원보충 지원약속을 이행하기로 하고, 농업과 식량안보를 위한 대책으로 세계 농업식량안보기금(Global Agriculture and Food Security Program: GAFSP)의 발족을 추진하며, 라퀼라 이니셔티브(L’Aquila Initiative)의 이행을 촉구하는 등 개도국의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개발협력이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관리되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21세기 개발협력은 행위자의 복합, 쟁점의 복합,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복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21세기 개발협력은 지구화된 세계에서 다양한 차원의 상호의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원조의 제공, 개도국의 발전, 새로운 개발협력 아키텍처의 수립이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행위자의 증가에 따른 집합행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다양한 개발협력 모델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발협력 자체가 21세기 지속 가능한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주요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개발협력은 세계 주요국들이 각자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증진시키는 유효한 수단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특히 현재처럼 개발협력의 세계질서가 급변하는 시점에서 주요 국가들은 개발협력 아키텍처를 재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향후 세계질서의 재구성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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