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했으며, 한국슬라브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러시아 외교정책과 유라시아 국제관계이다. 주요 논저로는 《21세기 유라시아도전과 국제관계》(편저)(서울: 한울아카데미, 2006), 《러시아의 선택: 탈소비에트 체제전환과 국가•시장•사회의 변화》(공저)(서울: 서울대학교,2006), Russian Nonproliferation Policy and the Korean Peninsula (공저)(Carlisle: U.S. Army War College, 2007), “Russia's Perspectives on International Politics”(Acta Slavica Iaponica, 2009)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이 글은 세계경제 위기 이후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는 환경 국제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21세기 인류의 삶을 예측함에 있어서 가장 심대하면서도 광범위한 도전이 제기될 환경 분야에서 인류는 특히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대응체제를 구축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실천적 질문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 한 현상들이 출몰하고 이에 대한 대응에 급급해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어쩌면 인류가 화석연료의 소비를 바탕으로 건설해 온 문명의 기초를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기후변화와 그에 대한 대응을 위한 노력의 장으로서 환경의 국제정치가 과연 이러한 도전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환경 국제정치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은 이 과제의 난이성을 잘 보여준다.

 

첫째, 원칙적으로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mitigation)해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동의하지만 이는 곧 개별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기에 누가 얼마나 부담을 질 것이냐는 질문은 매우 심각한 논점이 된다. 보편적 위협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과 국가 중심적 이익 다툼이 모순적으로 연결되는 쟁점 영역이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의 장이다.

 

둘째, 기후 변화로 야기되는 문제는 ‘전지구적’ 범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역시 지구적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대기 온도가 상승함으로써 야기된 기후변화가 각 지역별로 미치는 영향과 재해는 상이하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대응체제가 차별화되어 나타날 수 있다. 기후 변화는 단순한 기온과 해수면 상승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지역별로 상이한 다양한 피드백에 의해 홍수, 기근, 태풍 등의 다양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 2007). 따라서 지역별 해법의 차별성과 우선순위가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져올 피해는 각 국가 및 사회가 그에 대하여 얼마나 잘 적응(adaptation)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적응의 능력은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경제력이 낮은 후진국이 더 작을 것이기에, 이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훨씬 높은 취약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후변화가 국가별 수준에서 나타나는 부와 경제력의 불평등의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성격은 환경의 국제정치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및 저개발국 사이의 이견 및 대립 전선을 형성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넷째,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묻는 많은 연구들이 각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과 책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흥미로운 점은 계급과 자본에 따른 배출 정도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진국의 상위 10% 인구가 하위 10% 인구보다 7.5배, 개도국의 하위 10% 인구보다 155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부유한 계층보다 가난한 계층이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취약성이 훨씬 높다. 따라서 기후변화 및 환경의 국제정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구상의 불평등을 놓고 벌어지는 ‘지구적 정의’(global justice)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Adger, et. al. 2006, 131-154).

 

결국 기후 변화는 지구, 지역, 선•후진국, 계층 등의 논점을 포괄하는 다층적이며 복합적인 공간정치학(spatial politics)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Barnett 2007, 1361-1363), 다층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대한 대응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만 진행될 것이 아니라 국제적 및 지구적 노력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하는 성격을 지니며, 자연스럽게 환경의 국제정치는 강대국중심주의나 단편적 국제주의 또는 녹색좌파운동 등과 같은 기존의 배타적 방식만으로 풀어가기 어렵다. 또한 환경문제는 그 이슈에서도 과학기술, 무역, 안보 등과 동시적으로 연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환경의 국제정치는 복합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국제정치의 복합성은 2008년 말 세계를 강타한 금융 및 경제위기를 계기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범위의 세력 변동을 배경으로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의 향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의 틀 속에서 진행되어 온 지구적 노력은 세계 경제위기 가운데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회의〉(15th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15)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펜하겐 회의는 이전 노력에 비하여 다음과 같은 차별성을 보인다. 우선, 그간 기후변화대응체제 형성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이 지구적 정치과정으로 복귀하고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됨으로써 새로운 리더십 형성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이고, 둘째, 그간 쌓여 온 환경 분야의 지구적 불평등 구조와 그 입장 차이가 선명하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며, 셋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하 교토체제 중심의 지구적 노력과 이를 개편하려는 노력의 대립이 선명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런 새로운 도전들을 해결하느냐 여부에 따라 국제정치는 전통적인 강대국 중심의 이익갈등을 특징으로 하는 ‘일상으로 복귀’(return to normalcy) 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지구거버넌스를 형성하게 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Foreign Affairs July/August/1996; Washington Post June/17/2009; Giddens 2009). 과거의 근대적 대응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지구적 환경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길로 나설 것인지 이제 세계는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지구적 내지 국제적 노력의 현황을 살피고 미래를 전망해 보기 위하여, 우선, 세계경제위기가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코펜하겐 회의를 전후하여 나타난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의 대립구도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대국정치의 특징과 지구거버넌스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기후변화의 국제정치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대하여 예측해 보도록 할 것이다.

 

II. 세계 금융∙경제위기와 기후변화대응 체제

 

세계 금융•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의 형성에 전반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첫째, 세계 경제위기는 각 국가들의 경제를 심각히 위축시킴으로써 기후변화대응체제가 경제회복 및 성장에 미칠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를 한층 고조시키고 확산시켰다. 금번 세계 경제위기는 취약한 국가나 지역으로부터 시작되어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는 양상을 보였던 과거 금융위기와는 달리 세계경제의 중심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의 경제를 동시에 침체시킨 파괴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그간 전개되어 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기반으로 한 교토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기후변화의 국제정치에 복귀한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 형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다. 환경거버넌스 구축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미국 민주당 정부의 출범과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지구적 노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의 확산이라는 절호의 조건이 만들어 낸 기회는 세계 경제위기라는 풍랑을 만나 적지 않은 추동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지구적 노력이 정점에 도달할 즈음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둘째,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형성을 위한 최대 난제 중의 하나인 개도국과 선진국의 대립각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다. 경제위기로 인한 세계경제활동의 침체가 석유 소비를 줄임으로써 오일 가격을 하락시켜 안정화시켰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기후변화대응체제에 대한 노력의 필요성을 단기적으로 감소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는 기후변화대응체제가 요구하게 될 온실가스 배출억제 조치들이 가져올 경제성장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으며, 특히 이러한 저탄소 체제가 준비되어 있지 못한 개도국들의 우려와 반발이 한층 강화되는 가운데 이들의 경직적인 태도는 기후변화 협상과정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타협을 어렵게 만들었다. 기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틀 속에서 교토체제는 선진국들의 의무적 감축(mitigation) 조치를 규칙화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포스트교토체제는 이 의무적 감축조치에 대한 더 넓은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이가 커진 것은 향후 협상 과정에 대한 대단히 부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셋째, 세계 경제위기가 기후변화 대응체제 형성을 정치과정에서의 리더십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세계 경제위기 특히 2010년 이후 불거진 유럽의 금융위기는 기존 교토의정서 중심의 기후변화대응체제를 앞장서 이끌어 온 유럽연합 (European Union: EU)의 리더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의 추진력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을 들어 일부에서는 세계 경제위기의 실질적 패자가 유럽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간 기후변화대응체제 논의의 주도권을 행사해 온 유럽은 여러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Schreurs and Tiberghien 2007; Peichert and Meyer-Ohlendorf 2007). 극심한 경제위기 피해로 인해 긴축정책 추진 및 출구전략 마련이 필요한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기후변화대응체제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국에 의한 새로운 리더십 구축을 위한 노력이 절반만 성공한 점 및 개도국 입장을 대변하는 거부권력자(veto power)로서 중국의 부상은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과정에서의 리더십 구축을 훨씬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기후변화대응체제 구축과정의 지도적 역할을 감당할 국가들이 자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또 이 정치과정의 리더십이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대응체제의 지구적 프로세스를 끌어갈 추진력은 약해 보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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