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성우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문으로는 "플라톤의 〈메네크세노스〉와 아테네 제국의 정체성 그리고 플라톤의 정치적 삶" (〈한국정치학회보〉, 2007),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갈등과 조화: 미국헌법에서 원본주의(originalism)의 논쟁의 의미와 역할" (〈한국정치학회보〉, 2006), "행복(Eudaimonia)의 정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에 나타난 철학적 삶과 정치적 삶의 의미"(〈한국정치학회보〉, 2005) 등이 있다.

 

 


 

 

I. 서론

 

1. 문제제기

 

오늘날 우리는 사상 유례 없는 상호 연결망의 범세계적인 확대, 심화, 가속화를 경험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 인구의 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정보, 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세계가 촘촘히 연결되는 지구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연결망은 정치, 군사, 경제, 정보, 기술,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총망라한다. 이 중 문화 영역은 지구화 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지구화로 인한 문화 영역의 가장 큰 영향은 문화적 차이(cultural difference)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문화적 차이는 종종 국민 국가적 정체성과 그 속성에 귀속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한 국가 내에서도 젠더, 종교, 정치적 정체성, 소수자 집단, 토착인 등 다양한 차원에서 문화적 차이가 나타난다. 물론 지구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도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는 존재했으나 지구화는 과거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문화적 차이가 새롭게 드러내거나, 새로운 문화 차이의 요소들을 가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구화 과정 속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는 대체로 두 가지 경향을 동시에 드러낸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확산, 인구의 잦은 이동 등으로 문화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전파되어 공간의 차이에 따른 문화적 차이는 점차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거에 국지적으로 머물러 갈등을 야기하지 않았던 문화적 차이가 이제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빠른 속도로 전파됨으로써 문화적 차이와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구화는 분명 전 세계의 시공간을 압축시켰고, 이로 인해 우리는 문화적 동질화와 이질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지구화로 인해 문화적 차이의 양면적 경향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인식은 소위 문화에 대한 근대적 접근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근대적 문화 개념에 따르면, 지배적인 문화가 일률적으로 ‘표준화’되고, ‘합리화’되며 다른 문화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피한 발전 방향이라고 보았다. 반면, 지구화 과정의 문화 개념에 따르면, 특정 지배 문화가 일방적으로 표준화되고 합리화되기보다는 기존의 문화가 끊임없이 교체되고, 새로운 문화로 대체되는 방식으로 문화가 형성된다고 보고 있다. 지구화로 인해 문화적 차이가 표출되는 방식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이제 전통적인 근대적 접근방식으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근대적 접근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은 문화를 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문화적 차이나 전파 그리고 전반적인 문화 현상을 지구화 과정 속에서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2. 세 가지 시각

 

지구화 과정 속에서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시각, 둘째, 문화적 동질화 과정을 중심으로 한 시각, 셋째, 문화적 혼성화(hybridization) 경향을 중심으로 한 시각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시각들은 모두 지구화 과정을 전제로 비교적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문화 현상을 염두에 둔 시각이지만, 그 기본적인 가정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이론적, 철학적인 사조(思潮)를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문화를 불가피한 충돌과 갈등의 과정으로 보는 첫 번째 시각은 문화의 개별적인 주체성(individual subjectivity)에 역점을 두고 있는 낭만주의적 근대성 개념에 의존하고 있으며, 문화를 동질화 과정으로 파악하는 두 번째 시각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성이 한 방향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보편주의(universalism)적 세계관과 계몽주의(Enlightenment)에 의해 뒷받침된다. 마지막으로 문화를 혼성화 과정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근대적 사조로 한정할 수 없는 소위 탈근대적 사고를 지향하고 있다. 이제 이같이 이론적으로는 근대적/탈근대적 사고에 바탕을 둔 세 시각이 각각 지구화 과정을 겪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

 

문화를 충돌과 갈등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충돌은 이제 비교적 널리 알려진 테제이다. 9•11 테러나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경제위기가 있기 훨씬 전 헌팅턴은 1993년 이미 앞으로 다가올 세계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문명의 충돌이 될 것이며, 이는 국제정치에서 점차 서구 중심적 국면에서 벗어나 서구와 비서구간의 문명충돌, 그리고 비서구 간의 문명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Huntington 1993). 그의 논증은 이슬람 세력에 집중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걸쳐 전개되어 온 이슬람과 서구의 군사적 긴장이 아직도 늦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것은 ‘유교권과 이슬람권의 군사적 연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와 중동간의 무기의 흐름을 통해 두 세력이 연계하고 있으므로 서구권은 보다 단합해서 이를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서구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뿐 아니라 동유럽과 라틴아메리카까지 포함하여 단합해야 하고, 러시아와 일본은 보다 긴밀히 협력해야 하며, 유교권과 이슬람 국가 간의 갈등을 부추겨서 서구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충돌론은 저자의 명성과 주장의 생소함으로 인해 한 동안 학계에서 논란거리가 된 바 있으나, 대부분의 주장이 현실에서 설명력과 예측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이제는 거의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헌팅턴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의 주장은 문화를 보는 하나의 시각으로서 자리 매김 될 수 있고, 이런 시각은 지구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헌팅턴의 테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문화를 갈등의 새로운 경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민족과 타민족을 구분하는 특성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는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한 집단과 다른 집단의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으로 파악된다. 즉 문화는 인간의 다양성을 구분하는 집단적인 결정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이중 언어’, ‘이중 문화’, ‘다문화적 관례’ 등은 문화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가적 문화 교류, 다국적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 이주나 교역을 통해 생기게 되는 문화적 전파 등은 이 시각에서는 문화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문명충돌론이 상정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시각은 한 공간 안에 문화적 차이가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문화는 집단을 구분하고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위체이고, 국제정치이론에서 흔히 비유되는 ‘당구공 모델’로 정의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 개념은 인류학적 접근에서 수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인류학적으로 문화는 학습되고 공유되는 행위 패턴이나 신념체계이다. ‘학습’이란 일순간에 충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다. 또 사회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공유’가 특정한 공간과 역사에만 한정될 수 없다. 사회성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를 ‘학습’과 ‘공유’를 통한 행위와 신념으로 이해할 때 문화는 특정 영토와 특정 역사의 한계를 초월하며, 늘 개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헌팅턴에 의해 대표되는 문명 충돌론 그리고 문화적 갈등의 불가피성은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전제를 깔고 있다. 헌팅턴 자신도 이미 민주화라는 제3의 물결을 제시한 바 있다. 적어도 민주적 담론의 차원에서는 문화적 이질성이 후퇴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두 번째로,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로 종종 명명되는 ‘문화적 동질화’ 테제는 비교적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 특히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으로 인해 사회가 동질화를 겪고 있다는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 맥도날드화란 사회학자 리처(George Ritzer)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식당의 원칙들이 점차 미국 사회의 부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회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Ritzer 1993, 19). 맥도날드 원칙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베버(Max Weber)의 용어를 빌자면, 맥도날드가 제공하는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등의 원칙들이 형식적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의미에서 전 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주도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이와 같은 합리화 과정은 자본주의화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매개체는 역시 다국적기업이다. 다국적기업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지구화 과정에서의 자본주의화는 곧 미국화(Americanization)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미국화는 문화적 차원에서는 세계적인 문화 미디어의 영향력이나 소비자주의의 보편성으로 말미암아 문화적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지구화로 인한 문화적 동질화가 제국주의적 속성을 내비칠 수 있다는 해석은 맑스 식의 자본주의화 해석과 많은 공유점을 갖는다. 문화의 동질화를 맑스 식으로 자본주의화와 문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게 되면, 문화적 동질화는 많은 저항과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Alfino, et al. 1998 ; Smart 1999).

 

그러나 문화적 동질화와 이에 따른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학자들은 경제적 차원의 지구화가 곧바로 문화적 동질화를 낳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문화적 혼성화 경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러시아에서의 맥도날드화는 신속성, 효율성, 예측가능성이라는 형식적 합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러시아에 맞는 소위 ‘지방화’(localization)를 거치면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Talbott 1995). 러시아에서 맥도날드화는 짧은 시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다는 합리성이나, 싼 가격의 합리성, 그리고 일률적인 메뉴선택이라는 예측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구적 지방화’(global localization) 혹은 ‘지구지방화’(지방지구화, glocalization)으로 명명하며(Ohmae 1992), 경제적 차원의 지구화, 즉 자본주의화가 문화적 차원에서 곧바로 문화적 동질화를 낳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초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문화적 차원에서 지구화는 한편으로는 동질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화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화는 결국 문화의 혼성화(hybridization)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이다(Comaroff and Comaroff 2001; Jameson and Miyoshi 1998; Appadurai 2001).

 

세 번째 접근 방식으로서 문화적 혼성화(hybridization)는 기본적으로 순혈주의의 터부를 깨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국민 국가적 정체성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경계의 애매함이나 경계의 투과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성화 테제는 사실 지구화의 진행과 함께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상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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