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승주 교수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원, 버클리대학교 APEC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최근 저작으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공편, Springer, 2008),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 (공편, Springer, 2010) 등이 있다. 그 외 〈한국정치학회보〉,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The Pacific Review, Asian Survey 등의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주된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FTA 네트워크, 세계화 시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발전전략 등이다.

 

 


 

 

I. 서론

 

1997-8년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불과 10년 만인 2008년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위기가 동아시아발(發)이었던 데 반해,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발이었다는 점이다. 위기가 미국발이었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위기의 직접적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기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로 수출의 감소와 경기 후퇴 등 그 간접적 영향권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써 서구 선진국과 동아시아 경제가 분리(decouple)되기 시작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한 반면, 양자 간 경제적 연결(coupling)이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었다는 미국 측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Wolf 2008).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선 G20 정상회의로 대표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G7과 같이 선진국 또는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글로벌 거버넌스와 달리,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G20의 형성 과정에 대거 참여했다. 또한 G20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개혁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의사결정권이 증대되는 중요한 변화도 초래되었다. 이 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참여의 통로를 확대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구적 차원뿐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 특히 동아시아 금융질서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과거 지역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직면했던 아시아 금융위기와는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교적 신속하게 지역 차원의 대응책을 실행하였다. 이는 지난 10여 년 간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융 협력을 추진해온 결과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양자간 통화교환협정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 CMI) 등 금융 협력을 강화해왔다. 이러한 협력의 경험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국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일본의 전략적 경쟁과 같은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hian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zation: CMIM)라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금융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 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의 변화 과정을 검토하고, 새로운 금융 거버넌스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향후 전망을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다음의 사항들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첫째,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 동아시아 금융 질서가 발전되어 온 과정을 검토한다. 둘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 과정을 고찰한다. 셋째,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대응을 국가적 수준과 글로벌 수준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넷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금융 질서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다섯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질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II. 2000년대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의 전개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성격과 범위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지역적 또는 외부적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등 기존의 지역 기구는 금융위기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응을 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이 시기부터 동아시아를 지역적 범위로 한 협력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MacIntyre et al. 2008). 199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과 한국,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아세안+3(ASEAN Plus Three: APT)가 출범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Stubbs 2002). 아세안+3(APT)는 2000년대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내용적 측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까지 동아시아 지역 협력은 주로 무역 자유화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는데, 금융 위기를 계기로 금융 분야의 협력에 대한 노력이 급진전되었다(Amyx 2004).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급속하게 확산됨에 따라, 역내 국가들은 처음으로 금융 분야에서 지역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위기에 처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요구한 것 역시 지역 차원의 정부 간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고조시켰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 협력과 관련 다음과 같은 필요성을 공감하였다. 위기가 재발할 경우, 지역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신속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역내 국가들의 환율 안정과 감시를 위한 지역 차원의 협력을 모색하며, 동아시아의 금융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또는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Higgott 1998).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는 대체로 네 가지 방향에서 발전해왔다: (1)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통한 긴급 유동성의 제공; (2) 아시아채권시장이니셔티브(Asian Bond Market Initiative: ABMI)와 아시아채권기금(Asian Bond Fund: ABF)을 통한 역내 채권 시장의 육성; (3) 아시아 통화단위(Asian Monetary Unit: AMU)과 같은 공동 통화의 도입을 위한 협력; (4) 감시, 정책 대화(policy dialogue), 트랙 II 교류를 통한 역내 국가 간 커뮤니케이션의 증진이 그것이다(Grimes 2009). 아시아 금융위기의 발생 직후인 1997년 11월 아세안+3(APT) 정상회담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출범을 위한 논의의 시발점이었다(Amyx 2004; Park and Wang 2005). 이후 수 차례의 논의를 거쳐 향후 금융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목적으로 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2000년 5월 아세안+3(APT) 재무장관 회의에서 발효되었다(Chey 2009).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는 역내 16개 중앙은행들이 체결한 양자 간 통화교환협정이다. 처음에는 365억 달러 규모로 출범하였고, 이후 그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09년 6월에는 920억 달러에 달하였다.

 

[그림 1]에 나타나듯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는 공식적으로는 양자 간 통화교환협정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원화된 구조를 취하였다. 첫째, 한국과 중국 및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각각 총액 80억 달러와 60억 달러에 달하는 통화교환협정이 체결되었다. 교환의 방식도 양 당사국이 대등하게 40억 달러와 30억 달러를 교환하되, 달러화가 아닌 자국의 통화를 교환하도록 하였다. 둘째, 한국과 일본 간 통화교환협정은 총액 210억 달러에 달하는 최대 규모이며, 이 가운데 일본이 130억 달러, 한국이 80억 달러를 상대국에 제공하도록 설정되었다. 또한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를 기반으로 한 교환의 규모는 60억 달러, 달러화의 교환 규모는 150억 달러이다. 셋째, 한∙중∙일이 아세안 국가와 체결한 협정에서도 상당한 차별성이 나타난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직접 경험하였던 한국은 동남아 주요 국가들과 달러화를 교환하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반면, 중국은 양자 간 교환이 아닌 사실상 일방적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는 형태를 취했다. 일본은 일부 국가와는 통화의 교환을, 일부 국가와는 일방적인 지원을 하는 중간 형식을 취했다. 이와 같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구체적 운영 방식은 국가 별로 매우 상이하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운영체제에서 또 주목할 점은 20 퍼센트 규정이다. 이 규정은총 교환 규모 가운데 20 퍼센트 에 대해서는 자금 제공국이 아무런 조건을 부과하지 않고 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한 규정이다. 다만, 20 퍼센트를 초과하는 유동성을 제공해야 할 경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는 이른바 ‘IMF-link’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은 유동성 지원 시 까다로운 조건을 부과하였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상당한 차별성을 보이면서도, 동아시아 국가 간 금융협력이 국제통화기금(IMF) 등 기존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추구하는 원칙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복합적인 목표를 추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무역·기술·에너지 질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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