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구소 지역연구실 연구위원. 김치욱 박사는 미국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가톨릭대 아태지역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역임했다. 관심 분야는 미국 대외경제정책, 국제금융정치, 중견국가론, 동아시아 정치경제,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며, 최근 논저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형성과 미국의 네트워크 권력: 국제투자협정을 중심으로" (〈세종정책연구〉, 2010), "외국 금융자본 유치와 금융선진화의 성공조건" (《시장경제와 외국인투자 유치》, 2010), "국제정치의 분석단위로서 중견국가: 그 개념화와 시사점" (〈국제정치논총〉, 2009), "미국의 Gs 창출과 패권의 네트워크화 전략" (〈세종정책연구〉, 2009), "국제금융제도 개혁과 중견국가: G20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2009), "G20의 부상과 중견국가 한국의 금융외교" (〈국가전략〉, 2009) 등이 있다.

 

 


 

 

I. 문제제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잇달면서 세계경제질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두 위기는 그 원인은 다를지 모르지만 전후 서구가 주도해온 세계경제질서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이러한 서구의 정치경제적 지도력에 대한 회의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패권이 중국과 아시아 및 신흥시장으로 급속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앞으로 미-중 간 패권이전에 따른 국제경제질서의 전면적인 개편 가능성을 점친다. 경제이념 측면에서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로 인해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유용성이 의문시되었다면, 이번 위기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노출시켰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래 처음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발생했다는 역사적 의미 외에도, 미래 국제경제질서의 향배에 관한 궁금증과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2009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위기 이후 세계의 형성’(Shaping the Post-Crisis World)을 주제로 삼았고, 미국 시사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도 2010년 ‘세계의 미래’(The World Ahead) 특집호에서 국제정치의 주요 경향과 미국 및 신흥국가의 새로운 위상에 대해 조명했다. 위기 이후의 세계경제질서는 정당성 위기 단계를 거쳐 과도기(interregnum)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점치기 어렵다 .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급효과에 관한 논점은 미국과 중국 경제력의 향방, 경제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의 퇴조 여부, 그리고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양식의 변화로 요약된다.

 

본 논문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측면에 초점을 맞춰 금융위기의 국제정치적 결과를 고찰한다. 금융위기가 전후 자유주의 국제주의 2.0(Liberal Internationalism 2.0)에 ‘권위의 위기’(crisis of authority)와 함께 ‘거버넌스의 위기‘(crisis of governance)를 동시에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Ikenberry 2009). 이 글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의 거버넌스는 일종의 ‘복합 네트워크 시기’(Complex Network Moment)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복합네트워크는 전통적 국제정치 행위자인 국가들의 경쟁과 협력 이외에, 정부간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s: IGOs), 정부네트워크(Inter-governmental Networks: IGNs), 초정부네트워크(Trans-governmental Networks: TGNs), 그리고 초국가 네트워크(Trans-national Networks: TNNs) 등이 세계경제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일정한 책임과 권한을 공유하는 거버넌스 양식을 말한다.

 

미국과 서구는 이라크전쟁과 금융위기를 통해 각각 군사적, 경제적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찾아온 미국의 단극시기(unipolar moment)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고, 유력한 대안으로 G2(미국∙중국), 3극(미국∙EU∙중국), 다극체제 등이 거론되었다. 동시에 정보화와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특정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극성(polarity)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퇴색되었다. 대신 다양한 국가 및 비국가 행위자들과 이들의 네트워크가 이해당사자로 참여하는 다원적인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사실 세계질서의 변환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기 전부터 여러 차례 논의되었다. 소위 ‘신세계질서’ (new world order)의 도래는 1차대전 후 우드로 윌슨, 2차대전 후 윈스턴 처칠, 냉전 종식 후 조지 부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고든 브라운과 버락 오바마 등에 의해 선포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신세계질서는 서구의 승리를 기념한 것이라면, 21세기의 신세계질서는 서구의 패배를 자인하는 성격이 짙다. 이러한 변환의 동력은 다름 아닌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 등 소위 ‘나머지의 부상’(Rise of the Rest)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경제질서의 물질적 기반의 재편을 가속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G20 정상회의를 국제경제협력의 최고 포럼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했다. 특히 G20은 국제경제의 새로운 네트워크적인 거버넌스 모드라는 점에서 국가 간 능력배분과 경쟁 구도의 변화에 더해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복합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물론, 세계경제 거버넌스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이 논문의 복합네트워크는 국가 행위자의 역할 확대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합적 상호의존론(complex interdependence)이나 초정부주의(transgovernmentalism)와 차이가 있다. 복합적 상호의존론(Keohane 1972; 1977)은 국제정치에서 비국가 행위자의 상대적 위상 강화에 주목한다. 초정부주의(Slaughter 2004)는 국가행위자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현실주의적인 상위정치보다는 하위정치 행위자로서 다양한 정부기관 네트워크의 역할을 강조한다. 세계정치의 중심이 ‘정부에서 거버넌스’(government to governance)로 이동하면서 다국적기업, 비정부기구 등 새로운 비국가 행위자들이 국제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일차적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다(Underhill 2008) . 슬로터(Slaughter 2004)는 ‘신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초정부 네트워크’라면서, 법원, 규제기관, 공정거래기구 등 하위 정부기관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등장에 주목한다. 나아가 이들 네트워크는 위계적이고 단일한 행위자로 간주되었던 국가를 대신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초정부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가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중심으로 복귀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Altman 2009). 단적인 예로 국제경제협력의 최고 포럼으로 지정된 G20정상회의는 전형적인 국가 중심적인 제도다(Cooper 2010, 744). [그림3]에 예시된 기타 3G (Global Governance Group), C10 (Committee of Ten African Ministers of Finance and Central Bank Governors), G24 (Intergovernmental Group of Twenty-Four on International Monetary Affairs and Development), 브릭스(Brazil, Russia, India, and China: BRICs) 등도 모두 정부간 네트워크로서 최근 세계경제 거버넌스 개혁에 있어서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논문의 네트워크 거버넌스는 통화스왑 등 양자주의적인 방식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다자적인 틀에 초점을 맞춘 복합적 다자주의(complex multilateralism)와도 차별성을 띤다.

 

아래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변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읽어내기 위해 먼저, 기존 주류 국제정치이론에서 국제질서 변화의 핵심 동인으로 간주되는 물질적, 이념적, 제도적 토대가 금융위기로 인해 어떠한 도전에 직면했는지 살펴본다. 이어 3장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아키텍처로서 복합네트워크의 개념을 설명한다. 4장은 G20을 중심으로 정부간기구(IGOs), 정부네트워크(IGNs), 초정부네트워크(TGNs) 등이 하나의 거버넌스 망(網)을 이루는 과정을 분석한다. 결론으로 5장은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네트워크화가 국제정치학과 한국 외교에 주는 이론적 정책적 도전을 논한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무역·기술·에너지 질서의 미래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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