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 군사학과 교수. 고봉준 교수는 미국 노트르담 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미국 외교안보 정치를 중심으로 한 국제안보, 군사기술 및 개념 확산, 그리고 군비통제 등이 있다. 최근 저술로는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현실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동향과 전망〉, 2009), "군사력 증강의 정치학” (〈한국정치학회보〉, 2008), “공세적 방어: 냉전기 미국 미사일방어체제와 핵전략" (〈한국정치연구〉, 2007) 등이 있다.

 

 


 

 

I. 서론


이 글은 2008년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 효과를 미친 금융 위기가 동아시아의 군사안보 질서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고, 금융 위기 이후의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변화를 전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는 전 세계적 영향력 유지를 목표로 하는 미국과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선택, 그 상호작용, 양국 전략적 선택의 물적 기반을 이루는 자원동원 능력 및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대응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형성될 것이다. 특히 미국 발 금융위기는 중국보다 미국의 자원동원능력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국 중심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우려를 야기하여 전체적으로 냉전 이후 20여 년간 유지되어 오던 소위 단극적 세계질서의 정당성 및 신뢰도를 약화시켰다. 특히 금융위기 촉발 이후에도 중국이 지속적으로 고도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동시에 최대의 미국채권 보유국이 되면서 경제 부문에서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이 동아시아에 대한 주도권을 보다 공격적으로 주장하게 되면서 명목상으로는 보다 갈등이 부각되는 미중관계를 형성하는 배경이 된다고 평가되고 있다. 즉 동아시아의 군사안보질서가 금융위기 때문에 급격한 세력전이나 전통적인 세력균형정치의 부활 등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금융위기의 영향력은 간접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 행위자들의 인식과 자원동원능력에 보다 포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부터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에서 이미 가장 중요한 논쟁점 중 하나였는데, 미국발 금융위기는 바로 이러한 초기 논쟁의 의미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Mastanduno 2002; Johnston 2004; Goldstein 2003; Christensen 2001). 그간 미국 중심의 단극적 체제의 지속을 관찰하면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세력균형론(Waltz 2000; Mearsheimer 2001; Paul 2005; Pape 2005), 단극질서론(Wohlforth 1999; Brooks and Wohlforth 2002; Lieber and Alexander 2005), 세력전이론(DiCicco and Levy 2003) 등 다양한 이론적 관점에서 21세기 국제정치의 중장기적 전망을 시도한 바 있다.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최소한 세계적 수준에서는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강조하던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대결 양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동시에 중국의 ‘평화적 부상’과 관련된 많은 논쟁이 입증하듯이 동아시아에서는 군사안보 부문에서 기존의 개념인 권력투쟁과 세력 균형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동아시아에서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질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으로 다 포착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상이한 이념과 경제 및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전 세계적 수준에서 경쟁하던 냉전 시기와는 달리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에서의 대립은 그 이면에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비전통적 안보 분야에서의 공조라는 상쇄 요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 지역의 두드러진 경제 성장이 일정 정도의 통합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시장평화론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통해 제공되는 경제 이익이 국가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됨에 따라 이의 공유를 위해 국가 간 관계의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Gartzke 2007). 경제 부문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양자 또는 다자 관계의 진전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런 측면이 과거와 같은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대립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익상관자’(stake holder) 와 ‘화평굴기’(和平崛起)개념이 시사 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은 양자 간에 대립과 갈등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상호 간 협력에 공동의 이익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양국은 1990년대 후반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설정에 이어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서는 ‘포괄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일환으로 양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상호 군사훈련의 참관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2010년 초 대만에의 미국 무기판매를 이유로 중단되기 이전까지 해군을 위주로 한 해상에서의 합동 구조 훈련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군사적 교류를 유지하여 왔다. 

하지만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 전반을 고려한다면 동아시아에서 점증하고 있는 군사비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아시아에 잠재되어 있던 전통적 갈등 요인이 금융위기 이후에 전면에 부상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국의 군사력 강화 추세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주목되던 바이나, 중국 경제력의 상대적 강화로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현 질서의 유지를 원하는 미국은 중국의 상대적 강세를 방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중국은 전통적 의미에서 대미 균형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역 내의 핵심 이익 수호를 내세우는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에의 접근성 확보라는 미국의 이해 대립은 새로운 충돌의 가능성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 내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정립되고 있는 동맹의 네트워크 역시 역내 군사안보질서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융위기가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독립변수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각국의 자원동원 능력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적 지배력의 한계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잠재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양국의 지역 전략과 군사적 준비태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는 미국의 역외균형 플러스 전략과 중국의 역내 질서 관리자 전략이 교차되는 상황에서 양국의 국내외적 자원동원 능력의 부침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영향은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될 수는 없다.

  
금융위기와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의 상관관계를 검토하기 위해 2절에서는 최근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특징을 국방비의 증가, 동맹의 재조정 및 다자네트워크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검토한다. 3절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군사안보 차원에서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양국의 전략적 태도와 준비태세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의 대응에 대해 검토한다. 결론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군사안보질서는 지역 내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선택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과 중국의 자원동원 능력 및 역내 하부구조를 구성하는 주요 국가들의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II. 동아시아 군사안보 질서의 특징

 

1. 국방비 점증 추세

 

민간연구기관에서 발행한 〈SIPRI 2010〉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국방비는 냉전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왔는데, 2000년에 그 총 규모는 1,220억 달러였으나 2009년에는 2,090억 달러로 증가하여 전 세계 국방비에서 13%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였다(2008년 불변가격 기준). 국방비의 절대적 규모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이 동아시아 지역의 상위지출국에 속하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의 국가들도 국방비를 꾸준히 증액시켜 왔다.  아울러 국방비 규모가 가장 작은 국가 중의 하나인 캄보디아의 경우도 최근에 태국과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국방비를 확충할 계획을 선언한 바 있다. 즉 동아시아 각 국의 국방비 증가는 금융위기 이전부터 관찰되어오던 하나의 추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과 미국 및 러시아의 최근 10년간 국방비 추이를 [표1]에 정리하였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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