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이상현 박사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국제관계연구소와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국제정치와 안보, 한미관계, 북한 문제를 주로 연구하며, 최근 논저로는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공저)(서울: 동아시아연구원, 2008), 《지식질서와 동아시아: 정보화시대 세계정치의 변환》(공저)(파주: 한울, 2008),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공저)(성남: 세종연구소, 2008), 《한미동맹의 변환》(공저)(성남: 세종연구소, 2008),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Lee Myung-bak Government: The Vision of ‘Global Korea’ and Its Challenges”(The Korean Journal of Security Affairs, 2009),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와 대북정책 전망”(<국방정책연구>, 2009), 《외교환경과 한반도》(공저)(성남: 세종연구소, 2009), 《조정기의 한미동맹: 2003~2008》(공저)(서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09)등이 있다.

 

 


 

 

I. 서론

 

글로벌 차원에서 현재 진행되는 여러 변화는 국제 군사안보질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국제체제는 국제관계의 행위자 및 지역간 힘의 배분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21세기 국제질서의 변화를 이른바 ‘나머지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으로 표현한다(Zakaria 2008). 이는 중국, 인도 등 국제정치에서 규모는 크지만 그 동안 경제적으로 침체해 있었던 거대국가들이 세계화의 영향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국제질서에서 미국 패권의 상대적 위축을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쇠퇴라기보다는 중국과 인도 등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이고, 그 결과 국제질서는 이제 ‘포스트 아메리카’(Post-Americanism) 시대로 전환하는 중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U.S.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NIC)의 세계질서 전망 보고서인 《Global Trends 2025》도 2025년까지의 향후 국제질서가 더욱 복합적으로 변하고, 미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이겠지만 지금보다는 ‘덜 지배적인 국가’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5년경 국제질서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신흥 행위자의 등장과 함께 세계화로 인한 경제발전, 인구 증가, 지역적 발전 격차 등으로 인해 더욱 다극화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초국가적 안보 어젠다가 등장하는데, 식량, 에너지, 물 등이 고도의 신 전략자원으로 등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각축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기후변화, 신기술, 에너지 배분 등을 둘러싼 대립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러, 국제갈등 및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확산은 여전히 중요한 국제안보의 문제로 남을 것이고,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의 결과 테러조직은 존속할 것이며, 첨단기술의 손쉬운 획득으로 이들의 테러역량도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념적 대결은 사라지고 세계화의 후유증과 글로벌 세력판도 변화가 주된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NIC 2008).

 
글로벌 질서의 미래에 관한 여러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와 중국의 부상이다. 자료의 출처와 추계 방식은 다르지만 대체로 여러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비중은 서서히 줄어드는 반면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부상국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의 추정에 의하면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총량으로 볼 때 대체로 2030년경이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해 세계1위로 등극할 전망이다(Goldman Sachs 2007).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말로 이미 일본을 추월해 세계2위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다. 한 편에서는 미국 패권의 쇠퇴가 논의되면서도 미국을 빼고는 국제질서를 논할 수 없다는 시각도 건재하다. 독일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발행인 요제프 요페는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미국의 패권 쇠퇴설을 10년마다 되풀이되는 근거없는 유행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미국의 힘과 사명감을 대신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현실엔 변함이 없다며 이런 미국을 ‘디폴트 파워’(default power)라 규정했다. 즉, 미국은 국제 질서의 기본 축인만큼 미국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논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에 따르면 2008년 미국은 국방비로 6070억 달러를 썼다. 전 세계 국방비의 약 40%에 해당하는 이 액수는 2~10위 국가들의 국방비를 다 합친 것(4767억 달러)보다 많았다. 요페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을 위협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부유해지기 전에 늙어버릴 것이라고 요페는 내다봤다. 유엔 '세계인구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중위연령(인구를 일렬로 세웠을 때 정가운데 위치한 사람 나이)은 2005년 현재 33세에서 2050년 45세로 급격히 높아질 전망이다. 반면 미국의 중위연령은 2050년에 41세로 강대국 중 가장 젊어질 것으로 예측된다(Joffe 2009). 거기에다 각종 소프트파워까지 감안하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러한 글로벌 차원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향후 국제 군사안보질서의 유형과 미국의 대응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이하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질서의 성격 변화, 군사안보 위협 형태의 변화, 그리고 중국의 급부상과 군사현대화에 따른 미국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로 한다.


II. 21세기 군사안보 위협의 변화

 

탈냉전, 9.11, 국제금융위기 이후까지 전반적인 국제안보환경의 변화에서 핵심은 주요 행위자간 힘의 변화, 전쟁 양상의 변화, 경제구조의 변화, 지역통합으로 인한 주요 행위자의 등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머지의 부상’과 결부된 복합적 국제질서, 다중심•무중심 네트워크형 국제질서 등장은 군사안보 위협의 형태와 대응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 단극(unipolarity), 무극(non-polarity), 그리고 G2시대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G-7/8 체제는 이제 G-20 체제로 확대되었다. 시장이 세계화되면서 이제는 경제와 외교를 구분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금융과 시장은 더 이상 하위정치가 아니라 이미 상위정치(high politics)가 되었다(Burrows and Harris 2009, 35-37). 탈냉전 이후 국제정치 구조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냉전 종식 후 국제정치 학자들은 미국이 단극의 순간을 맞았다고 진단했다(Krauthammer 1990, 91). 그러한 단극체제는 ‘순간’(moment)으로 끝나고 국제체제는 새로운 질서로 변하고 있다. 단극시대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G2시대’로 서서히 이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제 세계는 무극질서에 들어섰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리처드 하스(Richard Haas)는 21세기 국제질서의 특징을 무극(non-polarity)이라고 규정한다. 그러한 질서는 하나나 둘, 혹은 여러 국가들이 지배하는 질서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힘을 가진 많은 행위자들로 구성된다. 20세기의 국제질서는 다극체제에서 시작해 양극체제로, 그리고 냉전 종식과 함께 단극체제로 이행해왔다. 하지만 국제체제 속에서 힘의 분포가 분산되면서, 무극체제는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진 여러 중심으로 구성되는 특징을 보인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미국 외에도 중국,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인도, 일본, 러시아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외견상 다극체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국제질서가 고전적 의미에서 다극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여러 개의 힘의 중심이 존재하지만, 그 중 상당수가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상 오늘날 국제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국민국가가 힘의 독점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 하스의 설명이다. 오늘날 국민국가는 위로는 지역 및 국제적 조직으로부터, 밑으로는 각종 준군사조직으로부터, 그리고 옆으로는 각종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와 기업으로부터 도전받고 있다. 요컨대,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힘은 ‘여러 곳에, 여러 손에’ 분산돼 있다(Haas 2008).


오늘날 미국의 우위는 여러 면에서 도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상대적 약화와 전반적인 반미감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대신할 라이벌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전히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간 힘의 격차가 너무 크고, 다른 한편 미국이 적대 연합 결성을 초래할 만큼 다른 나라들의 국가이익을 위협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경제활동을 위해 의존해야 하는 물자와 사람, 기술, 투자의 자유로운 흐름을 유지하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그런데도 단극체제는 끝났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역사적 요인이다. 국가가 발전하듯이 다른 조직들도 발전한다. 기술과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이들 조직의 부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둘째는 미국의 정책 때문이다. 미국은 전후 질서를 복구하면서 몇 개의 힘의 중심을 구축했는데, 그것이 미국의 힘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 원인 중 하나이다. 이라크전쟁처럼 미국의 힘을 지나치게 소진한 ‘제국주의의 과잉 전개’(imperial overstretch)도 이에 기여했다. 셋째, 국가나 다른 조직의 성장, 혹은 미국 정책의 실패 외에도 세계화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세계화는 이 세상 거의 모든 것―이메일, 마약, 온실가스, 상품, 사람, 바이러스, 심지어 무기―의 탈국경 흐름을 양과 속도 면에서 크게 팽창시켰다.

 
무극체제의 속성은 새로운 위협요인과 취약성을 낳고 있다. 이란이나 북한 같은 핵확산 사례, 에너지, 테러리즘 등은 대표적 요인들이다. 이러한 무극의 시대에 국제정치질서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네트워크시대의 국제질서는 강대국 위주의 현실주의 정치 시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양상들을 내포하고 있다.

 
국제질서의 변화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적 시각이 있다. 우선 전통적 국제정치 주류이론인 현실주의 입장, 즉 구조적 현실주의와 패권안정이론에서 국가들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 간 힘의 배분상태다. 국제 제도와 레짐은 강대국간 세력균형의 부산물로서, 국제레짐의 형성은 패권의 존재 유무에 달려있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갖고 있는 패권국이 존재하는 단극체제에서 국제레짐은 형성되고 유지되지만, 그 패권국이 쇠퇴하면 국제레짐도 쇠퇴하게 된다. 따라서 패권국은 소위 ‘안정자’(a stabilizer)로서 세계경제체제의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Kindleberger 1973, 305).


한편, 제도주의자들은 국제정치의 구조에 집중하는 패권안정이론과는 달리 국제레짐이 제공하는 긍정적 기능과 효과를 강조한다. 이들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국가들이 제도적 효용을 얻기 위해 국제레짐을 형성하고 유지한다는 기능주의적 접근법을 취한다(Keohane 2005). 따라서 다자주의의 특정 형태보다는 국가간 협력을 저해하는 거래비용과 정보비용을 감소시키는데 있어서 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다. 즉 국제제도의 형성 주체는 공통의 이익을 공유한 여러 국가들이다. 이들은 국가들의 무임승차로 인한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제제도를 창출한다. 국제제도 창설을 위한 국제협력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숫자가 임계점을 넘기만 하면, 국제제도는 형성될 수 있다. 이 임계점은 소수 국가의 연합이나 패권국의 참여로 충족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제도는 주요국가간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상황에서 패권국이 아닌 국가들의 협력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일단 형성된 국제제도는 이후 국가 행위에 영향을 미쳐 국제협력이 지속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네트워크 권력론 시각은 21세기 국제질서의 새로운 속성인 네트워크화에 초점을 맞춘다. 네트워크는 ‘이로운 협력을 가능케 하도록 서로 연결된 행위자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Grewal 2003, 89-98; 2005, 128-144; 2008). 이때 네트워크의 중심 요소는 표준(standard)이다. 표준은 한 네트워크에 속하는 구성원을 서로 연결하는 특정 방식으로서, 구성원 간 협력을 촉진하는 공유된 규범 또는 관행을 의미한다. 네트워크권력은 특정 네트워크의 표준이 그 네트워크 구성원 또는 비구성원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이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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