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석 교수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문으로는《국가연합의 재조명: 미국,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유럽연합》,《유럽연합과 규범권력》,《유럽정체성의 규범적 기초》등이 있다.

 

 


  

 

I. 들어가며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냉전이 미국과 서방측의 사실상의 승리로 종결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시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으로 믿었다. 1949년 처음 등장한 이래 나토는 약 반세기에 걸쳐 소련과 그 동맹국들의 위협으로부터 서유럽 국가들의 안보를 성공적으로 보장해 왔다. 하지만 대다수 동유럽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소련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사실상 사라짐에 따라 나토 역시 그 역사적인 소명을 다한 것으로 보였다. 애초에 동맹결성의 원인을 제공한 위협요인이 사라진 마당에 동맹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이 동맹의 존속에 대한 반대여론이 매우 높았다.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가 1990년 11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나토는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증언했을 때, 그러한 발언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서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에 팽배해 있던 나토 회의론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월츠의 그러한 증언이 있은 후 20여년이 경과한 오늘날 나토는 여전히 미국, 캐나다, 터키와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을 포괄하는 동맹조직으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나토는 단순히 그 생명을 연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내전에 개입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 탈레반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을 뿐만 아니라,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이라크 재건사업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등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나토가 공동의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을 목적으로 하는 방어동맹defense alliance이라는 본래의 존재이유를 넘어서 새로운 역할과 위상을 모색해 왔음을 의미한다. 또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의 나토 가입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발트해 3국 등 7개국, 그리고 지난 2009년 4월에는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새로운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동맹국의 숫자를 냉전 종식 이전의 16개국에서 28개국으로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역할과 외연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주적’主敵 혹은 ‘공동의 적’이 사라진 시대에 나토와 같은 동맹의 역할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그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특히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인해 불거지기 시작한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들 사이의 갈등,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다시 주장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존재, 2008년 러시아-그루지야 전쟁 등으로 인한 유럽 주변 정세의 불안정성 증대, 회원국 확대에 따른 동맹의 궁극적인 비전에 관한 견해차의 증가 등은 나토의 미래에 관한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나토의 미래를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과연 오래 창설 60주년을 맞은 이 군사동맹이 ‘외부의 적에 대한 공동의 군사력사용을 위한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동맹의 고전적인 역할 틀을 넘어 ‘다기능, 다목적 동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성공하느냐의 여부이다. 이 질문에 아직 확실하게 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나토의 모습을 희미한 형태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리처드 베츠Richard K. Betts가 지적한바 나토의 세 가지 역할을 구분해 볼 수 있다 (Betts 2009).

 

첫째, 나토는 유럽대륙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하는 국가들 간의 무력충돌이나 내전 등으로 인한 갈등상황을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해결하는데 힘을 기울여왔다. 즉, 역외域外, out of area 혹은 동맹의 경계선 밖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을 억제하거나 사전에 예방하여 불안정 요인의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나토의 주요 임무들 중 하나가 되었다.

 

둘째, 나토는 점차 자유민주주의, 시장자본주의 국가들의 연합체, 베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러한 국가들의 “사교클럽”gentlemen’s club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 왔다. 이제 나토 회원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새롭게 가입하는데 있어서 안보전략상의 이해관계 못지않게 정치적, 이념적, 상징적인 이해관계가 중요한 동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셋째, 최근 들어 나토의 동맹의제에서 러시아의 부상에 대한 견제라는 목표가 점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냉전시대에서와 같은 적대관계가 부활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탈냉전시대에서도 러시아는 나토의 “타자”他者로서 근본적인 융합이 불가능한 존재이자 견제와 통제의 대상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과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러시아의 공세적인 외교정책노선으로 인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나토의 다기능, 다목적 동맹으로의 변환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과 유럽 사이의 관계가 계속 이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냉전의 종식과 공동의 적의 소멸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1999년의 코소보 사태에 대한 개입과 2001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아프간 전쟁을 나토가 주도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군사력의 사용방식에서부터 동맹의 궁극적인 비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슈들을 두고 충돌했다. 특히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사이의 논란 속에서 동맹의 존재이유에 대한 회의론이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9년 출범한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European Security and Defense Policy, ESDP은 양자 간 관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이 공동의 외교안보정책을 통해 유럽 국가들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유럽연합의 독자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면서 나토와 유럽연합 사이의 관계설정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27개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모두가 그러한 목표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또 이들 사이에 ESDP의 성격과 목표에 관해 상당한 견해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외교안보분야에서 단일한 국제정치행위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이미 유럽연합은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분쟁지역에 개입하여 재건과 복구, 치안과 평화유지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부분적으로 나토의 역할과 중첩되면서 나토와 유럽연합의 관계,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본 장에서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냉전 종식 이후 변화하는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미국과 유럽의 동맹관계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살펴본다. 특히 오바마 신행정부의 출범과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의 도래라는 특수한 상황을 맞이하여 양자 간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를 전망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제2절에서는 1990년대 이후 나토의 변환과정을 살펴보고,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으로 예상되는 동맹의 발전방향을 전망한다. 제3절에서는 유럽외교안보정책의 등장으로 초래된 나토와 유럽연합 사이의 관계변화에 대해서 살펴보고 21세기 미국-유럽 관계의 미래를 전망한다...(계속)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