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손열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교수, 도쿄대학 외국인연구원,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연구관심은 일본정치경제,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지역주의이며, 최근 저술로는《21세기 동아시아: 경합하는 국제사회》(2009),《소프트파워의 정치: 변화하는 일본의 정체성》(2009), Japan’s East Asian Community (2009), Japan Between Alliance and Community (2009)등이 있다.

 

 


 

 

I. 서론

 

2009년 11월 오바마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면서 매력공세(charm offensive)를 펼쳤다. 천황에게 깊은 90도에 가까운 깊은 절을 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후, 산토리홀연설에서 본인이 취임 후 맞이한 첫 외국지도자가 일본수상이었으며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순방지를 아시아로 정한 것은 50여 년만이며 일본이 그 첫 번째 방문국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이어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국가이며, 자신은 태평양적 정체성을 갖고 있고, 미일관계는 “불멸의 동반자(indestructible partnership)”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미일관계가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초석으로서의 군사동맹의 동반자를 넘어서 경제회복과 균형성장, 기후변화, 비확산, 인간안보 등 지구적 이슈영역에서 협력을 심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Obama 2009).

 

여기까지는 과거 부시정부의 대일정책과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속에서 일본의 지위는 변화하고 있다. 부시의 미일동맹이 동아시아외교의 초석(cornerstone)이었다면 오바마는 기존의 동맹이 갖는 한계를 인식한 위에서 복합적인 지역전략을 구사하고자 한다. 그는 중국과의 동반자관계를 강조하면서 이것이 일본과의 동맹약화를 의미하지 않음을 덧붙이고 있다. 나아가 아세안 및 APEC란 다자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또한 군사와 경제를 넘는 소프트파워적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이는 아태담당 국무차관보인 켐벨(Campbell 2008)의 이른바 “균형력(power of balance)”이란 개념으로 이해된다. 미국은 근대적 의미의 세력균형을 넘어 서로 다른 이슈영역간의 균형, 양자와 다자간의 균형,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균형, 다양한 행위주체에 의한 균형을 이루어 가고자 한다. 동아시아관계에 있어서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보다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전략구상의 이면에는 그간 부시의 미국이 대테러전 수행과정에서 보여준 하드파워 중심 전략의 한계가 노정되어 오면서 소프트파워적 관점에서 새롭게 동맹의 의의를 찾게 된 측면이 있다(Armitage and Nye 2007b). 군사력에 대한 과도한 경사가 초래한 부작용을 치유하려는 모색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2008년 9월 서브프라임 위기를 계기로 추락하고 있는 미국의 하드파워(경제력)의 영향이다. 미국은 대공황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자국경제 추스르기에도 바쁜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하드파워의 여력이 축소되는 속에서 이를 소프트파워로 보전하여야 한다. 2007년까지 미국의 소프트파워론이 하드파워의 과잉을 소프트파워로 보완(complement)하려는 담론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면 불과 1년 후인 2009년 초의 소프트파워론은 하드파워의 쇠퇴를 메워나가야 하는 기울어가는 초강대국의 아쉬운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클린턴의 스마트외교(Clinton 2009a), 게이츠의 균형전략(Gates 2009), 그리고 캠벨의 균형력(2008)이 이런 고민 속에서 등장한다. 미국은 동맹국 및 기타 우호세력과의 협조를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양자 및 다자적 전략적 관계를 균형적으로 활용해 가려는 사고가 상대적으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삼중의 고민을 안고 있다. 첫째, 동아시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미국의 능력과 의지가 초래하는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 즉,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전략적 관계구상에 대비하여야 한다. 이는 미국이 부과하려 하는 더 많은 역할과 부담, 혹은 반대로 미국의 일본통과하기(passing)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둘째, 이 고민은 21세기 들어서면서 일본이 부딪치고 있는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이 그 핵심이다. 이질적 정치체제인 데다가 역사문제로 정체성의 갈등상황을 연출해 온 상대가 일본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양국간 경제역전은 사실상 초읽기에 접어들었고, 군사비는 역전을 넘어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이다. 끝으로 일본경제는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수출시장이 축소되면서 상상외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드파워의 상대적 쇠퇴가 완연한 만큼 외교적 수단의 제약을 안고 있다.

 

일본이 20세기초 영일동맹적 발상으로 21세기에 미일동맹을 활용해서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 일본은 한편으로 당시 세계패권국인 영국과 동맹을 맺고, 다른 한편으로 부국강병을 일관되게 추구하여 러시아를 꺾고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반면, 21세기 동아시아의 전략환경은 국제정치의 단위체와 장場의 속성이 달라 전통적 균세와 자강의 전략으로 성공을 이끌기는 불가능하다 (하영선 2006). 21세기 핵심국가로서 미국은 동아시아를 국민국가라는 노드node 중심의 전통적 세력균형 혹은 전통적 상호의존의 장을 넘어서, 다양한 행위자(노드)가 다양한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수평적이고 유연하며 다층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집합체로서 인식하고자 한다. 이러한 장에서 미국은, 균형력적 표현을 빌리자면, 통합(integrating), 혁신(innovating), 투자(investing)로 엮는 아시아네트워크(iAsia)의 건설자(designer)인 동시에 운영자(administrator)를 지향하고 있다 (Campbell 2008, 25-26). 여기서 동맹은 새로운 의미를 띤다. 전통적 동맹이 노드의 크기와 속성에 따라 형성되는 제도이라면, 새로운 동맹은 노드와 링크를 엮어가는 네트워크적 발상 하에서 상이한 속성의 행위자들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조정하고 규율하는 복합동맹네트워크로 규정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미국은 일본과 군사, 반테러, 경제, 환경, 에너지의 영역에서, 또한 양자, 지역, 지구의 층위에서 복합적 동맹을 추구하며, 동시에 다자관계도 균형적으로 활용하는 네트워크적 동맹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은 보다 복합의 네트워크 속에 새롭게 위치되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 장기집권체제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하또야마 민주당정권은 새로운 전략환경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에 놓여있다. 민주당정권은 근대적 동맹만으로 21세기를 헤쳐갈 수 없다. 대안으로서 하또야마는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 동아시아공동체의 추진이란 새로운 외교전략을 선보이고 있다(Hatoyama 2009). 그러나 단순히 동맹에서 공동체로의 상대적 이동으로는 21세기 동아시아를 헤쳐가기 어렵다. 동아시아는 복잡한 공간이므로 보다 복잡한 사고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동맹을 모색해야 한다.

 

이 글은 일본이 당면한 21세기 전략환경 하에서 추진해 온 동맹정책의 변화와 그 요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다음 절은 일본이 마주한 전략환경을 기술한다. 그 핵심은 중국의 하드파워적, 소프트파워적 이중 부상에 따른 위협인식이다. 제3절은 동맹에 대한 일본 국내의 서로 다른 인식 속에서 특정 전략이 부상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미국과의 동반 변환,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이 주 사례가 될 것이다. 제4절은 두 전략의 결과로서 재균형의 과제, 하토야마정권의 대응을 전망하고자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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