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술로는《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독교적 현실주의 국제정치사상》,《현실주의 국제제도론을 위한 시론》,《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둘러싼 미국의 대한(對韓)정책》등이 있다.

 

 


 

 

I. 서론

 

인간 집단이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집단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어온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누가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동맹을 맺는 정치적 주체가 누구인지, 동맹을 맺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군사기술의 수준은 어떠한지 등에 따라 군사적 동맹관계의 형태와 내용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유럽의 지역질서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근대 국제정치에서 군사적 동맹은 군사력을 독점하고 있는 근대 국민국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근대 국제정치의 단위인 근대국가가 전쟁국가, 경제국가, 식민지국가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때, 군사력의 운용을 둘러싼 제반 정책이 국민국가의 결정에 달려있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주권을 소유한 국민국가들이 무정부상태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근대국제정치에 고유한 현상이며, 근대 이전과 이후의 동맹은 현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근대 국제정치에서 국가들이 동맹을 맺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력균형이다.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국가 이상의 국제제도가 부재한 상태에서 국가들은 자력구제의 원칙에 의해 안보를 추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타국과의 군사동맹을 통해, 공격국가, 혹은 패권국가로부터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30년 전쟁을 마감한 베스트팔리아조약에서 국민국가의 영토군주들은 자국을 통치하는 제반 자율성을 획득해나가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동맹체결권을 확보하게 된다. 이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동맹은 여전히 국민국가들에 의해 체결되고, 종식되고, 기능하고 있다.

 

21세기 초 세계에는 다양한 동맹들이 존재하고 있다. 지구 군사적 차원에서 미국의 유일지도체제가 지속되고 있고,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세력은 현재로서 사실상 존재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21세기 동맹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냉전 시기까지 첨예하게 존재하였던 미소 양대진영의 세력균형과 이에 기반한 동맹체제의 논리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가? 즉, 미국이 유일패권체제를 확립한 현재, 군사적 세력균형의 논리는 작용하지 않으며, 지금의 동맹체제들은 미국의 세력에 편승하여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이익균형의 동맹들로 구성되는가? 그렇다면 현재의 동맹들은 명시적 적을 상정한다기 보다는 군사적 위협 대응 이외의 다른 정치적 목적을 도모하고 있는가?

 

본 장은 근대 국제정치체제 하 동맹의 역사를 이론적 관점을 고려하여 살펴봄으로써 현재에 제기되고 있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부분적으로나마 구해보고자 한다. 본 장이 동맹의 역사적 개관을 통해 보이고자 하는 바는, 첫째, 21세기 초 미국의 군사적 단극체제가 지속되고 있더라도, 미국의 패권성에 대한 균형의 필요성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며, 향후의 사건 전개에 따라 미국에 대한 균형정책에서 파생되는 동맹결성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지구적 군사단극체제 하에서 지역적 세력균형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모든 지역적 분쟁에 미국이 군사적 균형자로 기능할 수 없는 만큼, 지역적 차원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동맹체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셋째, 탈냉전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국민국가 이외의 세력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목적들이 부각되기 시작하였으며, 일부의 목적들은 군사적 수단과 결합되었다. 9.11 테러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테러집단과 같은 비국가적 군사집단들은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를 군사적 위협으로 삼는 국민국가들은 테러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적 동맹을 지속할 필요를 느낀다.

 

넷째, 현재의 세력배분구조는 미국의 군사적 단극체제가 분명해 보이지만, 중국 등 새로운 강대국들이 경제적으로 부상함으로써 세력전이(轉移)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상한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세력배분구조를 형성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상황에서, 예방적 군사동맹을 유지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즉, 향후의 세력배분구조에 대한 예측불가능성, 혹은 불확실성 자체가 균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질서에 순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측불가능하고 불리할 수 있는 배분구조의 등장을 막기 위해 부분적으로 현재의 동맹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군사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군사적 기술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 군사비의 40% 이상을 지출하고 있지만, 군사기술의 연구발전비는 세계 비용의 80% 이상을 지출하며, 군사기술의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군사적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 주도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다.

 

여섯째,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와 같은 대조류로 인하여 국제정치 자체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데,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국민국가의 모든 정책에 대한 국내, 국제적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증가한 것이다. 예전에 외교정책 일반, 특히 군사정책에 관한 정부의 결정은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비판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와 정보화된 정치환경에서 정부가 모든 결정을 공개적으로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여론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강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이 국제정치에 대해 도덕주의적, 자유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띰으로 인하여, 국가들의 동맹정책은 단기적 군사이익 보다는 국가들 간의 가치정향의 일치성, 외교정책의 정당성 등이 더 중요한 결정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동맹은 상호 간의 가치의 일치, 신뢰의 정도, 정당성의 요소를 고려하여 결성되고, 유지되고, 또 종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상에 걸쳐 매우 서서히 일어났으며, 사실 탈냉전기 동맹의 변화는 급작스러운 부분이 많다. 본 장은 17세기 이후 유럽과 세계의 동맹체제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개괄함으로써 현재 일어나고 있는 동맹의 변화를 더 명확히 보여주고자 한다...(계속)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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