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FTA 정책은 단순히 대외경제정책의 한 부분이 아니다. 이것은 우선 국가의 경제선진화 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대외개방과 국제경쟁력 증대를 통한 경제선진화를 추구하자면 적극적인 FTA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내적 저항이 따르겠지만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어 극복해 나가야 한다. FTA 정책은 국가의 대외전략과도 긴밀히 연관돼 있다. 어떤 나라와 어떤 수준의 FTA를 언제 체결할 것인가는 국가의 대외전략 및 지역질서의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FTA는 역내 회원국들 사이의 교역과 협력을 증진시키는 반면에 역외 국가들은 차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FTA 등 지역협력의 추구가 활발하다. 1997년의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달라진 모습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적극적 노력이 지역협력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동북아 3국으로 구성된 ASEAN plus Three (APT)의 역할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역내 국가들 사이의 쌍무적 차원에서나 하위 지역적 차원에서 FTA 체결 등 지역협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역협력의 경쟁적 추구 이면에는 각 국가들의 경제적 이익확보와 영향력 증대를 위한 시도가 깔려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경쟁과 한국과 ASEAN의 동아시아 지역협력 네트워크의 허브역할을 위한 노력이 두드러진다. 물론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역할도 중요한 변수이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구체적 모습은 각 행위자들의 이러한 노력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서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중견 산업국가로서 한국이 어떠한 선택을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와 지역질서의 미래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한국의 FTA 정책을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한 최초의 정부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칠레와의 FTA 협상이 타결되고 일본과의 FTA 협상을 위한 기초가 마련됐지만 FTA 정책은 어디까지나 대외경제정책의 덜 중요한 한 부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 들어와 한․칠레 FTA의 국회비준과정을 거치면서 FTA 정책추진에 필요한 기본적인 틀이 완성되었다. FTA 로드맵이 공표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체계가 마련되었다. 그결과 싱가포르, EFTA와의 FTA 협상이 타결되었고, 일본, ASEAN, 캐나다와의 협상이 진행 중에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나라들과 FTA 체결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참여정부의 FTA 정책은 짧은 기간에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FTA 정책은 보다 큰 틀에서 상당한 비판도 역시 받을 수 있다. 첫째, FTA 정책의 비효율성이다. 대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추진되고 있는 FTA 정책이 소규모의 개방경제들과의 FTA에 그치고 있는데다가, 구조조정을 통한 국제경쟁력 증진이 확보되지 않고 있어 개방에 대한 저항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둘째, 대외전략 목표의 상충성이다. 참여정부는 동북아 협력과 한국의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을 국정목표로 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무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의 FTA 정책은 범세계적 수준에서 추진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제외교보다 안보외교가 우선시되는 한국 외교정책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FTA 정책이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비현실적인 동북아 경제중심의 국정목표가 FTA 정책의 적극적 추진에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FTA 정책의 비전략적 접근이다. FTA가 경제외교와 안보외교를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고려할 때, 국가의 경제이익과 안보이익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추진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FTA 추진의 근본적인 목표나 방향에 있어서 일관성을 결여함으로써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예컨대, FTA 추진의 우선적인 목표가 동북아 협력인지, 동아시아 협력인지, 아니면 범세계적인 수준에서의 네트워크 구축인지 분명하지 않다. 물론 이 세 차원에서의 협력이 함께 추구될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우선순위의 설정은 필요하다.

한국의 FTA 정책, 나아가 대외통상전략 및 국가발전전략이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기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통상국가로의 발전방향에 관한 기본적인 합의가 국민과 정치세력들 사이에 형성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합의를 위해서는 개방에 따른 수익과 피해를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이를 정책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한다. 둘째, 대내외 협상의 목표와 대비책이 그러한 발전전략을 뒷받침해야 한다. 기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합의가 현실적으로 구속력을 갖기 위해서는 개별 협상의 목표와 전략이 그러한 합의에 비추어 설정되고 추구되어야 한다. 셋째, 통상국가 발전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통상정책결정 및 집행의 기구가 설립돼야 한다. 경제외교와 안보외교의 관계설정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틀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력 증대와 더불어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역할과 책임도 증대되었다. 한국은 더 이상 극빈개도국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국제질서를 좌우할 수 있는 강대국도 아니다. 이상적인 대외정책목표를 설정하는 것 보다는 변화하는 국제관계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국익을 현실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목표의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북아 공동체나 동북아 경제중심과 같은 목표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보다 중요한 대외정책의 추구에 필요한 관심과 역량을 허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

정진영, 경희대학교 교수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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