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한․미 양국은 현재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한에 대한 위협인식의 격차를 비롯하여 한국민의 민족주의 성향 증대, 미국의 세계전략 수정에 따른 동맹관 변화 등 한미동맹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러한 도전요인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미동맹이 처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유연성과 작전계획 5029를 둘러싼 논란은 양국의 시각차를 잘 드러내는 사안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지난해 말부터 FOTA를 대신하여 한미 안보정책구상회의(SPI)를 출범시켜 동맹의 미래를 연구하고 있지만 동맹의 미래를 결정할 청사진은 아직 상당 부분 미완성이다.

 

 


한미동맹의 골간인 주한미군은 현재 본격적인 조정과정을 겪고 있다. 한․미 양국이 최종 합의한 주한미군 감축계획의 골자는 이라크전 지원을 위해 차출된 미2여단전투단을 포함한 주한미군 12,500명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3단계에 걸쳐 감축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양국은 용산 기지 이전과 미 2사단의 오산․평택 이전까지 합의하였다. 이로써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동맹 재조정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한반도 안보환경은 현재 제2차 북핵 위기로 인해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안보에 일익을 담당해온 미국의 안보 기여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왜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과 동맹조정이라는 중요한 변화를 추진하는 것일까?


한미동맹의 최근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사안은 아니다. 실상 미 국방부는 냉전이 끝난 직후부터 전 세계적인 미국의 동맹정책과 해외기지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으며, 그 과정은 9.11 테러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국제안보환경에서 변화의 핵심은 안보위협의 유형과 종류가 전통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벗어나서 확대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안보위협의 주체도 각종 비국가 행위자로 확대되면서 국제관계의 설정과 관리가 과거와는 다른 접근을 요한다는 데 있다. 특히 대량살상무기와 대규모 테러 등 각종 비대칭 위협은 21세기 안보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군사전략이며, 전 세계적인 미군의 해외기지 조정과 동맹 네트워크의 재정립은 새로운 군사전략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냉전기를 통해 미국의 군사전략은 냉전의 최전선에 전진 배치된 대규모의 군대에 일차적인 중요성을 두었다. 그러나 탈냉전기의 군사전략은 거점 위주의 방식보다는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안보전략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첨단기술을 적용한 첨단군사력 건설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첫째는 군사혁신과 군 변환 연구이다. 군사혁신은 첨단정보기술을 군사력에 응용하여 조직과 교리까지도 바꿈으로써 전쟁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의미를 지닌다. 군 변환은 군사혁신을 실제로 적용하여 군대의 체질을 바꾸는 과정으로서 첨단 정보과학기술을 응용하여 산업사회 군사력을 정보화 시대 군사력으로 전환하고 냉전기 군사태세를 탈냉전기 군사태세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이다.


둘째는 네트워크중심 전쟁(network- centric warfare) 개념이다. 네트워크중심 전쟁은 네트워크 컴퓨팅(network- centric computing)과 마찬가지로 전 지구를 엮는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여하한 플랫폼이라도―전함, 비행기, 육상전투차량, 혹은 심지어 말단 보병에 이르기까지―언제든지 네트워크에 로긴하여 데이터의 업로드, 다운로드를 자유로 구사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무기체계들이 전장공간 내 어느 곳에 위치하든 간에 네트워크상에 존재하기만 하면 신속하게 효과 위주의 집중공격에 참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동과 수송 소요도 대폭 줄일 수 있으며 전투참여 요원들이 공통으로 보유하는 지식이 많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되면 각 플랫폼이 무엇이냐 보다는 그것들이 어떻게 합동작전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다.


셋째, 최근의 미 군사교리는 신속결전작전(RDO: Rapid Decisive Oper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신속결전작전에서는 입체성, 통합성, 정확성, 기민성 등이 강조되며, 미래전의 양상이 순차적이 아닌 동시병렬적 공지합동작전으로 치러질 것임을 보여준다. 미 합참 자료에 의하면 신속결전작전은 미래전을 위한 합동작전개념이다. 신속결전작전은 지식, 지휘통제, 효과 기반 작전(effect-based operations)을 결합하여 원하는 정치․군사적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신속결전작전에 의해 미국과 동맹국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적이 저항할 수 없는 방향과 차원에 걸쳐 비대칭적 공세를 펼쳐 작전의 조건과 템포를 주도하게 된다.


네트워크 중심전쟁 개념과 신속결전작전은 이미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통해 그 위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첨단기술 전쟁만이 미래의 전장을 지배할 유일한 변수는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미래의 전쟁은 첨단전쟁과 재래식 전쟁이 혼재하는 양상이 될 가능성이 크며, 비록 해․공군력과 정밀무기가 전세의 큰 흐름은 주도한다 하더라도 전쟁의 종결에는 여전히 소총 든 보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은 변화된 안보환경과 군사교리에 입각하여 새로운 동맹의 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새로운 동맹개념의 핵심은 과거와 같이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고정된 지역적 동맹이 아니라 임무에 따른 유연한 연합과 연합국을 엮는 다차원 네트워크이다. 새로운 동맹개념에 부응하여 미 국방부는 점에서 선으로, 그리고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군사안보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이 추구하는 변화는 하드웨어적 측면에서는 첨단 IT 기술에 기반한 군사혁신과 군 변환으로 나타나고,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는 동맹국/기지 정책의 네트워크화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안보환경에 대처하는 미 군사력 변환은 동맹 네트워크, 군사역량, 그리고 글로벌 방위태세 세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방위태세 재편은 GPR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의 입장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글로벌 방위태세 조정과 그에 따른 동맹 네트워크 재편이다.


첫째, 글로벌 방위태세 조정은 미군의 해외배치를 새로운 안보환경의 실정을 정확히 반영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냉전기 동안 미국은 적과 대치한 최전선에 요새화된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켜 적을 억지하고 동맹국 방어의 의지를 과시하며 적대행위 발생시 현장에서 즉시 대응하는 전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군은 변화하는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여 전개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의 대규모 영구기지에 덜 의존하는 대신 소규모 시설을 순환하는 배치방식을 따를 것이다.


둘째, 새로운 글로벌 방위태세의 핵심은 반테러 전쟁과 미래의 위협에 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다. 이를 위해 기존의 동맹관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새로운 동맹관계를 창출하고, 과거의 비우호적 국가들에게도 손을 내미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셋째, 글로벌 방위태세 조정과 함께 지속적인 군 변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과거 미군은 대규모 군대와 싸울 목적으로 편성되었으나 이제 소규모 테러 네트워크와의 싸움처럼 기민한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덩치 크고 둔한 사단보다는 작고 모듈화된 여단, 첨단 통신, 제대간 합동성 및 통합, 그리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정이 더 선호된다. 네트워크중심전쟁과 합동 및 연합작전은 새로운 시대의 전쟁에서 필수적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알 수 있는 바는 21세기 군사안보환경에서 갈수록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증대되리라는 것과 미국의 군사전략이 그에 부응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양상에서 21세기의 군사안보는 국가 대 네트워크의 전쟁양상으로 변화할 것이며, 전쟁의 지배적인 양상은 여전히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만 갈수록 전쟁에서 네트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으로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미국 군사전략의 변화는 한국의 안보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에 대한 포괄적 이해는 매우 중요하며, 새로운 군사전략에서 네트워크 특징이 드러나는 측면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21세기 제국의 네트워크 전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 또한 해외주둔정책 변화, 동맹국 정책의 변화, 대테러․반확산 연대의 구축 등 초강대국의 압도적 힘으로도 풀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군사안보전략의 네트워크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입장에서는 몇 가지 자문할 문제가 있다.


첫째, 우리는 왜 미국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며, 미국은 또 왜 한국과의 동맹을 필요로 하는지 냉철한 검토가 필요하다. 적어도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되기까지는 한미동맹은 유사시 한국의 군사안보역량을 보완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점차 가시화되는 중․러의 미국 영향력 확대 견제 움직임을 감안할 때 한미동맹은 미․일 안보협력을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미동맹은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한미동맹은 적어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긴밀히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한미동맹의 배타성, 특히 중국을 포위하는 것으로 비쳐질 우려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향후 동맹의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둘째, 미국 군사안보전략의 세계적 변환을 염두에 둘 때 한미동맹의 과제는 무엇인가? 동맹조정의 과도기에 처하여 우리가 유념할 사항은 우선 한미동맹의 상호운용성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향후 한․미 양국은 동맹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비록 미2사단의 한강 이남 이전으로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은 소멸되었지만 ‘신뢰의 인계철선’은 유지되어야 하고, 21세기에 제대로 기능하는 동맹이 되기 위해서는 양국 군대가 상호운용성 개념 아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미국의 21세기 군사혁신의 구체적 표현인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단순히 자주 국방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국 군사혁신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한미군 재배치는 걱정만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이제는 우리도 한국형 군 변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한국이 미국과 같은 첨단기술 위주의 군 변환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한국이 우리의 처지에 맞는 군 변환을 추구하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우선순위에 대한 점검이 시급하다.


넷째, 갈수록 네트워크화하는 국제안보환경에서 우리는 어떤 네트워크를 주도해야 하나? 한미동맹이라는 큰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어떤 그물망을 쳐야 앞으로의 안보환경에서 우리의 생존을 확보하고 평화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미국 주도의 그물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맹강화의 이익이 동맹완화의 위험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의 세계는 국제정치의 힘센 행위자들이 이중 삼중으로 쳐놓은 거미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환경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 중심의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경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이 살아갈 미래 환경은 한국 국내와 한반도, 동북아, 글로벌 차원에서 얽히고설킨 복합적 그물망의 시대이다. 우선은 미국이 쳐놓은 그물망을 잘 활용하고, 한반도 주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능력대로 독자적인 그물망을 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북아에서는 당분간 점차 가시화되는 중-러의 군사 안보협력 강화에 미일동맹이 맞서는 구조가 추세이겠지만, 복합적 그물망 시대에 그것을 양자택일의 구조로 규정하여 우리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우리 스스로 남을 얽어매는 거미줄을 칠 능력이 안 된다면 남이 쳐놓은 그물망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국처럼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국가의 생존을 위한 지혜가 될 것이다.


저자

이상현, 세종연구소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세부사업

국가안보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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