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려는 대통령은 어떻게 국정 운영을 할까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의 제2장 ‘권한은 나누고 장기적 안목으로 국정을 운영하라’의 저자인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사회 정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통령이 단기적 지지율이 아닌 역사적 평가를 목표로 일하길 제안합니다. 근시안적 정책 추진은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정책 수립의 단계를 확인하고 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계속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나눌 수 있는 제도적 규정이 필요하며 대통령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언론과 국민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됩니다. 저자는 대통령이 임기 중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길 권고하며, 과거 경제개발 시대를 거친 한국이 앞으로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경제 분야의 예산과 기능을 조금 낮춰 사회통합 과제에 좀 더 힘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1.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려면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바라는 바는 단순하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공동체의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고, 사회적인 안정을 이루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 가정과 개인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공동체와 개인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국정 운영을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대통령은 무엇보다 경제사회 정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 경제사회 정책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도 당연하게 좋은 경제사회 정책 수립을 위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또한 이것이 가능토록 제도적 기반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좋은 정책 수립의 조건은 무엇일까? 좋은 정책 수립을 단계별로 짚어보자. 정책 수립은 ‘정책 의제 설정’⇀‘정책 목표와 시계 설정’⇀‘정책 수단의 선택’⇀‘정책 결정’⇀‘집행 및 점검’의 5단계를 거친다. 따라서 가장 먼저 정책 수립의 각 단계별로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알아보자.

 

정책 수립의 단계를 잘 거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와 더불어 좋은 정책 수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다음에는 좋은 정책 수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대통령 임기 이후에도 남아, 다음 대통령의 성공에도 도움이 된(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제도적 기반은 먼저 정부가 수행할 기능을 설정하고, 그다음으로 그 기능을 수행 주체별로 배분한 후, 최종적으로 이를 작동시키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면 <표1>과 같다. 이번 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총 8가지 단계별로 나누어 그 성공조건을 제시하면서 상세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2. 좋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을 설계하라

 

첫째, 의제 선택의 적기를 고려하라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초기에는 통상 국민의 지지가 높을 때이다. 바로 이때가 개혁을 추진할 적기이다. 특히 20대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5월 10일에 시작하는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나는 2023년 중반이 되면 2024년 4월의 22대 총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기적 특성을 고려하면 갈등을 크게 유발하는 개혁은 취임 후 1년 안에 실행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취임 후 장관 등 주요 정무직을 임명하고 새로운 과제를 발굴하여 실행 계획을 세우려면 1년이란 기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표1> 경제사회 정책의 성공조건을 찾기 위한 접근 방법

 

분야

단계

8가지 성공요인

정책 수립 성공조건

정책 의제 설정

임기 중 의제 선택이 중요하다.

목표와 시계 설정

단기적 지지율이 아니라 역사적 평가를 목표로 하라.

정책 수단 설정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라.

정책 결정

총괄 조정 기능을 강화하라.

정책 집행

집행을 점검하고 효과를 측정하라.

제도적 인프라 구축 성공조건

기능의 설정

정부가 할 일, 그만할 일을 먼저 설정하라.

기능의 배분

대통령의 힘을 나누어라.

기능의 작동

개혁의 추진 체계를 만들어라.

 

이미 대선 공약에 포함된 과제는 실행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공약은 대부분 캠프에서 만들어진다. 정당에서 오랜 숙성을 거쳐 만든 것이 아니라 소수의 머리에서 나와 깊은 고민 없이 만들어진 공약도 있다. 큰 부작용, 낮은 실현 가능성 등을 알면서도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여 포함한 공약도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후보의 공약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100대 국정 과제’ 등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2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많은 과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는 어렵다. 인수위에서는 기본 방향만 결정하고 대통령 취임 후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를 거치면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이 조율 과정에서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데 그러자면 임기 초반에 많은 과제를 동시 추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임기 초반에는 어려운 과제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바로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국민이 모든 공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이 한 표를 행사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대체로 한두 가지가 투표의 방향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특정 공약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더 중요한 이유로 한 표를 던진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선 승리가 모든 공약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점차 낮춘다는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는 원전 비중 축소를 기정사실화하고 신고리원전 건설 여부에 대해 국민의 뜻을 물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진 국민이 모두 원전 비중 축소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신고리원전 건설을 묻기 전에 탈원전 여부를 국민에게 물었어야 했다. 신고리원전은 건설을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탈원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아직 없다. 이 문제는 차기 20대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에 따라 재검토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기업 민영화를 공약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대선 압승을 바탕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국민들은 공기업 민영화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었다.[1] 그러나 그 이후의 양극화 심화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의견은 부정적으로 변해 갔다. 당시 청와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지분 매각이 민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이를 민영화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야 공약을 달성한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그러나 당시 민영화 프레임이 공약 추진에 불리하다는 점을 몰랐다. 시대가 변하면 민심도 변하며 국민이 공약 모두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임기 초반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나라 살림을 튼튼히 한다는 관점에서 임기 초반에 할 일 중 재정 개혁을 강조하고 싶다. 임기 초반에는 정부조직 개편 등 하드웨어 구축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재정 개혁에 소홀할 가능성이 크다. 재정 개혁을 추진하기 전에 증세를 위한 국민의 담세 의식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지출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자신이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고 안심한다. 또한 정부가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 무상으로 제공하기보다는 바우처로 지원해야 복지 지출도 줄이고 복지 체감도도 올릴 수 있다. 끝으로 자영업자와 전문직의 소득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세정이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면 세금 낼 마음이 사라진다. 담세 의식 강화를 위한 이상의 개혁은 단기간에 완결되지는 않으므로 재정 개혁과 동시에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보험 개혁도 필요하다. 현재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은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2] 국민연금은 지금까지는 흑자이나 장차 국민 부담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사회보험의 적자 구조를 바로잡아야 증세도 최소화 할 수 있다.

 

한편 임기 말로 갈수록 정치적 부담이 큰 의제를 추진하기는 어렵다. 이때에는 공무원 내부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1~02년 중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역량을 집중한 것이 그 예이다. 임기 말의 의제 설정에 고려해야 할 점은 신구 대통령 간 암묵적인 협력이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할 일은 다음 대통령이 수행할 과제를 준비하거나 미리 분위기를 띄워 놓는 것이다. 그래야 차기 대통령이 개혁의 적기인 임기 초반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전임자인 슈뢰더 총리의 개혁을 계승한 덕에 유럽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었다. 우리도 이명박 정부에서 철도 경쟁 도입을 추진하다가 박근혜 정부에 와서 수서발 SRT로 결실을 본 사례가 있다.

 

둘째, 당장의 지지율이 아니라 역사적 평가를 목표로 하라

 

인기는 없지만 꼭 필요한 개혁이 있다. 국민연금 개혁, 호봉제 폐지, 기업 구조 조정 등이 그 예이다. 국민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은 대통령은 없 을 것이다. 더구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연금 개혁을 추진하다 지지율이 떨어져 정권을 내준 사례는 개혁을 추진하려는 대통령을 더욱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단임 대통령제의 장점이 있다면 재선 걱정 없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장점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인기 없는 개혁을 추진하는 지도자는 재임 중에는 낮은 지지율을 겪을지 모르나 역사는 그의 소명 의식을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짧은 안목으로 단기적인 지지율에 집착한다면 인기 없는 개혁은 추진하기 어렵다.

 

단견 대통령은 국가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당장 성과가 나 올 일에만 열중한다. 예컨대 한국형 뉴딜에서 보는 것처럼 장기적 시야로 추진하여야 할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도 고용 창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연구에는 기초⇀응용⇀개발의 세 가지 단계가 있는데 개발 연구는 상품화와 직결되어 있어 단기적인 고용 창출 효과가 가장 크다. 반면 기초 연구는 대체로 대학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학에 위탁하는 연구 개발은 고용이 늘어나지 않아 홀대받는다. [3] 결국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과정에서 기초 연구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선도 국가로 도약하려면 국가는 기초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단견에 사로잡혀 연구개발의 목표를 일자리 창출로 설정하면 선도 국가는 요원하다. 더구나 기업에 대한 지원이 혁신으로 연결되기보다는 눈먼 보조금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단견이 초래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단견 대통령의 또 다른 특징은 재정 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자란 미래의 소득을 당겨 쓰는 것인데 5년 동안의 치적을 위해 미래 세대의 소득을 잠식하는 국정 운영은 옳지 않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한 적자는 한시적이나 사회보장으로 인한 적자는 고착화된다. 한번 시 행했던 복지는 철회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GDP 대비 재 정 적자 비율이 3%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2019년에 이미 2.8%를 기록해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2020년부터 3%를 넘겼을 것이다. 많은 유럽연합 국가가 2024년엔 3% 이내를 회복할 것으로 보이나, 우리의 2024년 목표는 4.3%이다.

 

물론 사회복지 지출이 증가하는 추세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단기적 인기에 영합하는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부 국민에게만 제공하는 선별 복지는 비수혜 계층으로부터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 복지는 조세부담률이 높은 국가에서나 가능한 모델이다. 한국과 같이 조세부담률이 OECD 평균에 미달하는 국가에서는 심각한 재정 적자를 초래하게 된다. 기본 소득이 그 예이다. 모든 성인에게 월 50만 원, 18세 이하엔 30만 원을 기본 소득으로 보장하려면 29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는 2021년 국가 본예산 558조 원의 52%에 해당한다. 다른 지출을 대폭 줄여 충당한다는데 의무 지출이 4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 가능성이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근간으로 그 수혜 계층과 지급액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해답이다.

 

시야가 짧다 보면 목표를 잊고 그 수단을 관철하는 데에 몰두하게 된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의 목표는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고용 규모와 평균 임금을 곱한 수치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단견 대통령은 당장 눈앞의 목표인 평균 임금을 올리기 위해 최저 임금 인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고용을 감소시킨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후에도 자리를 계속 지키는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겠으나 실직자의 삶은 완전 피폐해진다. 최저임 금의 인상률은 전체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는 수준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2018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수단 달성을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고용이라는 더 중요한 목표를 망각한 결과이다.

 

셋째,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라

 

대통령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을 보완해야지, 시장을 대신하면 안 된다. 시장의 핵심은 재산권과 가격이다. 물론 재산권은 공공의 필요에 따라 제한할 수 있으며 정부가 가격에도 간섭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범위를 너무 넓게 해석하면 시장 원리를 거스르게 된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시장균형에 비해 과도하게 높게 책정될 경우 고용 축소라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위 임대차 3법을 통해 전세 가격에 개입하였다.[4] 이런 규제가 생기면 법의 발효 전에 계약을 갱신한 세입자는 혜택을 보지만 신규 세입자나 재계약을 하지 못한 기존 세입자는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전세 물량이 줄면서 신규 전셋값이 폭등하기 때문이다. 분양가 상한제 역시 투기 수요를 유발하는 반면 아파트 공급은 감소시킨다. 장기적으론 아파트 가격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

 

대학과 지방정부에 대한 과도한 통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대학과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의존하게 만든 후 재정 지원을 무기로 이들을 통제하고 있다. 낮은 등록금으로 대학이 재정난에 직면하자 정부는 재정 지원을 평가와 연계하여 대학을 통제한다. 그러나 대학의 변화 혹은 퇴출은 교육부가 아니라 수요자의 몫이다. 지방대학을 돕고 싶으면 지방대 학생에게 장학금을 확대하면 된다. 소비자의 선택을 평가로 대신하는 것은 시장을 이기려 하는 시도이다.[5] 지방정부도 자율적 결정으로 사람과 기업을 유치하는 경쟁을 시켜야 하는데 행정적, 재정적으로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이 심화 되고 있다. 경쟁을 통해 대학과 지방정부가 커나가도록 해야 한다.

 

시장 지향적 정책의 대명사는 규제 개혁이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추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규제 전봇대’, 박근혜 대통령의 ‘손톱 밑 가시’, 문재인 대통령의 ‘붉은 깃발’이 그 예이다. 그러나 그 어떤 개혁 방안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2021)의 국가 경쟁력 순위를 결정하는 20개 평가 항목 중 한국이 가장 낮은 점수를 보인 항목은 ‘기업 여건 관련 정부 효율성’이다. 이는 우리의 규제 시스템이 포지티브 방식, 즉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 등 사회 규제, 공정 거래 규제는 여전히 포지티브 방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입 규제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방식, 즉 금지되지 않은 것은 허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다. 사전에 금지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면 비난의 화살이 정부로 쏠린다. 또 네거티브 방식은 대통령이 수반인 행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킨다. 행정부 힘이 약화되면 이를 견제하는 입법부도 약화된다.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힘이 약화되는 동시에 국회와도 싸워야 한다. 그러나 진정 시장을 존중하는 대통령이라면 신규 사업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또 다른 방식은 재정 지출이다. 정부는 ‘진흥’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광범위하게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쟁력 이 낮은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20년 기준 중소기업 1,244개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의 비중이 50.9%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충격도 큰 요인이었으나 퇴출되어야 할 기업들이 좀비처럼 살아 저가 입찰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기업 생태계가 원활해야 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퇴출되지 않으면 새로운 유망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진다. 정부의 기업 지원은 ‘고용 창출,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기업 지원은 생태계를 훼손하는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점을 (20대) 대통령은 기억해야 한다.

 

넷째, 정책 결정을 위해 총괄 조정 기능을 강화하라

 

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부처 간 이견 조정이 중요하다. 경제 문제는 경제 부총리가 조정하면 된다. 그러나 원격의료와 같이 경제와 사회문제가 충돌하면 경제부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국무총리가 조율하면 좋은데, 힘이 충분치 않다. 총리가 가진 권한은 장관 해임 건의권인데 장관 해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 총리가 함부로 건의하기 어렵다. 그 외 부처 평가권이 있는데 이것으론 약하다. 이를 위해서 기획재정부에서 기획 예산 기능을 분리한 기획예산처를 만들어 총리실로 이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기획예산처 장관이 예산권을 바탕으로 경제와 사회문제를 종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기획 예산 기능은 경제 기능이 아니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기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획예산처가 속해 있는 국무총리실의 조정력도 자연히 강화될 것이다.

 

나아가 기획예산처 기능에 행정안전부의 조직 관리 및 전자정부 기능까지 포함하여 관리예산처를 만드는 방안도 가능하다. 이는 미국의 대통령실 소속 예산관리국(OMB: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과 같은 형태이다. 행정부에 대한 중앙 관리 기능을 집중시켜 총괄 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정부의 역할을 바꾸는 수준의 정부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산과 조직 기능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는 논지도 일리가 있다. 현재 각 부처가 증원을 하기 위해서는 행정안전부(조직)와 기획재정부 (예산)를 모두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반면 다소 이질적인 기능의 통합이라 안착에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현재 정부조직법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가 크게 반대할 것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국무총리도 조정하기 어려운 안건은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부처 간 이견은 대부분 청와대 수석 간 이견으로 귀결된다. 결국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는 대통령으로서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회피해서는 아니 된다. 부처 간, 수석 간 이견이 큰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장단점을 충분히 듣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자면 대통령이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함께 중요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비공식적 회의체를 가동할 것을 권한다.

 

간혹 청와대가 부처 간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합의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사안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서로 목표가 같고 수단이 다르면 협력이 가능하다. 하지만 목표부터 다르면 협력이 아니라 판정을 하거나 조정調停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의가 안될 경우 현상 유지가 결론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합의가 안 될 경우 현상 유지로 결론이 난다면 현상 유지를 바라는 측에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래를 위한 변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청와대는 부처 합의가 안될 경우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거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역할에 소홀한 대통령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다섯째, 정책 집행을 점검하고 효과를 측정하라

 

대통령의 5년 임기는 짧다. 더구나 관료 조직, 즉 ‘공직사회’가 원치 않는 개혁을 완수하는 데에는 더욱 그러하다. 공직사회는 대통령 임기 후반이 되면 다음 대통령이 그 과제를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따라서 가역성이 큰 과제는 임기 내에 완성하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서는 계획의 이행을 점검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합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다. 1998년 국무회의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2001년까지 통합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통합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대통령의 의지가 강해 마지못해 이를 수용한 상태였다. 그러나 건설교통부는 통합 준비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으며 이는 2000년 말 에야 확인되어 급하게 통합안이 준비된다. 그러나 서둘다 보니 당사자 간 합의가 부족했는데 특히 한국토지공사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해 2001년 말 통합 법안의 국회 제출 후에도 한국토지공사의 반대 로비가 지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야 의원이 통합에 부정적이고 노조의 반대가 심하자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통합 법안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2000년 중 기획예산처가 건설교통부의 통합 준비를 점검했다면 달랐을 것이다.[6]

 

집행이 곧 성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임 기간이 짧다 보니 성과가 나오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은 피하는 관료가 많다. 이들은 열심히 일하는 척하면서 재임 중 책임질 일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 사업을 담당하는 부처는 관련 예산을 소진하는 데에 관심이 있을 뿐 취약계층이 그 혜택을 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7] 이런 관료가 많으면 국가 예산과 인력이 낭비되며 정작 문제 해결은 멀어진다.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행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성과outcome를 평가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성과 평가가 잘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실제 전시 행정과 면피 행정이 넘쳐나고 있다. 전시 및 면피 행정은 실제 효과보다는 열심히 노력한 것을 보여주는 데에 주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시 행정이 칭찬을 받으려는 목적인 반면 면피 행정은 문책을 피하려는 목적이라는 점만 다르다. 전시 행정은 불필요한 행사나 재정 지출로, 면피 행정은 과도한 사전 규제로 구현되는 경우가 많아 그 폐해가 크다. 대통령은 공무원의 보고를 들을 때마다 이것이 전시 혹은 면피 행정이 아닌지를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별 성과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3. 좋은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라

 

정부가 할 일, 그만할 일을 먼저 설정하라

 

역대 대통령마다 취임 직후 정부 조직 개편을 단행해 왔다. 그러나 어떤 기능을 A부처에서 B부처로 옮기거나 부처를 통폐합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하는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이를 그룹핑하는 방법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해도 별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국가적으로 손해인 일에 역량과 자원을 배분해서는 안 된다. 안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오히려 국익에 반한다. 따라서 더 늘려야 할 일과 줄여야 할 일을 먼 저 구분하고, 이를 정부 조직 개편에 반영해야 한다.

 

Clark, G. and M. Dear(1984)는 행정부의 기능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① 사회 통합과 국민 행복을 위한 기능이다. 환경, 교육, 복지 등 정부가 국민에게 공공재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② 질서유지 기능이다. 경찰, 검찰, 국세, 국방, 외교 등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 기능으로서 정부가 국민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 ③ 정부 내 조정 기능이다. 국무총리실, 예산, 지방자치, 정부 관리, 인사, 감사 등 정부가 스스로를 관리하는 기능이다. ④ 경제 기능이다. 정부가 규제 등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기업을 진흥하며 인프라를 공급하는 기능이다. 공기업을 통해 실제로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이에 속한다.

 

우리는 과거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경제 기능이 발달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 신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는 대체로 경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다른 부처들도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 기능을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의약산업,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산업, 행정안전부의 소방산업, 환경부의 환경산업이 그 예이다. 그 결과 우리는 예산에서 경제 분야의 비중, GDP 대비 정책금융의 비중 등이 OECD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앞으로 이러한 경제 기능은 줄어야 한다. 물론 대학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창업 지원, 미래형 산업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되어야 할 기업 지원, 효율성 낮은 인프라 투자, 민간시장을 잠식하는 직접 공급 역할은 줄어야 한다.

 

반면 나머지 세 기능은 강화되어야 한다. 앞으로 ① 복지 기능을 비롯하여 국민의 행복과 직결된 정부의 공공재 공급은 확대되어야 한다. ② 사회적 자본 강화를 위해 우리의 질서 의식은 강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법과 세금의 엄정성을 위한 예산과 인력은 늘려야 한다. 또한 ③ 정부 내 관리 기능은 향후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는 기능, 정부를 개혁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정부 조직 개편 시 반영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경제성장과 사회 통합의 목표가 상충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사회 통합이 더 필요할 것이다. 사회 통합은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고 각종 거래 비용을 낮추어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 또한 그 자체로 공동체의 유대감을 상승시켜 행복도에 직접 기여하기도 한다. 사회 통합은 복지를 통한 형평성 제고, 사회적 이동성 제고, 공정성과 법치 강화를 통한 사회적 신뢰 제고, 공공 부문의 투명성 제고, 정부의 갈등 관리 역량 강화 등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앞으로 대통령이 더 해야 할 일의 일순위는 사회 통합이다. 그래 야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

 

대통령의 힘을 나누어라

 

민주화를 거치며 점차 변화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대통령과 행정부는 입 법부를 압도한다. 그러다 보니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찬반에 따라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제왕적 대통령의 존재는 국회의 합의 형성을 저해하며, 국가 전체적으로 상명하복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힘을 약화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나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국정을 수행하려면 자신의 힘을 국회 및 지방정부와 나누어야 한다.

 

먼저 행정부의 힘을 국회와 나누어야 한다. 특히 합의 형성이 중요한 행정부 기능은 국회에 이관되어야 한다. 여야 합의는 전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므로, 한 정파 출신 대통령이 수반으로 있는 행정부의 결정에 비해 전체 유권자의 만족도를 더 높게 할 수 있다. 또 국회가 합의 한 내용은 대통령이 바뀌어도 연속성을 갖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 직속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이다. 지금은 경사노위 합의라 할지라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재논의가 불가피하다. 민주노총 입장에선 경사노위 논의 사항이 기득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참여할 유인이 별로 없다. 혹시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면 국회에서 막으면 된다. 그러나 경사노위가 국회 소속이라면 불참하기는 어렵다. 그 결정이 끝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탈원전 문제도 국회가 결정하는 것이 옳다.

 

예산 총액과 부문별 증가율은 국회가 여야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 지금의 국회 역할은 행정부가 정한 예산안에서 1% 정도를 증감하는 것이 고작이다. 여당은 예산 팽창을, 야당은 삭감을 원하기 마련인데 지금처럼 예산 총액을 행정부와 여당 간에 합의하는 방식은 야당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결과 재정 적자가 고착화될 우려도 깊어진다. 대통령은 자신의 힘을 국회와 야당에 양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행정부가 결정하는 중장기 계획에 대해서도 국회가 심의하는 절차를 추가해야 한다. 지금은 국가 재정 운용 계획 정도만 국회 상임위에 그 기본 방향을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중요한 계획은 국회가 심의토록 해야 계획에 구속력과 지속력이 생긴다.

 

또한 청와대는 국무총리의 권한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일상적인 정책 조정은 국무조정실이 해결하도록 하고 부처 간에 합의가 되지 않는 파급력이 큰 사안에 대해서만 대통령이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협의하여 결정하는 관행을 세워야 한다. 청와대가 사사건건 개입하고 방향을 정해 주다 보면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려질뿐더러 결국 대통령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대통령은 외치와 함께 중요하고 어려운 개혁 몇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국무총리에는 정책에 대한 이해도와 업무 장악력이 높은 인사가 적합하다. 좋은 이미지로 소위 얼굴마담을 하는 국무총리는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을 초래할 뿐이다.

 

청와대 인사권도 나누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기관장과 장관이 임명하는 기관장이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장관의 임명권을 존중해야한다. 이는 부처 내 실국장급 임명에도 적용된다. 임기가 짧은 장관이 가진 유일한 권한은 인사권인데 이마저 청와대가 개입하면 장관은 부처를 통솔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에 더해 행정부의 기능을 지방과 나누어야 한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뽑은 경쟁력 최강 7개국은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싱가포르, 노르웨이, 홍콩인데 이들의 인구는 모두 500만~1700만 명 정도이다. 광역을 통합하여 규모를 키우고 지방정부 간 경쟁을 시키면 대한민국 전체의 경쟁력이 도약할 수 있다. 그러자면 중앙 부처 권한의 상당 부분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예컨대 최저임금과 52시간제는 광역 단체별로 정할 수 있다. 교육도 각 교육청에 기능을 이양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방분권을 할 수 없다. 아울러 중앙 부처의 특별지방행정기관(지방청)이 수행하는 일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모든 대통령이 이러한 지방분권에 노력했으나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지방분권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였다. 당시 제주특별자치도에 7개 기관을 일괄 이관한 바 있다.[8] 이러한 제주에서의 성공을 다른 광역에도 적용해야 한다.

 

재정도 지방분권 해야 한다. 먼저 중앙이 지방을 위해 지출하는 예산 사업은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산업진흥 예산이다. 지방을 위한 사업을 중앙에서 수행하고 있으니 중앙도 지방도 책임감이 있을 리 없다. 또한 지방에 예산을 줄 때는 부처별 포괄보조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예컨대 농림부가 지방에 주는 보조금은 사업별로 칸막이가 있는 데, 이를 모두 풀어 하나로 주면서 사업별 배분은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업 효과도 올라가고 낭비도 막을 수 있다.

 

사실 가장 핵심적인 지방 이양은 세수 이양이다. 현재처럼 중앙이 대부 분 걷어 지방에 나누어주는 방식으로는 지방의 의존성을 극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방세의 비중을 늘리면 세원이 많은 수도권만 덕을 보 게 된다. 법인세를 공동세로 전환하여 중앙-지방이 나누도록 하면서 낙후 지역일수록 지방에 대한 배분율을 높여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와 같은 차등 배분 공동세를 도입하면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개혁의 추진 체계를 만들어라

 

개혁의 시작은 청와대이지만 모든 개혁 과제를 청와대가 챙길 수는 없다. 각 부처가 각자의 개혁을 추진하면 가장 좋겠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개혁은 각 부처의 기득권을 훼손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능의 지방 이양, 규제의 철폐, 예산 사업 축소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개혁의 방향을 세워 각 부처를 독려해 나가는 개혁의 추진 주체가 필요하다. 이를 추진할 대통령 직속 위원회, 가칭 정부혁신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위원장은 상임인 것이 좋겠으나 비상임이어도 무방하다. 별도의 사무국을 두되 사무국장은 청와대의 비서관이 담당하고 수석비서관이 간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모델을 추천한다.[9] 노무현 정부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이미 실행해 본 경험이 있다. 이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듯하다.

 

공무원 조직 내 인적 추진 체계도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다. 먼저 이를 실행할 장관을 잘 임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관에게 해당 부처를 개혁한다는 명확한 미션을 주어야 한다. 기존의 업무를 잘 챙기고 약간의 개선을 하는 일은 굳이 장관이 없어도 실국장들이 잘 알아서 한다. 장관은 부처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야 한다. 그리고 장관의 임기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현재 장관의 평균 재임 기간은 14개월인데, 업무를 파악하자마자 그만두어야 하는 장관이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장관만으로 공직사회를 개혁하기는 어렵다. 장관을 도와 개혁을 추진할 혁신차관보를 부처마다 두길 권한다. 기존의 실장 자리를 없애고 대신 차관보를 설치하거나 기존의 차관보가 수행하는 역할을 바꾸면 된다. 이 자리는 내부 공직자가 수행하기 어려우니 외부에서 수혈토록 장관에게 인사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실국장급에서도 장관과 호흡을 맞출 역량 있는 외부 인사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현재 실국장급의 20%로 되어 있는 개방형 임용제를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 이때 역량이 낮은 정치권 인사를 청와대가 낙하산으로 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장관이 자신과 같이 일할 사람을 개방형을 통해 충원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방형 인사는 3년의 계약을 맺기 때문에 일반적인 실국장의 임기에 비해 2배나 더 오래 재임하는 장점도 있다.

 

4. 대통령의 진정한 성공을 위한 장기적 안목을 가져라

 

지금까지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경제사회 분야를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표2>에 본문에서 소개한 제언들을 정리하여 보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제언은 대통령이 자신의 힘을 국회, 장관, 지방, 시장 市 場과 나누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을 국정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첫째, 대통령에게 자신의 권한을 나누라는 요구는 부자 父 子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을 너무 무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는 대통령 개인의 선의에 맡길 사안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규정해야 할 사 안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회는 국회의 권한 강화에는 적극적일 수 있으나,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는 반기지 않을 수 있다. 현재 국회는 광역시도의 국가 위임 사무와 국고보조금 예산 사업에 대한 국정감사 권한을 가지고 있다. 지방에 대한 권한 위임을 확대하되 이에 대한 국회의 감시를 강화할 경우 국회의 반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크게 반대하는 권한 이양을 추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10] 이런 경우에는 제도를 바꾼 후 그 시행 시기를 다음 대통령으로 미루도록 하자. 예컨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률도 공포는 2021년 7월에 되었으나 시행은 1년 후인 2022년 7월로 규정한 것처럼 말이다.

 

둘째, 대통령의 목표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르게 설정되어야 다른 성공조건도 가능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5년 단임 대통령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는 언론과 국민에게 달려 있다. 대통령 재임 중 장기적 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요, 과거 대통령 중에 단임 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기적인 시야로 바른 정책을 편 사례를 발굴하여 이를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업적을 이루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결국 언론과 국민이 대통령을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우호적 혹은 적대적 평가로는 대통령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 대통령은 국민 하기 나름이다.

 

<표2> 경제사회 정책의 성공을 위한 제언 요약

 

8대 성공 요인

45개 제언

정책 수립 성공 요인

임기 중 의제 선택이 중요하다.

임기 초반에 어려운 개혁을 추진하라.

공약을 인수위에서 철저히 재검토하라.

공약에 있다고 모두 국민이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의 생각은 달라진다.

임기 초반에 재정 개혁과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

임기 후분에는 정부 내부 개혁에 집중하라.

임기 후반에는 다음 대통령의 개혁을 준비하라.

단기적 지지율이 아니라 역사적 평가를 목표로 하라.

인기 없는 개혁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과 창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해야 한다.

재정 적자를 두려워해야 한다.

저소득층에 대한 현금복지는 선별형으로 해야 한다.

수단을 달성하려 하지 말고 목표를 달성하라.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라.

시장가격에 개입을 최소화하라.

대학과 지방정부를 통제하지 말고 경쟁시켜라.

시장 진입에 한하여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라.

좀비 기업을 지원하지 말고 산업 생태계를 작동시켜라.

총괄 조정 기능을 강화하라.

기획재정부에서 기획예산처를 분리하라.

대통령,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이 모여 결정하라.

부처 합의가 안 될 경우 문제를 덮고 현상을 유지하면 안 된다.

집행을 점검하고 효과를 측정하라.

집행을 점검하라.

가역적인 계획은 가급적 임기 내 완수하라.

일하는 척하는 공직자를 배격하기 위해 성과를 측정하라.

전시 행정, 면피 정책은 하지 말라.

제도 인프라 성공 요인

정부가 할 일, 그만할 일을 먼저 설정하라.

복지 등 공공 서비스, 질서유지, 정부 내 조정 기능을 강화하라.

규제, 진흥, SOC 건설, 직접생산 등 경제 기능은 축소하라.

특히 사회 통합을 핵심 목표로 삼고 관련 기능을 대폭 강화하라.

위의 방향을 정부조직 개편에 반영하라.

대통령의 힘을 나누어라

대對입법부

합의가 중요한 일은 국회로 넘겨라: 경사노위, 탈원전 등

예산 총액은 여야 합의로 결정하라.

행정부가 수립한 중장기 계획을 국회가 검토하게 하라.

행정부 내

국무총리의 권한을 존중하고 일상적인 정책 조정을 맡겨라.

대통령은 외치와 함께 어렵고 중요한 개혁에 집중하라.

장관의 인사권을 존중하라.

지방분권

최저임금, 52시간제 등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라.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지방에 이양하라.

지방을 위한 예산 사업은 지방에 이양하라.

부처별 포괄보조금제를 도입하라.

차등 공동세를 도입하여 재정 분권을 강화하라.

개혁의 추진 체계를 만들어라

가칭 정부혁신위원회를 만들어라.

장관에게 충분한 임기와 함께 부처 개혁의 미션을 부여하라.

각 부처 내에 혁신차관보를 설치하라.

현행 20%인 개방형 임용제를 단계적으로 높여라.

결론

이상의 변화가 가능하려면

국회가 행정부 권한 이양에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

입법 후 실행을 다음 정부로 넘기는 방식으로 합의하라.

언론과 국민의 대통령 평가가 객관적이고 엄정해야 한다.

 

참고 문헌

 

국정홍보처. 2000. 「대국민 공기업 민영화 설문조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8. 「2017년도 정부재정지원 일자리사업 평가분석」. 국정감사 자료.

 

박중훈 외. 2016. 「대한민국 역대정부 조직개편 성찰」. 한국행정연구원. 박진. 2021. 「정부조직 혁신 방 향과 과제」. 국회사무처.

 

박진. 2021. 「○○○에게 바통 넘겨주기 전, 文대통령이 해야 할 5가지」. 『매일경제 Big Picture』. 7. 21.

 

박진. 2020. 『대한민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학사.

 

한길리서치. 2002. 「발전소 민영화 여론조사」.

 

Clark, G. and M. Dear (1984), State Apparatus: Structures and Languages of Legitimacy, Boston: Allen & Unwin

 


 

[1] 2000년 국정홍보처 조사는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찬성이 71%, 반대가 21%였다. 한길리서치 의 발전소 민영화 여론조사(2002)는 민주노총 의뢰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 51% 국민이 찬성, 44%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건강보험 수입의 14%를 국고로 지원하게 되어 있어 2020년 건강보험 지원액은 9조 원을 넘었으 며 고용보험 지원액은 2021년 기준 1조 원 남짓이다.

[3] 대학에 대한 지원은 석박사 학생들에게 일부 배분되는데 대부분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고용 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한국형 뉴딜도 대학 지원을 담고 있기는 하나 교육부 내 담당 부서는 산학 협력일자리정책과이다. 대학에 대한 연구 지원이 기업의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 이다.

[4] 이에 따라 세입자는 2년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은 실거주 등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이를 수용해야 한다. 임대료도 종전의 5% 이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

[5] 더구나 우리는 고등학생의 상급학교 진학률이 2020년 기준 72.5%로서 유럽(40% 내외)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등록금을 낮추어 대학에 더 가게 할 필요는 없다. 저소득층은 장학금으로 보호하 면 된다.

[6] 이명박 정부는 다시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합을 추진하여 2009년 한국토지주택 (LH)공사가 출범한다.

[7] 2017년 2조8538억 원이 집행된 직접일자리사업(48개)은 취업 취약 계층 참여 비율이 36.3%에 그쳤다. (김병욱, 2017)

[8] 제주지방국토관리청, 제주지방해양수산청, 제주지방중소기업청, 제주환경출장소, 제주지방노동 사무소, 제주지방노동위원회, 제주보훈지청 등이 그것이다.

[9] 2003년 출범 당시 당연직 위원으로 재정경제부, 행정자치부, 정보통신부, 기획예산처의 장관과 국무조정실장, 중앙인사위원회위원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위촉되었다.

[10] 헌법 제53조에 의해 대통령은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 률로서 확정된다.

 


 

저자: 박진_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Univ. of Pennsylvania)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후 1992년 이후 KDI 혹은 KDI대학원에 재직 중이다. 세 번 휴직하면서 기획예산처의 행정개혁팀장(1998~2001), 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2012-13), 국회미래연구원 초대 원장(2018-20)으로 일했다. 중도적 대안으로 좌우의 합의를 형성하는 것을 평생 목표로 삼으며 NGO 연구기관인 미래전략연구원장, 안민정책포럼 회장 등을 무보수 겸임하였다. 관심 분야는 정부개혁 및 재정학, 미래연구, 갈등조정, 경제발전론이며 많은 국내외 정부를 컨설팅하였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2020, 이학사)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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