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손열)은 국내외 주요 이슈에 대해 전문가의 논평을 보다 쉽고 편하게 들어보실 수 있는 콘텐츠로 'EAI 들리는 논평'을 개시합니다. 그 첫 번째로 2019년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평가와 2020년 총선의 전망 및 과제를 제시한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논평을 소개합니다. 한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정치개혁이라는 과업을 완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19년 12월 27일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선거법은 그동안 지적되어 오던 승자독식의 선거체제로부터 민주적 대표성이 제고되고, 지역과 인물 중심의 정당체계로부터 이념과 정책 중심의 체계로 발전하여, 기존의 구조화된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초석이 되어 주리라는 기대를 받고 우리의 정치사회에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개정 선거법이 두 거대 정당의 이기심과 꼼수로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먼 채 불완전한 상태로 합의되어 버렸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정치개혁에 있어 거듭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시민의회' 소집을 통한 민의 수렴 과정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EAI 들리는 논평 스크립트

 

안녕하십니까! EAI, 동아시아연구원에서 ‘EAI 들리는 논평’을 론칭하였습니다. ‘EAI 들리는 논평’에서는 복잡한 현안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을 보다 쉽고 편하게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주제는 바로 2020년 총선입니다.

이제 총선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선거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시행되는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신종 바이러스 사태에 묻히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합니다. 먼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제도는 명칭부터 낯설고 개념은 난해하기만 합니다. 정작 중요한 정책 경쟁은 뒷전인 채, 의석수를 위한 정치권의 수 싸움에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고, 선거 후 정국은 오리무중입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은 2019년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평가와 2020년 총선의 전망 및 과제를 제시한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논평을 통해 다가올 총선 관련 주요 이슈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한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정치개혁이라는 과업을 완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역시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협치와 분권의 민주주의' 확립을 정치개혁의 비전으로 삼고 있으며 각종 연설과 정부 문서를 통해 개혁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19년 12월 27일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선거법은 그동안 지적되어 오던 승자독식의 선거체제로부터 민주적 대표성이 제고되고, 지역과 인물 중심의 정당체계로부터 이념과 정책 중심의 체계로 발전하여, 기존의 구조화된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초석이 되어 주리라는 기대를 받고 우리의 정치사회에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 현실은 그게 무망한 기대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합니다. 개정 선거법이 두 거대 정당의 이기심과 꼼수로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먼 채 불완전한 상태로 합의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의 선거제도 개혁 과정을 돌아보십시오.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정 논의가 무르익을 때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검토’한다는 것이었지 ‘합의’하겠다는 건 아니었다고 입장을 번복하는 등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개혁에 제동을 걸기 일쑤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당론의 연장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해온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의석수라는 현실 앞에 군소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당에 유리한 개혁안을 강요하였습니다. 그 결과 비례의석과 보정률은 대폭 줄게 되었고 거기에다 연동제에 적용되는 의석은 30석에 국한한다는 소위 ‘캡’까지 씌우는 등 기존 합의에서 한참 후퇴한 개정안, 즉, 지역구 253석, 보정률 50% 연동 비례 30석, 병립 비례 17석을 요지로 한 안이 최종안으로 결정되어, 2019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국민의 숭고한 염원이 두 거대 정당의 정략적이고 근시안적인 꼼수 사용으로 용두사미에 그치게 된 순간입니다.

이후의 전개는 더욱 참담할 뿐입니다. 미래통합당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어 의석수 확보를 위한 포석을 두었고, 더불어민주당은 명분과 실리 사이의 딜레마 속 비례정당 창당을 맞수로 둘지 여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 당내 투표를 결정했지만, 창당의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은 꼼수에 꼼수로 맞불을 놓으려는 여당의 행보에 예의주시하며 비례의석을 잃을까 전전긍긍입니다. 여기에 ‘선거연합정당’이나 ‘시민을 위하여’와 같은 범여권 진형에서 여당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서는 혼란 속, 선거 당일 투표지마저 예측불가한 상황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정치권 내 잔머리 싸움의 피해는 국민의 몫이겠지요. 따라서 정치개혁에 있어 거듭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개혁에 앞서,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법은 합의의 산물입니다. 법을 만들어도 그 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 법 취지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겠죠.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당을 너도 나도 만들겠다는 등 대놓고 꼼수를 쓰겠다고 나설 수 있는 건 근본적으로 새 선거법의 합의 수준이 낮기 때문일 것입니다. 합의의 수준이 높을수록 사람들이 법을 존중하는 정도 또한 높아지지 않을까요. 감히 누가 국민의 일반 의사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독일이나 뉴질랜드와 같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온갖 몽니를 부리며 꼼수를 쓰겠다는 정당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그 나라의 선거법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발의제와 국민투표제가 없거나 부실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간편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은 시민의회를 소집하는 것입니다. 시민의회를 포함하는 선거제도의 개혁은 이미 캐나다와 네덜란드 등의 나라에서 주 정부 주도로 여러 번 시도된 바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한국 정치권에서도 낯선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국내 정치권에서도 시민의회 제도 추진 여부를 진지하게 논의한 바 있죠. 과거의 실수는 되풀이하지 말아야합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정치권에 속아 끌려 다닐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쯤 되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민의 수렴 과정이 뿌리내릴 때이지 않을까요. 어떠한 개혁이던,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때, 내용의 충실성은 물론 개혁의 실현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시민의회 제도라는 보다 성숙한 합의 과정으로 정치개혁이 올바른 궤도에 올라 추진되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마땅히 받아야할 주목을 받지 못하는 2020년 총선, 선거법 개정의 본래 취지가 잘 반영될지, 정치권의 꼼수에 또 속을 것인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AI 들리는 논평! 동아시아연구원 윤준일이었습니다.■

 

■저자: 최태욱_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미국 UCL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창비 편집위원, 참여연대 상집위원,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국회의장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지국가의 정치경제, 동아시아경제통합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복지한국만들기》(편저),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청년의인당》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준일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3) I junilyoon@eai.or.kr

 


 

[EAI 들리는 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분석을 더욱 쉽고 편하게 들으실 수 있도록 기획된 콘텐츠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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