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코로나 위기 속 미중 경쟁은 SNS, 동영상, OTT, 게임 분야 플랫폼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김상배 서울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 경쟁을 기업 간 경쟁이 아닌 국가 간 경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플랫폼 경쟁을 더 이상 ‘개별 민간기업의 판단에 맡기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한국 정부가 중견국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I. 머리말

 

코로나19 사태의 전개가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은 여러 차원에서 나타났지만, 그중에서도 미중 패권경쟁에 미친 영향이 가장 눈에 띈다. 코로나19의 발원지와 관련된 책임 논란을 벌이면서 양국의 갈등은 더 난삽해졌으며,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는 자국 체제의 우월성을 뽐내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대응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양국은 리더십 경쟁을 벌였다. 이러한 미중 갈등의 이면에서 미래 국력의 성패를 내건 안보와 경제 분야의 경쟁이 진행되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사이버 안보와 통상·관세 분야에서 드러난 미중 갈등은 첨단기술 분야로 점차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서 창출된 비대면(非對面, untact) 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기존에 진행되어 온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디지털 플랫폼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2010년대 이래 첨단기술 분야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몇 차례의 국면 전환을 겪으면서 진화하고 있다. 기술경쟁이라기보다는 사이버 갈등과 더 관련되기는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 미중 갈등의 화두는 ‘중국 해커 위협론’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미중 갈등의 초점이 경제와 통상 분야로 옮겨 가서, ‘중국산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ICT) 제품 위협론’이 제기되었다. 사이버 안보를 빌미로 한 통상 갈등이 전개되었으며, 화웨이의 5G 통신장비에 대한 수입규제와 이에 뒤이은 글로벌 공급망 갈등이 쟁점이었다. 2019년 중반에 이르러서는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과 이에 대한 주권적 통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될 조짐을 보였다. 이러한 진화의 여정에서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이전부터 진행되었던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양상을 좀 더 앞당겼다.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 컴퓨터 운영체계(Operation Sys-tem: OS)에서 시작하여 2010년대 인터넷 검색으로 옮겨갔다. 2010년대 후반에는 5G의 도입이 창출하는 인프라 플랫폼이 쟁점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디지털 경제의 데이터 플랫폼으로서 클라우드가 쟁점으로 부각되더니, 2020년을 넘어서면서 온라인 서비스 전반의 플랫폼 경쟁이 논란거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확산의 조짐은 향후 모바일 결제를 포함한 핀테크나 좀 더 넓은 의미의 디지털 화폐 분야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이며, 이커머스 분야와도 접맥될 것이 전망된다. 이러한 양상은 2020년 후반기 바이트댄스의 틱톡이나 텐센트의 위챗 등과 같은 SNS 미디어와 디지털 콘텐츠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문제제기로 절정에 달한 듯 보였다.

 

이 글은 이러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진화 과정을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펼쳐 놓은 비대면 환경을 배경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부상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여태까지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장악해 왔다면, 최근에는 중국 플랫폼 기업들이 일부 분야에서 새로운 모델을 개척하고 있다. 초기 플랫폼 경쟁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과 같은 미국 기업들을 제재하는 중국 정부의 조치가 화두였다면, 최근에는 화웨이나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트댄스와 같은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는 미국 정부의 행보가 관심을 끌었다. 중국 기업들은 더 이상 중국 내수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이른바 ‘차이나 플랫폼’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러한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은, 미중 기업들이 벌이는 경쟁인 동시에 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 간 경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근 통상, 주권, 정책, 법, 제도, 민족주의, 동맹, 외교, 국제규범, 전쟁 등이 변수이다. 실제로 이러한 기술경제 분야의 전개 양상은 지난 트럼프 행정부 시기부터 글로벌 공급망 디커플링(decoupling)으로 나타났고, 동맹외교 경쟁으로 증폭되었으며,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러서는 가치와 규범의 경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내보이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최근 거론되는 분할인터넷(Splinternet) 또는 디지털 세계질서의 디커플링에 대한 우려와도 접맥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최근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디지털 플랫폼 경쟁은 지정학적 양상, 엄밀하게 말하면 과거의 고전지정학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제안하는 복합지정학의 양상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제2장은 코로나19 시대의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서 가속화된 비대면 환경의 부상을 살펴보고, 이 글에서 원용한 플랫폼 경쟁의 복합지정학 시각을 소개하였다. 제3장은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진화를 5G 인프라 및 모바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알고리즘 및 클라우드·데이터, 디지털 미디어 및 콘텐츠, 이커머스 및 핀테크 플랫폼 등의 네 층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각 층위에서 작동하는 미국의 플랫폼 권력과 이에 대한 중국의 도전으로 인한 양국의 갈등을 살펴보는 것이 주 관심사였다. 제4장은 개별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양국 기업들의 경쟁이 국가적 차원으로 결집되면서 패권경쟁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복합지정학의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글로벌 공급망, 동맹외교, 규범·가치, 디지털 세계질서 등의 분야에서 부상할 조짐을 보이는 디커플링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끝으로, 맺음말에서는 이 글의 주장을 종합해서 요약하고 한국이 모색할 디지털 플랫폼 전략의 방향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II. 비대면 환경과 플랫폼 경쟁의 이해

 

1. 디지털 전환과 비대면 환경의 부상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말은 1990년대 말에 처음 등장했는데, 사회 전반에 ‘디지털(Digital)’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전환(Transformation)’ 시킨다는 의미다. 디지털전환은, 주로 비즈니스 영역에서 사용된 용어인데, 제한된 분야에 적용되는 기술혁신과 달리, 기업 경영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비즈니스 모델까지도 변화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비즈니스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을 의미하기도 한다. 코로나19와 함께 글로벌 산업계는 디지털 전환에 올인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있는 이 시기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을 낳고 있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전환은 기업생존 또는 국가생존의 필수 전략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4차 산업혁명의 전개와 밀접히 연관된다. 1차 산업혁명의 기계화, 2차 산업혁명의 산업화, 3차 산업혁명의 정보화, 4차 산업혁명의 지능화라는 논의 선상에서 보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전환’을 초래하는 핵심 변수이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공학 같은 지능형 디지털 기술에는 ‘일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 ‘시스템 충격’을 논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기업, 국가 등은 생산성 향상과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 및 미래 국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디지털 전환이 하나의 트렌드로 성숙하고 있었다면, 코로나19는 이러한 디지털 전환을 불가피하게 수용하고 그 수용을 가속화 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을 창출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차원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환경이 급속히 조성되었다. 재택근무의 도입으로 온라인 쇼핑, 택배주문, 온라인 뱅킹 등 비대면 경제도 급부상하고 있다. 구글, 넷플릭스 등과 같은 온라인 기업, 특히 줌(Zoom)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 기업이 떴다. ICT기업은 물론 전통 제조업 분야에 속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온라인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온라인 기반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고, 디지털 경제와 비대면 경제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비대면 경제를 넘어서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비대면 사회의 도래도 예견되는데, 원격의료, 원격강의, 화상회의를 통한 의사결정, 비대면 의정활동과 선거운동, 비대면 화상회의를 통한 국제 외교활동 증대 등이 도입되고 있다.

 

2. 플랫폼 경쟁의 복합지정학

 

‘플랫폼(platform)’은 평평한 단(壇)이라는 뜻으로 그 위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場)을 의미한다. ‘디지털 플랫폼’이란 ‘온라인에서 공급자와 수요자의 거래를 중개하는 장’이다. 디지털 기술의 지속적 발전으로 기존 온라인 서비스가 디지털 플랫폼 형태로 발전하면서, 공급자와 수요자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직접 만나지 않고도 다양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은 상호작용의 규칙을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권력과는 다른 성격의 ‘플랫폼 권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권력의 밑바탕에는 해당 플랫폼에 참여하는 사용자 수가 늘어날수록 그 플랫폼의 가치가 더욱 증가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깔려 있다(설진아·최은경 2018).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플랫폼 권력을 놓고 글로벌 차원에서 미중이 벌이는 기술패권 경쟁이다.[1]

 

여태까지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장악해 왔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구글(Google), 애플(Apple),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아마존(Amazon) 등이 대표적 사례인데, 흔히 TGiF, GAFA, FANG, MAGA 등과 같은 약자로 불리기도 한다. 바이두(Baidu),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화웨이(Huawei) 등과 같은 중국 기업들도 크게 성장하여 BAT 또는 BATH로 지칭되기도 한다. 초기만 해도 이들은 구글과 바이두, 애플과 화웨이, 페이스북과 텐센트, 아마존과 알리바바와 같이 부문별로 대결 구도를 형성했으나, 최근에는 이들 기업의 사업 범위가 확장되고 전선이 교차하며 전방위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국의 넷플릭스(Netflix)나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 기업들이 진입하면서 대결의 구도는 점점 더 복잡하게 되었다(Galloway 2017; 다나카 미치아키 2019).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중국 플랫폼 기업들의 약진이다. 중국 시장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여 이커머스, 핀테크, SNS 등 다양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온상이 되었다. 특히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플랫폼 비즈니스는 해당 분야를 넘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회·경제 시스템의 운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중국의 플랫폼 비즈니스들은, 예전에는 미국 모델을 베끼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일부 분야에서 새로운 선도모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마저도 보인다. 또한, 이들이 더 이상 중국 내수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나 플랫폼’의 가능성은 거대한 규모의 중국 시장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 효과를 배경으로 함은 물론이다(윤재웅 2020; 유한나 2021).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 경쟁은, 미중 기업들이 벌이는 경쟁인 동시에 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 간 경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근 통상, 주권, 정책, 법, 제도, 민족주의, 동맹, 외교, 국제규범, 전쟁 등이 변수가 되고 있다(Mori 2019). 국경을 넘어서는 디지털 무역이 쟁점이고,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가 문제시되며, 사이버 동맹외교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국 차원을 넘어서 국가군(群)을 단위로 글로벌 가치사슬이 재편되고 인터넷마저도 지정학적 구도로 양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한 기술경제 현상이 아니라 지정학적 현상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패러다임이었던 고전지정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전지정학 이외에 비(非)지정학, 비판지정학, 탈(脫)지정학 등의 여타 이론적 시각이 대상으로 삼는 현상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자는 것이다(김상배 2018).

 

실제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그 연속 선상에서 본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는 복합지정학(Complex Geopolitics)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비지정학의 시각에서 볼 때, 5G 인프라 플랫폼과 코로나19 백신 분야의 경쟁은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한 반도체와 바이오·제약 산업의 기술경쟁 및 이와 연관된 글로벌 공급망의 디커플링을 야기했다.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같은, 고전지정학의 단골 주제인, 동맹과 외교의 문제로 연결되었다. 아울러 구성주의적 비판지정학에 논하는 가치와 규범, 그리고 이념도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중요한 아이템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사이버 공간이라는 탈지정학적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벌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분할인터넷의 부상과 디지털 세계질서의 디커플링으로 대변되는 플랫폼 경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Ⅲ. 비대면 시대의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

 

1. 5G 인프라 및 모바일 플랫폼 경쟁

 

1) 5G 인프라 플랫폼 경쟁

 

최근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환경의 정비와 관련된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경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5G 분야의 미중경쟁이다. 5G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인 화웨이가 선두주자인데, 2017년 기준으로 화웨이의 세계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8%로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화웨이의 기술적 공세에 대해서 미국은 사이버 안보를 빌미로 제재를 가했다. 이러한 틈을 타고서 미국은 2020년 3월 ‘5G 보안 국가전략’을 발표하여 5G 분야의 주도권 확보를 노렸다. 그러나 미국이 코로나19 여파로 5G 투자에 주춤하는 사이, 먼저 안정세를 찾은 중국은 2020년 50만 개의 5G 기지국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자국 내 5G 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오일석 2020).

 

미국 내에서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와 관련된 사이버 안보 논란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지만, 미중 양국의 외교적 현안으로까지 불거진 것은 2018년 들어서의 일이다. 2018년 2월 중앙정보부(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 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FBI), 국가안전보장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 등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일제히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8월에는 미 국방수권법이 화웨이를 정부 조달에서 배제하기로 하더니, 12월에 이르러서는 화웨이 창업자의 맏딸인 멍완저우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9년 초에는 미국이 우방국들에게 화웨이 제품을 도입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는 외교전을 벌이더니,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민간 기업들에게도 화웨이와의 거래 중지를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화웨이로 대변되는 중국 기업들의 기술추격은 5G 시대 미국의 기술패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5G 기술의 표준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에서, 미국이 제대로 준비가 되기 전에 화웨이가 치고 나왔다는 점이 문제였다(Johnson and Groll 2019). 화웨이는 4G LTE 시절부터 저가 경쟁을 통해 몸집을 키운 뒤 늘어난 물량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키우는 전략을 통해 경쟁사보다 20~30% 저렴하면서도 기술력도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다. 2018년 현재 화웨이의 글로벌 이동통신 장비 시장점유율은 28%로 세계 1위였다. 에릭슨과 시스코의 연합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던 사이,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초기 투자를 집중하여 ‘선발자의 이익’을 누리게 되었다(원병철 2018).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은 화웨이 문제를 산업의 문제가 아닌 안보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웨이 제품에 심어진 백도어를 통해서 미국의 국가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데이터가 빠져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화웨이 문제는 ‘실재하는 위협’으로 부각되었으며, 이러한 담론에 근거해서 대내외적으로 화웨이 제재의 수위를 높여갔다. 이에 대해 화웨이와 중국 정부는 화웨이 제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심과 경계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주관적으로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이를 통해 달리 얻고자 하는 속내가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화웨이 제품의 사이버 안보 문제를 놓고 벌이는 미중 간의 ‘말싸움’은 미래의 안보위협을 놓고 벌이는 안보화(securitization)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2) 모바일 플랫폼 경쟁

 

5G 인프라 장비 분야와는 달리 이동통신 단말기인 스마트폰 OS의 플랫폼은 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2020년 12월 현재 글로벌 모바일 OS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은 72.48%이고 애플의 iOS는 26.91%이다. 양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99%가 넘는다. 중국 시장을 살펴보아도,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은 80%가 넘고, iOS의 점유율도 19%이다. 중국은 독자 OS 개발을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기울였지만, 샤오미의 자체 OS인 미유아이(MiUI) 정도가 안드로이드 기반임에도 중국색을 유지한 정도였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을 보유한 중국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인데, 중국 시장에서 모바일 기기의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OS의 독자개발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있는 형세이다.

 

2019년 8월 화웨이는 자체 모바일 OS로서 안드로이드 앱과 호환되는 ‘훙멍 2.0’을 공개하고, 2020년부터는 훙멍으로 구동하는 스마트폰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제재를 예견하고 화웨이는 오랫동안 훙멍을 개발해왔는데, 화웨이 사태가 가열화되면서 갑자기 안드로이드를 정상적으로 쓸 수 없는 상황에 대비코자 한 것이다. 화웨이가 훙멍을 채택한 것은 단순히 OS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는 문제이다. 앞으로 화웨이가 자체 OS를 내놓더라도 지메일, 유튜브, 플레이스토어와 같은 구글의 핵심 서비스를 지원하지 못하게 되면, 전 세계나 중국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王成录 2021).

 

모바일 앱스토어 플랫폼 경쟁에서도 미국 기업들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애플은 자사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위해서 전세계의 개발자가 앱을 판매하는 애플 앱스토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애플은 모바일 OS와 앱스토어의 가치사슬을 구성하여 사용자의 구매 충성도를 높이고 콘텐츠 수익을 극대화하는 생태계를 마련하였다. 앱스토어에서 앱 개발자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앱을 판매하면 판매액의 30%를 애플에 수수료로 지불해야 하는 구조가 애플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었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구글도 모바일 앱스토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는 구글이 운영하는 구글 플레이로 앱을 다운로드한다. 구글 플레이를 통해 판매되는 앱이나 인앱 결제 콘텐츠에 대해 구글도 판매액의 30%를 수수료를 받는다. iOS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앱은 애플 앱스토어에서만 다운로드 할 수 있는데 반해, 안드로이드에서 구동되는 앱은 구글 플레이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이렇듯 구글은 앱 판매에서 애플만큼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지 않다.

 

애플이 구글보다 앱스토어 생태계에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시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애플 앱스토어가 창출하는 매출액의 약 반가량이 중국에서 발생한다(<뉴시스> 2020/6/18). 애플의 성공에는 2010년 구글 철수 이후 중국에서 구글 플레이가 제공되지 않는 현실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 중국에 보급된 안드로이드폰들은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Andriod Open Source Project: AOSP)’를 기반으로 자체 OS를 만들어서 탑재하는데, 이 AOSP에는 안드로이드 OS의 핵심만 제공될 뿐, 구글의 여타 서비스들은 탑재되어 있지 않다.

 

갑자기 구글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구글 플레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독자적으로 앱스토어를 운영해야 했다. 또한, 중국의 앱 개발자들도 구글 플레이 대신 다양한 앱스토어에 맞는 앱을 개발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초반, 샤오미,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4사가 글로벌 개발자 서비스 연합(Global Developer Service Alliance: GDSA)라는 독자적인 앱스토어 플랫폼 개발에 나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GDSA에 여러 중국 업체들이 동참한 것은 미중 갈등이 지속되며 그 여파가 화웨이 이외의 업체에까지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2.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플랫폼 경쟁

 

1) AI 알고리즘 플랫폼 경쟁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 대한 논의는 인터넷 환경의 확산과 함께 본격화됐다. 구글이 장악한 인터넷 검색 분야는 인터넷 플랫폼 경쟁이 벌어진 대표적인 초기 사례이다. 그러나 구글은 중국 시장 진출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끝내 구글은 2010년 1월 구글은 중국 시장 철수를 발표했다. 구글이 철수한 빈자리에 시장점유율 70-80%를 차지하며 아성을 구축한 중국 검색업체는 바이두였다. 바이두는 검색 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강력한 데이터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데이터를 결합한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들을 벌이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 서비스에서는 AI 알고리즘의 설계역량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의 구축이 관건이다(이승훈 2016). GAFA로 알려진 미국 기업들이 이러한 새로운 양식의 경쟁을 선도해 가고 있다. 중국도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를 중심으로 개별 기업의 자체적인 연구개발 외에도 국가적 목표를 위해 연구프로젝트를 분담하여 추진하고 있다. 2017년 중국 과학기술부는 ‘신세대 AI 개방형 혁신 플랫폼’으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아이플라이텍을 선정함으로써 이러한 모델의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바이두는 자율주행차, 알리바바는 스마트시티, 텐센트는 의료기기 이미징, 아이플라이텍은 스마트 음성인식 등을 맡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AI 플랫폼 경쟁에서 미중 양국의 전략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개방형의 AI 생태계를 조성하고 여기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미국은 주로 AI의 개념설계는 선도적으로 투자하고, 나머지 단계는 개방형 전략을 취하여 추격을 방어하고 글로벌 AI 인재들과 협업하는 방식을 병행한다. 이에 비해 중국은 미국의 AI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를 모방하는 한편, 방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생태계의 구축을 꾀하는 전략을 취한다(김준연 2020).

 

최근 AI가 특정 산업을 넘어 IT산업 전반과 융복합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향후 미중 양국의 경쟁도 새로운 국면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견된다. 중국과의 경쟁에 가세한 미국 IT기업들의 면모만 보아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산업과 서비스의 영역 구분을 넘어서 이들을 가로지르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전략은 개별 기술경쟁이나 특정 산업영역에서 전개되는 경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과 서비스를 아우르는 플랫폼 경쟁을 지향한다. 넓은 의미에서 이들의 경쟁은 단순한 기술패권 경쟁을 넘어서 종합적인 미래 국력경쟁으로,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정책과 제도 및 체제의 경쟁으로 확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AI 분야에서 이러한 정책-제도-체제경쟁은, AI 규제 원칙에 대한 미중의 입장차로 드러났다. 대체로 미중의 AI 규제 원칙은 명분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실제로 AI을 개발·적용하는 과정에 이르면 상대방의 행태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어, AI 규제 정책이나 윤리규범을 둘러싼 마찰과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인권과 개인정보 보호를 중시하는 자발적 규제를 강조한다면, 중국은 인공지능의 적절한 거버넌스를 위한 조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차이는 양국 간의 상호 불신과 신념 차이 등의 요소에 편승하여 자국에 편리한 방향으로 해석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최근 중국의 안면인식 인공지능과 관련된 논란으로 불거졌다. 2019년 10월 트럼프 행정부는 인권 탄압과 미국의 국가안보 및 외교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불법 감시에 연루된 지방정부 20곳과 기업 8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여기에는 센스타임, 메그비, 이투 등 중국의 대표적 인공지능 기업들이 포함됐다. 이러한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과 지능형 감시 시스템이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수출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중국의 통신망과 감시 시스템을 함께 이식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 클라우드·데이터 플랫폼 경쟁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서는 인공지능 활용하여 이미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클라우드는 이런 데이터를 담기 위한 인프라이다. 이 분야에서는 2002년 서비스를 시작한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 AWS)가 선두주자이다. 이후 미국 기업들과 정부의 관심도 높아졌다. 2010년 미 연방정부의 IT 개선을 위한 중점과제로 ‘클라우드 퍼스트(Cloud First)’ 정책을 채택했다. 이후 2017년 미 정부는 모든 정보화 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으며, 좀 더 강경한 기조의 ‘클라우드 온리(Cloud Only)’ 정책도 채택됐다.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은 아마존의 AWS, MS의 애저, 구글의 클라우드 플랫폼의 3강 체제이다. 2019년 이들 3사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32.3%, 16.9%, 5.8%이며, 합산 점유율은 55%에 달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합산 점유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황선명 외 2020).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중국 기업들은 급속히 성장하며 추격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클라우드 산업 개발에 나선 것은 2015년 ‘제조 2025’의 일환으로 발표된 ‘클라우드 발전 3년 행동계획(2017-19)’과 함께 클라우드 사업을 육성한 이후이다(中华人民共和国工业和信息化部, 2017).

 

미중의 클라우드 갈등은 정부 차원으로도 비화하여 데이터의 초국적 유통을 의제로 2019년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제기된 바 있다. 미국이 자국의 빅데이터 기업들의 이익을 내세워 데이터의 초국적 유통을 옹호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데이터를 일국적 자산으로 이해하고 원칙적으로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을 제한할 것을 주장했다(강하연 2020). 특히 데이터 주권의 개념을 내세워 자국 기업과 국민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데이터 유통 활성화 및 그 활용역량을 증대시키려고 한다. 데이터 현지 보관, 해외반출 금지 등으로 대변되는 ‘데이터 국지화(Data Localization)’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Liu 2020).

 

이러한 논리에 기반을 두고 중국 정부는 자국 시장에 대해 미국 클라우드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클라우딩 시장을 비롯해 중국 IT시장의 폭넓은 개방을 요구해왔다. 중국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하려면 중국 업체와의 합작법인을 설립해야 하고, 이는 중국 파트너에 대한 기술이전으로 이어지게 되어, 사실상 시장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많았다. 이에 비해 중국의 최대 이커머스 업체인 알리바바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제약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었다(최필수·이희옥·이현태 2020).

 

게다가 중국 정부는 화웨이 사태를 거치면서 데이터 안보를 강화하는 법안 마련에 나섰다, 2020년 7월 중국은 ‘홍콩국가보안법’ 시행에 이어 정부와 기업이 취급하는 데이터를 엄격히 관리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데이터보안법’ 제정에 나섰다. 이 법안에는 다른 국가가 데이터 이용과 관련해 중국에 차별적인 조치를 취하면, 이에 대응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미국과의 갈등을 고려한 조항도 추가됐다. 외국 정부 등이 투자와 무역 분야의 데이터 이용과 관련해 중국에 차별적인 제한·금지 조치를 취하면, 이에 상응하는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2020년 8월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클린 클라우드’를 강조하는 데서 나타났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미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 텐센트, 틱톡에 이어 ‘신뢰할 수 없는 중국 기술기업’을 퇴출하라고 촉구하면서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거론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알리바바, 바이두, 차이나 모바일, 차이나 텔레콤, 텐센트 등과 같은 기업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에 미국민의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와 코로나19 백신 연구를 포함한 우리 기업의 가장 가치 있는 지식재산이 접근되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밝혔다(하만주 2020).

 

3. 디지털 미디어 및 콘텐츠 플랫폼 경쟁

 

1)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경쟁

 

눈 플랫폼의 대명사인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플랫폼에 모이도록 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최적화한 광고를 올려 수익을 올리는 모델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인스타그램, 메신저와 왓츠앱, 오큘러스 등의 사업도 벌였다. 그러나 중국은 2003년부터 자국 내에서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해외 주요 SNS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한 중국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텐센트였다. 텐센트의 최대 무기는 10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SNS 메신저 위챗이다. 텐센트의 위챗은 단순한 모바일 메신저 앱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 앱’이다. 이 밖에도 텐센트는 폭넓은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 제공, 결제 등 금융 서비스,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율주행이나 의료 서비스의 참여, 클라우드 서비스, 이커머스 등이 그것들이다.

 

최근 텐센트는 주요 사업인 게임, 음악, 모바일 메신저 분야에서 해외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텐센트의 지역별 투자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김성옥 2020). 2020년 9월 미국 정부는 텐센트와 미국 기업들의 거래를 금지했다. 텐센트의 주력 서비스인 위챗도 미국에서 쓸 수 없게 했다. 이 제재로 최근 2-3년 간 내수 기업의 한계를 넘기 위해 글로벌 게임·클라우드 시장을 공략하던 텐센트는 발목이 잡혔다. 미국의 제재가 게임까지 번진다면, 매출도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텐센트에 대한 제재는 미국 연방법원에서도 논란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애플, 월마트, 포드차 등 미국 기업들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오로라 2020).

 

미국 정부는 디지털 동영상 서비스인 틱톡도 제재하여 논란거리가 됐다. 디지털 동영상 플랫폼이 인터넷으로 진입하는 첫 관문으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최근 가입자가 급증하는 디지털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이다. 페이스북이 사람들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소식, 엄밀하게 말하면 소식이 만들어지는 관계를 콘텐츠화하는 서비스라면, 유튜브는 콘텐츠 자체인 동영상을 서비스한다. 바이트댄스의 틱톡은 유튜브에 위협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틱톡의 성공은 유튜브처럼 전문적인 영상편집 기술이 없어도 동영상 제작이 가능한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바이트댄스(ByteDance)는 기존의 BAT에서 바이두(Baidu)를 밀어내고 새로운 BAT를 구성하는 것으로까지 평가된다. 중국의 대다수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내수를 근간으로 한 로컬 플랫폼으로 성장했지만, 틱톡은 기술 기반의 글로벌 플랫폼으로 초기부터 자리매김했다. 기존 중국의 IT 기업들이 자국의 방대한 내수시장 공략에만 집중한 탓도 있지만, 중국 이외 지역으로 뻗어가기에는 기술력과 확장성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알리바바나 텐센트와 같은 초대형 IT기업들도 중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내수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플랫폼 기업들이 대륙을 벗어나 전세계 무대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글로벌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과정에서 바이트댄스 같은 기업의 역할이 컸다(윤재웅 2020, 259).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2020년 8월 국가안보를 이유로 틱톡을 금지하고 틱톡과 관련한 미국 내 자산을 모두 매각하라는 행정명령에 내렸다. 이에 바이트댄스는 오라클, 월마트 등과 매각 협상을 벌이면서 미국 내 틱톡 사업을 관장할 ‘틱톡 글로벌’을 만들기로 합의하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중국 정부가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같은 틱톡의 핵심기술을 수출제한 목록에 올리는 맞불 정책을 펴면서 틱톡 매각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중국의 플랫폼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는 향후 그 대상기업을 바꾸어 가면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지만, 결국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러 바이트댄스의 틱톡에 대한 제재는 다소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경쟁

 

SNS 또는 디지털 동영상 분야의 플랫폼 경쟁과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이 오버더톱 (Over The Top: OTT 플랫폼 경쟁이다. OTT는 인터넷으로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 교육 같은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OTT 플랫폼 기업으로는 넷플릭스가 선두주자이다.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은 시네매치라는 핵심 알고리즘에 있는데, 사용자의 콘텐츠 소비 형태를 분석하여 기기별 상황에 따라 콘텐츠를 추천한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뒤를 디즈니와 애플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김익현 2019; 고명석 2020).

 

중국 미디어 시장도 디지털 플랫폼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TV 등 유선방송에서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본격적인 전환이 이루어지며 아이치이, 텐센트 비디오, 유쿠투도우 등 OTT 플랫폼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2015년 1,100만 명에 불과하던 아이치이의 유료 회원 수는 2019년 2분기에 1억 명을 돌파했다. 중국 미디어 산업의 주도권이 점차 OTT로 넘어오면서 2015년을 기점으로 동영상 플랫폼 업체의 콘텐츠 구매 가격이 TV방송사의 구매 가격을 넘어섰으며, 2017년에는 동영상 플랫폼 업체의 콘텐츠 투자 규모가 TV 방송사보다 커졌다(윤재웅 2020, 244).

 

BAT로 대변되는 중국 플랫폼 기업들은 영화산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영화산업은 이들 기업이 기존 플랫폼을 활용하는 아주 매력적인 통로이다. 중국의 박스오피스 매출이 주로 온라인 결제를 통해서 이뤄지는 상황에서 영상 콘텐츠를 확보한 후 스트리밍 서비스와 광고로 매출을 올리는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영화의 제작, 유통, 연예기획 외에도 홍보, 결제에 이르기까지 영화산업 전반에 진출하였다. 바이두는 영화 배급과 제작보다는 인터넷 전용 콘텐츠를 통한 온라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김상배 2017, 113).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서 사용자들의 ‘시간’이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면, OTT의 가장 큰 경쟁자는 게임이다. 게임산업은 대략 스마트폰용 모바일 게임이 45%, 콘솔게임이 32%, 온라인과 패키지를 포함한 PC게임이 23%를 차지한다(김창우 2019). 콘솔게임 분야는 MS·소니·닌텐도 등 미국과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고, 모바일 게임 분야의 신흥 강자는 중국이다. 게임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 보니 최근에는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게임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중국 게임 개발사들이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게임산업 보호정책도 한몫했다. 중국 업체들은 게임 운영에 필요한 경험을 축적하고 사용자들의 성향을 파악할 시간을 벌었다. 더불어 자본을 축적한 중국 게임업체들은 해외 유수 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이들이 가진 게임 콘텐츠와 기술력, 그리고 개발인력까지 흡수해서 몸집을 불려 나갔다. 또한,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형성된 모바일 환경은 중국 게임산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양종민 2020, 330).

 

중국과 전 세계의 게임시장을 선도하는 게임 플랫폼 기업은 텐센트이다. 최근 텐센트는 전 세계에 걸친 투자를 통해 게임산업 체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텐센트의 공격적 행보는 미국 정부의 제재를 유발하기도 했다. 2020년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The 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CFIUS)는 텐센트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와 에픽게임즈에 서한을 보내 미국 사용자의 개인정보 처리 내규에 대한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위챗 금지의 행정명령을 내린 것과 맞물리며 미국 정부가 텐센트 제재에 착수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김연하 2020).

 

4. 이커머스 및 핀테크 플랫폼 경쟁

 

1) 이커머스 플랫폼 경쟁

 

이커머스 분야의 선두 기업은 미국의 아마존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의류와 식품, 가전을 거쳐 디지털 콘텐츠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금융 서비스, 오프라인 상점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다양하게 확장했다. 특히 물류 서비스에서 아마존은 트럭에서 항공기, 드론까지 더 빨리, 더 많이 배송하기 위해 첨단기술의 동원에 힘썼다. 이런 아마존도 중국 진출에는 실패했다. 아마존은 2017년 7월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지 15년 만에 중국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에 비해, 알리바바는 중국 이커머스 시장의 약 62%를 차지하고 있다. 스스로 구매해서 파는 직판이 주류인 아마존에 비해, 마켓플레이스형 사업이 주류인 알리바바는 매일 수많은 사용자의 수요를 파악해 맞춤형 추천상품을 소개하는 작업에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알리바바는 이커머스와 인공지능뿐 아니라 핀테크, 클라우드, 온라인 헬스케어, 자율주행OS 등 다양한 분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이커머스와 간편결제 분야의 강자로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여 수요자 맞춤형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해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알리바바의 장기 비전은 첨단기술 역량을 결합하여, 중국인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들이 알리바바 플랫폼에 의존하는 일종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는 알리바바 생태계 내의 모든 거래와 관련된 기능을 온라인에서 조직하는 일종의 ‘하이퍼 플랫폼’이라고 평가된다(김성옥 2020).

 

이러한 알리바바의 모델은 거대한 규모의 중국 시장을 바탕에 깔고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경쟁력을 견고히 한 후 2016년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알리바바는 중국의 이커머스 성공 경험을 6억 명의 잠재 소비자를 보유한 동남아로 확장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2016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5개국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라자다를 인수했다. 이후 알리바바는 인도네시아 이커머스 업체인 토코피디아에 거액을 투자했다. 그 결과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가 20억 달러 이상인 동남아시아 6개 국가 중 점유율 상위 4위 기업순위에 알리바바 관련 기업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알리바바가 동남아시아 전자상거래 시장을 사실상 평정한 것이다”(윤재웅 2020, 240).

 

이커머스의 글로벌 영향력 강화는 핀테크, 클라우드 계열사도 함께 현지 시장에 진출하면서 동남아 지역의 알리바바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커머스 사업의 해외 진출이 모바일 결제로 연결되면서 알리바바의 핀테크 기업인 앤트파이낸셜은 동남아 지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모바일 결제 플랫폼 기업에도 투자를 확대하면서 동남아 핀테크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중국의 클라우드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알리바바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본토 외에 호주, 인도네시아, 인도,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도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한다.

 

2020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알리바바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거론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알리바바의 확장은 미국 시장뿐만 아니라 동남아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아마존 권역과 알리바바 권역의 충돌이라는 도식이 그려진다. 아마존은 북미와 유럽, 일본을 점령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의 승리 여부에 미래를 걸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알리바바는 중국에서의 압도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아시아를 석권한 데 이어 일본과 유럽을 공략하고 있다. 이 승패는 향후 아마존과 알리바바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명운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Ninia 2020).

 

2) 디지털 화폐 플랫폼 경쟁

 

이커머스 플랫폼 경쟁은 모바일 결제 플랫폼과 연동된다. 2010년 설립된 미국의 페이팔은 디지털 결제시장에서 원조로 꼽히며 성장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정작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혁신을 주도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기업들은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며 금융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중국인의 90% 이상이 모바일 결제 수단으로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사용하고 있다(이왕휘 2018; 김채윤 2020). 중국에서는 모바일 결제를 통해 쌓인 빅데이터가 이커머스, 모빌리티, O2O,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활용되면서 기존 산업구조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윤재웅 2020, 66).

 

알리페이는 모바일 국제결제 시스템을 신용카드 보급이 더딘 동남아로 확장했다. 2015년 인도 페이티엠의 지분 40% 확보를 시작으로, 2016년 태국 트루머니, 2017년 한국 카카오페이, 필리핀 지캐시, 알리페이홍콩, 말레이시아 터치앤고, 인도네시아 다나, 2018년 파키스탄 이지파이사, 방글라데시 비캐시까지 9개국 12억 명의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막대한 자금력과 QR코드 등 중국에서 수년간 축적한 서비스 경험을 결합했다. 모바일 결제는 이들 국가의 알리바바 생태계에서 조용히 지배력을 넓혀가는 플랫폼이다. 이에 사용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리페이의 일원이 되고 있다(서봉교 2020).

 

 

알리페이를 겨냥한 미국 정부의 견제도 거세다. 2018년 1월 CFIUS는 앤트파이낸셜이 미국 최대 송금서비스 업체 머니그램을 인수하는 것을 제지했다. 또한, 2020년 들어서는 미국 정부가 앤트파이낸셜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하며 제재의 칼을 뽑아 들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미국이 중국 최대 핀테크 업체 제재까지 고려하고 나선 것은 달러 중심 금융 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알리페이 등 디지털 기반 송금 시스템은 기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 SWIFT)를 우회하기 때문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앤트파이낸셜 제재의 기저에는 미국 주도의 국제 신용카드 기반 SWIFT 시스템에 대한 중국발 모바일 결제 플랫폼의 도전이 있다(서봉교 2019).

 

2019년 6월 페이스북이 공개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인 리브라는 디지털 화폐 플랫폼 경쟁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현재 디지털 화폐 분야에서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대상은 2020년 4월 중국이 시연을 보인 디지털 위안화 또는 디지털 화폐 및 전자결재 (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DCEP)다. 중국은 장기적으로는 달러 중심의 기존 국제 통화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기존의 위안화로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패권을 흔드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은 디지털 화폐라는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것이다(이성현 2020). 미국 정부는 디지털 화폐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는데. 2020년 들어 코로나19 재정지원금 지급 등에서 정부 주도로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디지털 위안화 요인이 자극제가 되었다(이광표 2020).

 

이러한 중국과 미국의 디지털 화폐 분야의 행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디커플링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부터 알리바바가 알리페이를 통해 분산형 기술인 블록체인을 활용한 국제송금을 본격화했는데, 필리핀, 파키스탄 등으로 송금 대상국을 확대하고 있다. 알리페이는 일개 기업의 금융 서비스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쪼개질 가능성이 있는 세계 금융권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이 채무상환이나 무역 대금 결제 등과 관련해 별도의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실질적인 위험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다나카 미치아키 2019, 292).

 

Ⅳ.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복합지정학

 

1. 글로벌 공급망 갈등의 비지정학

 

2019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주요 IT기업들에게 화웨이와의 거래 중지를 요구했다. 미국 당국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렸고, 주요 민간 IT기업들에게 거래 중지를 요구했다. 이러한 조치는 화웨이 제품의 수입중단 조치와는 질적으로 다른 파장을 낳았다. 글로벌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품 공급 차질에 따라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 등이 막힌다면, 화웨이는 미국의 의도대로 5G 이동통신 시장에서 완전히 축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방안이 현실화 된다면 미국의 통신장비 공급망이 완전히 새롭게 짜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이슈와 관련된 미중 기술경쟁의 가장 큰 현안은 반도체다. 미국의 원천기술이 전 세계 거의 모든 반도체에 사용되는 등 우위를 점한 가운데, 중국이 추격 중이다. 중국의 낮은 반도체 자급률도 문제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45% 내외를 차지하고, 반도체 수입액은 원유 수입액을 상회한다. 이에 ‘중국제조 2025’는 70% 자급률의 목표를 내걸었다.

 

최근 미국은 반도체를 대중 압박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5G 통신장비 문제로 논란이 된 화웨이의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해서 TSMC를 압박하고 SMIC를 제재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기존의 대중 제재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 내 생산 비중이 44%밖에 안 되는 반도체 공급망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 리쇼어링을 추구하는 한편, 미국의 반도체 기술혁신과 생산역량 증대를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대해 중국도 반도체 기술역량을 강화하는 지원책 확대로 맞섰다. 2020년 8월 중국 국무원이 반도체 산업 진흥책을 발표한 데 이어, 2021년 3월에는 실행 계획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반도체와 함께 쟁점이 된 분야는 배터리, 전기차, 친환경 소재 등이다. 반도체와는 달리 배터리 분야는 중국 업체들이 앞서가고 있다. 특히 전기차용 배터리는 세계 1위를 차지했는데, 2020년에는 34.9%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며 2위인 한국(36.2%)을 제쳤다. 또한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2021년 기준으로 중국은 170만 대, 북미는 50만 대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 친환경 소재 분야에서 중국의 희토류 생산은 전 세계의 약 80%를 차지하고, 친환경 소재 및 물질의 점유율도 약 45%이다.

 

이들 분야는 미국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분야이다. 따라서 미중 갈등이 악화할 경우 미국의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차 사업에서 1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하는 등 전기차, 배터리, 친환경 소재의 국내 개발 및 생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한국, 일본, EU 등과 그린테크 공급망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바이오·제약 기술경쟁이 세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 분야의 미중경쟁도 치열히 전개되어, 미국은 화이자 이외에도 모더나, 노바백스, 얀센 등을 개발했고, 중국은 시노백, 시노팜, 칸시노 등을 개발했다. 그러나 중국 백신의 안전성과 그 개발과정, 특히 임상시험의 불투명성은 논란거리다. 미중 간에는 코로나19 백신외교 경쟁도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바이오·제약 산업의 공급망 취약성도 불거졌다. 미국은 의료장비와 의약품 생산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중국산 의료장비·부품이 미국의 수입에서 큰 비중 차지하는데, 초음파 진단기기에서는 2018년 기준 22%가 중국산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원료의약품 공급 지연이 발생하면서 이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100일 공급망 검토’에 제약 산업을 포함시켰다. 미국은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미중 간의 바이오·제약 분야 기술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2. 동맹·외교의 플랫폼 경쟁의 고전지정학

 

이상에서 살펴본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을 아울러서 보면, 국가 간 또는 진영 간에 일종의 ‘동맹과 외교의 플랫폼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0년 8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으로부터 중요한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수호하기 위한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상을 발표했다.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이동 통신사와 모바일 앱, 클라우드 서버를 넘어서 해저 케이블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모든 IT 제품을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인의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해 사실상 전 세계 인터넷 비즈니스와 글로벌 통신업계에서 중국 기업들을 몰아내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로 맞대응했다. 2020년 9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다자주의, 안전과 발전, 공정과 정의를 3대 원칙으로 강조했다. 데이터 안보에 대한 위협에 맞서 각국이 참여하고 이익을 존중하는 글로벌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데이터 안보와 관련해서 다자주의를 견지하면서 각국의 이익을 존중하는 글로벌 데이터 보안 규칙이 각국의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부 국가가 일방주의와 안전을 핑계로 선두기업을 공격하는 것은 노골적인 횡포로 반대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은 ‘클린(clean)’이라는 말에 담긴 것처럼 ‘배제의 논리’로 중국을 고립시키는 프레임을 짜려 하고, 중국은 새로운 국제규범을 통해 동조 세력을 규합해 미국 일방주의의 덫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좀 더 넓게 보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중 양국이 벌이는 동맹과 외교의 플랫폼 경쟁에서 어느 측이 이길 것이냐의 여부는, 미중 양국이 제시한 어젠다에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동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 국무부는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와 기업이 클린 네트워크에 가입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9억 명의 인터넷 시장 참여 기회를 강조하며 중견국 및 개발도상국을 포섭할 전망이다. 미 국무부는 2020년 8월 초 기준으로 클린 네트워크에 30여 개국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대만은 8월 31일 공식적으로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비해 왕이 외교부장은 유엔과 G20, 브릭스, 아세안 등 다자 플랫폼에서 데이터 안보를 논의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중국 외교관들이 이니셔티브 발표에 앞서 다수의 외국 정부와 접촉했지만 얼마나 많은 지지를 얻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언뜻 보기에는, 미국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이 5G·사이버 인프라를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에 보급하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기에 꼭 불리하다고 보긴 힘들다.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이커머스, 핀테크, SNS, OTT 등 자국산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서 실력을 쌓은 기업들을 동남아와 아프리카, 중동 등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지역으로 진출시켜 ‘디지털 죽(竹)의 장막’을 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갖출 뿐 아니라 미국의 포위 전략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현대판 실크로드라고 할 수 있는 일대일로 구상의 디지털 버전인 ‘디지털 실크로드’이다(차정미 2020). 중국은 크게 세 가지 방면에서 디지털 실크로드를 추진하고 있다. 첫째, 중국은 차세대 이동통신망인 5G와 광케이블,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인터넷 인프라 제공에서 세계 선두주자로 올라서려 한다. 둘째, 중국은 위성항법장치와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등 중요한 경제전략 자산이 될 첨단기술 개발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끝으로, 디지털 실크로드로 구축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이커머스 플랫폼 구축, 디지털 화폐 유통 등을 통해 중국 중심의 디지털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3. 규범·가치의 플랫폼 경쟁의 비판지정학

 

이러한 디지털 실크로드를 따라서 중국은 외교적 행보를 벌여 미래 디지털 세계에 중국의 구미에 맞는 국제규범을 전파하려 한다. 다시 말해,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를 통해서는 전 세계에 ‘디지털 권위주의 모델’을 수출하여 정치적으로 비(非)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이렇게 보면, 미중이 벌이는 플랫폼 경쟁은 외교 분야의 ‘내 편 모으기’ 경쟁일 뿐만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규범과 가치의 플랫폼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다. 20세기 후반 구축된 미국 주도의 규범과 가치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와 이를 반영한 디지털 플랫폼이 작동했다(O’Mara 2019). 이제는 중국의 규범과 가치가 도전한다. 실제로 중국은 자신만의 규범과 가치가 적용된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화웨이의 5G가 세계에 깔리기 시작하면 중국의 표준이 깔리고, 그 위에 그 표준에 맞는 플랫폼들이 접속될 것이다. 그 플랫폼은 권위주의적 가치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국가 플랫폼에 접속된 시민의 거의 모든 정보가 국가로 넘어갈 수 있으며, 국가는 인공지능이라는 첨단기술로 시민을 매우 정교하게 감시·통제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의 플랫폼 독과점은 거대한 최첨단 권위주의 국가로 가는 길이다.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수많은 개도국과 체제 전환국이 중국 모델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권위주의 가치 블록을 형성해 자유주의 국제질서 내부를 두 블록으로 분할하는 것이 중국이 가려는 길이다(이근 2019).

 

반대편에 미국을 중심으로 또 다른 거대 플랫폼 블록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클린 네트워크 구상도 그러한 경향을 담았지만, 향후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그러한 가치 지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술보다 가치를 강조하고 안보보다 규범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동맹 전선을 고도화하여 국제적 역할과 리더의 지위를 회복하고 다자주의를 강조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국가 기반시설 수호를 위해 다른 국가와 협력을 표명하며, ‘하이테크 권위주의’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사이버 민주주의 동맹’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취임 후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적 행보는 기후변화 분야를 위시한 국제규범에서의 복귀에서 나타났다. 2021년 6월 영국 콘웰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도 미국이 구상하는 향후 국제질서 운영과 서방 진영이 재결속되는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여 중국도 보편성과 신뢰성, 인권규범의 문턱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국면에서 이러한 보편성과 신뢰성을 놓고 미중은 경합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미중 양국이 벌이는 체제경쟁의 양상을 부각시켰다. 정치 리더십의 판단과 결단력, 정보의 공개와 투명성 등도 쟁점이 되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 모두가 이러한 차이점을 상대국에 대한 체제 우월성의 이데올로기적 근거로 활용했다. 양국의 국내체제 모델에 기반을 둔, 미중 양국의 글로벌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존의 국제기구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새로운 국제레짐의 창설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국제협력의 어젠다를 주도할만한 국가의 부재 현상과 맞물리면서, 일종의 글로벌 거버넌스의 공백이 우려되었다.

 

미중은 글로벌 차원에서 협력의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으기보다는 각기 동맹의 결속을 모색하는 진영논리로 대응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모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동맹외교의 추진에 있어서 의도했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행보 앞에 동맹의 균열이 우려되었다. 중국의 외교적 리더십이 보여준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코로나19 발원지라는 ‘중국 책임론’을 코로나19 해결사라는 ‘중국 공헌론’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중국 체제 내부의 경직성 문제뿐만 아니라 거칠게 수행된 중국의 외교 공세는 국제사회가 오히려 중국 모델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역설적 효과마저 창출했다.

 

4. 분할인터넷 출현 가능성의 탈지정학

 

이상에서 살펴본 동맹·외교와 규범·가치의 플랫폼 경쟁은 ‘플랫폼의 플랫폼’(Platform of Platforms)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어느 한 부문의 플랫폼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라기보다는 여러 플랫폼을 아우른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종합 플랫폼’ 또는 ‘메타 플랫폼’의 경쟁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사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글로벌 패권경쟁’이라는 개념도 바로 이러한 ‘플랫폼의 플랫폼’ 경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권력질서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랫폼의 플랫폼’ 경쟁의 결과는 어느 일방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세력전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플랫폼의 플랫폼’ 경쟁은 두 개의 플랫폼이 호환되지 않는 상태로 분할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플랫폼의 플랫폼’ 경쟁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전망을 더 강하게 갖게 한다. 다시 말해, 최근의 추세는, 미국과 중국이 디지털 패권경쟁을 벌이면서 전 세계를 연결하던 인터넷도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성장과 미중 무역전쟁, 공급망 디커플링, 탈지구화, 민족주의, 코로나19 등으로 대변되는 세계의 변화 속에서 ‘둘로 쪼개진 인터넷’은 쉽게 예견되는 사안이다. 미국을 추종하는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반쪽 인터넷을 이용하고, 중국에 가까운 국가들은 중국 주도의 나머지 반쪽 인터넷을 이용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 일단 힘이 실린다. 한국처럼 미중 양국에 대한 안보 또는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둘로 쪼개진 인터넷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사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인터넷 세상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중국 내에서는 유튜브, 구글 검색,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는 물론 해외의 유명 언론매체도 차단되고 있다. 중국은 만리방화벽에 빗댈 정도로 강력한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통해 자국 체제를 반대하는 정보가 유입되지 못하도록 막고, 국내의 중국인들이 외국의 인터넷 플랫폼에도 접속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 그 결과 중국인들은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대신 바이두나 위챗, 웨이보 등을 사용하게 됐다. 중국은 이러한 만리방화벽 안에서 자국 기술회사들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콘텐츠를 검열받도록 통제하고 있다.

 

심지어 서방 진영 국가들 사이에서도 인터넷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미국 버전의 인터넷과 유럽 버전의 인터넷으로 갈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전자의 경우 국가안보와 범죄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 프라이버시와 개인의 보호를 강조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국가와 지역별로 서로 다른 기준과 접근성을 가진 인터넷이 탄생하게 되면 국제적인 정보의 교환은 물론, 국제금융과 무역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과거 누구나 접근 가능한 ‘정보의 바다’로 비유되던 하나의 글로벌 인터넷이 서로 분리되고 파편화된 호수나 연못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쪼개진다(Splinter)’와 ‘인터넷(Internet)’의 합성어인 ‘분할인터넷(Splinternet)’이라는 용어로 담겼다. 2018년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은 이러한 분할인터넷의 등장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는데, 그는 인터넷 세계가 미국 주도의 인터넷과 중국 주도의 인터넷으로 쪼개질지도 모른다고 예견했다. 이러한 분할의 비전은 반도체 공급망의 분할과 재편, 데이터 국지화, 이커머스와 핀테크 시스템의 분할, 콘텐츠 검열과 감시 제도의 차이 등으로 입증되는 듯하다. 여태까지의 인터넷이 국경이나 종교, 이념 등과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자유롭고 개방된 형태의 World Wide Web(WWW)이었다면, 앞으로 출현할 분할인터넷은 지리적으로 영역을 구분하여 지역별로 구축된 Region Wide Web(RWW)가 될 가능성이 있다.

 

Ⅴ. 맺음말

 

이 글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진화하고 있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한 단면을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부상이라는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미중 양국 기업들이 벌이는 플랫폼 경쟁의 초기 사례는 윈텔 컴퓨팅 플랫폼에 대한 중국 리눅스의 대항 시도, 구글과 애플의 스마트폰 OS 및 앱스토어 플랫폼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도전 등에서 발견된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구글과 바이두로 대변되는 인터넷 검색 분야의 경쟁과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데이터 플랫폼 경쟁이 관심거리가 되었다. 최근에는 비대면 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SNS 및 동영상 플랫폼, OTT 및 게임 플랫폼을 둘러싼 미중 기업들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각 국면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틱톡, 텐센트, 알리바바 등과 같은 미중 기업들이 쟁점이었다. 향후 뜨거운 쟁점은 이커머스 및 핀테크 분야에서 전개되는 플랫폼 경쟁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중국 플랫폼 기업들의 약진이다.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미래를 엿보는 데 있어, 중국 기업들이 제시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이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사실 지금 거론되는 중국 플랫폼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해 탄생했다. 이커머스 업체인 알리바바는 아마존을, 검색엔진 업체인 바이두는 구글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유쿠는 유튜브를, SNS 업체인 텐센트는 페이스북의 모델을 거의 베끼다시피 했다. 후발 주자로서 기술력이 뒤처진 상황에서 선진 비즈니스 모델을 거대한 자국 시장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스토리는 단순한 모방의 단계에만 그치지 않고 혁신과 역전의 단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드라마틱하다.

 

실제로 최근 몇몇 분야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비즈니스 모델을 참고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개방형 SNS 플랫폼 모델로부터 텐센트의 메신저형 플랫폼 모델로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서비스 수요를 예측해 애초부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핀테크 분야에서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미국 기업들보다 선도적으로 이 분야를 개척했다. 디지털 위안화의 행보도 한 발짝 앞서가면서 미국 주도의 국제 통화질서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메이퇀덴핑과 같이 최근 중국에서 등장한 제2세대 플랫폼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글이 강조한 것은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 경쟁이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의 모습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는 검색엔진, 인공지능, 데이터 국지화, 이커머스와 핀테크 등의 분야에 대한 국제정치적 제재가 변수로 작동했다. 미중 양국의 정부가 주요 행위자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내세우는 제재의 논리 자체가 순수한 경제 논리가 아닌 지정학적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국제정치경제는 최근 외교안보 분야로 확장되어 사이버 동맹과 외교의 플랫폼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디지털 규범과 가치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도 진행되고 있다. 어느 한 부문의 플랫폼 경쟁이라기보다는 복합지정학의 시각에서 본 ‘플랫폼의 플랫폼’ 경쟁이라고 할 정도로 복잡한 양상으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진화하고 있다.

 

현재 미중 간에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 경쟁이 앞으로 더 격화되면 종국에는 인터넷이 둘로 쪼개지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성장과 미중 갈등이 지구화의 해체를 촉발했고 코로나19가 탈지구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마저도 분할될 위험에 처했다. 미국과 중국을 추종하는 국가들은 각기 양국의 분할인터넷 진영에 속해서 삶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른다. 20세기 중후반 미소 냉전으로 인해서 동서양 진영 사이에 높은 장벽이 쌓였듯이, 인터넷 세상에서도 이익과 제도, 이념을 달리하는 두 진영이 출현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한국처럼 미중 양국이 벌이는 경쟁의 틈바구니에 있는 국가들은 두 개의 인터넷 세상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미중 디지털 플랫폼 경쟁 사이에서 취할 한국의 디지털 플랫폼 전략은 무엇일까? 최근까지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우방국을 대상으로 ‘클린 네트워크’에의 참여를 촉구한 바 있다. 그 압력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중국도 ‘한국판 뉴딜’과 중국의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가 통하는 점이 많다며 한국의 동참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서방 진영의 제도와 규범 및 가치를 따르면서도, 중국과는 주로 경제 분야에서 정책과 문화적 유사점이 많다. 마치 한국은 두 개의 플랫폼에 모두 발을 딛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중 양국이 우호관계를 유지할 경우에는 기회이지만, 지금처럼 갈등이 깊어가는 시절에는 딜레마가 된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 보면, 2019년 화웨이 사태에서처럼 ‘개별 민간기업의 판단에 맡긴다’며 정부가 의견 표명을 미루었던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기엔, 앞으로 닥쳐올 두 번째 선택은 좀 더 어려운 순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플랫폼의 틈새가 크지 않을 때는 양다리 작전이 통했지만, 지금처럼 플랫폼의 틈새가 점점 더 벌어질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접근법부터 달라야 한다. 특히 기업들이 벌이는 디지털 플랫폼 경쟁의 양상이 좀 더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쟁의 성격 자체가 지정학적 사안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적으로 선택의 압박이 가해져 오기 전에, 시급하게 중견국으로서 발휘해야 할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강하연. 2020. “글로벌 빅데이터 거버넌스의 정치경제.” 이승주 편. 『미중경쟁과 글로벌 디지털 거버넌스』 사회평론, pp.159-188.

고명석. 2020. 『OTT 플랫폼 대전쟁: 코로나 팬데믹 이후 디지털 플랫폼의 미래』 세빗.

김상배. 2017. “정보·문화 산업과 미중 신흥권력 경쟁: 할리우드의 변환과 중국영화의 도전.” 『한국정치학회보』 51(1), pp.99-127.

김상배. 2018.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 사이버 안보의 세계정치와 한국』 한울.

김상배. 편. 2020. 『4차 산업혁명과 미중 패권경쟁: 정보세계정치학의 시각』. 사회평론.

김상배. 편. 2021. 『비대면 시대의 미중 기술경쟁: 정보세계정치학의 시각』 사회평론.

김성옥. 2020. “중국 인터넷 플랫폼 기업의 현황 및 성장전략.” 『한중Zine INChinaBrief』 380, 2월 24일. 인천연구원.

김연하, 2020. “美, 이번엔 텐센트 조준···‘데이터 규약 내놔’.” 『서울경제』 9월 18일.

김익현. 2019. “포스트 넷플릭스, 전쟁의 서막: 글로벌 OTT 시장 현황과 전망.” 『방송문화』 419, pp.107-120.

김조환. 2017. 『플랫폼 전쟁: 미디어 패권을 둘러싼 전쟁에서 한국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메디치.

김준연. 2020. “미중 AI 패권경쟁: 기술추격론에서 본 중국의 추격과 미국의 견제.” 이승주 편. 『미중경쟁과 글로벌 디지털 거버넌스』 사회평론, pp.307-343.

김창우. 2019. “미·중·일 틈에 갇혔다…게임 코리아 식은땀.” 『중앙일보』, 10월 19일.

김채윤. 2020. “미중 디지털 금융표준 경쟁과 중국의 핀테크 전략: 모바일 지급결제(TPP) 플랫폼을 중심으로.” 김상배 편. 『4차 산업혁명과 미중 패권경쟁: 정보세계정치학의 시각』. 사회평론. pp.88-134.

뉴시스. 2020. “애플 앱스토어 지난해 매출 625조원…47% 中서 발생” 『동아일보』 6월 16일.

다나카 미치아키. 2019. 『미중 플랫폼 경쟁: GAFA vs. BATH』. 세종.

서봉교. 2019. “미중 국제금융 헤게모니 경쟁과 중국의 디지털 국제금융 도전.” 『미래성장연구』 5(2), pp.35-55.

설진아·최은경. 2018. “GAFA의 플랫폼 전략과 네트워크 효과 유형 분석.” 『방송통신연구』, pp.104-140.

양종민. 2020. “문화산업의 신흥권력 경쟁과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전략.” 김상배·이승주·전재성 편. 『중견국 외교의 세계정치: 글로벌-지역-국내의 삼중구조 속의 대응전략』, 사회평론, pp.315-363.

오로라. 2020. “미국, 화웨이 이어 텐센트 때리기… 중국판 카톡 ‘위챗’ 못쓰게 막는다.” 『조선일보』, 9월 16일.

오일석. 2020. “코로나19 확산과 5G 기술 패권경쟁.” 『이슈브리프』 통권182호. 4월 7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병철, 2018. “세계 최초 5G 상용화와 화웨이 장비 보안성 논란.” 『보안뉴스』, 7월 26일.

유한나. 2021. 『차이나 디지털 플랫폼 전쟁』 북스타.

윤재웅. 2020. 『차이나 플랫폼이 온다: 디지털 패권전쟁의 서막』 미래의 창.

이광표. 2020. “막 오르는 디지털 화폐 시대…기축통화 패권전쟁.” 『매일신보』, 6월 15일.

이근. 2019. “동아시아 강타한 미·중 ‘가치 블록’.” 『시사인』, 8월 12일.

이성현. 2020. “중국의 디지털 화폐 추진 현황과 함의.” 『세종정책브리프』, 12월 14일.

이승훈. 2016. “인공지능 플랫폼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LG Business Insight』, 5월 11일.

이왕휘. 2018. “핀테크의 국제정치경제: 미국과 중국의 경쟁.” 하영선·김상배 편. 『신흥무대의 미중경쟁: 정보세계정치학의 시각』, 한울엠플러스, pp.223-241.

조용호. 2011. 『플랫폼 전쟁: 이기는 자가 미래다』 21세기북스.

차정미. 2020.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 ‘중화 디지털 블록’과 ‘디지털 위계’의 부상.” 이승주 편. 『미중경쟁과 글로벌 디지털 거버넌스』 사회평론, pp.87-132.

최필수·이희옥·이현태. 2020. “데이터 플랫폼에서의 중국의 경쟁력과 미중 갈등.” 『중국과 중국학』, 39, pp.55–87.

하만주. 2020. “미, 중국 통신사·앱·클라우드·케이블·스마트폰, 총체적 타격 전략 발표.” 『아시아투데이』 8월 6일.

황선명 외. 2020. “글로벌 플랫폼 바이블 중국편: New BAT, 중국을 넘어 세계를 흔들다.” 『해외투자2.0: Global Research』 삼성증권. 6월 4일.

Galloway, Scott. 2017. The Four: The Hidden DNA of Amazon, Apple, Facebook, and Google. New York Times: Portfolio/Penguin.

Johnson, Keith and Elias Groll. 2019. “The Improbable Rise of Huawei. How did a Private Chinese Firm Come to Dominate the World’s Most Important Emerging Technology?” Foreign Policy, Apr 3.

Liu, Jinhe, 2020, “China’s Data Localization.” Chinese Journal of Communication. 13(1), pp.84-103.

Mori, Satoru. 2019. “US Technological Competition with China: The Military, Industrial and Digital Network Dimensions.” Asia-Pacific Review, 26(1), pp.77-120.

Ninia, John. 2020. “The impact of e-Commerce: China verses the United States.” Cornell University SC Johnson College of Business. https://business.cornell.edu/hub/2020/02/18/impact-e-commerce-china-united-states/ (검색일: 2021년 2월 8일).

O’Mara, Margaret. 2019. The Code: Silicon Valley and the Remaking of America. New York, Penguin Press.

Parker, Geoffrey G., Marshall W. Van Alstyne, Sangeet Paul Choudary. 2017. Platform Revolution: How Networked Markets Are Transforming the Economy and How to Make Them Work for You. W. W. Norton & Company.

Simon, Phil. 2011. The Age of the Platform: How Amazon, Apple, Facebook, and Google Have Redefined Business. Morton Publishing.

王成录. 2021. “鸿蒙OS绝不是安卓或iOS的拷贝!” 『腾讯网』,2021-1-13 https://new.qq.com/omn/20210113/20210113A06EB900.html (검색일: 2021년 2월 8일)

中华人民共和国工业和信息化部. 2017. “云计算发展三年行动计划(2017-19年) 解读.” https://www.miit.gov.cn/zwgk/zcjd/art/2020/art_78b03dae6f744842a1b7805bb6adc774.html (검색일: 2021년 2월 7일).

 


 

[1] 이 글이 제시한 ‘플랫폼 경쟁’ 또는 ‘플랫폼 권력’의 시각에서 미중경쟁을 다룬 기존 국내외 연구로는 Simon(2011). 조용호(2011), 김조한(2017), Parker, et al.(2017), Galloway(2017), 다나카 미치아키(2019), 윤재웅(2020), 고명석(2020), 김상배 편(2020; 2021), 유한나(2021)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저자: 김상배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관계에서 정보, 통신, 네트워크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 사이버 안보의 세계정치와 한국》 (2018),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 : 네트워크 세계정치이론의 도전》 (2014), 《정보혁명과 권력변환 :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각》 (2010), 《정보화시대의 표준경쟁 : 윈텔리즘과 일본의 컴퓨터산업》 (2007)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세부사업

코로나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