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중국연구패널 보고서 No.4

 

저자

정환우(鄭煥禹)_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중국정치 전공)를 취득하였다.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원, 중국 남경대학 및 상해사회과학원 방문학자, 가톨릭대학교 아태지역연구원 상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로는, 중국의 통상정책 및 통상관계, 중미 통상관계, 중국 정치경제, 한중 통상관계 등이며, “차이나포럼” 사무국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저작에는 《차이나트렌드 2010-2011》(공저, 2010), 《중국외교 연구의 새로운 영역》(공저, 2008), “세계화와 추격전략 : 자동차 산업을 통해 본 중국 (신)산업통상정책의 성과와 한계”(2009), “과욕과 현실적 제약의 딜레마 : 중국의 FTA 경험”(2008) 등이 있다.

 

 


 

 

I. 서론

 

2011년 1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미를 며칠 앞두고 국무부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서 힐러리(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은 “우리 둘은 모두 현재의 질서에 깊이 연계되어(invested) 있으며 갈등보다는 협력으로부터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Clinton 2011). 며칠 뒤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은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 양측은 적극적, 협력적, 포괄적 중미관계를 추진하는데 동의했으며, 상호 존중과 호혜에 기반한 협력적 관계를 통해 양국 국민과 세계에 더욱 좋은 이익을 주는 중미간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동의했다”고 화답했다(Obama and Hu 2011).

 

당시 분위기로 봐서 미국과 중국은 말 그대로 공동 운명의 배를 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미국 의회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가결했고 이에 대한 중국측의 강한 반발에 이어 중미 전략 및 경제대화에서는 중국의 환율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설전이 이어졌다. 중미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낙관과 비관이 공존한다. 대체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는 낙관보다 비관이,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낙관적인 대세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경제통상관계 안에서도 하나의 모습만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로 환율과 관련해서 날카로운 설전을 주고받고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둘러싸고 격한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으면서도, 두 거대국가는 여전히 전략 및 경제대화를 유지하고 있다.

 

일견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중미 통상관계와 중국의 대미 통상정책을 어떻게 봐야 할까. 중국의 대미 통상정책을 제대로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이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떤 통상전략을 취할 것인지 분명하게 밝힌 적이 없고, 설사 있더라도 선언이나 수사와 실제 행동이 복합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경우 국가의 정책은 일도양단식의 적대(공격) 혹은 우호(수세) 정책 보다는 일견 다양하고 모순된 정책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통상정책은 대단히 변화무쌍하고, 복합적이며, 수많은 정책패키지(즉 하위정책들)로 구성된 하나의 과정(process)이다(정환우 2008, 177-178). 통상정책 및 관계의 이런 복잡성을 감안, 이 글에서는 세부 통상 영역에 대한 비교를 통해 중국의 대미 통상정책이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가입 초기의 수세적 협력에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균형적 협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를 테면 중국의 대미 통상정책은 방법면에서 수세적에서 균형지향적으로 전환했으되, 목적면에서는 협력 내지 공동관리 영역 확대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살펴보려는 하위 통상정책 영역은 네 부분이다. 무역구제(貿易救濟), 환율, 경제협력, 통상규범 등이다. 통상 관련 정책을 세분해서 살펴볼 경우 일견 갈등 대(對) 대립 등 양자택일적으로 보이는 현상 이면에서 전개되는 복합적인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II. 중미 무역의 변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이른바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개방전략을 펼쳐 왔다. 홍콩,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 신흥국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해 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가공하여 재수출토록 하고, 중국은 이 과정에서 성장률 제고, 외화 획득, 고용 확대, 기술 도입 등의 효과를 얻는 전략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전략을 채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방대한 인구와 여기서 비롯된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이 노동력이 세계경제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해준 중국정부의 개방정책이다. 방대하고, 임금 수준에 비해 양질인 중국의 농촌출신 노동력은 한편으로 고임금에 시달리던 선진국과 신흥공업국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 풍부하지도 않은데다가 질 낮은 노동력을 지닌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엄청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중국지도부 역시 이상과 같은 자국이 지닌 장점(막대한 규모,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 해외 화교자본 존재 등)과 단점(자본과 기술의 부족, 정치적 민감성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수출드라이브 보다는 외자유치에 집중하는 전략을 지속해 왔다.

 

성과는 엄청났다. 사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은 세계의 주목을 끌긴 했으되 국제경제 위상이 실제로 높지는 않았다. 중국의 실제 위상은 WTO 가입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우선 교역량이 급증했다. WTO 가입 직전인 2000년 중국이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8년에는 8.1%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에 미국의 교역 비중이 15.5%에서 10.9%로 급감하고, 일본이 6.6%에서 4.5%로 떨어졌다. 급기야 2009년 중국은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떠올랐다(그림1과 2참조).

 

 

[그림1] 세계 수출에서 주요국의 비중 변화

[그림2] 세계 수입에서 주요국의 비중 변화

자료: Global Insights 2011. 10.

 

중미관계는 바로 이러한 중국의 개방 확대 및 중국의 국제경제적 등장과 궤를 같이했다. 중국의 대외개방 선언 직후인 1979년 4월 크렙스(Juanita M. Kreps) 미국 상무장관이 방중하여 중미무역협정에 가조인했다. 상호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이 협정은 1979년 7월 정식 조인되고 1980년 2월 발효된다. 이후 상당기간 동안 양국은 통상관계 자체보다는 외교안보 내지 인권문제 등 통상외적 요인에 따라 통상관계를 처리했다. 예를 들어 1990년에는 미국의 일부 의원이 인권문제를 빌미로 최혜국 대우를 최소하거나 조건부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견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1994년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대통령은 1995년까지 최혜국대우 연장 및 동 대우와 인권문제를 연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양국간에 통상관계가 본 궤도에 오른 것은 중국의 WTO 가입을 전후해서이다. 1999년 주룽지 총리가 방미하여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하고 중국의 WTO 가입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11월에는 WTO 가입 양자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물론 이때의 중미 통상관계가 ‘정상적인’것은 절대 아니었다.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수용하되 중국에 시장경제지위(Market Economy Status: MES) 를 부여하지 않았고, 특별세이프가드(Special Safeguard: SSG) 조치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견제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미국으로서는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취지였겠지만 중국으로서는 자국이 불평등한 처지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미국이 훗날 이런 수단, 즉 반보조금 및 특별세이프가드를 동원한 대중 통상공세에 나섰을 때 중국은 매우 신경질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하게 된다.

 

어쨌거나 2001년 12월에는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중국과 영구 정상무역관계(최혜국대우) 지위를 선언하고 2002년 1월 발효되게 된다. 이어 2003년 12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중미 경제무역관계 5개항 원칙을 제시하며 부시 대통령은 여기에 찬성을 표한다. 아울러 쌍방은 중미 경제(商務)연석회의의 대화 수준을 높이기로 결정한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후 중미 양국간 교역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해 왔다. 2007년에는 2001년에 비해 3.2배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미간 교역이 양국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급속하게 증가해 왔다. 미국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9.0%에서 2007년에는 16.5%로 늘어났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무역·기술·에너지 질서의 미래

미중경쟁과 한국의 전략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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