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위기와 미국과 중국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는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거대한 세계경제위기로 귀결되었다. 주요국들이 위기 탈출을 위하여 속속 대책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도 세계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만큼 그 충격의 강도는 컸으며, 또한 영향력도 광범위했다. 역사적 분수령으로 기록될 세계경제위기는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조망을 재촉한다.

 

위기 이후 세계정치 담론의 전면에 미국쇠퇴론과 중국부상론이 있다. 위기의 대응에 한계를 보여주었던 미국과는 달리 엄청난 외환보유로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던 중국의 모습은 앞으로의 세계질서가 어떠한 방향으로 재편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핵심적 메시지로 회자되었다. 세계경제위기를 가장 혹독하고 치열하게 겪은 것은 미국이다. 따라서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청사진도 미국에게는 국가의 운이 걸린 문제이다. 미국이 내놓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은 다소 완화되고 협력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국가의 역할뿐만 아니라 국가 간 혹은 세계정치의 주요 행위자 간의 네트워크를 강조하고, 군사력, 경제력과 함께 문화력, 지식력 같은 소프트파워를 중시하며, 세력균형(balance of power)과 균형력(power of balance)의 원칙을 복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빠르게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된 중국은 현재의 1인당 4천 달러 경제에서 2020년대 1만 달러 경제로 성장하기까지는 당분간 선부(先富)국가론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지속적 경제성장을 밑받침 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를 민주화하며, 동시에 근대적 국제화를 넘어 선 복합적 지구화의 안목을 본격적으로 갖추게 되면 중국은 명실상부하게 미국의 뒤를 이어 신세계질서 재건축의 설계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이상적 국가 표준, “복합력”을 키워야 한다

 

위기 이후 세계질서에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변모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 무대, 연기의 복합화다. 미국과 중국의 G2로 상징되는 부국강병의 국제적 각축이 여전히 무대 중심에서 벌이지고 있지만, 동시에 무대 위의 국가와 비국가 주인공들이 그물망으로 엮어져서 군사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환경, 기술지식, 통치의 무대에서 새로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과 새롭게 도전하는 중국이 현재 보여주는 비대칭 공동 주연의 새로운 변화 여부는 복합력의 확보에 달려 있다. 이제 국가는 과거처럼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의존해서만 생존과 번영을 담보할 수 없다. 소프트파워라 일컬어지는 문화적 매력이 국력의 핵심 자원으로 등장했지만 그것을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국제정치의 무대에 국가와 비국가 등 여러 행위자들이 등장하고 그 역할 또한 다채로워지면서,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무대 또한 다면화됨에 따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복합력의 확보가 21세기 이상적 국력의 표준이 되었다. “[군사력, 경제력, 생태균형력, 문화력]∈지식력∈통치력”으로 요약할 수 있는 21세기의 복합력이라는 새로운 문명표준에서 보면 두 국가 중 누가 더 복합력을 효율적으로 강화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생존번영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주인공들은 본격적인 복합화의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새로운 도전, 2중의 복합화

 

국력의 새로운 지표로서 복합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와 함께, 동아시아 국가들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바로 “2중의 복합화”의 요구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근간을 이루었던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는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가 확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식 근대성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에 무참히 패배한 동아시아는 강제된 근대성의 요구에 따라 유럽식 근대국제질서를 지역에 이식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지난 100여 년 동안 동아시아는 국가의 절대적 주권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국제질서의 논리를 익히는 데 주력해야 했다.

 

21세기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새로운 복합의 국제질서를 수용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국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 그리고 국가의 안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얽히고 설키면서 궁극의 생존과 번영을 달성해야 하는 복합 세계질서의 요구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경제와 정치의 통합을 꿈꾸며 다양한 실험을 해 오면서 교류와 협력으로 중층적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된 유럽에 비교해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늦은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위기 후 동아시아 질서는 21세기 복합세계질서라는 새로운 문명표준을 따라잡아야 하는 동시에, 복합세계질서와 근대국제질서의 복합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중대 과제를 안고 있다.

 

《위기와 복합 :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세계경제위기의 먹구름이 본격적으로 몰려 올 무렵 동아시아연구원(The East Asia Institute: EAI) 국가안보패널은 함께 모여서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비책을 토론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위기 이후 세계질서는 탈냉전 이후 진행되고 있는 문명사적 변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이에 2009년 9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국가안보패널의 연구진들이 모여 진행한 집단 토론과 연구의 결과를 묶어 출간하게 된 단행본이 《위기와 복합 :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이다. EAI 국가안보패널에 소속된 학자 총 11인이 참여한 이 책은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의 주인공, 무대, 연기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한반도가 자리잡고 있는 동아시아에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안보, 경제, 환경, 문화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관계와 다른 지역국가들의 협력과 갈등을 조명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진행되는 미중 간의 세계질서 재건축 경쟁 구도 사이에서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기민한 대응이 절실하다. 위기 이후 세계질서의 모습을 복합의 시각에서 그려낸 본 연구가 향후 10년 한국의 외교•안보•통일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차

 

1장 세계금융위기 이후 국제 군사안보질서 변화_미국의 대응과 안보적 함의 | 이상현

2장 세계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군사안보 질서 전망 | 고봉준

3장 세계금융위기 이후 한반도 안보질서의 변화 | 황지환

4장 복합 네트워크의 시기_세계금융위기와 경제 거버넌스의 변화 | 김치욱

5장 세계 무역질서의 변화 | 손 열

6장 세계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금융 거버넌스 | 이승주

7장 국제 에너지 거버넌스의 변화 | 이재승

8장 탈위기 지구질서와 환경의 국제정치_기후변화대응체제의 현재와 미래 | 신범식

9장 21세기 세계 문화질서 | 김준석

10장 지구화 과정과 문화 영역의 변화_시민권, 다문화주의, 종교 | 박성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단행본의 원고를 일부 공개합니다.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무역·기술·에너지 질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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