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호남이 이재명을 버릴까

  • 2023-06-21
  • 고재석 기자 (신동아)

野 지지하나 마음 둘 곳 없다… 이재명 못 미덥고 이낙연 기대 않고 新黨 미지수

● 겹악재에도 호남 지지율 50%대
● 8년 전에는 34%까지 내렸는데…
● ‘이재명 사퇴론’ 크지 않은 이유
● ‘이낙연 신당’ 에너지 거의 없어
● 親明·非明·反明 교집합 비대위뿐
● 정치적 타협 없으면 기권할 수도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의 집권 방정식은 호남이 간택한 영남 후보다. PK(부산·경남) 출신의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은 호남이 밀어 대권을 쟁취했다. TK(대구·경북)가 고향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역대 민주당 계열 대선후보 중 최다 득표를 했다. 호남에서도 80%대 득표율을 얻었다. 당내 경선에서는 전남 영광 태생의 이낙연과 맞붙어 광주·전남에서 불과 0.17%포인트 차로 졌고, 전북에선 16.1%포인트 차로 이겼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첫 총리로 현직 전남지사인 이낙연을 지명했다. 그가 임기 말까지 40%대 지지율을 유지한 것도 호남과 무관치 않다. 호남의 지지세와 수도권의 호남 표심이 결합했다. 정치권에는 수도권 유권자의 30%가 호남 출향민이라는 정설이 있다. 결속력 강한 호남민은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을 방지했다. 보수가 호남 공략에 공을 들이는 목적도 ‘호남 지역구 당선’보다는 수도권을 겨냥한 성격이 더 짙다.

따라서 “민주당이 수도권 정당이 됐다”는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수도권에서 보수에 비교우위를 보이는 연료가 바로 호남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으로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관계자는 “경기 고양시 등에는 이미 당내 현역의원이 있는데도 출마하겠다고 활동하는 인사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고양시의 경우 수도권 전체 평균보다 호남 출향민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호남과 민주당의 관계를 지역주의의 렌즈로만 보면 중요한 걸 놓친다. ‘호남 대망론’이라기보다 ‘반(反)보수 대망론’이다. 일종의 안티테제(Antithese)다. 호남도 민주당도 보수를 이기고 싶어 한다. 공통의 타깃이다. 각자 나름의 서사가 있다. 그런 이유로 호남과 민주당은 서로에게 핵심 전략자산이다. 중요한 열쇳말은 동맹이다. 동맹은 냉혹하다. 호남 사람인 정동영·정세균·이낙연은 전략적 가치가 떨어져 대권 가도에서 낙마했다.

(중략)

지금의 ‘이재명 사퇴론’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문재인 사퇴론’이 돌았다.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에 좀체 힘이 실리지 않았다. 호남에서도 새정연을 수권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흐름이 형성됐다. 2015년 5월 3주차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호남에서 새정연의 지지율은 34%에 불과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20%였다. 민주당 계열 정당과 보수정당의 지지율 격차가 가장 작았던 시기 중 하나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딸려온다. 최근 들어 민주당에 초대형 악재가 두 개나 터졌다. ‘거액 코인’이나 ‘전당대회 돈 봉투’ 등 단어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 악성(惡性)이다. 당 혁신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논란을 자초했다. 이재명 대표는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있다. 당수(黨首)의 도덕적 권위에 금이 갔다. 8년 전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다. 정작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호남에서 민주당은 과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호남이 유독 이 대표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대표의 정치적 에너지는 대선 전후에 가장 강력했다. 이때도 호남은 그를 ‘전략적으로’ 간택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20대 대선 직후인 2022년 3월 10∼15일 실시한 대선 패널 2차 조사를 보자. 이재명 후보가 호남에서 얻은 호감도는 56.0%다. 이 중 ‘매우 좋다’를 택한 호남민은 15.3%다.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호남에서 얻은 호감도는 60.0%다. ‘매우 좋다’를 택한 호남민은 26.2%로 이재명 후보와 비교하면 도드라지게 높다. 열광의 강도에 차이가 있다.

다른 조사에서 드러난 민심도 비슷하다. 다음은 KBS 광주가 5월 10~11일 조사한 결과다. 이 조사는 광주만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에 따르면 광주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56.3%다. 이 대표가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52.4%다. 당 지지율보다 이 대표 직무수행 지지율이 소폭이지만 낮다. 이 대표 처지에서 보면 호남 분위기가 미묘하다.

한국갤럽의 ‘장래 정치지도자’ 조사(5월 30일~6월 1일 실시)를 보면 호남에서 이 대표 지지율은 38%다. 압도적 1위이긴 하지만 의견 유보층이 44%나 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호남에서 민주당에 대해 ‘이건 아니다’ 실망하지만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그래도 이재명밖에 없지 않으냐’ 하는 충성심이 강하다”(6월 5일, KBC광주방송)고 말했지만 정치적 의도가 섞인 발언으로 봐야 한다. 외려 복수의 조사를 종합하면 호남에서 이 대표의 지지율은 당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