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시진핑 3기 ‘늑대전사 외교’ 강화하며 노골적 으름장

  • 2022-11-09
  • 정철환, 박수찬 특파원 (조선일보)

시진핑 3기 출범을 계기로 중국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가 더욱 공세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국가 안보’를 강조하며 대만 통일, 소수민족 문제 등 ‘핵심 이익’에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이 확실해지면서 중국 외교관들도 주재국의 정치인, 언론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중국의 행태가 국제사회에서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국가의 이익과 존엄을 지키는 것일 뿐”이라며 신경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왕스팅 주스위스 중국 대사는 지난 6일(현지 시각) 스위스 노이어 취리히 차이퉁(NZZ)과 인터뷰에서 “스위스가 (신장위구르 인권과 관련된 유럽연합의) 대중(對中) 제재에 동참할 경우 양국 관계가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중국 인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고 EU의 대중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어 중국 대사가 이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왕 대사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에 대해서도 “이 보고서는 미국과 서방의 반중 세력이 돈을 대서 만든 불법적 보고서”라며 “내용 전체가 거짓과 소문에 기반을 둔, 한 편의 코미디”라고 주장했다. OHCHR은 당시 보고서를 통해 “중국 정부가 신장의 ‘재교육 캠프’를 통해 수십만명의 신장 위구르인에게 심각한 인권침해를 했으며, 이는 반인도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왕 대사는 “(스위스와 중국) 양국의 우호 관계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책임 있는 정치를 하는 사람은 대중 제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스위스는 그동안 유럽에서 가장 친중적인 국가로 꼽혔다. 1950년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중국과 수교했으며,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현재 중국은 EU와 미국에 이은 스위스의 3대 교역국이다. 그러나 신장위구르와 홍콩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지고,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권국의 권리”라며 옹호하고 나선 이후 중국에 대한 여론이 크게 나빠졌다.

 

인권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서방 선진국의 갈등은 갈수록 확전 양상이다. 영국에서는 지난달 16일 중국 외교관의 시위대 폭행이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중국에서 시 주석의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하는 20차 당대회가 열린 이날 영국에 체류 중인 홍콩인들이 맨체스터 중국 총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자 중 한 명은 중국 외교관들에 의해 영사관 마당으로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 정시위안 주맨체스터 중국 총영사는 시위대의 선간판을 밀고 일부 시위자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논란이 커지자 사흘 후 그는 영국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나는 누구도 폭행하지 않았다”며 “(시위대가) 우리나라와 지도자를 모욕했다. 나는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했다.

 

중국 외교관들은 주재국 언론에 대한 공개적 비판에도 거리낌이 없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 일부 언론이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 보도를 한 점이 현재 양국 국민감정의 불화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며 “한국 언론의 자유를 매우 존중하지만 부정적 보도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과장한다면 부정적 민심을 유도한다”고 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진 이유에 대해 한국 응답자의 67.9%(복수 응답)가 ‘사드 보복 등 중국의 강압적 행동’을 꼽았다. 이어 ‘한국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38.5%), ‘역사 갈등이 있기 때문’(30.2%) 등의 순이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의 방한 무렵 최고였던 한국 내 대중 호감도는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급감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중국 ‘늑대 외교’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20년 12월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100년 전 중국이 아니다”라며 “국가의 주권, 안전, 발전 이익, 명예와 존엄, 국제 평등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늑대가 되면 어떤가”라고 했다. 중국 외교부에서는 대외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밝히는 이들이 출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남아공 대사로 재임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을 맹비난했던 린쑹톈은 시진핑 2기에서 중국 공공외교를 총괄하는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장에 발탁됐다. 대변인 시절 거친 언사로 ‘늑대 외교의 원조’로 불리는 친강 주미 중국대사는 차기 중국 외교부장으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