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사학법 대치 정치권이 풀어야

  • 2005-12-27
  • 이내영 (중앙일보)

여당의 개정 사학법 강행 처리 이후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하면서 대치 정국이 장기화되고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다. 또한 종교계를 포함한 많은 사학법인은 학생 배정 거부나 학교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도 거론하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 성향의 종교단체와 사학 교사들이 사학법 지지를 표명하면서 개정 사학법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두 편으로 갈라지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사학법 개정 강행 이후 극한 대결의 정치가 지속되고 사회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은 정치가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정부.여당은 사학법의 명분에만 집착하여 거센 반발과 논란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표결을 강행해 국회가 파행에 이르게 되고 국론분열을 초래하는 정치력의 빈곤에 대해 자성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필자는 개정사학법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일부 조항이 사학의 자율성과 경영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특히 모든 사학법인에 개방형 이사의 참여를 법으로 강제하는 조항은 사학재단의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산적한 국정 현안을 방치한 채 장기간에 걸쳐 장외투쟁에 올인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아가 한나라당이 개정 사학법은 정체성을 뒤흔드는 법안이고 반미.친북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목적이라고 이념적 공세를 펴고 있는 행태와 논리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과 색깔론 공세는 보수적 지지층만을 의식하고 사학법 개정을 지지하는 반수 이상의 국민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이며 정치적으로도 득보다 실이 큰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한국사회연구소의 12월 11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학법 개정에 찬성하는 의견이 56.4%, 반대한다는 의견이 35.5%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선동적 구호나 이념공세보다는 사학의 자율성과 경영권을 침해하는 개정 사학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반대투쟁을 전개해야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학법을 둘러싼 국론분열이 심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대치 정국을 풀고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당장 여야의 강경 대치로 임시국회가 열리지 못하게 되면 새해 예산안이 해를 넘기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등 현안들이 처리되지 못해 국정이 난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선 정부.여당은 이제라도 사학재단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또한 적극적으로 정국 수습책에 나서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로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하고 여야가 사학법에 대한 보완책을 다시 논의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여당이 한나라당을 배제하고 임시국회를 개최하는 강경 해법을 채택할 경우 정국 경색은 더욱 심화되고 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은 정부.여당에 돌아가게 된다.

한나라당도 그동안의 장외투쟁을 통해 개정 사학법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 만큼 이제는 국회로 복귀해 우선 산적한 국정 현안을 처리하고 필요하면 원내에서 반대투쟁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올해의 마지막 주까지도 여야의 극단적인 대치 정국이 지속되고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여야가 대치 정국을 끝내고 대화의 정치를 복원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를 기대한다.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 고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