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여권의 '새판짜기' 걱정된다

  • 2005-10-28
  • 이내영 (매일경제 )

10ㆍ26 국회의원 재선거는 한나라당이 4석을 모두 차지하는 결과로 막을 내렸다. 선거 초반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되면서 맥 빠진 분위기에서 출발한 재선거가 대구 동을과 경기 광주, 울산 북구 등에서 막판 혼전이 빚어지면서 여느 선거 못지않은 열기를 보여주었다.

 

여야 지도부는 국회를 비우고 선거 현장으로 달려갔고, 마침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와 검찰총장 사퇴로 이어진 강정구 동국대 교수 파문이 국가정체성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이번 선거도 어김 없이 중앙정치의 여야 대결 양상을 띠었다.

 

이번 재선거에 걸린 의석은 4석에 불과했지만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와 내년 지방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고, 여야 모두 선거 결과에 따라 정당 지도부가 교체되거나 대권주자 위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등 선거 결과의 정치적 파장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지난 4ㆍ30 재보선의 23대0 패배에 이어 이번 재선거에서도 한 석도 건지지 못하고 참패한 여당은 상당한 충격을 받고 지도부 교체 등 심각한 내홍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에서 선전해 앞으로 지역주의 벽을 넘을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겠지만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실망이 크고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에 여당의 참패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이 26.3%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13.9%를 나타냈다.

 

이번 재선거의 책임문제를 둘러싸고 여당에서는 지도부 교체 요구가 거세질 것이고, 정동영ㆍ김근태 두 장관의 당 복귀와 조기 전당대회론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번 선거 패배를 계기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심화 되면서 정부 여당이 국정 운영 방향을 대폭 수정하거나 전면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 여당이 그 동안의 국정 운영 실패에 대한 겸허한 반성을 바탕으로 국정 운영 기조를 실용적으로 바꾸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정부 여당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조기개헌론 등 정치판을 새로 짜는 모험적인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럴 경우 정치권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4개 선거구를 석권한 한나라당은 향후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고 박근혜 대표의 당내 리더십과 대권주자로서의 위상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번 재선 승리에 도취돼 새로운 당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만드는 자기 혁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안주하게 되면 이번 승리가 새로운 덫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의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한나라당이 낡은 이념과 영남지역당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책임 있는 야당으로 거듭나려는 의지가 있는가에 대해 국민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 자신의 텃밭으로 여겨온 대구에서조차 고전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작은 선거에 강하고 큰 선거에 약한 한나라당의 징크스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울산 북구의 여당임을 자임한 민주노동당이나 호남의 옛 영화를 찾기 위해 절치부심한 민주당 역시 이번 보궐선거 결과는 크게 실망스럽다.

특히 17대 총선에서 일약 제3당으로 뛰어오른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의 고향인 울산에서 패배한 것은 이후 진보정당의 진로와 관련해 중대한 기로에 섰음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가 정치권에 미치는 상당한 파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이번 재선거 결과에 대해 냉담하다. 애초부터 정치인들의 선거법 위반이 없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되는 선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 도한나라당이 잘 해서가 아니라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강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이번 선거는 패자만 있고 승자는 없는 답답한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새삼 보여주고 있다. 마치 등장인물만 바꿔 똑같은 스토리가 재탕 삼탕 되는 이류 드라마처럼 정치권이 국민의 관심사는 외면한 채 자신들만의 낡은 정치를 반복하면서 국민에게 희망보다는 불신만을 주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이번 재선을 계기로 또다시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은 염려한다. 정치권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새로운 정치드라마를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 고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