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연정 아니라도 생산적정치가능

  • 2005-09-09
  • 이내영 (중앙일보)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간 회담이 양측의 현격한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성과없이 끝났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앉은 것에서 회담의 의미를 찾기에는 양측의 의견 차이가 두드러졌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감정적 발언도 없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소득이라면 상이한 현실인식과 정책노선을 가진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사이의 대연정이 애당초 비현실적인 제안이었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이제 정치권과 국민은 노 대통령의 다음 수순이 무엇인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포기하고 민주.민노당과의 소연정을 추진하거나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수순들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2개월처럼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계속 시도한다면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국민의 불안은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의 국민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연정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과 혼란이 마무리되고 침체된 경제상황으로 고단해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생산적인 정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우선 노 대통령은 당사자인 한나라당이 연정에 대해 분명한 거부의사를 밝힌 만큼 연정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사실 연정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뿐만이 아니라 상당수 여당의원도 반대의 뜻을 표시했고 더군다나 국민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이념과 정책노선이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한다는 발상이 새롭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노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둘째, 연정 논의는 접되 낮은 수준의 정책협의 등 대화의 정치를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번 회동에서 연정에 관한 합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다른 국정현안까지 현격한 입장차이만 드러낸 채 합의문 한 줄 내놓지 못한 것은 실망스럽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대편의 논리와 주장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구제 개혁과 한나라당이 강조하는 경제회복과 민생문제 등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를 국회에 만들어서 실질적인 정책협의를 시작하기를 기대한다.

셋째, 향후 정치적 협상에서는 정당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 바란다. 지난 2개월 동안 연정 논의가 노 대통령의 일방적 독주 아래 진행되면서 정당의 역할은 왜소화되었다. 특히 노 대통령이 그동안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며 공격하던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제안하는 한편으로, 정작 자신이 만든 여당에서의 탈당을 거론한 것은 정당정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취약한 정당체제를 제도화하고 정당 간의 노선과 정책경쟁을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발전의 핵심 과제이고 나아가 지역패권정치를 해소하는 관건이다. 특히 지난 두 달간 연정 드라이브에 뚜렷한 당론도 없이 끌려다녔던 열린우리당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민심을 대변하고 정치적 역할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생산적 역할도 중요하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무시하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연정을 거부하더라도 대통령이 연정의 목표로 제시한 지역구도의 해소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책임있는 야당의 자세라 하겠다. 그래야 국민에게 한나라당이 영남 지역정당의 기득권에 안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민생과 경제회복을 위한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정부.여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만을 기대하면서 자기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어둡다.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 고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