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눈이 맑은 대통령

  • 2005-08-22
  • 하영선 (중앙일보)

노무현 대통령은 광복절 60주년에 "과감한 결단으로 국민 통합의 시대 열자"라는 경축사를 했다. 나라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역사적, 정치적, 경제.사회적 분열 요인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것이다. 통합의 시대를 호소하는 경축사는 역설적으로 분열의 시대를 증폭했다. 이번에는 과거사에 대한 형사상 시효 배제의 위헌 시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역설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3주 전 신문 대담을 위해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을 만났다(본지 8월 3일자). 놀랐다. 핏발 선 눈의 우락부락한 혁명가의 외모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20년 넘게 동티모르 무장독립투쟁의 신화적 지도자였던 그의 눈은 맑았다. 7년 이상 정치범으로서 연금당했던 그의 얼굴은 탐욕스러운 정치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1999년 동티모르의 비극을 청산하기 위해 전 세계의 관심 속에 막을 올리는 "진실과 우정위원회"의 어려움부터 얘기를 했다. 인구 100만이 안 되는 동티모르는 75년 400년 동안의 포르투갈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도네시아의 통합을 거부하는 독립전쟁을 24년 동안 치러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의 붕괴와 함께 동티모르는 99년 비로소 명실상부한 독립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상상을 넘어서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인도네시아 군과 반독립 민병대의 마지막 몸부림은 동티모르인을 1000명 이상 죽였으며, 그나마 빈약한 경제 기반시설을 70% 이상 파괴했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새로운 방법으로 과거사 청산을 시도하고 있다.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역사의 승자가 주도하는 화해와 우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가 함께 구성한 진실과 우정위원회는 국내외의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가 강조하는 화해의 정치는 결국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되찾아주지 못하고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만 허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구스마오 대통령의 입장은 단호하다. 동티모르의 평화와 행복은 증오의 정치를 통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학살로 자신이 이끌었던 5만 명의 게릴라 병력이 700명밖에 남지 않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는 누구보다도 증오 정치의 유혹을 받기 쉬운 당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해의 정치라는 세계사적 실험을 하고 있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사랑의 정치 위에서만 미래의 통합을 위한 과거사 청산이 성공할 수 있다는 비밀을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담의 초점은 과거가 아닌 미래였다. 동티모르는 현재 1인당 연 국민소득이 5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따라서 미래사 건설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국민 통합의 차원에서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독립 투쟁의 영웅인 그가 누구보다도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과거사 청산을 화해의 시각에서 다루는 데 앞장 서고, 오히려 미래사 건설에 정치 생명을 거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는 알고 있었다. 국민 통합의 열쇠는 과거의 악몽 청산보다도 미래의 꿈을 함께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동시에 과거의 영웅이 미래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대단히 흥미있는 답변을 했다. 말의 정치 대신 눈의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사회의 갈등과 충돌은 그 나름의 자연 치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가 섣부른 중재자가 되기보다는 서로 토론하도록 내버려 두는 인내심을 길러야 하며, 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대화가 아니라 눈의 대화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정치 지도자가 현란한 말의 정치 대신에 상대방의 눈을 맑은 눈으로 응시할 수 있을 때 믿음의 정치, 사랑의 정치는 싹트기 시작할 것이다. 통합과 분열의 역설을 푸는 또 하나의 열쇠는 여기에 있다. 이 땅에도 국민의 눈을 맑은 눈으로 바라다볼 줄 아는 정치인들이 하루 빨리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대담을 끝냈다.

 

하영선 EAI 이사 ·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