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로버트 샤피로 교수 인터뷰

  • 2005-08-22
  • 이상일 (중앙일보)

"통일이 나쁘지 않다는 걸 미국에 인식시켜라"

로버트 샤피로 (Robert Y. Shapiro) 미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교수

만난 사람 = 이상일 국제뉴스팀 차장


"남북관계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남한은 동포인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 또 장기적으론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이중적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 고려대 교수) 초청으로 방한한 로버트 샤피로 (정치학)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1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여론 분석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샤피로 교수는 "미 국민은 북한을 잘 모른다"며 "남북한미 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미국에 나쁘지 않다는 점을 한국은 미국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신뢰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도 북.미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샤피로 교수는 "한국이 북.미 사이에 신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핵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이견이 노출되고 있는데.

"한국이 북한 문제를 다루는 태도에는 일종의 모순이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한국은 아직도 북한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미군이 한국에 남아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전쟁 억지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대북관계에서 미국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한다. 자유를 원한다. 지금의 한국 정부가 진보적이어서 더욱 그렇다. 한국은 또 동포인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며, 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런 양면성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을 미국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해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미국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해서다. 미국은 북한을 잘 모른다. 앞으로 한반도엔 통일로 가는 변화들이 있을 것이다. 미 국민은 그걸 조금 의심스러운 눈으로 볼지 모른다. 한국은 그런 변화가 미국에 나쁘지 않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 핵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신뢰의 문제 때문이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가장 위협적이라고 느끼는 상대방은 북한이다. 핵무기가 있는 데다 핵을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국제 규범을 잘 지키지 않은 점도 문제다. 북한이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주장하지만 미국은 반대한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평화적 목적을 빙자해 핵을 군사적 목적에 전용할 수 있다는 점과, 북한의 핵물질이 테러리스트 손에 넘어가 미국을 위협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북.미 간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북한의 핵물질이 군사용이 아닌 에너지용으로 쓰이고, 그것이 테러리스트 등 "주소가 불분명한 쪽"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히 담보된다면 미국은 북한에 평화적 핵 이용을 허용하는 쪽으로 일을 진척시킬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에 대한 엄격한 사찰과 규제가 필요하다. 북한이 그걸 쉽게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믿음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한국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대미관계에서 한국이 알아둬야 할 게 있다면.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테러 공포를 체험한 미국은 테러에 관한 한 인내심이 매우 약해졌다. 미국의 신경이 대단히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한국은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 저돌적인 북한의 손에 핵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이 북.미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서울에선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남북한 대표단이 참여한 통일대축전이 열렸다. 북한 대표단은 현충원을 참배하는 등 전례 없는 태도를 보였는데 어떻게 보나.

"냉전 때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남북한 사이에 감정이 누그러진다는 것은 통일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암시한다. 이번 축전은 한반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한반도의 전망이 밝다고 본다. 미 언론이 통일대축전을 좀 다뤘더라면 미 국민이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미 언론 보도는 6자회담에 관한 것을 빼면 "김정일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정도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데.

"그건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진단해야 할 것은 그것이 세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는 점이다. 결과는 미국이 중국.러시아와 협력적 관계를 맺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러 훈련에 대해선 일본의 우려가 큰 것 같다. 식민지 지배를 하던 시절 일본은 동아태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에 포위된 형국이다."

-바람직한 미.중, 미.일 관계는.

"중국 국영기업이 미 석유회사 유노칼을 인수하려 한 데 대해 미 일부에서 과민반응을 보여 인수를 좌절시킨 것은 문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현명한 정책이 아니었다. 미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의 회사를 인수하려 할 경우 상대국에서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할 건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미.중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참을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 대미관계는 좋다. 하지만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저지른 일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일본은 정직해야 한다. 그게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 샤피로 교수는=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컬럼비아대 "국가여론조사센터" 소장과 정치학과장을 지냈다. "여론의 정치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석학이다. 1992년 출판된 저서 "합리적 대중(The Rational Public)"은 40년대 초부터 90년대 초까지 미국 시민 대중의 여론이 정치와 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90년대 초만 해도 미 정치학계에선 대중의 여론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해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샤피로 교수는 그런 생각이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의 생각도 엘리트 이상으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했고, 그의 학설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여론조사가 활성화됐다. 그에겐 미국 정치학의 지평을 엘리트에서 대중으로 넓히는 데 기여한 학자라는 평가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