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선진 경제로 가는 길] 下. 전문경영인 활용해야 '프로 정부'

  • 2005-08-17
  • 이홍규 외 (중앙일보)

정부 인사정책은

평생 실전경제 다룬 인재
기업 넘어 국가 걱정하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능력 있는 프로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억압으로 사회를 침묵시키는 독재와 달리 각계각층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비전,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으는 설득력, 반대편을 추슬르는 포용력, 일을 챙길 줄 아는 집행능력이 다 같이 있어야 한다. 독재가 권력에 기대어 목표를 달성하는 일차방정식의 시스템이라면 민주주의는 비판과 견제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국민의 소망으로 바꾸고 그 소망을 정책을 통해 실현해 내는 고차방정식의 체제인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민주적 정부가 들어서기만 하면 저절로 선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신화가 지배해 왔다. 선거는 정책능력보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한낱 게임이 돼버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각 정부의 문제는 "경제는 가꾸지 않으면 무너져 내린다"는 평범한 진리에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역대 민주정부가 이러한 기본 이치를 알고 있었다면 능력보다 색깔을 중시하는 "코드 인사", 지역과 계층의 구색 맞추기로 전락한 "안배 인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재계를 자기 나름의 권리를 가진 이해당사자가 아닌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여 투자심리를 위축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프로 정부는 우선 일을 할 줄 아는 프로 선수들을 각계각층에서 찾아내 활용한다. 물론 한국 민주주의의 인재 풀을 체계적으로 확대하는 일은 정부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정부가 권한과 책임을 다같이 독점하는 독재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정부는 사회에서 인재를 뽑아 쓰는 곳이지 아마추어를 프로로 키우는 곳이 아니다.

고차방정식 시스템인 민주주의에서 사회가 키워내야 하는 국정운영의 프로는 정치.경제.행정.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다 같이 이해하면서 국민을 설득해 선진화 정책을 추진해 가는 "팔방미인"이어야 한다.

이런 팔방미인은 당연히 어느 특정 사회집단이 독점하고 있지 않다. 다양한 집단이 서로 갈등하며 협력하는, 그래서 각자가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고 상생의 절충점을 함께 모색하는 아주 독특한 공간에서 길러진다.

정부가 기용할 프로선수 인재풀로 한평생 경제와 씨름하고 조직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온 전문경영인이 돋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공직에 나서는 데 제한을 받고 있다. 새로운 경쟁자의 부상을 경계하는 정계.관계.학계.언론계의 견제 때문만은 아니다.

전문경영인 출신은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세에서 국가정책을 구상하지 못한다는 일반 국민의 정서가 이들의 기용을 힘들게 하고 있다. 공공정책의 세계에 나선 적이 없는 경험 부족도 능력있는 인적 자원을 썩히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프로 정부는 재계의 자기혁신과 싱크탱크의 확산에서 구축돼야 한다.

전문경영인이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경영인으로서의 장인정신을 배양한다면, 또 싱크탱크로 이동해 국가 대사를 논하는 공공성을 쌓는다면, 프로 정부를 구성할 인재 풀은 대폭 확대될 것이다.



이홍규 교수 정보통신대학교 경영학부 · 김병국 교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FTA 피해 보상은

 

"버틴다고 더 주기 식" 곤란

분명한 보상 원칙 세워야

 

한국 경제가 이미 과도하게 무역 의존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수출 주도가 아니라 내수 중심의 발전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규모와 부존자원을 고려할 때, 1인당 국민소득을 선진국 수준인 3만 달러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수출을 더욱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인구와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가 국민소득을 높이려면 수출액을 늘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무역국가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려면 국내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표되는 시장 개방 추세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시장 개방을 순조롭게 추진하고, 이것이 국제경쟁력 강화, 경제발전 지속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장 개방은 종종 사회적 저항에 부닥친다. 국제경쟁력이 없는 산업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우려해 시장 개방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 개방 추진 과정에서 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집단에 사회적 보상이 제공된다.

 

보상을 지불하고서라도 개방을 하는 것이 개방을 하지 않는 것보다 사회 전체적으론 이득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개방 피해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개방과 원활한 구조조정을 동시에 촉진하는 방향으로, "적정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무원칙하고 중복적인 보상은 개방도, 구조조정도, 국제경쟁력 강화도 모두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지난 10년간 이러한 길을 걸어왔다.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개방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보상을 제공하고도 국제경쟁력 향상을 달성하지 못했다. 우루과이 라운드(UR)협정 비준 때 82조원, 중국과의 마늘 분쟁 타결을 위해 1조8000억원의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한.칠레 FTA 협정 체결을 위해 FTA 이행 특별기금으로 1조2000억원이 들어갔는가 하면, 중장기적으로 119조원의 농어촌 투자 계획도 추가됐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FTA나 도하개발라운드 협정을 타결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개방 반대 집단들은 저항의 강도가 높을수록 보상의 혜택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부와 국회는 재정 지출 증가에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반 개방 세력들은 FTA 체결 등 새로운 개방 조치가 이뤄질 때마다 강력히 저항하고 보다 많은 보상을 받으려는 동인을 갖게 됐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론 곤란하다. 시장 개방에 따르는 사회적 보상은 분명한 원칙과 정확한 수단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도덕적 해이와 사회적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 임시방편으로 마련되는 1회용 지원책이 아니라 농업과 비농업 분야 각각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적 보상 및 구조조정 지원 체계의 마련이 시급하다.

 

정진영 경희대학교 교수

 


 

시민단체역할은

 

정치 권력 변질 경계하고
사회 투명성 감시자로

 

시민사회를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파벌의 해악(mischiefs of faction)"이거나 "결사의 예술(art of association)"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헌법의 틀을 세운 제임스 메디슨은 인간은 협력하기보다 서로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는 만큼 파벌의 횡포를 강력히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랑스 정치학자인 토크빌은 19세기 미국 시민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고 결사의 예술이라고 극찬했다.

 

이 같은 시민사회의 양면성은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 선진 경제로 가는 과정에 시민사회의 양면성을 조절하는 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시민단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한국 정치와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역할이 컸다.

 

노조와 기업으로 대표되는 이익집단의 폐해도 막아낸다. 환경이나 인권.교육 등 공익도 증진시켰다. 그뿐인가. 시민단체는 정부의 지원 아래에서 실업자 직업훈련과 같은 공공정책적 역할도 담당할 수 있다.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력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경제 선진화에도 일조할 수 있다.

 

경제 선진화를 위해 시민단체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우선 자원의 결핍 문제다. 현재 몇몇 소수 시민단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인적.물적.조직적 자원이 부족해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다. 2003년 한국민간단체총람에 따르면 민간단체 56%의 연간 예산이 1억원 미만이었고, 80%의 단체가 상근자 수 10명 이하였다. 시민의 참여가 저조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이 나온다. 소수 대형 시민단체와 명망가 중심 시민운동은 "엘리트 시민운동"이란 비꼼도 당한다.

 

시민단체의 과도한 정치화는 시민의 신뢰를 잃게 한다. 신뢰의 상실은 곧 시민단체의 위기다. 정치가 권력을, 기업이 자본으로 굴러간다면 시민단체는 도덕성과 시민의 신뢰로 움직인다.

 

5월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 조사에 따르면 참여연대와 경실련 같은 주요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대기업과 사법기관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6월 세계시민단체연합(CIVICUS)과 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 여론조사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높은 반면 인적 자원, 시민 참여도 측면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의 1차적 역할은 직접적인 정치 참여보다 정치권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권력을 감시.비판.견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익적인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공공정책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시민단체는 투명성.윤리성.전문성을 갖춰 공신력 있는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스스로 내부 규정을 엄격히 하고 행동강령을 강화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건강한 기구로 성장하기 위해 정부의 적절한 지원도 필요하다. 다만 정부 개입 논란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재정의 투명성 보장, 선거 개입 불가, 간접 지원 등의 원칙이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김의영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