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권력구조 재편 공론화'를 우려한다

  • 2005-07-07
  • 이내영 (조선일보)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하순 당(黨)·정(政)· 청(靑) 수뇌부 모임에서 "연립정부" 구상을 밝혔다고 한다. 이어 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대(對)국민 서신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현행 "여소야대" 정치구조를 타개하기 위해 권력구조의 재편 공론화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정치권에서 개헌론 등 권력구조 재편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의 글은 국정 운영의 주도권 상실로 인한 답답한 심정이 솔직하게 묻어나고 있지만, 국정 혼선을 제도와 야당의 책임으로 돌리는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책임전가 논리는 실망스럽다. 이번 권력구조 공론화 제안은 정부여당의 국정 혼선이 초래된 원인에 대한 겸허한 반성에서 나온 대안이라기보다는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더욱이 정치권 전체가 정계 개편이나 개헌론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 불안과 국론분열이 우려된다.

먼저 노 대통령이 권력구조 재편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여소야대 구도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노 대통령은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는 대통령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소야대 혹은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반적 정치상황이다. 우리의 경우 민주화 이후의 역대 정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으며 미국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는 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국정운영을 견제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여소야대 구도는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평가가 반영된 결과이다. 따라서 정부여당은 여소야대 구도를 만든 민의(民意)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야당과의 협조와 정책공조를 통해 국정운영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노 대통령은 현재 국정운영이 혼선을 빚고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여소야대와 권력구조의 제도적 결함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부실한 국정운영과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여소야대라는 제도의 탓이 아니라 잘못 설정된 국정운영의 우선순위, 측근비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은 국민이 더 잘 안다.

여소야대가 문제라면 작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과반수 의석을 만들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만의 재·보선에서 과반수를 빼앗긴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여소야대 때문에 국정운영이 잘못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정운영을 잘못해서 여소야대가 된 것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이 과반에 불과 4석이 부족한 제1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소야대와 야당의 견제 때문에 국정운영이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권력구조 공론화 제의가 자칫 본격적인 개헌론과 정계개편의 혼돈으로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 노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내각제적 요소가 첨가된 현행 대통령제의 권력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제도적 대안들을 차분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직면한 산적한 국정과제들을 고려할 때, 대통령이 권력구조 재편을 최우선 국정현안으로 제시하고 정치권이 이에 매달리는 것은 국가에너지의 낭비이고 국민이 바라는 정치리더십은 더욱 아니다. 현재 한국의 경제·안보 상황 등은 권력구조 논쟁에 시간을 허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권력구조 재편을 통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모험적 국정운영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리고 당면한 국정현안과 민생과제의 추진에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를 두며, 필요하면 겸허하게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통해 추락한 지지율을 회복시키는 정도(正道)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