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IT혁명과 신경제론

  • 2005-01-11
  • 이근 (한국일보 )

인터넷과 디지털 제품의 출현 등 IT혁명은 경제학에서 ‘신경제(New Economy)’라는 말을 낳았습니다. 이 말은 90년대 미국경제에 10년 이상 계속 호경기가 계속되자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에서는 대개 10년 내를 주기로 경기의 부침이 반복되는 단기적 경기순환이 있었고, 호황은 대개 5년을 못넘기고 끝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경제가 곧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여러 경제학자들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호황이 지속되자 이제 미국경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라는 설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지만 이 신경제 도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IT혁명입니다. 끊임없는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생산성 향상이란 바로 그 유명한 ‘수확 체감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수확 체감의 법칙이란 제품 생산량을 늘려 가면 한 단위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지막 한 단위 투입으로 인한 산출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으로, 현 주류 경제학 체계의 가장 근본이 되는 법칙입니다. 쉽게 말해 수확 체감의 법칙은 무엇이든 오래 못 간다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죠. 하나의 기계든, 생산시설이든, 특정한 경제운용 방식 또는 성장체제든, 처음 일정 기간 동안은 잘 작동하다가 결국 그 힘이 자꾸 떨어진다는 겁니다.

사실 그 동안 대부분의 상품에 이런 법칙이 타당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정보통신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법칙에 맞지 않는 상품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일례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보면, 처음 개발비는 엄청 많이 들지만 일단 개발이 완료되면 그 다음부터는 단순 복제이기 때문에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한 카피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평균비용)은 계속 하락하거나 일정합니다. 이렇게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수확량이 더욱 늘어나는 경우를 수확 체증이라고 합니다.

사실 수확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상품도 처음에 생산 규모가 어느 정도에 이를 때까지는 평균비용이 떨어지는 수확 체증의 단계를 겪게 됩니다. 그런데 생산량을 더 늘리다 보면 단가(평균비용)가 가장 낮은 저점에 도달하게 되고 그 점을 넘어서면 단가가 오히려 상승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죠.

이렇게 보면 수확 체증 법칙의 지배를 받는 상품이란 결국 평균비용이 상승하게 되는 구간을 경험하지 않는 행운의 상품인 것이죠.

좀더 생각해 보면 이런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행운의 상품, 혹은 정보통신 시대를 주도하는 상품의 경우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떨어진다는 사실보다는 계속해서 비슷한 용도의 신상품이 출현한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소프트웨어, PC, 휴대폰 등을 볼까요. 1년이 멀다 하고 더 강력한 성능을 가진 버전이 출현합니다. 즉 성능 대비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 것이죠.

구 경제에서 호황이 다 하고 불황이 오는 것을 한 상품으로 이야기하면 그 상품에 대한 수요가 떨어진다는 이야기이고, 기계로 이야기하면 그 기계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신경제에서는 계속 새 상품, 새 기계가 등장하여 기존 상품, 기존 기계를 수명이 다하도록 사용할 필요나 여유가 없게 되죠.

이렇게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기 때문에 불황의 도래를 억제하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불황이 오는 것을 보면 IT혁명이나 신경제도 한계가 있는 것인데 이는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이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