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민족주의' 뜬다

  • 2005-10-13
  • 강원택 외 (중앙일보)
한국인, 한민족 핏줄보다 국적 더 중시
중앙일보·EAI 공동 한국인 정체성 조사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정체가 드러났다. 혈연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적 민족주의다. "한민족 되기"보다 "대한민국 국민되기"를 중요시하는 경향이다. 한국인은 자신을 한민족(64%)보다 한국 국민(77%)에 더 가까운 것으로 느끼고 있다.

한민족이나 한반도 같은 혈연.지연적 특성보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소속감이 한국인의 정체성 (正體性) 을 만드는 핵심 요소가 됐다. 남한만의 민족국가적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60년 전 해방공간에선 "한민족 민족주의"가 잉태기였던 대한민국 민족주의를 압도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김병국 고려대 교수)과 중앙일보는 광복 60년, 중앙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2005년 한국인의 정체성"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의식을 재구성했다.



한국인은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대한민국에서 출생"(82%)하거나 "한국인의 혈통"(81%)을 가져야 한다거나 "평생 대한민국에서 거주"(65%)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88%)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을 한민족으로 봐줘야 한다(28%)는 관대한 의식을 일부 갖고 있는 반면, 국적을 포기한 한국인을 한민족으로 봐주는 것엔 매우 인색하다(9%).

대한민국 민족주의, 혹은 남한만의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이전의 한국인은 북한 땅을 회복해야 하는 "미수복 영토"로 간주하거나 혹은 남북통일을 민족 결합을 위한 지상 과제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은 남한과 북한이 현실적으로 별개의 독립적인 국가(78%)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소속감이 중요하다는 2005년 한국인의 인식은 한국 사회의 성장과 체제에 대한 우월감 등 국가적 자긍심이 커진 결과다.

한국인이 사회 내부적으로 느끼는 정체성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었다. 사회적으로 가깝게 소속감을 느끼는 대상이 과거 시.도와 같은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것에서 부자와 빈자, 노동자와 사용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산업사회의 구체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으로 바뀌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과거 지역주의적 균열에 기초해 있었다면 이제는 사회 계층 간 격차와 그로 인한 갈등이 정치적으로 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인은 대립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는 14개 갈등의 축 가운데 빈부 간 거리가 가장 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역 간 거리감은 과거의 심각한 증세에선 벗어났다.

설문조사는 한국리서치가 8월 31일부터 9월 16일까지 1038명을 상대로 개별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집 오차는 95%신뢰 수준에서 ±3.0%포인트다.

강원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