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진보-보수보다 빈부 갈등이 더 심각

  • 2005-10-13
  • 김민전 (중앙일보)
지역감정 정치적으로 부풀려져


국가보안법 철폐에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문제까지 노무현 정부 들어 숱한 사회적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이런 논란은 단순하게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으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의 공동조사는 한국 사회의 균열 구조가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14개의 갈등 그룹을 설정해 그룹마다 대칭되는 두 집단의 체감 거리감을 물어봤다. 측정 결과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간의 거리감이 가장 크게 나타난 것(매우 크다 51.5%, 대체로 크다 38.1%, 합계 89.6%)을 비롯, 기업가와 노동자(76.0%), 정규직과 비정규직(75.2%), 대기업과 중소기업(73.9%) 간의 거리감이 크게 드러나는 등 경제적 차원에서 거리감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측면의 거리감은 자신이 중하위 이하의 계층에 속한다고 밝힌 응답자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양극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전반에 경제적 거리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눈길을 끄는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거리감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는 빈부, 노사 간에만 사회적 거리감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노와 노, 사와 사 내부에도 균열이 있음을 보여준다.

빈부의 거리감에 이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간의 거리감(86.0%)이 둘째로 강했다. 여야가 앞다퉈 상생의 정치를 외치기도 했지만 국민은 탄핵에서 법사위 점거 농성까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여야 간 정쟁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75.4%), 학력(71.8%), 세대(63.5%), 이념(62.8%) 간 거리감은 경제적.정치적 거리감의 뒤에 있었다.

영.호남 간의 거리감(59.8%)은 비교적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치의 병폐로 꼽는 지역감정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도 영.호남 거리감은 심각하지 않다.

세대별로는 50대(70.0%)의 영.호남 거리감이 가장 컸다. 40대와 30대에서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대는 50대에 비해 20%포인트 정도 낮았다. 50대의 정치의식은 박정희와 김대중이 경합했던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비롯돼 그 이후의 80년 광주사태에 이르러 깊어졌다고 볼 수 있어 지역감정의 기원을 암시한다.

이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영.호남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승만 정부에 대한 평가는 영.호남에서 차이가 크지 않지만 박정희 정부 이후부터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영.호남의 평가가 뚜렷이 구분된다. 지역감정이 정치적 이유로 발생된 것이며, 아직도 지역구도가 논란이 되는 것은 정치인들이 실제 이상으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마케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주요 균열 축이었던 군과 민간인(35.9%) 간의 거리감은 이제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약화됐다.

사회집단별 주요 정치 이슈에 대한 입장을 보면  ▶박정희에서 김대중에 이르는 전직 대통령의 평가에선 지역 간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는 반면 ▶과거사 인식에는 연령과 학력 간 차이가 ▶국제주의의 수용 여부에는 학력과 소득 간 차이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인 측면의 정서적 거리감이 가장 크게 나타나긴 하지만 소득 수준이나 계층 의식이 각 이슈에 대한 태도에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영향을 주는 현상을 발견하긴 어려웠다. 이는 모든 계층에서 대체로 분배보다 성장을 중요시하는 물질주의적 성향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집단별 정당 지지를 보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모두 지역적 지지 기반을 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대 간의 차이 역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열린우리당 지지가 20대와 30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한나라당은 40대 이상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양 정당 모두 진정한 의미의 전국정당이 되기 위해선 "동진정책"이나 "서진정책" 못지않게 세대 간 소통을 위한 정책과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민주노동당은 서민과 노동자들의 정당을 표방하고 있으나 주로 젊은 고학력층이 지지 기반인데, 이 역시 민노당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44.1%나 된다는 것은 현 정당구도가 정치권의 지각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김민전 경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