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싶다 71%

  • 2005-10-13
  • 김태현 (중앙일보)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싶다" 71% "내가 사는 시.도 가깝게 느껴" 38%



"국민 정체성(正體性)"은 각 개인이 지닌 여러 형태의 사회적 정체성 중 하나다. 정체성은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감정이다. 그래서 소속 집단이 잘되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집단이 잘못되면 내 일처럼 좌절하거나 슬퍼한다. 그리고 집단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한다. 국민 정체성의 경우 내가 소속한 집단은 나라다. 강한 국민 정체성은 때론 애국심으로, 때론 민족주의적 정서로 표출돼 오늘날 세계에 현존하는 국민국가의 초석을 이룬다.

세계화와 지방화의 두 가지 상충하는 추세에 따라 국민 정체성은 안팎에서 도전을 맞고 있다. 국가 안의 지역 정체성이 강하면 그 나라는 분열의 위험이 있다. 국가 밖의 초국가적 정체성이 강하면 그 나라는 흡수의 위험이 있다. 한국인은 자기의 정체성을 어느 집단에서 찾고 있을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은 국민 정체성이 매우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속한 지역단위인 읍.면.동, 일반 시.군.구, 서울과 부산등 광역시.도, 대한민국, 한민족, 아시아, 세계에 대해 가깝게 느끼는 정도를 물어봤을 때 대한민국을 선택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76.8%).

또 "나는 어떤 다른 나라 사람이기보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싶다"는 진술에 대해 70.5%가 "매우 그렇다" 내지 "대체로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세계인(27.1%)이나 아시아인(44%)의식은 낮았다. 국가 내부의 하위 단위에 대한 정체성과 초국가적 정체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 안의 경우 읍.면.동과 일반시.군.구에 대해서는 과반수 정도, 서울과 부산 등 광역시/도의 경우 절반 이하만 가깝게 느낀다고 대답했다. 반면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감안해 포함시킨 한민족 정체성(63.9%)은 다른 분야보다 높았으나 대한민국에 비해서는 낮게 나타났다.

국민 정체성이 강한 것은 단일민족으로서 오랜 역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민주화 이후 국가에 대한 주인의식이 고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하위 단위에 대한 정체성이 약한 것은 중앙집권 체제의 전통이 강한 데다 빠른 산업화와 급속한 인구이동으로 지역공동체가 해체된 결과로 해석된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 주민들의 지역 정체성이 특히 낮은 것이 이를 반영한다. 초국가적 정체성이 약한 것은 강한 국민 정체성의 다른 측면인 동시에 잦은 외세의 침탈과 식민지 경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분석 결과는 여러 가지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강한 국민 정체성은 나라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희생할 의지가 높기 때문이다.

둘째,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 정체성은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과장됐음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전면 시행한 지 10년이 지난 지방자치제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셋째, 초국가적 정체성이 낮다는 것은 동북아 공동체와 같은 초국가적 프로젝트에 대한 국내 토양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오랜 연방제의 경험으로 지역 정체성이 강한 유럽에서 유럽연합이라는 초국가적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방자치제를 활성화해 보다 균형 잡힌 정체성을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

김태현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