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선진 경제로 가는 길] 上. 기업은 경쟁력 스스로 연마 정부는 시장 살리는 정책을

  • 2005-08-15
  • 김은미 (중앙일보)

한국은 경제개발에 들어가기 직전인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이 인도와 똑같은 81달러였다. 그러나 지난 40여 년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는 국가와 기업이 동반자로서 손을 단단히 잡고 경제에 전력투구한 결과였다.

국가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며 한정된 자원을 대규모 기업집단에 집중 투입했다. 기업은 여기에 의지해 사세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 경제성장에만 매진하다 보니 불공정한 경쟁과 노동 탄압이 심해지고, 기본적 인권이 무시되기도 했다. 정경유착의 폐해였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민주화의 물결을 맞아 정부와 기업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변화를 넘어 갈등과 대립의 관계로까지 나아갔다. 기업은 더 이상 정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정부-기업의 견제는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립은 도를 넘었다. 이래서는 경제의 선진화가 요원하다. 오늘날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을 넘어 글로벌 기업들을 자국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미 권력의 상당 부분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기업은 정부를 대신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경제 선진화를 위해선 정부와 기업 모두 환골탈태해 건강한 긴장과 생산적 협력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경제를 선도하고 기업을 지도한다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과감히 벗어나 경제 운용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세계적 기업으로 컸으며,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정부는 기업들이 세계 속에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사후(事後) 간접 규제 방식으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식의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수도권 공장 억제책 같은 것은 이제 풀어야 한다. 정부는 중소기업들이 힘없이 당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감시나, 금융 부실을 예방할 금융 건전성 감독 등 시장친화적 규제에 치중하면 된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무엇을 해 주길 기대하기에 앞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을 스스로 연마해야 한다. "독립선언"의 자세가 요구된다. 일을 벌여 놓았다가 잘못되면 정부가 뒷감당을 해 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벗어던져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없어졌는가 싶었던 기업들의 구태는 최근 카드 사태나 형제 간 경영권 다툼 등에서 되풀이됐다. 이는 시장과 국민을 볼모로 한 기업의 횡포나 다름없다. 기업들은 신기술.신상품.신경영에 과감히 투자하면서, 투명 경영.윤리 경영에 매진해야 한다. 이제껏 자원을 집중해 준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도 투자를 늘리고,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EAI "10년 비전" 토론 참여 교수=김병국(고려대.정치외교학과), 김은미(이화여대.국제대학원), 김의영(경희대.정치외교학과), 나성린(한양대.경제금융학부), 송호근(서울대.사회학과), 윤영철(연세대.신문방송학과), 이내영(고려대.정치외교학과), 이종훈(명지대.경영학과), 이홍규(한국정보통신대.경영학부), 장훈(중앙대.정치외교학과), 정진영(경희대.국제지역학부) 교수 <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