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인터뷰

  • 2005-07-29
  • 최지영기자 (중앙일보)

"기업과 NGO는 대립 아닌 협력 관계"

대담자 = 김병국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 김병국 원장(왼쪽)·메리 로빈슨(오른쪽)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을 동아시아연구원 김병국(고려대 정외과 교수) 원장이 28일 만났다. 로빈슨 전 대통령은 "인권 관련 민간단체(NGO)들과 기업 간의 관계가 과거의 대립구도에서 협력구도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아시아연구원과 경기문화재단, 마드리드 클럽(세계 전직 대통령 50여 명의 모임)이 공동 주최한 "도라산 강연회"에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28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을 만난 뒤 29일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도라산 강연회는 8월 1일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 8월 17일 테드 터너 CNN 창립자의 강연으로 이어진다.


▶김병국=정부와 개인의 이익은 서로 충돌하게 마련이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재직 때 각국 정부에 인권보호를 위해 많은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로빈슨=인권 문제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는 각국의 정부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재직 때 정부의 책임을 묻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힘의 쏠림이 정부에서 기업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권력 남용으로 인한 인권 탄압을 막는 데 기업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엔 다국적 기업들의 인권 탄압을 막는데 그쳤으나 이젠 인권 신장을 위해 기업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김=세계 인권무대에서 구체적으로 기업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로빈슨=hp.가넷.ABB.노바티스.뱅크원 같은 미국과 유럽의 대표 기업들이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고, 활발한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 재계와 인권단체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권 현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유엔 주최 "글로벌 콤팩트" 회의도 11월에 열린다. 재계 지도자들은 계층 간 갈등을 줄이고 빈부격차를 줄이라는 "세계발전 이니셔티브(EDI)"라는 단체도 만들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직 아시아 지역에선 활발히 참여하는 기업은 없다. 아시아에도 세계적인 기업이 많으므로 이들의 참여가 늘어났으면 한다.


▶김=기업들 입장에선 "우리가 왜 인권보호 운동에 나서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로빈슨=빈곤하고 불안정한 국가가 많으면 기업들에도 시장 창출 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각 분야에서 규제가 약화되고 자율화가 진행되면서 기업들이 일정한 책임을 져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등으로 사회의 투명성이 커지면서 다국적기업들은 개발도상국에서 노동력 착취나 인권 탄압을 하면 브랜드 가치가 하룻밤 사이에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김=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른데 인권단체들과 기업들이 과연 함께 일할 수 있나.

▶로빈슨=인도네시아에서는 국제빈민구호 단체인 옥스팜(Oxfam)이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와 협력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기업들 자신에게도 좋다는 설득작업을 계속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직원들에게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등 내부 결속에 좋고, 기업 이미지에도 도움이 된다. NGO들의 입장에선 힘과 자본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도움을 받아 좀 더 효율적인 활동을 펼 수 있다.


▶김=대통령 재직 당시로 화제를 돌리겠다. 아일랜드가 낙후된 경제에서 선진화된 경제로 바뀐 과정이 궁금하다. 교훈이 뭔가.

▶로빈슨=아일랜드는 1980년대 후반 뼈아픈 구조조정 과정을 겪었다. 교육 제도 등 각종 국가 제도를 크게 수술했다. 또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세금감면책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실용주의적 노조가 기업.정부와 대화를 계속하며 유연한 자세를 취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고급인력을 상대적으로 싼값에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 중의 하나였는데, 이는 교육이 바탕이 됐다.


▶김=한국에선 대학의 독립성 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정부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로빈슨=아일랜드는 80년대 후반 전국민에게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대학교육의 기회를 대폭 늘리는 등 교육제도를 수술했다. 대학들도 스스로 도시 빈민 자녀에 대한 자원봉사에 나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들이 대학 같은 교육기관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회가 늘어나면 경쟁도 늘어나 더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커리큘럼 등 교육 내용에 관한 대학의 독립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김=한국의 NGO들이나 인권단체들에 대한 인상은.

▶로빈슨=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시민사회의 활발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NGO들의 견해가 너무 정치적이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과도 인권 분야에선 함께 일해야 한다.


메리 로빈슨은

메리 로빈슨(61)은 1990~97년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역임했다. 46세 젊은 나이로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꼽히던 아일랜드에서 현역 국방장관이던 상대 후보를 8만여 표의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인접한 북아일랜드.영국과의 외교적 타협을 통해 분쟁에 시달리던 아일랜드에 정치.외교적 안정을 가져왔다. 특히 경제발전에 힘써 재임 7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90%에 달했다. 93%란 경이적인 지지율을 뒤로하고 연임을 포기한 뒤 97년부터 2002년까지 2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을 맡아 인권운동에 나섰다. 현재는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인권실현(Realizing Rights)"의 대표를 맡고 있다. 대통령 재임 시에도 소말리아.르완다 등에서의 난민 구호활동으로 유엔 국제인권상을 수상했으며, 유네스코 평화상도 받았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대학 법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거쳐 23세 때 모교의 최연소 교수, 25세엔 최연소 상원의원이 되는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워 왔다.


김병국 원장은

김병국(46)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하버드대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2년부터 동아시아연구원을 이끌고 있다. 대통령 자문 21세기위원회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21세기 한국정치, 삶과 꿈"(1998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