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사법부·행정부·국회 신뢰도 낮아

  • 2005-01-28
  • 이재열 (한국일보)
[본보 광복 60주년 여론조사] 기관별 영향력·신뢰도 분석
사법부·행정부·국회 신뢰도 낮아…힘있는 기관일수록 오히려 불신


한국사회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극단적 이기주의나 극한투쟁을 억제하고 공동의 이익에 기여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은 신뢰의 축적에 있다.

절대적 신뢰를 100, 완전한 불신을 0으로 해서 점수를 매겼을 때, ‘가족’에 대한 신뢰가 92점으로 가장 높았고,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가 37점으로 가장 낮았다.

또 ‘친척’(71)이나 ‘동창생’(68)과 같이 혈연과 학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높은 반면에, ‘동네가게 주인’(58), 시, 군구청 공무원’(47), 외국인노동자(46) 등 순으로 신뢰점수는 낮았다. 연고자는 신뢰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회단체나 공적기관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았다. 그나마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가 57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종교단체(56), 대학(55), 노동조합(53), 군(52), 대기업(52), 언론기관(52), 대통령(51) 등 순이었다. 특히 사법부(48), 행정부(46), 국회(39)의 신뢰도가 가장 낮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영향력을 역시 100점 만점으로 평가할 때는 대통령(77), 행정부(75), 언론기관(73), 국회(71), 사법부(70), 시민단체(69), 대기업(68), 종교단체(64), 군(64), 노동조합(62), 대학(61) 순이었다. 결국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기관일수록 오히려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부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기관에 대한 불신이 유독 크다는 것은, 비유컨대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심판 판정의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힘 있는 사람과의 연고 관계에 의존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건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이해를 수용할 ‘정치과정’에 심각한 기능장애가 있음을 시사한다.

"얼마나 서로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에는 "내가 사는 동네"(72), "내가 속한 단체" "지역" "내 직장이나 학교"(각 67), "한국사회"(55), "이 세상"(53) 순으로 신뢰점수가 매겨졌다. 이는 신뢰가 가족을 정점으로 동심원적으로 퍼져나가며 옅어지는 구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퍼트남과 후쿠야마가 예견했듯 신뢰를 결여한 사회는 부패와 무능, 극단적 이기주의와 사회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규칙이 적용되는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비로소 연고주의를 넘어 진정한 사회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재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