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미국 대선 후 한반도는…

  • 2004-10-29
  • 장훈기자 (중앙일보)

부시·케리, 북핵 입장 비슷


누가 돼도 심각한 국면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 고려대 교수)은 최근 토론회를 열고 다음달 2일의 미국 대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그 결과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짚어보았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가 진행한 토론회에는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김태현(EAI 외교안보센터 소장)중앙대 교수, 박철희.전재성.신성호 서울대 교수, 이태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장훈 중앙대 교수, 한용섭 국방대 교수가 참석했다.

◆이념 분열 속의 대회전=이번 대선은 기존 선거와는 판이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국내정치와 외교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은 9.11 테러 이후 처음 치러지는 것과 맞물려 있다. 그런 만큼 선거를 지배하고 있는 최대 이슈는 외교.안보, 특히 대테러 전쟁이다. 미국인을 제외한 세계인들은 이를 이해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미국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다. 지난 수십년간의 대선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대테러 전쟁이 후보자.유권자.미디어의 언어와 행위를 지배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미국 사회가 새로운 수렴과 분열의 불안한 이중구조 위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조지 W 부시(공화당)대통령과 존 케리(민주당)후보 사이의 입장 차이는 외부 세계의 인식과 달리 그다지 크지 않다. 대테러전의 최우선화, 핵 확산의 저지, 그리고 이를 위한 선제공격 전략과 같은 핵심 원칙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엇비슷하다.

하지만 안보 이외의 영역에 있어서 미국사회는 거대한 분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 사회적 안전망 확보와 같은 진보 이념과 친기업 정서,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이념 사이의 간격은 1980년대 이래 가장 많이 벌어졌다. 환경.낙태.동성애 결혼 등과 같은 새 이슈에 있어서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두 이념 간 대립이 더 선명해진 것은 보수.진보의 세력 분포가 전례없이 대등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9.11 이후 공화.민주당 간 안보정책 수렴은 보수.진보 이념의 합의가 아닌 두 이념 간 대립각 위에 서 있다. 보수.진보의 합의 위에 형성됐던 냉전시대의 반공(反共)제국주의와 달리 불안한 기반을 갖고 있는 셈이다.

◆두 후보 모두 "핵 완전 폐기"=이번 미국 대선 과정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놀랐을 것이다. 첫째는 이번 대선을 지배하는 테러와 안보 이슈의 한가운데에 한반도 문제, 다시 말해 북한 핵문제가 놓여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는 90분 동안의 1차 TV 토론에서 무려 30차례나 북한 핵문제를 언급했다. 북핵 문제가 한반도 문제를 넘어 미국인들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미국의 문제"라는 점도 보여준다.

둘째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두 사람의 입장이 대단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가 북핵 문제 접근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관측해 왔다. 그러나 케리 후보가 보다 유화적인 대북 접근을 하리라고 보는 것은 순진하고 비현실적이다. 케리 후보도 부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무기 확산 방지가 최우선 과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게다가 케리 후보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관심을 집중하는 바람에 북한이 4~7개의 핵무기를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국제시장에 내다 팔 의사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6자회담 연기 이후 답보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는 새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부시가 재선하면 일차적으로 현재의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6자회담이 북핵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는 정책 재검토를 시도할 것이고, 여기에는 실제 행동으로 대북 압박수위를 높여가는 정책들, 예컨대 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핵 논의나 경제적 압박이 포함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케리가 당선된다 해도 북핵 문제가 쉽게 풀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케리는 6자회담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북한과 미국 사이의 직접대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케리가 북한과 일괄타결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도 부시와 마찬가지로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 프로그램의 제거와 철저한 검증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